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가 쓰다 보니 정말 많이 길어졌습니다. ㅜ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일러드립니다.





제 보잘것 없는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안녕하세요, 사진작업 입니다. 
<그 인형은 지휘관과 서약하지 않았다(이하 그 인형)>가 이제야 이야기의 막을 내렸네요.
단순히 달달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에서 설정을 짜기 시작해서
7편 내지 8편 분량으로 완결을 내려고 했으나...
제 부족한 능력과 준비성 없는 자세 때문에 이야기가 지지부진 길어지고 늘어지면서
결국 16화가 되어서야 완결을 냈습니다.

<해체 이후>를 쓸 때와는 다르게, 쓰고 나서 종종 읽어 봤을 때
문장이 쓸데없이 늘어지고, 묘사에 너무 힘이 들어가고 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또 콘티를 깊게 짜놓지 않아서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머리를 감싸매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던 기억이 나네요.
읽어주신 분들의 평가는 모르겠으나, 글 쓴 사람으로서 이 글에 대해 평가를 내리자면
이야기는 불안하게 자꾸 흔들렸고, 뿌려놓은 이야기는 많았는데 완결을 내야 하겠다는 마음은 급해
이야기들을 많이 생략하다 보니 인물들 간의 인과성도 떨어졌고
문장은 문장대로 깔끔하지 못해서 보기에도 불편했던 글이었습니다.
15화의 말미에도 써놨지만 가끔씩 죄스런 기분으로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계획성 있는 글쓰기와 글쓰기의 무르익음이 참 소중하다는 가르침을 준 글입니다.

그래서 글을 마무리 지었을 때, 결국 끝까지 써 냈다는 안도감과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써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함께 몰려 들었습니다. 
후기를 통해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정리하고, 또 변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이 후기는 제 글에 대한 변명입니다. 그래도 그 변명에 의미는 있겠지요..

저번 <해체 이후>의 후기를 쓸 때에도 말했지만 본래 소설은 읽는 자의 것이고
또 읽는 자가 멋대로 상상하는 데에 그 재미가 있으므로, 이 후기를 읽으면 아마 그 재미가 반감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글을 읽으시면서 시원하게 풀리지 않았던 궁금증이나,
제가 어떤 생각과 어떤 의도로 글을 썼는지 궁금하신 분이 있다면 읽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저번에 읽어주신 분들의 피드백을 다 정리해서 담겠다고 이야기했었는데
그러자니 여러 커뮤니티에 올라온 것을 취합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고, 또 개인적인 공간으로서 
댓글창에 글을 남기셨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 따로 정리해 올리지는 않겠습니다.
피드백이나 질문이 있었을 때, 답글로 다 대답을 해 드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나 궁금증이 있으시다면 댓글이나 쪽지로 적어주세요 :) 
하나 하나 곱씹어 가며 답해 드리겠습니다.

후기는 <그 인형...>을 쓰기 전에 어떠한 경위에서 쓰게 되었는지,
쓰기 전에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의 틀을 잡았는지 이야기하고 나서,
각 편을 되짚어 보면서 각 편에 썼던 부제와 그 이야기의 내용, 문장들을 곱씹어 보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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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회상해 보자면, 소녀전선의 스토리를 접해 다시금 팬픽을 쓰고 싶었고, 그래서 처음 연재한 것이 <해체 이후>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과분한 사랑을 해 주셨었습니다. 
저로서는 그것이 꽤 신나고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해체 이후>를 완결내고 나서 다섯 편의 단편을 썼습니다.
<해체 이전 - G41> <질투> <세 자매> <동상이몽> <불면증> 이렇게 다섯 개네요. 게중에 <불면증>은 팬픽 공모전에서 금상을 탔습니다. 좋게 봐 주신 분들, 운영진 여러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저 글들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내용이 전부 머리 깨지고, 손가락 뽑히고, 혀 잘리고, 팔 뽑히고...불면증을 제외한 나머지 글들은 꽤 무겁고 잔혹한 내용들이었습니다. 
좀 더 가벼우면서도 달달한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언뜻 드는 생각에, 그런 '가볍게' 느껴질 만한 소설은 
좀 더 편하고 쉽게 쓸 수 있을줄 알았거든요. 그래도 여느 흔한 러브코메디같은 글은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달달한', 즉 '단 맛'의 정점은 '쓴 맛'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단 맛이 지나치면 쓴 맛이 되는 것과 같은 선상에서 말예요.
그래서 처음 글을 뗄 때에 '달달한' 글을 쓰겠다고 했지만, 실은 '씁쓸한' 글로서 마무리짓고자 했습니다. 
그럼 누구의 이야기를 쓸까...글을 기획하던 당시 새벽 PC방에서 알바하고 있었는데,
그 PC방에서 청소기를 돌리면서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경위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HK416이 떠올랐고, 404소대의 이야기를 떠올렸죠. <세 자매>를 썼던 것이 큰 영향을 끼쳤던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야만 하는 404소대의 성격은 아주 매력적이었거든요.
그에 대응되는 지휘관의 성격을 아주 무뚝뚝하고 강철같은 남자로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려면 두 사람이 본질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동질감을 느껴야 한다고 했고, 그 동질감은 HK416의 성격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어째선지 노병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여러 설정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떠오른 설정들을 청소가 끝나기 전까지 달달 외우고 있다가, 청소기를 끄고 바로 카운터로 달려가 다급하게 적어내려갔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 쓴 설정이 다음 사진입니다.


(파란색 글씨가 황급히 써 내려간 부분입니다)

소녀전선의 주 무대가 되는 지리적 배경이 어디일까 생각하다가 
대한민국 출신 지휘관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강철같은 노병이라면 아무래도 특수전 임무를 수행했던전역 군인이 제격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 설정은 마찬가지로 특작부대인 404팀의 HK416과 썩 어울리는 듯 했습니다.

HK416과 지휘관을 처음부터 대립시키고자 했습니다. 후술하겠지만, 서로 아주 닮아 있을수록 밀어낸다고들 하죠. 그런 HK416이 지휘관에게서 동질감을 보고 사랑을 깨닫는 과정이 꽤 흥미로울 것 같았습니다. 
HK416은 흥미로운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404팀 모두가 가지고 있는, 세계에서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질감을 가지고 있고, M16에게 보여주는 열등감에서 보이다시피 자신이 약하다는 데에서 오는 독기를 가지고 있으며, 또 솔직하지 못합니다. 이 솔직하지 못함은 "그래도 404팀 내에서 가장 착한 것이 HK416이다"라고 말했던 UMP9의 말에서 따왔습니다.
이런 HK416이 마찬가지로 자신의 존재가 지워진 늙은 지휘관을 만났을 때 벌어지는 헤프닝이 제 상상의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지휘관은 고지식할 것이고, HK416을(곧 인형이라는 존재를)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감정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게 되는 HK416을 나이라는 벽 때문에 받아들이길 망설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 언제나 두 사람만의 이야기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HK416이나 지휘관에게 어떤 돌을 던져 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 사람이 HK416이나 지휘관과 성격이 아주 반대면 흥미로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UMP9는 지휘관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간단한 이유와 간단한 사고였고, 그 결과 UMP9는 이야기 속에서 제 자리를 굳건히 지키지 못하고 그 존재감을 지워야 했습니다. 몇몇 에피소드를 통해 그녀의 존재감을 다시금 부각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 모든것을 풀어내려면 이야기가 30편까지는 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마지막에는 UMP9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냈습니다. UMP9의 팬이신 분들은 마지막에 UMP9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아쉬워하셨을 텐데, 참 그래서 죄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저것이 글을 시작할 당시 콘티의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소설의 주제는 희미했고 확고하지 않았습니다. '서로를 밀어내던 두 개채가 서로의 동질감을 파악하고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그 사랑은 언제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도가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이 안일함은 후에 저 이야기에 담아야 할 내용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제 뒤통수를 쳤지요. 일단 첫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흥국이를 묘사할 때엔 제가 항상 맨 앞에 걸어두었던 그 공식 일러스트를 참고했습니다. 더불어 흥국이의 몸을 묘사할 때에는 부상일러스트를 참고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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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와 늑대와 고양이
: 흔히들 UMP9와 HK416을 두고 강아지상과 고양이상으로 가르라고 한다면, UMP9를 강아지상, HK416을 고양이상으로 생각할 겁니다. UMP9는 발랄하고, 앙증맞으며 귀여운 구석이 있으나 HK416은 도도하고, 조용하고 날카로운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늑대는 묘사를 통해 지휘관인 것이 쉽사리 추측할 수 있도록 쓸 예정이었구요. 개와 늑대가 같은 과의 동물이라는 점에 착안한 부제입니다.. 언뜻 보면 개인 UMP9와 늑대인 지휘관이 엮여 있는 것 처럼 보이겠지만, 1편의 내용은 지휘관이 UMP9를 밀어내는 듯 하는 모습을 보이죠. HK416은 지휘관을 싫어하지만 오묘한 뉘앙스를 풍깁니다. 지휘관과 동류인 인형을 생각해 보았을 때, 지휘관과 가까운 인형은 HK416입니다. 또한 저 부제의 원관념을 추리해 내는 과정에서 '동류끼리는 밀어낸다, 그래서 닮은 사람은 서로를 싫어하지만 결국 사랑하게 되어있다'는 제 생각을 대입해 보면, 부제에서 개는 HK416이고 늑대는 지휘관이며, 고양이는 UMP9를 의미합니다.

404 소대의 특수성이 이 소설의 전반적인 흐름을 지배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404 소대가 어떤 느낌으로 전투하고, 또 어떤 상태인 지 전체적으로 깔아놓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소설의 시작은 소설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 그래서 404소대의 전투 장면을 꼽아 묘사했습니다. 전투 장면은 최대한 그 감각이 오감으로 잘 전달되게끔 쓰려 했는데 이제 보니 그렇게 썩 좋은 문장 같지는 않네요.

동시에 이 이야기의 또다른 감정선을 이끌어나갈(줄 알았던) UMP9와 HK416의 미묘한 신경전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UMP9는 지휘관 하면 끔뻑 죽고 솔직한 소녀로 묘사하고 , HK416은 그런 노땅은 어찌되든 상관없다면서도 묘하게 질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죠. 그래서 UMP9는 얼핏 HK416을 질투하는 듯 한 대사(마인드맵이 원래 싸가지가 없다는 둥)를 하고, HK416은 맛없는 특전식량을 씹으며 중의적인 말(하여간 마음에 안들어)을 하지요. 

그러면서도 지휘관은 그 특유의 무뚝뚝함과 강철같은 표정으로 UMP9를 대해야 했습니다. 그것을 통해 지휘관의 성격을 규정하면서, 동시에 지휘관이 HK416을 무심결에 아끼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HK416이 부관이고, 404에게 지휘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휘관이 있어 접점이 있다는 등의 설정을 새로 짜냈습니다. 쓸 땐 몰랐는데, 참 버거운 1편이었네요.


2. N극과 N극
: 앞서 지휘관과 HK416은 '동류'라는 이야기를 했지요(개와 늑대). 서로 같기에 밀어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같은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부제를 통해 조금 더 직접적으로 암시하고자 했습니다. 자석 메타포의 경우 애니메이션 <타마코 러브스토리>에서의 자석 이야기, 노래 <연애소설>의 '우리한때 자석같았다는건 한쪽만 등을 돌리면 멀어진다는 거였네'라는 가사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창의적인 소재는 아니지요.

HK416이 지휘관을 싫어하고 증오하는 이유를 묘사를 통해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동시에 지휘관이 없는 404소대에 지휘관이 생기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왜 HK416이 지휘관을 싫어하는 지 설명하려 했습니다. 또한 지휘관의 이미지(느낌)가 전 편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생각에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한 단어로 인물을 규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자만적인 행위이지만, 독자분들이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끔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이미지가 '태산(......그는 태산같은 남자였다.)'이었습니다.

이 때 까지만 하더라도, 다소 진부하지만 UMP9와 HK416, 지휘관의 관계를 삼각구도로 형성시킬 생각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UMP9의 입을 통해서 HK416이 지휘관을 솔직히는 받아들이고 싶으나, 솔직하지 못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말을 하게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곧 자신은 솔직하게 지휘관이 온다는 것이 반갑다는 뜻이죠. 이 말을 통해서, 미약하나마 UMP9가 지휘관을 관심에 두게 되는 인과성을 챙기려 했습니다. 

지휘관은 얼핏 HK416과 매우 대치되는 것으로 보이지만(HK416과 지휘관이 작전이나 복장 등으로 실랑이를 하는 일화) 1편에서 보였던 것 처럼 어느정도 HK416을 의식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이야기는 7~8편의 분량으로 기획했고, 짧은 글 안에 많은 내용을 쑤셔넣다 보니 그 안에 내포된 의도가 지나치게 많아졌나 봅니다.
지휘관이 꿈을 꾸고 괴로워 하는 것은 곧 HK416을 어떤 방식으로든 의식하고 있음이며, 그 의식의 방향이 자신의 군생활 중에 얻은 PTSD(자신의 존재가 없어짐&전장에서의 다급하고 잔혹한 경험들)에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휘관은 꿈을 꾸었고, 꿈 속에서 HK416이 죽는 것을 보았죠. 심지어 그 꿈을 일주일 째 꾸고 있다고 합니다.

이 편에 몇가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2편이 시작하는 부분에서, 다짜고짜 시간대가 지휘관이 없었던 과거로 흘러 다소 혼동스러웠을 겁니다. 또 지휘관이 일주일 째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설정은 즉흥적인 설정이었고, 계획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쓸 당시에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쓰고 나니 그 일주일 때문에 또 한번 골머리를 썩었던 게 기억나네요. 
문장 자체는 그렇게 늘어지는 것 같진 않으나, 예전 어렸을 때 글쓰던 버릇(비문을 이용해 문장에 포인트를 넣으려고 시도하는 안좋은 버릇/죽는다. 와 ......태산같은 남자였다 가 해당됩니다)이 튀어나와 다소 "중2스러움"이 드러난 게 많이 아쉽습니다.


3. 우리는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는 대한민국 육군이다
: 지휘관의 출신이 처음으로 드러나는 에피소드였기 때문에 쓰인 부제입니다. 사실 이 부제는 처음 지휘관을 전 한국군 특전사로 설정했을 때 부터 쓰려고 마음먹었던 부제였습니다. 여기에서 의미가 들어간 부분은 (와해된)'국가'와 (자신을 모르는)'국민', (그럼에도 불구하고)'충성을 다하는' (이제는 없어진)대한민국 육군 입니다. 

지휘관과 HK416의 사랑이 주된 내용이었기 때문에 지휘관의 설명이 탄탄하게 뒷받침 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지휘관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지휘관의 이야기를 설명할 수 있도록 그 계기를 마련할 사건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지휘관이 HK416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장면을 통해, 그녀와 그가 동질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그 이전에 지휘관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림으로써 독자들이 지휘관의 편에 서서 이야기를 읽어 나갈 수 있도록 신경썼습니다. 그 부분이 지휘관의 '회상' 부분입니다. 

몇가지 키워드를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기억'과 '초록빛 눈동자'였습니다. 인간의 기억과 인형의 기억이 다르다는 점, 그 기억속에 파묻혀 지내는 지휘관의 일상 등을 앞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큰 줄기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초록빛 눈동자는 HK416과 아내를 잇는 매개채로서 지휘관이 HK416과 아내를 혼동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뚜렷한 콘티 없이 '그러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넣은 설정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로 인해 이야기의 큰 줄기가 너무 많아지고 덕분에 이야기가 지나치게 방대해 졌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쌓이고 쌓여, 모든 이야기를 풀어내려면 30편까지는 가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지휘관의 '아내'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실 3편을 쓰기 전까지, 지휘관의 아내에 대한 자세한 설정은 없었습니다. 지휘관에게 아내가 있었다고 할까, 없었다고 할까 고민하고 있었죠. 따라서, 어떻게 보면 급조되어 들어온 설정입니다. 그것까진 좋았는데, 하필이면 아내와 HK416이 닮았다는 설정을 해 버려서 이후 아내의 이야기가 매우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당시에는 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고, '무언가' HK416과 아내의 닮음을 이용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알 수 없는 '무언가'는 곧 제 콘티가 부족하고 흔들릴 여지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왕 아내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려면 조금 더 치밀하고 자세하게 구상했어야 했습니다만, 그러지 못했죠. 몇몇 분들이 '아내의 이야기가 조금 갑작스럽다' '아내 이야기가 와닿지 않는다'고 지적해 주신 부분이 그런 부분에서 유래된 것 같습니다.

더 큰 문제는, 어떻게든 3편까지 이야기를 끌고 오고는 있는데, 지휘관에 대한 세세한 설정이 전무했다는 사실입니다. 지휘관은 대한민국 육군(특전사)출신이고, 무뚝뚝하며, 웬지 HK416을 신경쓰는 것 같다. (+아내가 있었는데, 그 아내가 HK416과 닮았었다) 정도가 설정의 전부였습니다. 

4. 10잔의 기억들
: 이 부제의 유래를 파악하신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휘관이 한가지 주제의 회상을 말할 때 마다 소주 한 잔을 마십니다. 소주 세 병은 약 20잔이 나오고, 지휘관이 10잔을 마셨을 것이란 생각에 짠 구도입니다. 계획된 구도는 아니었으나 나름 괜찮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지만요.

4편은 온전히 지휘관의 과거를 설명하고, 그로 인해서 HK416이 그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담아야 했는데, 이래서는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부랴부랴 소녀전선의 연혁을 조사하고 설정을 조금 더 치밀하게 짰습니다. 부족하나마 설정이 구색을 갖추었고, 설정오류 또한 생겼습니다. 지휘관을 묘사와 소녀전선의 연혁에 따르면 그가 유랑민이 될 때는 서른 여덟살 일 수 없었습니다. 예리하신 분들이라면 간파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지나온 글을 그렇게 멋대로 바꾸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누군가 지적해 주시면 담담히 받아들일 생각이었습니다. 

노트에 설정을 쓰기엔 너무 많은 내용이고, 생각이 빠르게 치밀어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타자로 설정을 짰습니다. 동시에 4편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대치시켰습니다. 지휘관을 설정할 대로 설정하고 나서, 뒤늦게 나이 등 세세한 설정을 짜려고 하니 기존의 글에 지휘관을 끼워맞춰야 했습니다. 좋지 않았던 방식이었죠.

내용 자체, 즉 저 설정을 풀어낸 글 자체는 잘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지휘관의 이야기가 실감나게 전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문제는 엉뚱한 데서 발생했습니다. 글을 읽어주신 분들 중 지휘관의 이야기와 HK416의 속마음이 번갈아 나오는 데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낀 분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4편을 쓴 방식은 지휘관의 이야기를 쭈욱 쓴 이후에, HK416의 이야기를 끼워 넣은 형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문장의 분위기가 묘하게 달랐고,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지금 보면 두 인물의 묘사와 생각이 삐그덕대는게 아주 거슬릴 정도로 잘 보입니다...다만 수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수정을 하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몇가지 복선을 깔아두려 했습니다. 4편을 쓸 당시, 전술인형의 총기에 총번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그대로 설정에 적용되었습니다. 지휘관이 결국에 HK416을 거절하게 될 적절한 계기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였습니다만, 소설의 완결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 글을 맺을 수 있게 구해준 설정이었네요. 

지휘관이 아내의 이야기는 회피하는 것으로써, 본격적으로 아내와 HK416이 닮았다는 소재를 사용하려 했습니다. 지휘관은 고지식하지만 HK416을 HK416만의 인격체로 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색 눈을 갈구하는 것을 통해 무언가 아내를 잊지 못한다는 뉘앙스를 주려고 했습니다.

후기가 너무 길어지네요. 최대한 간단히 써 보겠습니다....ㅜㅜ

5/6. 열 길 물속은 알아도/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
: HK416의 혼란한 마음을 드러내려고 했던 편들이었기 때문에 저 속담을 차용했습니다. 속담을 반으로 가른 이유는 뒤에 오는 '사람'의 의미 때문이었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라는 말에서,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뒤의 속담을 상상할 것이라 생각했고, 이야기의 주된 '속'은 HK416, 인형이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차이를 두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6편에서 HK416은 UMP45에게 진솔하게 고백하고, 오히려 5편에서 지휘관이 자신의 마음을 쉽사리 정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HK416이 지휘관을 향한 마음을 정의내리지 못하고 헤매는 것을 드러낸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에 두 편이나 쏟으며 분량을 할애한 이유는, 가장 먼저 HK416이 지휘관에게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충분히 설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K416의 사랑은 다소 급작스레 진행된 것 처럼 보였고, 이는 이전에 뿌리깊게 박히지 않은 콘티들의 영향이 컸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HK416이 마음을 정리하려고 할 때, UMP9의 존재를 다시금 부각시켜 이 이야기에서 전개되는 사랑 이야기가 조금 더 자극적이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지휘관의 이야기를 써 오면서, 이야기가 '사랑 이야기'에서 멀어지는 것은 싫었기 때문이고, 동시에 존재감이 옅어지고 있는 UMP9의 중요도를 부각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7. 회색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여기서 회색은 비 오는 날을 뜻합니다.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다채롭지 못하고 (부정적으로)고요한 것을 뜻하려 했습니다. 이야기 전체적인 분위기를 '비 오는 날'로 설정해 이후에 올 이야기들에 힘을 싣고자 했습니다.

어느정도 마음을 정리하고, 지휘관에게 호감을 느끼나? 싶은 HK416에게, 지휘관이 마무리일격을 날리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사건이 필요했고, 그 사건의 힌트를, 404소대가 그리폰 내에서 동떨어진 팀이라는 데에서 따 왔습니다. 

저는 404소대가 다소 왕따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습니다. UMP9와 HK416 사이에 생긴 미묘한 기류에 분위기가 무거워 졌는데, 가뜩이나 비가 오고, 그 와중에 404소대는 왕따당하는 것 처럼 대우를 받는다면 정말 서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서러운 HK416에게, 자신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지휘관이 가슴 깊은 위로를 해 준다면 HK416은 지휘관에게 훌떡 넘어가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야기들 중 가장 묘사가 잘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그 생각은 전반부(대화가 나오기 전)에 한합니다. 이 때, 제가 대화를 하는 인물들을 묘사하는 데에(정확히 말하자면 큰 따옴표가 나오는 순간부터) 애를 먹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대화가 많아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고....미칠 노릇이었죠.

'휴가'를 통해 두 사람의 감정선을 극도로 밀접시키고, 또 두 사람의 사랑이 엇나가는 것을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지휘관 또한 함께 휴가를 나가야 할 이유가 필요했기에...지휘관이 병원에 다닌다는 설정, 즉 몸이 좋지 않다는 설정이 만들어졌습니다. 지휘관과 HK416이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하게 할 것이란 계획은 있었으나, 지휘관을 죽이려고 까지 하지는 않았습니다만...이렇게 지휘관의 죽음이 결정되었었습니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네요.

8. 인간과 인형
: 인간과 인형을 부제로서 부러 구분하면서, 지휘관이 인형을 이해하고는 있으나 선을 그으려고 했다는 것을 암시하려고 했습니다. 지나친 암시였네요. 아내의 이야기 이전에, 지휘관이 인간이고 HK416이 인형이라는 사실, 즉 다른 종족이라는 사실이 지휘관에게 있어서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에 큰 걸림돌이 되게끔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지휘관이 늙은 몸이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또한 지휘관이 HK416에게 다정하게 대한 것을 후회하는 묘사를 넣어, 그가 HK416과 감정적으로 이어지는 데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반면에 HK416은 한결 지휘관에게 마음이 열린 채로 조금은 들떠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큰 혼란을 줘야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지휘관 아내의 존재만큼 큰 혼란이 없겠죠. 더더군다나 그 아내(인줄 당시엔 몰랐다지만)가 자신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흥국이는 지휘관이 여태까지 자신에게 해 주었던 말들과 다정함의 진정성을 의심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혼란을 계기로 오히려 흥국이와 지휘관의 접점을 만들어 내고, 이후에 차차 감정선을 풀어나갈 계획이었죠.

9. 늙은 늑대와 강아지
:늑대와 개 이미지에서 나이를 넣은 늙은 늑대와 강아지입니다. 이로서 두 사람의 관계 서열이 명확해 지고, 또 강아지가 늑대를 동경해 우러러 본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쓴 부제입니다.

다시금 생각이 복잡해 진 HK416이, 또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 에피소드입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G11의 역할이었는데, 이전부터 이런 용도로 G11을 등장시켜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건이 진행될 때 예리하게 요점을 집어 파훼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부터 G11은 맹한 구석 뒤에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고, 따라서 G11이 HK416의 결심을 서게 만듭니다. 

10. 파란 날의 고양이
: 10편의 마지막에, 지휘관의 집에 찾아간 사람이 누구였는지 궁금하신 분들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힌트는 부제에 있었습니다. 다소 직관적인 힌트였는데....서양권에서 '우울'을 뜻하는 색인 파란색에, 고양이 입니다. 1편의 부제를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이 나올 겁니다 :)

본격적으로 HK416과 지휘관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전에, UMP9에 대해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 UMP9의 심리를 비중있게 쓰려 했던 에피소드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오히려 움뀨의 비중만 애매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아네모네'라는 중요한 복선을 넣었다는 데에는 의의가 있습니다.

아네모네는 꽃말이 많기로 유명한 꽃입니다만, 그 의미는 대동소이합니다. 제가 생각했고 차용한 아네모네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과 "비록 당신이 절 사랑하지 않아도 전 당신을 사랑하겠어요"입니다. 

이 편에서 아네모네가 의미하는 것은 소설 전체적인 방향과 10편 자체의 내용을 암시합니다. 거시적으로 아네모네는 결국 HK416과 지휘관이 이어지지 않으나, HK416이 진심으로 지휘관을 사랑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미시적으로는 UMP9가 지휘관에게 품고 있는 사랑이 '이룰 수 없는 사랑'임을 암시합니다.

마지막에 전술인형을 밝히지 않은 것은 의도된 부분이었습니다. 읽는 분들로 하여금 다음 글을 보고 싶게 만들려는 장치였죠.

11. 보금자리
: 보금자리라는 말은 따듯하고 아늑하고 안정감 있는 느낌을 줍니다. 그런 지휘관의 '보금자리'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한결 마음을 열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특히 HK416의 경우엔 지휘관의 진심이 잘 전달되어, 자신이 지휘관을 애타게 생각하게 되는 큰 계기가 되는 중요한 일화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이야기에 앞서, 이야기가 길어질 조짐을 보이고,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콘티를 손봤습니다.

콘티를 끝까지 짜지는 않았고, 일단은 생각나는 대로 급하게 적은 콘티(+상황정리)입니다. 중간에 이런 식으로 콘티를 써 가며 써야 했을 정도로...초기에 자리가 잡히지 않은 글은 많이 휘청거렸습니다.


12. 진짜와 가짜
:여기서 진짜와 가짜는 총 세 가지의 의미를 가집니다 - HK416의 사랑과 UMP9의 사랑/진짜 사람의 마음과 가짜 인형의 마음/진짜(아내)와 가짜(HK416)

한결 지휘관에게 마음을 연 HK416을 묘사해, 곧 있으면 두 사람 사이에서 흐뭇-한 사건이 일어날 조짐을 만들었고, 그에 대비되는 UMP9는 처절할 정도로 불쌍하게 묘사하고 싶었습니다. 그 와중에 지휘관은 심한 압박을 느끼면서, 서서히 몸이 안좋아 지는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UMP45의 말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인형의 마음을 '인간의 마음을 흉내내는 것'정도로 치부하는 그녀의 모습은 지휘관의 태도와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UMP9가 지휘관을 사랑하게 된 데에 대해 인과성이 부족하다고 느껴 보충하고자 했습니다. 

읽으신 분들은 어떻게 느낄 지 모르겠으나, 말미에 "인형은 왜 울 수 있게 만들어졌을까. 쓸 데 없이..."라고 말한 것은 UMP9가 아닌 G11입니다. 

글이 풀리지 않아 이틀에 나누어 써야 할 정도였습니다. 문장이 아무리 봐도 질척거렸고(깔끔하지 못했고) 또 곧바로 튀어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얼기설기 써 놓은 다음에야 글을 써야 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습니다.


13. 꿈
:지휘관이 꾸는 꿈으로 시작하는 에피소드입니다. 이 때 꿈의 묘사를 일부러 중의적인 표현을 많이 넣고, 반복적인 문장을 많이 넣음으로써 그 분위기를 살리고자 했습니다. 변명이 될 진 모르겠으나, 반복적인 문장이 많이 보인 건 그 탓입니다. 물론 이 13편 이전에 많이 보이던 반복적인 묘사들이나 패턴들은...제 능력 부족입니다. 관련한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정말 억하심정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순간 그만 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저는 밑도끝도 없는 패배감과 죄책감에 휩싸일 것 같아...

이 꿈 또한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휘관이 꾼 꿈에서 현실과 꿈이 잘 분간되지 않았다는 서술이 나오는데, 이는 곧 HK416과 지휘관의 관계에서 지휘관이 느끼는 것과도 동일합니다. 억센 현실과 사랑스러운 꿈 사이에서 지휘관은 자신의 방향(아내를 HK416과 온전히 구분하는 것)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립니다. 꿈이 의미하는 것은 지휘관이 자면서 꾼 꿈과, HK416이 키스하면서 꾼 현실의 꿈 두 가지였습니다.

더 이상 HK416과 지휘관의 감정선을 질질 끌면 안될 것 같아, 과감하게 HK416이 지르도록 했습니다. 최대한 사랑스럽게 묘사하려고 노력했고, 살갗의 냄새를 묘사할 단어를 찾다가 웬지 '육향'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검색해 보니, 진짜로 여자의 향기를 뜻하는 단어였습니다. 갑자기 기억나네요.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가장 절정이고, 큰 분기점을 앞둔 에피소드였습니다.


14. 404 NOT FOUND
: 부제 설명은 이 부제를 계획했을 때 메모해 둔 카톡 캡쳐로 대신합니다.


학원 갔다가 오는 버스 안에서 떠올라 급하게 메모했던 기억이 나네요

14편의 중점은 HK416이 분위기 좋았다가 결국엔 거절당하고, 그 거절을 어떤 형식으로든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총번의 이야기를 회수함과 동시에 지휘관의 마음을 확고하게 굳히려 했습니다. 총기번호는 어디까지나 '무기'의 속성을 띠고 있으므로, 지휘관에게 있어 HK416이 인형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더군다나 그 총기번호가 자신이 쓰던 HK416의 총기번호일 때, 흥국이는 더더욱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존재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지휘관이 HK416을 인간으로 바라보며 착각하는 감정에서 탈출해 HK416과 인간(아내)을 구분하고, HK416에게 다시금 선을 그을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지휘관의 총기 그 자체가 훗날 인형인 HK416이 된다는 설정은, 총번에 관한 설정을 할 때 동시에 떠올렸던 것이었습니다. 막상 쓰려니 읽어주실 분들이 잘 받아들일 지는 미지수였으나...

HK416이 기분 나쁜 것이 당연할 것이라 생각했고, 한발 나아가서, 그 당연한 이유가 아닌 어떤 다른 이유에 의해서 HK416이 화를 내고 있는 경우를 생각했습니다. 15편과 14편의 내용을 함께 구상했고, 그래서 HK416이 다짜고짜 팀원들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미리 짜 놓은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빵갤에 '완결까지의 길이 보였다'고 했던 것이, 이 편 부터 마지막 편 까지의 줄거리를 한번에 구상해 냈던 것을 뜻했었습니다.


15. 지휘관은 그 인형과 서약하지 않았다
:본래 "그 인형은 지휘관과 서약하지 않았다"라는 제목에서는 서약의 여부를 HK416이 선택했다는 뉘앙스가 강합니다. 그런 뉘앙스는 글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었죠. 하지만 (독자분이 오너캐, 즉 지휘관의 이야기가 과하다고 지적해 주셨지만)이 이야기는 HK416 만큼 지휘관의 이야기도 매우 비중이 컸고, 사실상 이 감정의 주도권은 지휘관이 쥐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그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또 굳혀내기 위한 부제였습니다. 지휘관과 인형의 어휘 순서를 바꿈으로써, 서약의 주도권을 지휘관이 쥐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게 했죠. 이 부제는 처음 글을  쓸 때부터, 마지막 편에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부제였습니다.

내용적으로는 HK416이 지휘관의 거절을 생각보다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고, 또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전편에서 HK416이 화를 냈던 이유를 설명해야 했죠. 예리하고 날카로운 G11은 좋은 대화 상대가 되어 주었습니다. 

지휘관이 본격적으로 죽음의 길에 들어서고, 그 지휘관이 완전히 HK416을 무기로서 생각하게 되었으며, 아내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드러내야 했습니다. 


16. 아네모네

지휘관의 아내에게 밀린 HK416이, 자신을 밀어내는 지휘관을 보고 마음을 정리하는 것을 묘사해야 했습니다. 지휘관은 고통 속에 몸부림치면서 아내를 찾는데, HK416은 그 아내가 된 것 처럼 행동합니다. HK416이 아내처럼 행동한다는 것에 의미는 지휘관이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HK416이 이해하고, 인정한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지휘관의 사랑을 받는 자가 되어 보고 싶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인간이 되지 못한 자', 즉 지휘관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자 아내가 되지 못한 자인 HK416은 그래서 흐느끼며 마지막으로 지휘관의 손길을 받습니다.

이로 인해 HK416이 지휘관에 대한 마음을 털어내고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결말을 썼습니다. 그래서 지휘관의 죽음은 갑작스럽고 허무하게 그려졌습니다. 이는 인간의 죽음이 별 것 없다는 생각에도 기인했지만, HK416이 지휘관을 향한 태도 또한 한 몫 했습니다. 지휘관의 죽음을 맞으며, HK416은 지휘관에 대해서 초연한 태도로 일관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진심으로 지휘관을 사랑했고, 또 완전히 그 감정이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메세지를 아네모네로서 다시금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마지막에 다시 아네모네 꽃이 필 것이라는 의미는 몇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습니다만,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것마저 말 해 버리면 너무 낱낱히 파헤쳐 버리는 꼴이 되므로...제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썼는지 정말 궁금하신 분이 있으시다면, 쪽지나 댓글로 말씀해 주세요. 답해 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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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설명을 다 하고 보니....후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사실 더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았으나, 후기가 정말로 너무 많이 길어져
다 읽지도 않으실 것 같다는 생각에, 6편 부터는 많이 추려서 썼습니다.
그만큼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았고,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았다는 것은 
곧 제가 소설 안에 제 이야기를 충분히 녹여내지 못했다는 것이겠죠.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댓글이나 쪽지를 통해 문의해 주세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대한 자세하고 성심성의껏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많이 반성하고 또 깨닫게 해 준 시리즈였습니다. 
다시 한번 이 졸작(拙作)을 봐 주신데 대해 사과와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이상 사진작업이었습니다. 정말정말 고마워요!! :D







그 인형은 지휘관과 서약하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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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다음 주 즈음부터 새로 쓰게 될 이야기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D
본래 아무 말 없이 쓰기 시작하려 했으나 의외로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아...
소설의 제목은 <저격수들>입니다. 사실 <그 인형은...>이 완결되기도 전에 소설에 대한 구상이 시작되었고,
그래서 어느 정도의 콘티도 짜여 있는 상태입니다.
말 그대로 그리폰 전술인형들 중 저격수 인형, RF인형들의 이야기를 써 나가려고 합니다.
소설은 피카레스크식 구성을 취하여 각 단편이 독립적인 이야기를 가지면서도,
동일한 큰 배경 아래에서 진행되도록 할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장편을 쓰기엔 제 역량이 너무나도 부족하고, 그나마 좀 쓸 만한 것이 단편 소설들인데
저격수라는 큰 카테고리 아래에서 연작함으로서 제 역량을 키워나가고 동시에 좋은 글을 쓰려는 욕심도 가져보려 합니다.
분량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마음같아서는 RF인형 개개인마다 <저격수들> 아래에서 이야기를 한번씩 가질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이번 소설을 반면교사 삼아 콘티도 충분히 짜고, 생각도 충분히 하고, 조사도 열심히 해서
정말 공들여 써 볼 생각입니다. 다음주에 입사 면접을 보기 때문에...조금 업로드가 늦어질 수도 있으나,
언제나 봐 주시는 분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써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