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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3 후기) LA 공항에서 겪은 황당한 사건

1.

“세인츠로우 3” 주차장 이벤트 현장


약속은 지켜야 했습니다. E3 첫째 날 취재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복귀하던 중에 발견한 모 이벤트.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후다닥 기사를 올렸는데요, 뭔가가 계속 아쉬워서 내일 다시 그 이벤트 현장에 찾아가겠다는 약속을 하게 됩니다. (우선 이 기사를 읽어주세요.)


지금 생각해보면 단지 비키니 때문만은 아니고 넓디넓은 주차장 하나를 통째로 빌려 어떤 게임 이벤트를 하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변명 같아서 이 정도로..)






하지만, 2일 차 취재 일정도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인터뷰 끝나면 컨퍼런스, 컨퍼런스 끝나면 이동해서 인터뷰 이런 식이었습니다. 아무튼, 겨우겨우 시간을 내서 모 매체 기자와 함께 논란의 그 이벤트 장소로 당당히 쳐들어갔습니다.


근데 웬걸? 매우 조용했습니다. 비키니 걸의 춤사위, 무료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던 아저씨들의 호객행위, 그리고 힙합 음악이 울려 퍼지던 전날의 왁자지껄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진행 요원 몇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더 깊숙이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중앙에 “커스텀 카 샵”(Custom Carshop)이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걸려 있고 그 아래에 세인츠로우3를 상징하는 보라색으로 칠해진 자동차가 한 대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어떤 흑인 아저씨가 계속 차를 손보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수리하는 아저씨들도 다들 보라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요, '세인츠로우 3'가 GTA 시리즈와 비슷한 게임플레이를 선보이는 게임인 만큼 이런 이벤트가 꽤 괜찮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옆에서는 아주 무섭게 생긴, WWF에서 등장할 것만 같은 흑형께서 바로 그 티셔츠를 공짜로 나눠주시기도 했습니다. 겨우 용기를 내어 L 사이즈로 하나씩 받았습니다.



[ ▲ 이렇게 쌓아놓고 나눠줬습니다. 은근히 인기가 많더라고요. ]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 동행한 기자가 제일 만만해 보이는 (-_-) 행사 진행 요원에게 ‘왜 비키니 걸들이 보이지 않나? 어제처럼 자동차를 세차하면서 난리법석을 떨던 행사는 왜 안 하나?’라고 물어봤습니다.


온종일 이벤트를 하지 않는다.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데 다음 이벤트가 열리는 시간은 오후 3시 30분이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근데, 날씨가 몹시나 흐려서일까요? 결국, 그 시간이 되어도 이벤트는 열리지 않았고, 다음 일정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해야 한다는 전화를 받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 주차장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2.

헐리우드, 파머스마켓, 그루브 몰...


집중 취재 실패에 대한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듯하지만 일단 이야기를 계속 들어봐 주세요. E3 일정 마지막 날입니다. 밤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기에 오전 일찍 호텔 체크아웃을 해야 했는데 늦잠을 잤습니다.


옷과 노트북, 카메라를 여행가방에서 쑤셔 넣으며 급히 옷을 갈아입는데 마침 어제 행사장에서 공짜로 받은 세인츠로우 3 보라색 티셔츠가 보이는 겁니다. 어차피 취재도 끝났고 시내 관광만 남았으니 ‘뭐 어때..’라면서 대충 반바지와 함께 입고 뛰쳐나갔습니다.


그렇게 관광버스는 출발을 했고 LA 관광명소를 하나씩 돌기 시작했습니다. 헐리우드 거리부터 파머스 마켓, 그루브몰 등 LA에 거주하는 영화배우나 부유층들이 자주 온다는 곳에 가서 구경도 하고 밥도 먹고 그랬습니다.


근데, 이상하게 미국 현지 사람들이 저를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그루브몰에 있는 애플샵에 갔을 때도 그랬고 아울렛 매장에 들렀을 때도 그랬습니다. 한번은 아름답고 젊은 백인 여성이 저를 진지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겁니다. 그 이후에도 금발 여성들이 몇 번이나 저를 그렇게 쳐다봤습니다.


순간!

내가 한국에서는 좀 좌절했었지, 하지만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여기에서는 다르지 않을까? 미국에서는 나를 의외로 킹카로 생각할 수도 있는 거라고. 암, 그렇고말고.’라는 미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매우 잠깐입니다. 부디 용서하세요.



[ ▲ LA 관광 명소로 알려진 그루브 몰의 전경 ]




근데, 반응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모 기자와 대형마트에 게임패키지를 구입하려고 갔는데 그때 종업원의 표정은 마치 벌레를 보는 듯했습니다. 욕을 안 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또 다른 반응은 대부분 현지 남성들에게서 나왔습니다. 어떤 매장 종업원은 갑자기 점프하듯 저한테 오더니 “당신 패션, 정말 마음에 든다.”며 손가락을 높이 치켜세우기도 했습니다. 썩소와 함께 “땡큐”라고 답하긴 했는데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았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세가지 반응들은 늦은 밤 서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LA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그러다 악명 높은 LA 공항 보안검색대에서 “빵”하고 터져버린 겁니다.




3.

LA 공항 보안검색대


‘미국 한번 갔다 오면 애국심이 마구 생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LA 공항 보안검색은 엄청나게 까다롭습니다. 입국할 때도 마찬가지고, 출국할 때도 마찬가집니다. 가방이랑 겉옷은 물론, 신발까지도 벗어야 합니다. 주머니 속에 있는 동전과 시계, 핸드폰 같은 것들도 투명한 봉투에 넣어서 따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마지막엔 X-레이 검색대에서 두 팔을 머리 위로 들고 전신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이 전신 검사기가 탑승객의 옷을 투시하기 때문에 알몸이 드러나는 등 인권을 침해한다는 논란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최근 빈 라덴의 사망 이후 LA 공항은 대테러 위협 때문에 보안 검색이 더욱 강화되었다는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저도 긴 줄 서서 보안 검색을 기다리면서도 혹시나 어디서 걸릴까 봐 마음을 상당히 졸이고 있었습니다.



[ ▲ 사진은 샘플사진입니다만, 흑인 아줌마는 정말 비슷합니다. ]




결국 제 차례가 왔고 전신 검사기 안에 들어가 양손을 올리고 검사를 받았습니다. 2초 정도 지나자 흑인 여성 공항 검색요원이 저보고 그만 기계에서 나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 티셔츠에 눈을 가져갔는데, 그 순간 웃음이 폭발합니다.


그냥 웃는 게 아닙니다. 이 웃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상당히 고민했는데... 미국 영화나 시트콤 같은 데서 엄청 뚱뚱한 흑인 여자가 머리를 땅에서부터 하늘 높이 치켜세움과 동시에 온몸을 크게 흔들며 소리를 내는 바로 그 웃음이라고 보면 됩니다. “으하하..꺼이꺼이..으하하... 꺼이꺼이..으하하하”.


하늘이 노랗게 변했습니다. ‘뭔가 내가 큰 사고를 쳤구나. 한국 다시는 못 돌아가는 건가’. 그 흑인여성 아줌마가 이제는 주위 경비요원들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헤이~ 여기로 와 봐. 여기 이 사람 좀 봐”. 슬금슬금 하나둘씩 다가옵니다.


다행히 그들의 웃음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밤 근무에 지친 LA 공항 검색요원들에게 뭔지 모를 이유로 큰 웃음을 주고 있는 현실이 그냥 슬플 뿐. 상상을 해보세요. 엄숙하기 그지없는 LA 공항 보안 검색대에서 저 하나로 인해 리얼 시트콤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상황이 조금 진정되자 그 흑인 여성 검색요원이 눈초리에 가득 웃음을 띤 채로 저에게 말을 겁니다.


흑인 검색요원: “너 티셔츠에 있는 문구, 무슨 뜻인지 알아?

나: “그냥 행사장에서 공짜로 나눠줘서 받은 건데, 무슨 문제있어? 차 수리 어쩌고 잖아.

흑인 검색요원: (계속 웃으며) “차 수리?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제 기분상 No만 한 열 번 반복해서 말한 것 같았습니다.)

나: 통 모르겠다는 표정

흑인 검색요원: “나쁜 짓이야. (Bad thing.) 여기서 말해 줄 수 없어. 여기를 나가서 구글에 한번 검색해보라고.



[ ▲ 어제 봤던 이 장면을 떠 올리며 '차 수리'라고 답했죠. 근데 아니라는 겁니다. ]




검색대를 통과한 후 스마트폰을 통해 구글에 접속했는데 미국 공항 Wi-Fi 환경이 상당히 좋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확인해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티셔츠 속의 문구가 ‘차 수리, 튜닝’ 외에 슬랭(Slang, 속어)으로 성적인 의미를 하나 더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정리하고 꿀꿀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4.

한국행 비행기 안, 금발 청년과의 만남


비행기를 타서도 계속 찝찝했는데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E3 행사장에서 나뿐만 아니고 수많은 사람에게 나눠준 티셔츠인데.. 그 흑인 여자가 오버한 걸 꺼야.’라고 말이죠.


앉고 보니 옆자리에 금발의 백인 청년이 타고 있었습니다. 원래 외국인 특징이 말을 잘 겁니다. 처음에는 일상적인 인사를 건네더니, 그다음은 스튜어디스 이야기, 그다음은 즐겨 듣는 음악, 그다음은 좋아하는 음식까지 물어보며 계속 말을 거는데 어느새 조금씩 친해지게 됐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26살 백인 남자 B씨는 고향에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인데 한국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영어 선생님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 있다 보니 한국의 문화가 좋아져서 한국어도 공부하고 있고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김치찌개라고 합니다.






안 그래도 지겨운 장거리 비행.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탑승 전 공항에서의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겉옷에 가려졌던 제 티셔츠를 열어젖히며 “헤이, 여기 적혀 있는 게 무슨 뜻인 줄 알아?


순간, 미국 청년이 깜짝 놀라며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W... What?"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티셔츠를 받았던 경위와 미국인들의 저를 보는 이상한 시선, 그리고 공항 검색대에서의 사건 등 어제부터 오늘까지 있었던 일을 모조리 설명해줬습니다. 안 되는 영어실력 때문에 콩글리쉬와 바디랭귀지를 총동원해야만 했습니다.


제 말을 다 듣고 나니 그제야 그 백인 청년의 웃음보가 터지기 시작했는데, 제 생각에 한 5분은 혼자서 낄낄대고 웃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모든 상황 설명을 차근차근 이야기해줬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한동안 넋이 나간 얼굴로 천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전에 저를 정면으로 응시했던 금발 소녀의 표정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아, 나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녔던 것인가...


그 청년이 저보고 원래 영어 단어의 뜻이 여러 가지고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달리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해프닝이 일어난 것 같다고 애써 위로해주기도 했습니다. 근데, 그런다고 위로가 될 리가 있나요. 세인츠로우 3가 밉습니다. 비키니걸이 밉습니다. THQ가 밉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서 떳떳하게 티셔츠의 모든 중의적 의미를 공개하지 못하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길 부탁드리며, 2011년 E3 후기를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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