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주 특이한 지휘관이었다. 이곳 그리폰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지급받길 원하는 붉은색의 제복과 베레모를

 입지 않았으며 항상 낡고 오래된 야상코트만을 걸치고 다녔다. 군출신도 아닌데다 지금까지 권총하나없이 검이라는

구세대의 냉병기 하나로만 살아남아왔다는 것도 놀라웠다. 난 그가 이곳에 온 여타 지휘관들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호위

호식할줄 알았다. 일선에서 싸웠던 군출신도 그러했지만 그는 첫 전투때 아이들만 전투지로 보낼수 없다면서 스스로 검

을 차고 같이 떠났으며 그저 구경만 한것이 아니라 다 죽어간다지만 혼자서 프라울러 한기를 검으로 잡아내기도 했다.


"뭐지? 이 사람?"


난 그에게 멋있다고 해야할지 미쳤다고 해야할지 뭐라 형용할수없는 느낌을 받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것 같았다. 그에

겐 인형아이들은 도구도 아니었고 '여자'로도 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미 인형아이들이 프로그램화되어서 알고 있지

만 뭔가를 가르치려하고 인간과 다르게도 생각하는것 같지 않았다. 특히 그는 애들 각자마다, 인간식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나를 비롯한 몇몇 지휘관들도 자신의 아이들에게 인간식 이름을 지어주는 유행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다. 난 그를 바라볼때마다 어릴적부터 기억했었던 단어가 생각나려 한다. 의외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단어가

 생각나게 되었는데 바로 '선생님'이라는 단어였다. 그는 정말로 그 단어에 어울리는 지휘관이었다. 하지만 그 단어가

바로 생각나지 않은 이유는 내 유년기에 좋은 선생님이란 단 한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내 출신이 고위군관의

딸이라는것 때문에 가르침을 빌미로 아버지의 권력에 달려들었을 뿐이었다. 그중 몇몇은 갓 자라나는 내 몸을 노린 이도

 있었지만 우리집은 고위직에 걸맞게 수많은 경비시스템이 있었기에 그들은 바로 잡혀가 다시는 소식을 듣지 못하게 되

었다. 이후엔 지금까지 독학으로 공부를 했고 군관의 집안에 걸맞게 아버지로부터 최소한의 지휘기술과 전투술을 배워

왔다. 그후 우리 집안은 정치적인 이유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바로 기울어졌고 어머니는 나를 놔두고 다른 정치인

의 후처로 들어갔다. 다행히 난 그리폰에서 지휘관을 모집해서 지금처럼 먹고사는 정도다. 하지만..


"지휘관, 나 배고파요."


라며 스파스를 비롯한 여러 아이들이 나타나 아직 식사시간도 아닌데 간식등을 요구하고 있었다.. 처음엔 집안의 남은

 재산이 있어서 그럭저럭 살아나갔지만 버려지거나 능력이 약하다며 해체(전역)위기까지 간 애들을 모으고 모으다보니

 어느새 어지간한 고위 지휘관급 정도로 아이들이 많아졌고 특히 먹성좋은 '스파스'가 중형제조에서 태어나면서 식량자

원이 극심하게 부족해졌다. 그래서 위험한 곳은 아이들을 보내지 않으려고 전투를 거의 피했지만 군수만으로는 힘들어

 참가가능하고 크게 싸우는 전투만 아니면 아이들 몇몇을 전장에 보내야만 했다. 그나마 내 부관인 'G36c'가 집안살림

과 가계부관리를 하면서도 간간히 전투에서 공적을 세우면서 간신히 집안을 꾸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전에 얻은

'P7'과 그 아이와 비슷하게 장난을 좋아하는 애들때문에 여러번 사건사고를 일으키면서 파산직전까지 갈뻔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그리폰규정으로는 불법이지만 상대적으로 남아도는 탄약과 부품을 다른 지휘관의 식량과 맞바꾸어 간

신히 위기를 넘긴 경우도 있었다.


"알았어. 스파스, 너 요리는 할줄 알지? 애들에게 간식으로 사용할 정도로만 식량을 써야 해."


"고마워요! 지휘관."


그나마 스파스는 대식가지만 혼자 독차지하거나 뺏어먹지는 않아서 믿고 간식준비를 맡겨도 될것이다. 다만 본인이

 많이 먹기에 몇끼이상의 식량을 사용할게 분명했다.


"지휘관, 우리 살림과 숙소규모를 생각하면 지휘관+56명의 식구들은 너무 많은것 같아요. 아이들을 내보내진 않더라

도 다른 대책은 필요할것으로 보여요."


'G36c'의 말마따나 이렇게 식구들이 많아질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중형제조이외엔 인형제조란 것을 사용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안그랬다면 지금쯤 숙소가 100명 이상의 아이들로 북적되어서 결국엔..


"내가 몰래 밖에서 알바라도 해야겠어.."


그때 스핏파이어를 중심으로 제대를 짠 아이들이 전투지에서 돌아왔다. 스핏파이어에게 자율적으로 전투를 맡겼지만

 연습장이나 마찬가지인 곳으로 가다보니 피해를 입은 애들은 없었다.


"스핏파이어, 돌아왔습니다. 이번 전투에서 보급물자를 많이 갔고 왔어요."


스핏파이어는 전투하러 갈때마다 전투보다는 약탈이라도 해오는 것인지 식량을 비롯한 온갖 물자들을 많이 갔고 왔

다. 그리폰에서는 약탈한 일이 없다고 밝혀줘서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운이 좋은 아이인지 항상 뭔가를 잘 가

져와서 자원소모시키면서 전투에 내보냈다가 소모된 자원보다 더 많은 자원이 생기는 일이 많았다.


"그래. 돌아와서 다행이네."


그렇게 그날하루도 간신히 넘기게 되었다.. 하루하루 아슬아슬하게 살림을 꾸려가던 어느날 본부에서는 모든 지휘관

에게 철혈의 보스를 소탕하는 큰 임무를 모두 내렸다. 가능하면 전 지휘관이 나서야하는 일이라 난 우리애들중 나름

정예인 'G36c',스파스,P7(집안에 놔뒀다간 사고가 날것 같아..),수오미,스핏파이어등 다섯명과 함께 전장터로 나섰다.

 검을 든 지휘관처럼 내가 최전방에서 싸우는것은 아니지만 전장과 가까운 곳에서 지휘를 하며 철혈의 병사들을 유도

하는 일에 나섰고 그 와중에 스핏파이어는 곳곳에 숨겨둔 식량과 자원등을 어떻게 찾아냈는지 수거하고 있었다.

 그때 네다섯명쯤으로 이루어진 철혈의 리퍼들이 나타나자 정말 오랜만에 본격적인 전투를 하게 되었다. 사실 리퍼정

도되는 제대로 된 철혈의 적과 싸우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렇다고 우리애들이 질 정도는 아니었다. 통신화면을 통해

 처음 보게 된 리퍼는 우리애들과 다를바없게 생긴 인형이었고 머리가 곱슬이면서도 단발에다 육감적인 몸매도 어울려

 무척이나 귀엽게 생겼다. 그래서 애들에게 죽이지 말고 제압해서 끌고오라는 명령을 충동적으로 내리려고 할때,


"필살!"


이라는 소리와 함께 스파스가 자신의 샷건으로 3명을 날려버렸고 나머지 아이들이 귀여운 리퍼들을 벌집으로 만들어

버렸다..


"...."


딱 한번의 전투였지만 이 전투에서 검을 든 지휘관과 IDW홀로 공적을 세운 팀을 제외하면 거의 실적을 세운 팀이 없

었기 때문에 공적순위에선 상당히 크게 올라가게 되었다. 그래서 몇달치 밥값을 벌게 되었고 훈장이나 포상대신 전부

 식량으로 받기로 했지만 스파스하나때문에 몇달치 식량이 한달치정도밖에 안되고 말았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아이

라 미운적은 없었다.


"지휘관님. 저 스테이크먹어보긴 처음이예요!"


양껏 사주진 못했지만 모두에게 스테이크를 먹여줄수 있었고-그래도 스파스에겐 5인분이 배당되었다..- 먹는 모습이

 복스럽다보니 스파스에게 뭐라고 할수는 없었다. 난 돈을 아끼기 위해서 스테이크대신 돈까스로 먹었지만, 그래도

고기가 많이 들어간 요리는 오랜만이었다. 그때 'G36c'가 자신이 먹던 스테이크를 5분의 2정도 남기고 나에게 양보해

줬다.


"지휘관님. 우리들을 돌봐주느라 고생하셨어요."


난 'G36c'의 마음씀씀이에 너무 반해서 같은 동성이라는것을 아랑곳 않고 'G36c'를 인근 호텔로 데려갈 뻔했다..


"그래. 이번 전투에도 수고했어.."


그렇게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아직도 경험이 없다는것과 호텔비가 아깝다는 마음에 자제할수 있었던 것이다. 'G36c'

은 얼마전에 세상을 떠나신 하이베르크대령의 양녀인데 동생인 꼬마버전 G36과 함께 나에게 맡겨졌다. 내가 조건없

이 아이들을 맡는 모습을 보고 나를 선택했다는데 큰언니인 G36은 검을 사용하는 지휘관에게 배속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애들과 회식을 끝내고 돌아갈때 'G36c'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지휘관님. 언니가 그.. 검을 들고 설친, 아니 싸우신다는 지휘관댁에서 지낸다는데요. 한번 만나서 교류를 해보는것

은 어떨까요?"


그러면서 'G36c'는 요새 여러모로 떠들썩하고 잘나가는 지휘관이라 같이 인연을 만든다면 팀에 도움이 된다는등의

말을 늘어놓았지만 사실 이를 핑계로 자신의 언니와 만나고 싶어하는것 같다.


"그러지."


'G36c'의 마음을 알기에 바로 수락해 버리고 말았다. 다음날 나는 하이베르크대령을 제외한 어떠한 지휘관과도 교류

해본적이 없었다는게 생각났다. 하이베르크대령도 군인집안이다보니 옆집 지휘관보다는 큰어르신같은 분위기라서

만날수 있었지만 인간을 피해 살아온 나에겐 갑자기 다른 지휘관을 만난다는것이 너무 쑥스러웠다. 그래도 이미 부관

과 약속을 한 마당이라 'G36c'과 스파스, 집에 혼자둘수 없는 P-7을 데리고 검을 드는 지휘관을 만나러 나섰다. 그 지

휘관의 숙소에서 머뭇거리다가 어느덧 문이 열리며 메이드복장의 G36과 마주치게 되었다.


"무슨일로..?"


'G36c'은 찾아온 용건을 얘기하기도 전에 언니를 보자마자 덮석 껴안기 시작했다.


"언니! 오랜만이야!"


'G36'은 손님을 맞이하려다 갑자기 안긴 여자애를 보자 자신의 동생인 것을 알았다. 인형혼자서는 타 지휘관의 숙소

로 마음대로 갈수없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날 보더니 바로 눈치를 챘다.


"막내는 보이지 않지만.. 아, 실례했습니다. 곧 손님들을 모시겠습니다. 너도 아무리 오랜만이라지만 자신의 주인님을

 두고 이런짓을 하면 안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는 'G36c'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G36c'의 언니는 자신의 지휘관인 '주인님'이 다른 애들

과 밖으로 외출했다면서 근방에 갔으니 곧 돌아올 것이라며 홍차를 준비했다. 난 이곳 지휘관이 인형애들에게 사람이

름을 지어준다는것을 알기 때문에 여기선 뭐라고 불리냐며 묻자,


"메이드양입니다. 그저 메이드라고 불러주십시요."


라고만 대답했다.. 검든 지휘관답지않게 아직 이름을 제대로 안 지었나?


"헤헤헤~! 다른집이다!"


P7은 벌써부터 남의 집에 와서 장난을 칠 분위기였다. 그때 나강리볼버가 느긋하게 나오더니 재빠르게 움직이는 p7의

 손을 낚아챘다.


"어허, 꼬맹이. 남의 집에 와서 찻잔을 들고 돌아다니는게 아닐세."


연륜이 있는 나강리볼버였는지 우리팀에서 가장 빠른 애들중 한명인 p7을 금방 잡아내었다는게 신기했다. 그것도 가

장 약하다는 나강리볼버가.. 나강리볼버는 자연스럽게 p7의 손을 꺾더니 금세 힘을 잃어서 놓친 찻잔을 낚아챘다. p7

도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을때 어느새 찻잔은 내게 놓여져 있었고 메이드언니가 따라주

는 홍차가 담기기 시작했다.


"우씨! 나보다 더 작으면서 꼬맹이라니!"


p7은 나강리볼버에게 달려들었지만 나강리볼버는 요리조리 피하면서 어느새 방안으로 p7을 유도해 갔고 나강이 방문

을 잠그자 큰 기합소리같은것이 터져나왔다.


"꺆!"


p7의 비명소리가 들리자 내가 일어서려고 했지만 메이드가 날 제지했다.


"나강할머니께서 교육을 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그냥 두시길,"


그 말대로 금새 방문이 열리면서 p7이 탈진한 모습으로 나왔고 나강리볼버께선 그 애를 자리에 얌전히 앉혔다.


"당분간은 조용해질 걸세. 어서 차나 들게나."


나강리볼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눈앞의 나강리볼버는 나보다도 수십년이나 더 산듯한 오랜 연륜이 느껴졌다. 메이

드도 조심하게 행동하는것으로 보아서 거의 지휘관급으로 대우를 받는것 같았다.


"자네는 이곳에 온지 처음이겠지만 내, 자네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 잘 안다네. 그 많은 아이들을 혼자서 간신히 돌보

고 있다지?"


보통 인형들은 지휘관과 친하더라도 말을 쉽게 놓거나 윗사람처럼 대하진 않지만 나강어르신은 다른집 지휘관인 나

한테도 손녀를 대하듯이 자연스럽게 얘기를 꺼내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강어르신을 향해 존칭을 하게 되었다.


"지휘관을 찾아온 것이라면 아직 출타해서 돌아오지 않았네. 그에게 물어볼게 있으면 이곳에서 기다리시게나."


난 지휘관이 아니라 'G36c'의 언니를 만나는것이라서 이미 목적은 달성했다. 그렇더라도 내 아이의 언니를 만나자

고 남의 지휘관숙소까지 방문한것은 좀 그런것 같아서 엉겁결에 지휘관이 올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서 슬

쩍 여기서 메이드로 일하는 애가 'G36c'의 언니라고 하자 나강은 메이드양에게 'G36c'의 옆에 앉게 했다.


"이런 말을 하면 좀 그렇지만 메이드양이 같은 인형인 나강할.. 아니 나강에게 잘 따르네요."


하도 어르신같아서 할머니라고 부를뻔 했지만 나강은 개의치 않은것 같았다.


"별다른게 아닐세. 이곳 지휘관양반이 부재중이거나 전투시에는 내게 지휘관에 대한 모든 권한을 넘겨주었기 때문

이지."


조금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그 지휘관은 싸우면서 지휘를 한게 아니라 나강어르신에게 권한을 모두 넘기고

 홀로 싸운것이란 말인가? 그러면서도 초기모델에 가까운 나강의 지휘력이 대단하다는 것도 놀랍지만 지휘관으로

서 모든걸 인형에게 맡기고 전투를, 그것도 검이라는 근접냉병기를 들고 싸운다는것이 더 놀라웠다.


"대단하군요. 후룹, 음?!"


어르신(?)과 그렇게 대화하다 이제서야 홍차를 마시게 된 나는 차의 품질이 여타 카페등에서 파는것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보통 홍차는 향은 좋아도 쓰고 떫어서 설탕이나 우유를 넣지만 이 홍차는 설창이 없는데도 단맛이

났으며 깊은 은은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최상품이었다.


"이걸 인형, 아니 메이드양이 차를 우려낸 건가요?!"


'G36c'이 지금껏 있었던 일들을 언니에게 얘기해주면서 수다를 떨지만 언니인 메이드는 그저 미소만 지으며 듣고

 있다가 내 질문에 간단히 대답했다.


"주인님(지휘관)으로부터 배운지 얼마 안되었습니다. 아직 노력이 부족합니다."


"?!"


단순히 검을 잘 휘두를줄 알았던 털털한 이미지를 지닌 그 지휘관이 그런 기술도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차는

 품질도 좋지만 차의 온도와 물의 양, 그리고 우려내는 시간을 완벽히 계산해야만 이렇게 좋은 차가 된다. 인형아이

들은 무엇이든 금방 익힌다지만 그래도 메이드양이 배운지 얼마안되어 이 정도의 실력을 지녔다는것은 그 지휘관의

 차우리는 솜씨가 더 대단하다는 것이다.


"이곳 지휘관님은 카페나 다원등에서 일하셨나요? 이 정도면 그리폰이 아니더라도 대접받고 일할 정도인데요?"


메이드양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나강어르신이 대신 해주었다. 더 오래 알고 지냈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검만 휘둘렀다고 하더군. 차에 대한것은 홀로 돌아다니다가 어느 중국인을 구해주면서 배운것이라네. 그

덕분에 얼마전에 좋은 중국차를 많이 구할수 있게 되었지."


뭐라고? 이게 중국차라고?! 옛날 ELID사건이 중국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붕괴방사선등으로 인해 중국차재배지가

오염되거나 막히게 되어서 중국차라는것은 정말 귀했다. 그래서 당장 구할수 있는것도 스리랑카의 실론차라거나

 유럽,남미등에서 간간히 키우는 하급차도 서민들이 구할까말까인데 역시 중국본토의 차는 상당히 맛이 달랐다.


"지휘관은 겉보기보다 많은 것을 경험한 인물일세. 지금까지의 전투나 업적을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과거에는 그

만한 실패와 아픔을 겪은 사람이기도 하네."


왠지 나강이 지휘관을 두둔하는 말은 나강어르신을 위로하는 말처럼 들렸다. 자세한 것은 알수 없었지만 어지간

해선 인간아이들보다 나이가 어린 인형이 이렇게 어르신이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는것은 눈앞의 나강이 수많은

경험과 아픔을 헤쳐왔다는 것이다. 어쩌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할 고생을 겪어왔을 것이다.


"아, 지휘관님이 오고 있습니다."


메이드양이 매정한듯이 바로 일어나 동생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G36c'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언니의 주인이

나타났기에 앉아있을수밖에 없었다.


"엥? 웬일로 손님들이 오셨네? 안녕하십니까."


검을 든다는 지휘관답게 검을 차고 숙소로 들어온 그 지휘관들은 mp40을 비롯한 여러 아이들과 함께 외출하다

가 온것으로 보였다. 다들 풀같은 것을 들고 있었고 신발엔 흙이 묻은듯한 흔적이 보이는것으로 보아 학교에서

 하는것처럼 야외체험을 하고 온것 같았다.


"손님이 왔으니까 각자 돌아가도록 해."


"네."


그러면서 많은 아이들이 돌아갔지만 ak47모델 한명만 남아 있었다.


"자네는 나이답지 않게 애들하고 같이 놀러갔다 왔구먼."


ak47은 나강의 핀잔을 들었지만 개의치않고 냉장고에서 보드카(!)한병을 꺼내 들이켰다.


"무슨 소리, 선배로서 후임들에게 지휘관하고 같이 여러가질 알려주러 간거야."


"엥? 내 냉장고에 왜 보드카가 있어?!"


지휘관은 술을 안 마시는지 ak47에게 나강과 같이 핀잔을 주었지만 그녀는 지휘관앞에서도 대범하게 행동했다.


"같이 마실려고 넣어놨지. 어때 내가 마시던건데 마실래?"


"그만둬. 아킬리나."


지휘관은 침묻었다는둥의 말을 하면서 아킬리나라고 불린 ak47의 보드카병을 밀어냈다. 확실히 이 지휘관은 다

른 지휘관들과 다른듯 했다. 어떤 남성지휘관은 인형애들이 마신 컵이나 병에 옳다구나라며 입을 대고 마시기도

 한다는데.. 여하튼 그는 손님이 있다는것을 자각하며 나에게 제대로 인사를 건넸다.


"다시 한번 소개합니다. 제가 이곳애들의 지휘관입니다. 방금 외출갔다온지라 악수는 건너뛰겠습니다."


그는 손에 아직 흙이 묻어있는지 여타 인사법처럼 악수를 하는대신 중세유럽 인사법처럼 오른손을 배에 대고 숙

이며 인사를 취했다. 그리곤 잠시 양해를 구한다며 손을 씻고 돌아왔지만 그 특유의 야상코트는 계속 걸치고 있

었다. 메이드가 그의 검을 받아들고 보관하러 갈때 그제서야 그는 내가 이곳에 온 용건을 묻기 시작했다.


"제 숙소에는 손님이 거의 찾아온 일이 없어서 경황이 없었습니다. 제 숙소에 오신 이유가?"


내 아이가 부탁해서 언니를 만나러 왔다고 하면 인형에게 휘둘려사는 것처럼 보일까봐 잠시 고민을 해서 대답하

진 못했다. 하지만 이곳의 분위기를 보니 다들 자유롭게 다니는것 같아서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G36c'가 대신

입을 열었다.


"언니를 만나러 왔어요. 모델명은 'g36'인데 여기서도 메이드일을 하고 있는줄 몰랐어요. 제 지휘관님은 보호자

로 온것이예요."


다른 지휘관을 만난다는게 큰일이 있거나 하는게 아니라 인형아이에 대한 사적인 일이라 난처했지만 그는 오히

려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언제든 이곳에 오셔도 됩니다. 'G36c'양의 언니분이 이곳에 있다면 'G36c'양 혼자라도 괜

찮습니다."


그는 짐작한 것보다도 다정한 사람이었다. 말투에서 이미 인간과 인형을 구분짓는다는 것은 없었지만 문득 생각

해보니 남자와 이렇게 마주보는것도 오랜만인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하이베르크대령을 제외하면 남자와 만난다

는 것이..


"지휘관, 저 홍차만 마셔서인지 배고파요."


스파스가 내 상념을 깼다. 남의 집에서 배고프다는 소릴해서 내가 다 부끄러웠지만 지휘관은 점심은 지났다면서

 'G36c'의 언니에게 간식을 잔뜩 가져오게 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왜 뻣뻣하게 있죠?"


그가 나강어르신에게 혼쭐이 나 뻣뻣해진 내 p7을 바라보자 나강어르신이 그랬다고 하기에는 무례해 보여 둘러

댔다.


"이곳에 처음 와서인지 긴장했나보네요."


"흠.. 수녀복에 눈동자가 십자가모양이면 장난끼많다고 소문이 자자한 p7인데 이렇게 얌전한것을 보면 '교육'을

 잘 시킨 것이군요."


그는 아주 잠깐 나강어르신을 바라보았지만 못본체 한것 같았다. 못본체 했다?!


"이거 한잔 마시면 나아질거야."


그는 p7앞에 놓인 약간 식은 홍차를 직접 마시게 해주었고 무의식적으로 홍차를 삼킨 p7은 다시 정신이 돌아오

면서 홍차잔을 붙들었다.


"우와! 차가 쥬스보다 맛있어!"


p7은 아직 차가 담긴 찻잔을 들고 또 돌아다니려다 나강어르신과 눈을 마주치곤 다시 얌전히 앉았다. 내가 이토

록 애들에게 교육을 잘못 시킨것일까하며 한탄했지만 p7의 리액션덕분이 귀한 찻잔과 홍차를 선물로 받을수 있

게 되었다. 노을이 질 무렵에 숙소를 나서게 되자,


"저녁때인데 저녁이라도 드시고 가시는것은?"


그가 그렇게 말하자 지금까지의 다른 남자들처럼 작업거는 멘트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들려서 정중하게 거절하

기로 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많아서 얼른 저녁을 차려줘야 하거든요."


문득 나는 오랜만에 남자와 대화를 나눴다는것을 깨달았다. 그에게선 희한하게도 남성에 대한 공포같은것이 없

었다. 그저 사람으로만 느껴진달까? 그래서인지 문득 통신시스템을 통해 친구로 추가했다.


"이건 친구로 추가하는 시스템인데 허락하신다면 언제든 연락을 할수 있어요. 게다가 전투가 벌어질때 지원군으

로 도와줄수도 있구요."


그는 나의 신청을 흔쾌히 허락했다. 그리고 g3모델인 그레타라고 불리는 아이와 m45모델인 포티바라는 아이들

을 불러 어마어마한 양의 빵을 선물했다. 빵은 어째서인지 시나몬롤의 비중이 많았다.


"식구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아이(인형)들은 워낙 잘 먹으니까, 충분하게 빵을 구웠으니 가져가세요."


확실히 인형의 기준으로도 충분했다. 다만 옆에는 '스파스'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난 숙소로 돌아가면서 스파스에게 빵을 들게 했고 가면서 다른애들을 위해 조금만 먹으라고 했다. 스파스는 내

 말을 어느정도 들어주었는지 시나몬롤위주로만 먹었다. 문제는 시나몬롤이 대부분이라 빵의 양은 크게 줄어들

었지만 그럼에도 상당히 남아있어서 부족한 저녁식사를 보충할 양은 되었다.


"좋은 지휘관이네요. 언니는 저보다 잘 싸우지만 메이드에다 아버지가 맡겼다고 전쟁터에 거의 보내지 않는데요.

 게다가 용맹하신분 같아요."


'G36c'가 언니외의 존재에게 관심을 갖는것이 흥미로웠다. 친구신청도 처음이었고 몇마디만 나눴는데도 정감이

 가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하이베르크대령도 한달이상은 만나야 호감이 갔었지만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