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삑─

 "코토리? 이 시간에 웬일인가요?"

 "아, 우미쨩? 갑자기 연락해서 미안해... 혹시 지금 통화 가능해?"

 "네, 괜찮습니다"
 
 "고마워! 지금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어떤 건가요?"

 "이건 코토리가 계속계속 숨겨 왔던 비밀인데, 우미쨩 만큼은 알아주었으면 해."

 "으음, 정말 갑작스럽네요."

 "그래도 꼭 들어줘! 사실 지금까지 '누군가'를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와졌어. 자꾸 그 사람 얼굴이 떠올리고, 무언가 할 때 같이 하고 싶어졌어. 감정 자체가 뭔가 비정상적이고, 혼란스러운 느낌? 지금까지 그것에 대해 혼자서 계속 숨겨왔지만 이제는 밝혀야 될 때가 온 것 같아... 놀라지 말고 들어야 해? 정말 놀라지 마~!"

 "후우, 네..."

 "나, 아무래도 호노카쨩을 좋아하는 것 같아."

 "...네? 무슨 말인지 잘..."

 "이 '좋아한다'는 의미는 말이야, '친구'를 넘어서고 싶다는 얘기야."

 "..."


때는 늦은 밤.

코토리가 차분한 목소리로 저에게 통화를 걸어와 자리에서 일어나 연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코토리, 그 말은..."

 "응, 아마 '사랑'이겠지?"

 "..."

 "..."

 "..."

 "...우미쨩? 뭔가 말이라도 해봐~ 히잉..."

 "아, 죄송합니다. 좀 충격적이어서..."

 "헤헤♥ 그럴 것 같았어~"

 "아니, 그보다 정말로...?"

 "응!"


어안이 벙벙하여 코토리가 던진 폭탄 발언에 대해 의미없는 질문을 하고 말았군요.

그러니까 코토리가 호노카를 사랑해서 연인이 되고 싶다...?

이 무슨...!

너무 혼란스러운 나머지, 중간에 말조차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니아니, 이건 단순히 '응!'이라고 말할 정도의 얘기가 아니잖습니까!"

 "꺄악♥ 우미쨩이 폭발했다~!"

 "밤중에 놀라서 비명횡사 할 뻔 했잖아요!"

 "놀라지 말라고 먼저 얘기했는데..."

 "어떻게 안 놀랄 수가 있죠? 정말이지 이건 말도 안 된다고요!"

 "그, 그런걸까나~"

 "애당초 '사랑'이라니요! 그런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것 아닙니까!"

 "우우... 난 그래도 우미쨩을 믿어서 우미쨩한테 제일 먼저 말해준건데..."


코토리의 힘없는 말에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물론 그녀가 한 말은 저에게 정말 충격, 그 자체였어요.

하지만 꽤 오랜 시간 전부터 코토리 혼자 마음을 오늘에 와서야 큰 마음을 먹고, 저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또다른 용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 생각을 떠오르게 되자 당황함이 겨우 사그라 들었죠.


 "미안해요, 코토리...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서..."

 "으응, 아니야. 우미쨩이라면 이런 반응을 보일 줄 알았는걸!"

 "그것도 뭔가 좀 슬프네요..."

 "에헤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코토리는 호노카를 사랑하고 있다... 이 뜻이죠?"

 "응응!"

 "그래서, 일단 이런 얘기를 저한테 한 이유는?"

 "당연히 우리들은 친구니까 그렇지! 만약 내가 말없이 호노카쨩이랑 갑자기 사귀게 되면 우미쨩이 슬퍼하거나, 배신감을 느끼거나, 하여튼 뭔가 안 좋은 감정을 들게 만들까봐..."

 "에에... 저, 외톨이 신세가 되는 건가요..."

 "아앗~ 아니야! 우미쨩이랑은 쭈욱 그래왔듯이, 우정은 변하지 않아! 호노카쨩도 그렇게 생각할거야, 헤헤♥"


장난스러운 코토리쨩의 말에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자각은 하고 있는 걸까요...


 "그나저나 언제부터 그런 감정을 품고 있었나요."

 "우음, 글쎄... 1년 전부터?"

 "정말 오래도 됐군요. 저는 눈치조차 못 챘는데..."

 "그만큼 마음을 꾹꾹 숨겨왔으니까♥"

 "그런가요..."

 "그리고 우미쨩이 둔감하기도 하고? 어쨋든 더 밝히자면 하루라도 멀다하고 호노카쨩을 볼 때마다 행복했지만, 반대로 호노카쨩이랑 헤어질 때마다 그리워하고, 아쉬워 했어. 그것이 날이 가면서 커지더니 결국 오늘날까지 온 것 같아.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몰래 품는다는 것이 정말 어렵구나아~"

 "연정(戀情)...이라는 것인가요."

 "앗, 역시 우미쨩! 멋진 말을 잘 아네~ 맞아맞아.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아."


은근슬쩍 저 보고 둔감하다고 했네요.

어쨋든 코토리가 오랜 시간 동안 호노카에 대한 마음을 몰래 품고 있었다라...

그 연정(戀情)을 더이상 연정(戀情)으로써 남기지 않겠다는 그녀의 의지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요?"

 "안 그래도 그걸 우미쨩한테 물어보려구♥"

 "네? 저에게...?"

 "응! 내일 호노카쨩한테 고백할거야."

 "...에?"

 "고백 한 적은 한 번도 없으니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우미쨩의 생각을 얻는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코토리, 그건..."

 "꽃다발 같은 것을 준비할까? 아, 호노카쨩이라면 꽃 대신 빵을 넣어서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코토리..."

 "고백할 멘트도 따로 생각하는 것이 좋겠지? 우미쨩은 그것을 좀 생각해주면 좋을..."

 "코토리...!"


참지 못 하고 소리를 질러 버리고 말았군요...

덕분에 재잘거리던 코토리쨩의 목소리가 뚝 끊겨 흠칫 했습니다.

아, 또 실수 한건가요...

하지만 다른 생각을 더 하기 전에, 코토리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알아, 우미쨩이 무슨 말을 할 지. 이상하겠지, 성급하겠지, 후회되겠지... 하지만 더이상 참을 수 없는걸. 오히려 지금까지 참아온 것이 기적이야. 난 정말 호노카쨩을 사랑하고 있어. 가끔 호노카쨩에 대한 꿈을 꾸고 일어날 때마다, 내 자신에 대한 현실이 원망스러웠어. 꿈이 아니라 실제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

 "호노카쨩도, 나도 여자란 것은 당연히 알아. 하지만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연정(戀情)은 이미 그 사실을 뛰어넘게 되었어. 만약 그런 것이 마음에 걸렸다면 이런 마음도, 이런 얘기도 없었겠지. 그렇다고 해서 무섭지 않다는 것은 아니야. 거절 당하게 되면 어떻게 될 지 상상도 해봤으니까..."

 "..."

 "요즘은 호노카쨩도 내 행동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가까이 다가오면 자꾸 미는 느낌이 들어. 물론 가끔씩이지만 그럴 때마다 정말 내 마음이 아파... 내가 괜히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기 때문에 이미 호노카쨩이 날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가끔 들기도 해..."

 "..."

 "그래도 호노카쨩을 많이 좋아하는걸! 이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답답한걸! 우미쨩은 잘 모르겠지만 코토리는 이제 한계야! 오늘 저녁에 칸다묘진에 가서 기원도 빌었어, 호노카쨩이랑 잘 되길 바란다고. 그 기원이 꼭 이루어지길 바라는 기원도 따로 드렸다구..."

 "..."

 "우미쨩은 어떻게 생각해...? 이런 내가 이상한걸까...? 나, 호노카쨩한테 고백하면 안 되는 거야...?"


간절한 코토리의 목소리.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듯한 비참한 목소리.

저에게서 원하는 말을 듣고 싶은 듯한 작은 새의 애원하는 지저귐.

무언가 말하려던 제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아뇨. 코토리는 코토리가 바라는 일에 대해 노력할 권리가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저는 그것을 막을 권리가 없다는 뜻이지요. 코토리 또한 제... 소중한 친구니까요."

 "...!"

 "물론 호노카의 마음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코토리가 알아서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만약 잘못해서 서로의 사이가 틀어지게 되어도 저는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힘을 쓸 것이구요. 저는 제 친구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서로에 대한 사랑이라면 저 또한 기쁘게 축복해 주겠지요. 코토리가 호노카에 대한 연정(戀情)을 오랜 기간에 품은 만큼, 그 성과가 있길 바랄 뿐 입니다."

 "..."

 "그러니 코토리는 어떠한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침 제가 쓰고 있던 문구 중, 코토리의 상황에 어울릴 만한 글귀가 있군요. 그걸 찍어서 보내드릴테니 내일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우흑, 흑"

 "...코토리?"

 "흑, 흐흑... 흐아아앙!!!!"


갑작기 코토리의 우는 소리가 들려와서 깜짝 놀랐네요.

혹시 대답을 잘못 했거나 마음에 안 들었을까봐 속으로 우왕좌왕 하고 있는 사이, 소리 높여 울던 코토리는 겨우 진정했습니다.


 "괜찮습니까?"

 "으응, 괜찮아! 걱정 끼쳐서 미안...헤헤"

 "정말... 갑자기 울어서 걱정했잖아요."

 "우미쨩이 너무 상냥하게 말해줘서 그렇답니다~♥ 응, 분명 그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걸지도..."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군요."

 "하아~ 우미쨩한테 먼저 말해서 다행이야.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 고마워!"

 "별 말씀을..."

 "자, 그럼 고백 작전을 세워보자!"

 "너무 회복이 빠른 것 아닌가요?!"

 "괜찮아, 괜찮아! 내일은 중요한 날이니까 이제 작전을 잘 짜야겠지!"


그렇게 해서 코토리와 1시간 가량 얘기를 더 했습니다.

스쳐 지나간 듯이 얘기한 꽃다발 대신의 빵다발은 기각시켰고 반지나 사진첩, 옷 등 여러가지 선물 목록들이 나왔네요.

하지만 결국 어떠한 선물 없이 말로써 마음을 전해주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만큼, 그 어떠한 선물도 진실성을 대신해 줄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잠시 전화를 끊고, 제가 썼던 시 중에서 그나마 괜찮은 것을 택해 코토리에게 보내주었습니다.

그러자 이에 대한 대답이 문자로 왔습니다.


 [이 문구 정말 멋진 것 같아! 내일 고백할 때 꼭 말해야지~ 늦은 밤에도 내 말을 들어줘서 고마워, 우미쨩♥ 그럼 내일 일 잘 되길 기원해줘! 잘 자~ (ㆍ8ㆍ)]


이 문자에 피식 웃던 것도 잠시, 괜찮다고, 잘 자라고 답장을 보내주고 저는 이불 위에 누웠습니다.

...

......

저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요...

호노카를 향한 코토리의 사랑을 응원하다니...

사실 전 이 고백의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우미쨩, 요즘 코토리쨩이 너무 귀엽게 느껴지는 것 같아. 그래서 코토리쨩이 들러붙을 때마다 심장이 너무 쿵쾅거려서 일부러 살짝 거리를 두고 있는데 이거 위험한 거야??"


저번주에 했던 호노카의 말이 떠오르네요.

분명 호노카 또한 코토리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요.

그러니 코토리가 고백하면 분명 서로 사귀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저는 이 사실을 일부러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분명 이 사실을 미리 알았으면 이렇게까지 걱정 안 했을텐데도...

오히려 당장이라도 호노카한테 전화를 걸어서 고백할 정도로 크게 기뻐했을텐데도...

저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지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

......

저, 소노다 우미는 미나미 코토리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 강도 높은 수련으로 몸이 매우 피로하여 어떠한 연락도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연락 온 사람이 코토리였기 때문에 받았다는 사실을, 그녀는 몰랐습니다.


 "어..."


눈가가 따뜻해지기 시작하군요.

사실 코토리가 맨 처음 얘기했을 때에 저에게 고백하는 줄 알고 긴장하며 설레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몰랐습니다.


 "....."


건조했던 눈가가 점점 축축해지군요.

제 마음을 앞세우기 전에 코토리가 마음 아파할까봐 오히려 먼저 코토리를 걱정하고 배려해줬던 사실을, 그녀는 몰랐습니다.


 "우윽..."


눈가에 모인 축축한 액체가 서로 뭉치군요.

저랑은 '우정'이 쭉 변하지 않는다는 절망스러운 코토리의 말에 한숨을 쉬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몰랐습니다.


 "읍..."


목이 메이는 소리를 내지 않게 입을 막았군요.

코토리가 저 보고 '둔감하다'는 말을 했을 때에 그 말을 되돌려주고 싶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몰랐습니다.


 "흐윽..."


방울이 된 뜨거운 액체는 눈가에서 흘러나와 입을 막고 있던 손을 타고 내려왔군요.

코토리가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설명할 때에 제가 코토리를 훨씬 사랑해줄 수 있다는 말을 외치고 싶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몰랐습니다.


 "흐읍, 흑..."


빗망울처럼 간간이 나오던 눈물이 제 갈 길을 못 찾는 시냇물처럼 흐르게 되었군요.

제가 코토리에게 추천한 문구가 훗날 코토리에게 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고백을 쓴 것이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몰랐습니다.


 "...아아아!!!"


마음 속으로부터 깊숙히 나오는 포효를 베개 속에 내뱉는군요.

호노카가 코토리에 대한 호감을 말했을 때에 느꼈던 질투와 그 날 이후로 코토리에게 고백할 지 말 지의 걱정을 매일매일 했다는 사실을, 그녀는 몰랐습니다.


 "흐아아아아아앙!!!!!!!!!!!"


제 스스로 조절하지 못 할 감정을 눈물로써, 흐느낌으로써, 아픔으로써 느끼는군요.

중학교 시절부터 갖고 있었던 코토리에 대한 연정(戀情)이 용기가 없던 제 자신으로 인해 한 순간에 무너졌다는 사실을, 그녀는 몰랐습니다.

아아, 연정(戀情)...

연정(戀情)때문에 사랑을 할 때 필요한 것에 대한 제 부족함을 느껴버렸습니다.

연정(戀情)때문에 저는 제 마음을 무시하면서까지 원치 않는 도움을 주었습니다.

연정(戀情)때문에 깊은 우정을 가진 소꿉친구를 한순간에 질투해버린 위선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연정(戀情)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바라면서, 동시에 저 자신의 후회와 좌절, 슬픔을 가졌습니다.

오직 연정(戀情), 그 연정(戀情) 하나 때문에...

야속한 밤은 초침을 훑으며 깊어갔지만 제 부질없는 울음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제 욕심과 함께, 결국 제 연정(戀情)은 그렇게 끝을 고하게 된 것입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