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

 날카롭게 다듬어진 표창은 보는 것만으로도 베일 것 같다. 진회색 갑옷은 햇빛을 반사하여 그의 그림자를 감추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자의 주인이라는 별명으로 유명세를 탄 닌자 제드의 모습은 이 정도면 충분히 묘사할 수 있을 것 같다.
제드는 오로지 정면을 응시하며 대전당을 가로지른다. 그의 가면은 어딘지 모르게 음습한 기운을 흘리고 있다. 빠르지만 부드러운, 당당하지만 가벼운 발놀림은 그림자의 주인이라는 별명과 사뭇 걸맞는듯 하다. 가끔 멈춰서서 자신의 단검을 다듬는 모습은 그의 실력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진정한 적은 그대 안에 있나니.

한숨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흘리듯 내뱉는다. 그의 표정은 알 길 없지만 이내 제드는 아까와 같은 발걸음으로 대리석 문을 열고 들어간다.

회고

보름달이 떠 있었다. 보름달이 내뿜는 은은하면서도 신비로운 빛은 제드의 갑주와 칼날에 반사되어 서슬퍼런 광채를 만들어냈다. 제드는 자신이 아이오니아의 익숙한 지붕 위에 올라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주변에는 자신을 추종하는 한 무리의 닌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문득 그는 자신의 옛 스승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드는 오로지 균형과 절제만을 추구하던 어리석은 스승의 얼굴을 떠올렸다. 

스승은 최고수라 불리는 자였다. 고아였던 자신을 거두어준 스승 아래에 있는 제드는 문중의 문하생들 중 스승의 아들인 쉔과 더불어 최고 실력자였다. 그 둘이 대련을 펼칠 때면 모든 문하생들이 하던 일을 던져놓고 그 장관을 바라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수련장 중앙에 있는 대련장에서 쉔과 제드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무예를 펼쳤다. 하지만 결과는 쉽사리 정해지지 않았다. 대련은 무승부로 끝나기 일쑤였고, 문하생들 사이에선 하나가 다른 누군가를 이길 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제드의 귀에 그 소리가 들어가지 않을 리가 없었고 그는 하루하루를 쉔에 대한 질투와 자신에 대한 좌절로 보냈다. 하루하루 손이 터지도록 수련을 하던 제드는 어느 순간 쉔에 대한 증오심이 싹트기 시작했고 마침내 복수라는 과업을 이루기 위해 해서는 안되는 일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문중 사원에는 금지된 방이 있었는데, 그곳엔 금지된 비급이 보관된 상자가 하나 있다는 것을 제드는 잘 알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틈을 타 그 곳에 발을 들인 제드는 무언가에 홀린 듯 상자를 열어 비급을 훔쳐보고 말았다. 무언가 잘못된 것은 그 때부터일 것이다. 사악한 그림자가 상자에서 튀어나와 제드의 영혼을 파고들었고, 그에게 200년간 숨겨져 있었던 기술들을 전수했다. 제드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강해졌음을 느꼈고, 다음 날 쉔에게 대련을 신청했다. 제드는 이전과 다르게 쉔을 수월하게 상대했고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제드는 승리의 영광과 환호를 받기를 원했지만 비급을 사용했다는 죄로 스승에 의해 파문당하고 말았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 후 그는 몇 년간 정처 없이 떠돌 수 밖에 없었고 마음속에서는 야망이라는 꽃이 피어났다. 그는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에게 그림자의 기술을 전파하며 파를 불려나갔다. 그가 필요한 것은 그 때 보았던 비급 상자였다. 그림자단의 세력이 절정을 이룬 지금이 바로 그것을 가져올 때였다. 그림자의 비술을 완성하기 위해서.

제드와 부하들은 옛 스승의 집 문 앞에 섰다. 별안간 문이 열리더니 스승이 튀어나와 귀한 손님을 맞듯 그들을 맞이했다. 제드는 어리둥절했다. 스승은 인사치레도 없이 제드의 발치에 검을 내려놓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를 잘못 가르쳤기에 이런 일이 발생했구나."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려는게지?"
"내가 너를 그 때 파문시켰기 때문에 네가 균형의 길을 저버리고 저주를 받게 된게야."
"헛소리는 집어치워, 영감." 
"제발." 스승은 애원하듯 말했다.

제드는 아버지처럼 따랐던 옛 스승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간절함이 묻어있었다. 제드는 순간 흔들리고 있었다.

"나와 함께 그 상자를 부수고 다시 균형의 길로 돌아와주게. 제발."
"이건 또 무슨 상황이냐, 도대체."
"늙은이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게."

스승의 간절함에 일말의 감정이 남아있었던 제드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그의 문하에서 배웠던 정 때문인지 그저 죽일 자를 위한 단순한 연민인지는 모르겠지만 스승의 뒤를 따라 제드가 사원으로 들어갔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별안간 찢어지는 제드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비명소리가 사그라 든 뒤 제드는 놀랍게도 멀쩡히 걸어나왔다. 비명소리와는 상반된 너무나도 말끔한 모습이었다. 그의 손에는 스승의 목이 들려 있었다. 제드는 앞에 있는 쉔이 발치에 스승의 목을 내던졌다. 그의 문하생들은 그 끔찍한 광경에 치를 떨고 있었고 벌써부터 도망가는 자들도 있었다. 제드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손을 들어 말했다.

"이 쓰레기들을 모두 쓸어버려! 그리고 상자를 찾아와!"

제드의 명령에 부하들은 일제히 움직였고 여기저기서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울렸다. 제드의 눈 앞에는 재수없는 황혼빛으로 빛나는 부리부리한 눈동자가 있었다. 그는 충동적으로 자신의 칼을 눈 앞에 선 쉔의 목에 꽂아넣었다. 그런데 쉔은 당황한 제드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이전의 쉔이 쓰던 어투가 아닌 단호하고 위압감 있는 어투였다. 제드는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리그에 참가하려는 이유가 뭐지, 제드?"
"그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놀랍게도) 여전히 살아있는 쉔을 보며 제드가 되물었다.

 이전의 쉔이 쓰던 어투가 아닌 단호하고 위압감 있는 어투였다. 제드는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리그에 참가하려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진실을 깨달은 제드는 쉔의 목에 꽂혀있는 칼을 비틀며 말없이 쉔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쉔의 상처에서는 검붉은 피가 뿜어져나왔다. 쉔은 알았다는 듯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과묵한 친구로군. 속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니 기분이 어떤가?"

제드는 대답 대신 깊게 꽂힌 칼을 뽑았다. 쉔이 입과 자상에서 핏덩이를 쏟아내며 넘어지자 그의 눈 앞에 아름다운 장식이 된 문이 나타났다. 제드의 주변에 있던 시체들과 쉔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제드는 미련없이 문 너머로 들어가며 중얼거렸다.

"진실이란 바로 어둠 속에 있는 법이지."


심심할때마다 써서 올려보겠습니다.
필력은 기대하지 마세요 저 한국말 잘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