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신의 말은 거기서 끝났지만 엘리스는 그 말을 오랫동안 곱씹어서, 자신이 완전히 나을때까지 그 말을 잊지않도록 애를 썼다. 이번에는 리신의 치료없이 순전히 자신의 회복력만 이용하는수밖에 없었는데, '자신이 저지른 죄값의 무게를 체감하기위한 마지막 과제'라 납득시킨채 고통스러운 재활기간을 거쳤다. 부러진 팔목과 팔목보호대를 잡기위해선 올바른 교정을 잡아야했는데, 그 일을 엘리스 스스로가 하기에는 버거운 일이었다. 아침부터 시도했으나 밤에서야 겨우 성공한채 쉬어버린 목을 가지고 기절해버렸으니까. 구멍난 자신의 복부는 이미 구조되었을 때 뽑혔지만 상처부위와 파손된 장기마저도 말끔히 나아지는 치유력은 엘리스의 조력챔피언들조차도 그녀의 능력을 의심하게만들었다.

"..."
 엘리스는 그에대해선 아무런 말도 하지않았다. 밥을 먹는것도 마오카이가 직접 떠줘야만 먹을수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얇은 그의 왼손조차도 젓가락질은 버거웠다. 제한적인 영양식사는 고달픈 재활생활의 주요문제였다.

 등과 허벅지를 포함한 하체에는 골절이나 탈골같은 부상은 없었지만 한군데도 빠짐없이 생겨버린 피멍때문에 직립보행은 꿈도못꿨고, 이는 거미 형태또한 해당되었다.

 볼일을 보러 화장실을 가려면 앞으로 엎드린채 굼벵이처럼 상하체로만 이동해서 몇 시간을 이동해야만 볼 수 있었다. 양팔은 안쓰냐고 묻는다면 칭란마을에서 엘리스를 처음 포박하는데 어디를 가해했는지 모르는 사람인게 분명하다. 이러다보니 제시간내에 볼일을 못보는경우는 부지기수였고, 하루의 대부분을 화장실에 있어야만했다. 마오카이가 인간의 크기에 맞게 구조된 화장실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식사시에만 화장실앞으로 꿈틀거리면서 나와(...)먹어야만했다.

 

"마오카이... 이 밥있잖아, 왜 그동안 먹던것과 맛이 다른거야?"
"그건... 네가 그 화장실에서 너무 오랫동안지내는나머지 입맛에 이상이 생긴거일지도 모르겠군."

 혹시 까먹을까봐 다시 알려주자면, 리신의 수도원에 있는 화장실은 푸세식 화장실이다.

 지독하게 긴 시간이었다. 생사의 기로에서 벗어난지 한달이 지나서 겨우 그녀는 수련에 임할 수 있었고, 수련의 강도는 전보다 훨씬 독해졌다. 팔굽혀펴기가 50회로 늘어난지 얼마 지나지않았음에도 70회로, 마침내는 100회까지 상향되었다. 잠자코 수련에 임하긴했지만 삭신이 쑤시지않는 날이없었기에, 엘리스는 경제 특구에 자신의 전장복을 세탁하러나가는 이외의 활동을 하지못한채 수도원에서 죽 앓듯이 누워지냈다. 그럼에도 아이오니아에서부터 내려온 활동보고서는 자신의 손으로 써야만 하는 일까지...


 

 하지만 엘리스는 지금이 아닌 재활기간에 자신의 메모지에 써놓은 그날의 경험을 기록할때만큼은 어느순간보다도 팔에 많은 힘을 들여썼다.


 

8월 20일. 칭란 마을.

~내용상 편의상자신이 겪은 사건들의 모든 과정을 기록했다. 다만 이 분량은 팔하나 제대로 가누기 힘든 시기에 쓴 글답지않게 상당히 자세했고 길게 적혀있었다.~

 

이날, 나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어느때보다도 확실히 느꼈다. 그동안 이름도 모른채 표현하고다녔던 '분노'라는 감정만큼이나. 그렇다. 리신과 마오카이, 카사딘의 말은 모두 맞는 말이고, 이를 통해 나는 내가 저지른 일의 무거움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되는것과는 반대로 나는 그 사람들에게서 죽기가 무서웠다. 싫었다. 그렇다. 나는 살고싶다. 그러기때문에 죽음에 대해 두려워할지도모른다. 끝없이.


 

 소환사가 활동하고있는 지구상 어딘가. 그곳은 전쟁 학회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세계가 펼쳐져있다. 수많은 건물들가운데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듯한 원형 광장. 아무도 없는듯한 장소지만 단 한 사람만 서있었다. 더글라스라는 이름을 가진 소환사가.

'그 때...'

 그는 지난 7월 18일 여러 소환사들에게 엘리스의 지난 행적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의 의견은 적극 수용되어 두가지 방식이 시행되었지만 둘 중의 하나는 실패해버리고 말았다.

'회색 숙녀조차도 놓칠 정도라면 녀석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있다. 빠르게 뭔가를 하고있지는않지만 공교롭게도 여러 사건이 맞물려서 꼬이는것만보면 이것은 의도든 비의도든 누군가가 도와주기때문에 가능한데...'

 하지만 소환사라는 직위에 걸맞지않게 슈퍼컴퓨터의 도움이 없는이상 어떤 존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기엔 어려운 일. 그래서 그중에서도 고위소환사는 레드필드에게 엘리스의 뒷조사를 명했다. 그래서 제비뽑기를할때 한사람명분의 막대기가 생성되지않았다. 의문점은, 레드필드가 제비뽑기프로그램을 가동시키기전에 이미 뒷조사의 명령을 받았다는건지아닌지 알수 없다는것.

 무엇보다 그 제비뽑기프로그램을 가동해서 나머지 소환사들의 이름을 기입한 통에서 아무도 엘리스의 뒷조사를 담당해아하는 소환사가 나오지 않은 것.

<계속>

<글쓴이의 말>

공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