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에 대해서 궁금하다고? 
                  아서라, 저 녀석은 그렇게 쉬운 녀석이 아니야. 
                       뭐? 그래도 뭐라도 하나 알고 싶다고?
      흐음… 워낙에 과묵한 녀석이라. 알고 있는건 남부에서 왔다는 거 뿐인가… 
          -피오나를 사모하는 견습생도가 물어본 질문에대한 리시타의 대답



 남부의 광활한 평야, 그 안에 작지만 사람들의 온정이 느껴지는 도시 일리아나에는 수확시기가 다가온 건지 곡식은 누렇게 변해 고개를 숙인 채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휘날리고 있었다. 주민들은 각자 할 일을 찾으며 일하는 얼굴에는 수수하지만 그 어떤 보석보다 빛나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고 그런 부모님들 곁을 뛰놀다가 야단 맞는 아이들의 울상인 모습을 보아하니 지나가던 나그네의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게 따스하고 인정많은 도시는 기사단장 출신의 남작계급의 퍼슨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나 명목적인 단어일뿐 퍼슨 남작은 마치 일리아나의 주민 중 하나 인것 처럼 행동했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고 추수시절에는 함께 일하며 주민들과 이야기 꽃을 피우는 등 귀족으로써의 귀품은 보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일리아나의 주민들은 퍼슨을 믿고 따랐다.

그런 퍼슨에게는 아내가 없었다. 그의 딸 아이오네프(Ionaf)를 출산하고 얼마 되지 않아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퍼슨은 아이오네프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에일린이 자신에게 주었던 마지막 선물이라고 굳게 믿고 아이오네프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쏟아부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아이오네프는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랐다.

아이오네프는 에일렌을 따른 눈부신 금발의 사파이어같은 푸른 눈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이오네프가 특별했던 것은 다른 여자아이 같으면 봉제인형에 관심을 가질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퍼슨이 기분 좋아져 술을 마셔 예전 용병이야기를 꺼낼 때 아이오네프는 눈을 빛내곤 했다. 마치 용병시절에 같이 만난 에일린을 쏙 빼닮은 모습에 가끔 흠칫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잊어버리고선 과장을 말하거나 해 아이오네프가 놀랄 때엔 호탕하게 웃기도 했다.

아이오네프는 두 용병의 피를 타고나서 그런지 모험을 즐겼다. 언젠가 한 번은 아이오네프가 사라져서 퍼슨이 주민들에게 사정해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결국 실마리도 찾지 못해 다급해진 퍼슨의 앞에 아이오네프가 먼지투성이인 모습으로 달려와 자신만만하게 왼손에 쥔 토끼를 보여주며 웃었다. 아이오네프를 찾았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허망함에 퍼슨은 그대로 주저 앉아 멍하니 있다 이내 껄껄하고 웃어댔다.

아이오네프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했다. 특히 전장에서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 퍼슨이 방패로 수 많은 동료를 지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고 퍼슨에게 말해 퍼슨을 벙찌게한 경력도 있었다. 아이오네프는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건만 열 살이 된 즈음에 자신이 스스로 나뭇가지를 깎아 검을 만들고 커다란 나무 껍질을 줏어 반대 손에 단 채 퍼슨에게 자랑하러 오기도 했다.

그런 아이오네프의 모습에 퍼슨은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검방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퍼슨은 언제나 아이오네프에게 세뇌시키듯이 말했다. 



" 네가 쥐고있는 방패는 방어구가 아니다, 네 파트너라고 생각해라 "



방패를 방어구로만 생각하지 말라는 퍼슨의 말은 얼마나 집요하게 해댔는지 아이오네프가 잠꼬대로 중얼거릴 정도였다. 그 후로 아이오네프는 퍼슨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상대의 검을 막은 뒤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닌 방패를 그대로 밀어 상대의 갑옷을 뚫어버리는 듯한 고통을 주는 카운터라는 특수한 기술도 배웠다. 피는 물보다 진했던 것이였을까, 아이오네프는 열 아홉이 되던 해에 드디어 아버지인 퍼슨의 방검술의 기본을 전부 마스터했다. 퍼슨과 대련을 한 뒤 거친 숨을 내쉬는 아이오네프를 바라본 퍼슨은 미소를 지었다.

아이오네프가 어엿한 숙녀가 된 열 아홉번째 해에 사건은 터졌다. 사람들의 단결로 똘똘 뭉친 일리아나는 불모지라고 생각 되어서 큰 공을 세워 용병에서 남작까지 올라온 퍼슨에게 쓰레기 처럼 던져 준 영지였다. 그러나 의외로 일리아나가 점점 성장해 금가루가 넘치는 땅이 될 것 같자 다른 귀족들의 그의 영지를 노리기 시작했다. 그들도 그들만의 영지가 있었고, 규모는 일리아나의 수 십배에 달했지만 그들의 뱃 살과 턱 밑살이 그들의 욕심을 외향적으로 보여주듯이 출렁거렸다.

용병 출신의 귀족이 이유없이 무시당하듯이 귀족들은 그를 무시하고 싫어했다. 그래서 후작 헤레몬이 그들에게 퍼슨을 나락으로 빠뜨릴 제안을 하자 너도나도 찬성하기에 이렀다. 귀족들은 가짜 문서와 가짜 증거를 조작해서 왕에게 내밀며 항소했고 분노한 왕은 이성을 지키지 못하고 퍼슨을 처형할 헤레몬에게 일 천의 군사를 내줬다.

갑옷을 입고 검을 착용한 뒤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발자국 소리를 맞추며 일 천의 군사는 일리아나로 진군했다. 일리아나의 명물인 물망초 들판은 천의 발자국에 짓이겨져 가루가 되었다. 아이오네프는 뜨거운 기운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이오네프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불이 나고 있는 일리아나였다. 아이오네프는 급하게 아버지의 방으로 달려갔지만 그 곳에는 무장을 하고 있는 퍼슨이 있었다. 아이오네프는 다급히 외쳤다.



" 아…아버지 ! 일리아나에 불이―! "
" …알고 있다 "
" 네……? "



퍼슨은 이제껏 보여주지 않았던 날카로운 눈매를 하며 아이오네프를 바라봤다. 아이오네프는 다정했던 아버지가 내뿜는 그 살기에 주춤 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퍼슨은 마지막으로 방패를 쥔 손을 제대로 꽈악 쥐고선 아이오네프에게 말했다.



" 내가 반란군이라는 구나 "
" 네? 아버지께서 반란군이라니 무슨― "
" 아마도, 다른 귀족녀석들이 모함을 한 거겠지 "
" 그렇다면 사실을 말하시면 되잖아요 ! 대체 왜 무장을…! 그렇게 나간다면 그 모함을 인정하는 꼴이 되버린다고요 ! "



퍼슨은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아이오네프의 말이 맞다고 생각 한 것일까. 그저 묵묵히 아이오네프를 쳐다보았을 뿐이였다. 아이오네프의 푸른 눈에는 어느새 투명한 눈물이 고여 흐르고 있었다. 그런 아이오네프의 머리에 퍼슨은 손을 얹고서는 쓰다듬으며 말했다.



" 미안하다, 아이오네프. 귀족이라고는 해도 그렇게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해주지 못해서 "
" 아녜요 아버지, 저는 그런거 원하지 않으니까 제발― "
" 하지만 아이오네프. 저들은 일리아나의 주민들을 공격했다. 이건 일리아나를 다스리는 퍼슨 남작으로써 참을 수 없는 일이야. 넌 아버지의 검방술을 못 믿는거냐, 어차피 용병으로 시작된 일 용병으로 끝내야지 "
" 하지만 아버지― "
" 닥쳐라 !!!!! "



건물 벽을 울리는 듯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아이오네프를 향했다. 아이오네프는 움찔한 채 고개를 숙여 눈물만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본 퍼슨은 말했다.



" 미안하다, 아이오네프 하지만 난 가야한다. 더 이상의 무고한 목숨을 희생할 순 없어. 그리고 이거 받아라― "



퍼슨은 아이오네프에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아이오네프는 두 손으로 받았다. 묵직한 무게가 아이오네프의 팔에 전해졌다. 아이오네프의 팔에 올라가 있는 것은 튼튼해보이는 방패와 날이 파랗게 빛나는 예리한 검이였다, 아이오네프는 어리둥절하게 퍼슨을 쳐다보자 퍼슨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 너를 지켜줄 검과 방패다. 내가 패배할 리가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이걸 가지고 달려라 "
" 아버지… "
" 그리고 혹시 나로써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오네프 너도 위험할 수 있어. 이름을 바꾸고 행동해라. …그래 피오나(Fiona)가 좋겠구나, 이 이름의 뜻대로 이제 네 인생은 흰색이다. 네가 겪은 일들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가거라. 자, 빨리 뒷 문으로 도망치거라 "
" 하지만― "
" 가라!!!!!, 아버지로써의 마지막 명령이다! "



피오나는 움찔하고서는 이내 문을 박차고서는 뛰어나갔다. 피오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을 품에 소중히 안은 채 뒷문으로 달려갔다. 피오나의 눈에서는 잠기지 않는 수도꼭지 마냥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피오나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을 지 않을 즈음에 퍼슨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 미안하다 피오나, 그리고― "


퍼슨은 결심한듯한 표정을 짓고서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 사랑한단다 "



퍼슨은 곧게 허리를 펴며 위풍당당하게 앞 문을 향해 걸어갔다. 마지막 최후까지 그는 용맹한 아버지로써 피오나의 기억에 남았다.


*     *     * 


그 날 따라 하늘은 더욱이 어두웠고, 내리는 비마저 굵고 거셌다. 그러나 피오나는 상관 쓰지 않고 쉴새 없이 달렸다. 폐가 저려오고 목이 따끔하고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고통에도 그저 달렸다. 뒷문을 빠져나가 남부 국가 피시나를 떠나기 위해 하염없이 북으로 도망쳤다. 사람들의 부탁을 받고 몬스터를 처치하고 허드렛일을 하며 일당을 받고 배와 마차를 얻어타며 북으로 쭈욱 올라가 더 이상 남부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은 장소까지 올 즈음에는 피오나는 어느새 강한 여전사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피오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누명을 씻고 그 누명을 덮어 씌운 자를 처형하는 것. 하지만 그 꿈은 그녀 혼자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산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문득 콜헨이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피오나는 이상하리만큼 낯설지 않은 감정을 느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매진하며 웃음 꽃을 피웠다. 피오나는 이 곳이 또 다른 일리아나라고 생각했다. 이 곳이라면 좋은 거처가 될 것 같았다.

여관에 들어서자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여관 안의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의 등장에 시선을 집중했다. 당황해하는 피오나에게 70대 중반 처럼 보이는 여관 주인만이 접시를 닦으며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 안녕하세요, 처음 만난 손님이시군요. 모리안의 여호가 깃들길… "
" 아, 모리안의 여호가 깃들길… "



피오나도 얼떨결에 같이 인사를 해버렸다. 그러자 여관 주인은 씨익 웃으며 말을 건넸다.



" 에른와스라고합니다. 티이야 어서 손님 맞아야지 "
" 아… 네, 할아버지 "



티이라고 불리우는 여성은 에른와스의 말에 따라 피오나를 자리에 앉혔다. 얼떨결에 자리에 앉은 피오나를 따가운 시선으로 사람들은 바라보았다.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오른 피오나에게 누군가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 무슨 일 있어 아가씨 ? "



피오나가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자 자신과 비슷한 동년배로 보이는 앳된 남성이 하나 있었다. 대응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자 그 남성은 충격받은 듯이 말을 어물거렸다. 그러자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또 다른 남자가 하나 말했다.



" 리시타, 윈터클로를 처치하던 때의 용맹은 어디가고 여자 하나에게 쩔쩔매는 거냐 "
" 뭐,뭣 ? 마렉 너 지금 말 다했어 ? "
" 어이구, 신참 넌 역시 모자라구만 "
" 닥쳐, 게렌 "
" 이, 이자식이이잇 !! "



어느새 여관은 싸움터로 변했다. 이런 상황을 상관 쓰지 않는 피오나는 컵에 담긴 물을 홀짝 댔다. 그러자 에른와스가 후후하고 웃으며 말해갔다.



" 칼브람 용병단이라고 해요, 정말 시끄럽죠 ? "
" ……. "
" 과묵하신 분이군요…, 그래도 저런 모습을 보아하면 걱정과 근심이 날아가는 기분이예요
정말… 즐거워 보이지 않나요 ? "



피오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선 동료가 필수 불가결일것이라고. 어머니 에일렌, 아버지인 퍼슨. 두 분 다 용병이셨다. 운명의 장난인지, 아니면 어차피 이렇게 될 운명이였는지 피오나는 말도 안되는 개연성에 실소를 터트렸다. 그리고 나선 컵에 남아있는 물을 전부 들이킨 뒤 아까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남성에게 다가갔다.



" 용병단에 들어가고 싶은데 "
" 어, 환영한다. 리시타라고 해"



리시타가 피오나에게 악수를 청하기 위해서 손을 내밀자 게렌이 리시타와 피오나 사이를 다급하게 막아서고서는 리시타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 잠깐 ! 신참, 그걸 니가 결정하는건 아니야 "
" 시끄러워 게렌 "
" 으아아악 ! 너 자꾸 고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래 ? "
" 윈터클로가 나타날 때 제일 먼저 도망친게 누구더라 ? "
" 지…지원군을 요청하러 간거야 ! 아이단님, 뭐라고 말좀 해주세요 ! "



게렌은 묵묵히 앉아있는 근엄한 표정의 남성에게 도움을 청했다. 찻잔에서 입을 뗀 남성은 말했다.



" 입단을, 허락한다. "
" 무시?! "



게렌은 지푸라기 처럼 나풀나풀 쓰러지더니 허탈한 표정으로 의자에 기댔다. 이런 모습에 피오나는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 그리고 내민 손을 잡으며 말했다.



" 만나서 반가워, 피오나라고 해 "



리시타와 악수를 하자 철 투구로 얼굴을 보호한 남성이 말했다.



" 오오, 첫 여자 단원인가 ? "
" 잠…잠깐 마렉, 난 여자가 아닌거야 ? "



당황한 듯이 말하는 여성은 붉은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마렉은 당연하다는 듯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 케아라, 넌 여자라는 느낌이 안들어 "
" 으그으윽……! "



케아라는 들고 있던 찻잔을 그대로 마렉의 투구를 향해 내리쳤다. 마렉은 비틀거리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이내 흥하고 휙 돌아서더니 케아라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리시타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해나갔다.



" 어… 이런 용병단이야, 당황스럽지 ? "
" …아니 "
" 뭐 ? "



피오나의 즉답에 리시타는 살짝 당황한 듯 되물었다. 그러자 피오나는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 없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 좋은… 사람들이네 "



피오나는 자신의 양손을 꽈악 쥐었다. 그리고선 맹세했다. 아버지의 원수를 언젠가 꼭 갚겠다고.


- END

글쓰기 뉴빕니다. 마영전 스토리가 참 좋음에도 불구하고 캐릭터 스토리는 리시타,카록,허크,린 밖에 나오지 않았더군요. 마영전 선배인 피오나,이비,카이,벨라는 스토리라고는 한 줄 달랑 있는게 끝이라… 이왕 이렇게 된거 제가 한번 써 보자, 싶어서 시작 됐습니다 :D

지적, 비평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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