스포츠가 재미있는 이유는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는데, e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다. 매번 이기던 선수가 이기고,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만 결과가 나타난다면 게임으로 경기를 하고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팬들은 압도적인 경기력을 뽐내며 절대적 포스를 내뿜는 선수나 팀에게도 환호하고 열광하지만, 짜릿한 역전승이 나오는 경기만큼은 아니다. 아무리 잘하는 선수라도 사람과 사람이 하는 대결이라 작고 큰 실수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2에서 역전의 기본 중 기본은 바로 유닛끼리의 '상성'이다. 스타크래프트2는 인구수가 200으로 제한되어 있다. 아무리 많은 자원을 확보하고 있다 해도 200싸움으로 이끌기만 한다면 교전을 통해 충분히 역전이 가능하다.

특히 고급 유닛들이 주를 이루는 프로토스의 경우 조합만 잘 짜면 다른 종족에 비해 더 강력하다.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2016 통합 포스트 시즌 준PO 2차전이 벌어졌던 15일, SKT 김도우는 아프리카 이원표를 상대로 유닛의 상성을 바탕으로 한 번의 교전을 통해 대역전승을 일궈냈다.

▲ 과감한 3부화장 출발


아프리카 프릭스가 1:3으로 밀리고 있는 상황. 대장으로 출전한 이원표는 산란못 없이 제 2확장에 부화장을 펼치며 최대한 부유하게 출발하는 과감한 판단을 내렸다. 김도우도 정찰 없이 바로 앞마당에 연결체를 가져갔지만, 결과적으로 이원표의 출발이 더 좋았다.

김도우의 이런 선택은 어느 정도 근거가 뒷받침된다. 이미 2킬을 거뒀고, 만약 허무하게 초반 러시로 패배하더라도 SKT에는 박령우, 어윤수 등 강력한 카드가 많이 남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원표는 패배할 경우 그대로 SKT가 플레이오프에 직행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원표의 배짱 있는 플레이로 초반을 기분 좋게 시작한 셈이다.

▲ 저글링으로 파수기를 모두 잡아낸 이원표


이원표는 초반 기세를 계속 이어갔다. 저그 입장에서 눈엣가시인 예언자도 여왕을 통해 잡아냈고, 감시 군주를 통한 정찰로 김도우가 거신 위주의 지상 병력 체재라는 것도 일찌감치 확인했다. 게다가 다수의 저글링으로 프로토스의 핵심 유닛 중 하나인 파수기까지 모두 잡아내 더 유리해졌다.

이로 인해 김도우에게는 선택권이 없어졌다. 파수기를 잃은 프로토스는 중반 타이밍 러시 자체가 힘들어진다. 어쩔 수 없이 김도우는 후반 운영을 강요당했고, 마음이 편해진 이원표는 히드라리스크와 저글링, 맹독충을 준비하면서 소수의 가시 지옥으로 프로토스의 자원줄에 견제까지 들어가 이득을 취했다.



김도우가 이에 질세라 차원 분광기를 통해 견제를 시도했지만, 이미 본진에 배치되어 있던 히드라리스크에 의해 차원 분광기가 요격당했다. 주도권을 완벽하게 잡은 이원표는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다수의 뮤탈리스크를 생산해 김도우의 타이밍을 한 번 더 늦췄다.

서서히 생산 중이던 폭풍함도 잘라줬고, 프로토스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프로토스도 불사조를 생산하며 일단 뮤탈리스크라는 급한 불을 모두 끄긴 했지만, 이미 저그 입장에서는 시간을 벌 만큼 벌었고, 원하는 대로 경기를 이끌고 있었다.

▲ 첫 대규모 교전


분명 저그 입장에서도 프로토스에게 회복할 시간을 내준 감이 없진 않았지만, 상황이 워낙 유리했다. 그러나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이게 이원표가 패배하게 된 패착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자원이 부족하고, 상황이 좋지 않아도 인구수는 200으로 한정되어 있다.

김도우는 이점을 노려 최대한 고급 유닛들로 인구수 200을 잘 조합하고 있었다. 그리고 펼쳐진 프로토스와 저그의 첫 대규모 교전. 전투만 놓고 보면 저그 입장에서도 그리 나쁜 싸움을 한 건 아니었다. 교전 자체는 50:50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전투가 끝난 직후 이원표는 모아놨던 자원을 이번에는 울트라리스크로 전환시키며 순식간에 양 선수의 인구수는 170:100 정도로 이원표가 우세했다.

▲ 인구수는 밀리지만 유닛 상성으로 극복


그러나 여기서 이원표는 다시 한 번 김도우에게 시간을 내줬다. 이미 프로토스의 자원이 거의 말라가는 상황이라 더 이상의 확장을 내주지 않는다는 마인드로 플레이했다. 이원표도 남아 있던 자원을 울트라리스크를 다수 생산하느라 자원이 넉넉하지 않았고, 저그의 조합은 다수의 타락귀와 울트라리스크, 저글링.

울트라리스크는 양날의 검이다. 다양한 유닛들과 섞여 있을 경우 울트라의 존재감은 배가 되지만, 조합의 메인이 될 경우 프로토스가 그에 맞는 상성 유닛들로 인구수를 구성해 나갈 경우 힘이 많이 빠진다. 저그의 조합을 확실히 간파한 김도우는 울트라리스크의 카운터 유닛인 불멸자를 중점적으로 생산했고, 집정관과 고위 기사로 저글링이나 타락귀에 강력한 유닛을 천천히 모았다.

게다가 최후의 전투에서 김도우는 교전 컨트롤 능력까지 빛났다. 불멸자는 울트라리스크를, 집정관과 고위 기사, 광전사는 저글링을 상대하며 전투 효율을 극대화시켰다. 만약, 그 반대로 저글링이 불멸자에 달라붙고, 울트라리스크가 광전사나 고위 기사를 공격하는 상황이 나왔다면 저그가 충분히 승리할 전투였다.

김도우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면 역전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 아니면 수많은 연습을 통해 몸이 기억하고 있거나 말이다. 역전을 하기 위한 가장 기초 중의 기초. 유닛 상성에서 우위를 선점했고, 교전에서 그 상성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컨트롤로 대역전을 일궈내며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