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 내용은 μ's 멤버의 캐릭터를 따와 만든 오리지널 스토리 입니다.
2. 폭력적인 묘사나 안타까운 장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3. bgm과 같이 들으면 더욱 재밌습니다. 모바일 같은 경우, bgm 링크를 타고 재생시키면 보다 원활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4. 작품에 관한 모든 댓글과 추천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편-
-3편-



-1편-

 그 시대의 '마녀'란 가히 비현실적이지만 엄연히 현실에 속해있는 존재로써 누구나 마녀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나 동시에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어떤 면에서 봐도 모순된 존재였다.
                              -유명저서 '마녀' 中 p.3 셋째 줄-



                       "마녀는 무시무시한 요술을 부린다지?"

 "사람까지 홀리는 능력도 있대!"

            "제멋대로라 누가 뭐래도 마음대로 행동한다며?"

 "보통 사람과 다르게 눈물도 흘리지 않는다지."

                        "거기다가 매우 사악하기까지 하고..."
 
 "자비도 없다고 하니 정말 무서워~"


이것은 마녀에 대한 소문.

사람들의 입과 입을 옮겨다니는 무의미한 허공의 말.

누구는 두렵다는 듯,

누구는 끔찍하다는 듯,

누구는 재수없다는 듯,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지만...

이 속설에 대한 진실 또한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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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시대의 따뜻한 봄.

장소는 어느 작은 산골 마을.


 "저기 좀 봐, 정말 특이하게 생겼어!"

 "마녀 아니야? 안 그러면 저런 머리카락 색이..."


다른 의미의 시간은 마녀사냥이 극에 달하는 암흑기.

다른 의미의 장소는 마녀를 싫어하는 수많은 마을 중 하나.


 "으휴, 정말 소름끼쳐."

 "촌장님도 참, 저런 애를 왜 들여와서는..."


마녀로 의심받는 자들은 마을에서 배척당하거나 가차없이 처형당하는, 그런 시간과 장소.

그 대상은 비(非)논리, 무(無)증거로써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야, 저리 꺼져!"

 "여긴 너가 있을 곳이 아니란 말이야!"


오늘도 한 여자아이는 남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반(半)마녀 취급을 받으며, 어른들한테서 눈총을 받고 아이들한테서 괴롭힘을 받고 있었다.

그 여자아이의 이름은 '아야세 에리'.

나이는 9살로 현대시대로 따지면 유치원생의 체구를 가질 만한 연령.

다른 마을로부터 이주해서 온 아이로, 보통 사람들과 다른 금발의 머리카락 색 때문에 오늘도 안 좋은 취급을 당하고 있다.

에리는 본래 현재 살고 있는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신 어머니는 매우 가정적이어서 에리의 옷을 직접 만들거나 에리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며, 동물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수완이 좋아 젊은 나이에 성공한 상인인 아버지는 누구보다 일을 열심히 하는 반면에 가정까지 잘 챙기는, 이상적인 아버지의 상을 가지고 계셨다.

오랜 세월을 통한 지혜를 가지고 있는 할머니는 이 부부를 매우 아끼셨고, 손녀인 에리 또한 '에리치카'라는 애칭을 붙어주며 에리의 선생님 같은 역할을 해주셨다.

이렇듯 남 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행복하게 살던 에리는 하루하루를 즐겁게 웃으며 지냈고, 이 시간이 영원히 계속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저기 있는 인간들은 마녀야!"


누군가 던진 이 한마디가 에리의 행복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어떠한 논리나 증거도 없이 마녀라고 단정지은 사람의 말은 어느새 전염병 마냥 마을의 사람들까지 현혹시켰고, 그 광기의 물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에리의 집을 덮쳤다.

이러한 소식이 들리자마자 아버지는 할머니와 에리를 대피시켰고 어머니까지 피신시키려 했지만, 어머니는 절대 당신을 혼자 있게 하지는 않겠다며 결국 자신의 동반자와 함께 집에 남게 되었다.

영문도 모른 체, 허겁지겁 아버지가 챙긴 물품들 중 일부를 짊어지고 할머니와 같이 산에 올라가던 에리는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추억과 사랑이 담겼던 집이 있던 위치는 어느새 불길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자세히는 안 보였지만 어떤 여자는 머리채를 잡힌 채로, 어떤 남자는 몸에 줄이 묶인 채로 바닥에 몸이 끌리며 마을 사람들 손에 속절없이 이끌려갔다.

이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

깊은 산 속을 헤매면서 에리는 자신들이 왜 이렇게 도망가야 하는지 할머니에게 물었다.


 "마녀는 무지한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라지만 이번에는 사람들의 질투와 욕심이 에리의 엄마와 아빠를 마녀로 만든 것으로 볼 수 있구나..."


어린 에리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마녀'가 어떤 존재인지는 알고 있었다.

에리는 그럴리 없다고, 엄마와 아빠는 분명 보통 사람일 뿐이라고 큰 소리로 말했지만 할머니는 이에 쓸쓸한 미소로 답했을 뿐...

이어서 에리는 그럼 엄마와 아빠는 우리한테 돌아올 수는 있는 거냐고 물었다.

이 말을 들은 할머니는 바삐 움직이던 발걸음을 멈추고, 슬픈 눈으로 에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자세를 낮춰 부드럽게 에리를 안고는, 어깨를 조금씩 들썩였다.



그것이 에리가 처음으로 본, 할머니의 눈물이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산 속을 걷다가 어느 마을을 하나 발견헀다.

분명 반나절이면 갈 가까운 마을도 있었지만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있는 한, 그 사실이 흘러들어가면 가자마자 붙잡힐 것이 뻔했기에 일부러 소문이 닿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의 마을까지 찾아간 것이다.

할머니는 지친 몸을 이끌고 촌장을 찾아가 집 한 채만 마련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촌장은 단호히 거부했다.

폐쇄적인 그 마을은 외부인을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고, 특히나 이 시대에서는 흔하지 않은 에리의 머리카락 색을 지적하며 오히려 마녀가 아니냐고 의심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자신들이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에 대해 설득을 했고, 그래도 말이 통하지 않자 짐들 중에 있었던 보석 한 웅큼을 촌장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자 태도가 살짝 누그러진 촌장은 마지못해 아무도 살지 않는 제일 허름한 집으로 그들을 데려갔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낡고 좁은 집이었지만, 현상황에서 가릴 것이 없었던지라 할머니는 결국 이 곳에서 정착하기로 했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비극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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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때는 점심 시간.

식재료를 사서 집 안으로 돌아온 에리는 한숨부터 쉬었다.

다른 아이들의 괴롭힘은 이 마을에 와서 처음 당하는 거지만 어찌어찌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배고픔은 참기 힘들었다.

가뜩이나 배척당하는 상황이라 마을 내 상인들에게도 좋은 대우를 받기는 커녕, 물건 팔기를 거부 당하거나 내쫓기기 일수였다.

일단은 먹고 살아야 했기에 팔아달라고 애원하면 탐욕스러운 상인들은 에리에게만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비싼 값을 불렀다.

어린 에리는 어떤 방식이든 간에 음식을 마련할 수 밖에 없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부당한 값을 치뤄서야 끼니를 마련할 수 있었다.


 "다녀왔어요, 할머니~"

 "잘 다녀왔구나... 콜록, 콜록."


방 안으로 들어오자 얼룩이 진 침대 위에서 상반신만 일으킨 채로 에리를 맞이해주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에리에게 있어 유일하게 남은 가족.

그 유일한 가족은 이 집에서 머문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져 눕게 되었다.

전에 살았던 마을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스트레스와 현재 살고 있는 허름한 집 환경이 가뜩이나 좋지 않은 건강을 악화시킨 것 같았다.

에리로써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은 할머니를 편하게 모시고, 음식을 마련하며 남아있는 재산을 관리하고 집안일을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제 겨우 9살이 된 에리한테는 가혹한 일이었다.


 "흠, 흐흠~♪"


하지만 어떠한 불평이나 힘든 기색 없이, 늘 그랬던 것처럼 콧노래를 부르며 힘들게 구한 음식 재료로 어색하게 요리를 시작하였다.

어머니를 도와 요리를 만든 경험을 토대로 나름대로의 작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삭막했던 집안은 어느새 맛있는 향기가 가득 차게 되었다.

이윽고 접시 하나에 야채 스프와 빵을 담아서 할머니가 계시는 침대 옆에 있는 탁자로 가져왔다.

이에 탁자 쪽을 향해 몸을 겨우 움직인 할머니는 숟가락으로 스프를 살짝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역시 맛있구나~ 우리 에리치카는 나중에 크면 요리사라도 하렴, 후후."

 "에헤헤, 맛있어서 다행이에요."


그렇게 몇 번 스프를 떠먹던 할머니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미안하구나, 아가... 미안하구나..."

 "아이, 참! 그런 말씀 하지 마시래니깐요..."


여기 온 지도 시간이 좀 지났지만 할머니는 에리를 고생시키는 것에 대해 마음의 응어리가 커졌는지, 요즘은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처음에 에리도 따라서 같이 울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고 결심한 후로 더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손수건으로 할머니의 눈가를 닦은 에리는 그녀의 식사를 도와드렸고, 겨우 그릇을 비우게 되자 설거지를 하러 갔다.

같이 식사하고 싶었지만 할머니의 방은 둘이서 식사하기엔 비좁았다.

그래서 에리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그녀의 식사를 먼저 챙긴 뒤, 에리 자신은 그 후에 따로 먹겠다고 할머니에게 박박 우겨 지금은 그렇게 하고 있다.


 꼬르륵─

 "아앗..."


바깥에서 설거지를 하던 에리는 빈곤한 소리를 내는 배를 살짝 움켜쥐었다.

사실 지금까지 할머니에게 세 끼를 다 챙겨드렸지만 정작 자신은 몰래 두 끼, 혹은 한 끼만 먹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 마을의 상인들은 터무니 없는 가격으로 에리에게 물건을 팔았으므로, 아끼지 않으면 무일푼이 되는 시간이 앞당겨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리 자신에게 최소한 경제적인 능력이 생길 때까지, 챙겨온 재산을 아끼고 아낄 수 밖에 없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끼니를 굶는 것.

먹지 않으면 그만큼 재산을 아낄 수 있다는, 실로 어린애다운 단순한 생각이면서 어른다운 성숙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성장기의 어린 아이가 마냥 굶기에는 힘든 법.

설거지를 마친 에리는 산으로 갈 채비를 했다.

산에는 각종 나물이나 열매가 있어서 끼니를 굶었을 때마마 산으로 가서 요기를 했다.

또한 이러한 먹을거리들을 챙겨와 식사 재료로써 쓸 수 있기 때문에 일석이조였다.


 "할머니, 저 잠시 놀다 올게요~!"


할머니에게 인사라는 이름의 거짓말을 잊지 않고 나온 에리는 산이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한 쪽은 자신들이 도망쳐왔던 산이자 마을에서 여러가지 작물을 기르고 있는 산.

다른 한 쪽은 사람들이 잘 안 가는, 어둡고 음침한 산.

에리는 잠시 고민하다가가 음침한 산으로 가기로 마음 먹었다.

마을 사람들은 기분 나쁘게 여기며 부르는 '마녀의 숲'을 향해...


 "여러분, 마녀는 우리들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의 평화와 재산을 위협하는 악마의 자식들 말입니다! 지금 이 시기에 우리가 어렵게 사는 것도 다 그들 책임인 것이지요. 그런 존재들은 뿌리부터, 싹부터 잘라야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주민 여러분들의 신고가 이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가져다 줄 것이며 저 역시 노력..."


마을의 중앙 공터로부터 평소와 같이 촌장의 열띤 연설이 들려왔다.

그 연설은 왠지 에리 자신을 위협하는 것 같이 들려서 일부러 중앙 공터를 가로지르지 않고, 다른 길로 돌아서 갔다.


 "여어~ 오늘도 그 산으로 가냐, 이 마녀야!"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하하하!"


어린 아이들의 무리는 변함없이 마녀의 숲으로 가는 에리를 향해 비웃고, 욕했다.

가끔씩은 돌까지 던지는 아이들도 있었으나 에리로써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참고, 날아오는 돌을 어떻게든 피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저 애, 또 마녀의 숲으로 가는걸. 수상한데 미행이라도 해볼까?"

 "냅둬, 괜히 재수없게 연관되지 말고."

 "하긴..."


마을 사람들의 수근거림도 처음에는 따가웠지만 이제는 흘러들을 수 있었다.

자신에게 불리하고, 역한 상황에 에리는 어느새 적응했던 것이다.

그만큼 성숙해진 것일까.

주변 상황에 상관없이 에리의 발걸음은 마녀의 숲으로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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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마녀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내려오는 '마녀의 숲'.

그 너머에 있는 지역을 단시간에 가기 위해 몇몇 사람들이 들어가긴 하지만, 음침한 분위기가 워낙 압도하고 있는지라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 모험을 굳이 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키 높은 나무들이 빽빽이 있어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알 수 없는 동물들과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간간이 불협화음으로 들려왔다.

뒤틀린 나무 모양은 사람 형상과 비슷했고, 얽혀있는 덩쿨들은 징그럽게 느껴졌다.

사실 에리 본인도 처음부터 마녀의 숲에 오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원래 먹을 것이 훨씬 더 많은 다른 쪽 산으로 갔었다.


 "이 망할 년이 도둑질 하려고 들어왔구만? 다신 들어오지 못 하게 혼쭐을 내주마!"

 퍽, 퍽, 퍽─

 "죄송해요, 한 번만 봐주세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실수로 사유지에 들어간 것을 주인에게 들킨 나머지 호되게 매를 맞은 기억이 떠올랐다.

너덜너덜하게 돌아오자 할머니가 목놓아 울던 모습도 덤으로 떠올랐다.

고개를 세차게 저은 에리는 자신의 볼을 팡팡 두들기고 발걸음을 옮겼다.

더이상 할머니의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면 어디가 사유지인지 모르는 산보다, 사람들이 거의 안 가는 마녀의 숲에서 먹을 것을 찾는 것이 훨씬 나았다.

그래도 마녀의 숲은 아예 먹을 것이 없지는 않아서 운이 좋으면 한 곳에서 몇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오늘은 별로 눈에 안 띄네..."


그러나 오늘은 그마저도 신통치도 않은 편인 것 같았다.

평소보다 조금 더 깊숙히 들어왔지만 나물이나 열매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렇게 높은 나무 꼭대기에는 먹을 것이 있을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도 잠시, 무심한 뱃 속은 얼른 먹을 것을 들여오라고 다시 소리치기 시작했다.

위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에 배를 움켜쥔 에리는 마녀의 숲 안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야가 안 쪽으로 들어갈수록 캄캄해지는 느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고픔을 이기지는 못 했다.

결국 에리는 큰 마음을 먹고, 더욱 깊숙한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바스락, 바스락─

 푸드드득─

 야옹─

 꾸루루─


날개짓 소리, 울음소리가 조용한 숲 속에서 사방으로 퍼졌다.

어지럽게 떨어져있는 나뭇잎 밝는 소리마저 으시시했다.

햇빛은 키 높은 나무들의 잎사귀 사이로 간간이 들어와 시야를 비춰줬다.

에리는 여기까지 들어온 것이 일순간 후회가 되었지만, 어찌됐던 간에 무언가는 먹고 싶었기에 나무 밑둥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버섯이라도 있지 않을까 구석구석 살펴보던 도중,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뛰어오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거침없이 나뭇잎을 밟고 오는 소리에 움직임이 얼어붙은 에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뻣뻣이 돌렸다.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뭐, 뭐지... 산짐승인가? 혹시 멧돼지...?'


어떤 짐승이든지 간에 몸집이 작은 에리의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도망치기에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이윽고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바스락, 바스락─

 탁─

 "어라? 여기에 왠 어린애가 있는거냥?"


모습을 드러낸 것은 멧돼지가 아닌, 입가에 검은 복면을 두른 '사람'이었다.

소매가 짧은 상의와 바지는 둘 다 검은색이었고, 주머니에는 알 수 없는 물건의 손잡이가 삐죽 튀어나왔다.

이런 수상한 복장에 걸맞지 않게 높은 톤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성별은 여자 같았다.

날씬한 체형을 보면 10대 중후반 정도.


 "오랜만의 사냥감 소리가 들려서 달려와봤더니만 어린애라니 실망했다냐!"


이상한 말투를 쓰는 여자아이는 에리를 앞에 두고 투덜거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진 에리는 멍하니 그 여자아이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헥, 헥... 린쨩, 같이 가아~"

 "앗, 카요찡! 여기야, 여기!"


'린쨩' 이라 불렸던 여자아이는 뒤이어서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를 향해 팔을 크게 흔들었다.

그 쪽으로 향해 다시 시선을 옮긴 에리는 같은 복장의 사람 한 명이 더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갑자기 그렇게 뛰어가면 어떡해..."

 "헤헤헤~ 미안해, 카요찡."


'카요찡' 이라고 불리는 그 사람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지만 먼저 왔던 사람과 같은 복장의 같은 복면을 두르고 있었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등 뒤에 커다란 검집을 메고 있었다는 점이랄까.

일단 새로온 사람은 확실히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의 몸을 가졌기에, 에리는 순간 자신의 가슴을 살짝 만져보았다.


 '나도 저런 몸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순식간에 사람 두 명이 자신에게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제서야 혼란스러워 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자신에게 다가왔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마녀의 숲에도 사유지가 있는 것은 아닐까.

방금 온 사람들은 이 지역의 주인인 것일까.

이런 생각이 에리의 몸을 떨게 만들었다.


 "그나저나 어린 애잖아? 이런 애한테서 뭔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은데..."

 "무슨 소리! 애라도 뺏을 것은 다 빼앗으라는 두목의 말을 잊으면 안 된다냐!"

 "그래두..."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에리를 앞에 두고 서로 옥신각신 하던 둘은 다시 시선을 에리로 향했다.

두 명 중, '린쨩' 이 먼저 에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흠흠."


그리고 잠시 헛기침을 하고는,


 "우리는 산적이다! 가진 것을 다 내놔라냐! 음하하하~!"


라고 어색한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뜬금없는 상황에 에리는 눈만 깜빡거릴 뿐, 아무런 행동이나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어색한 정적이 몇 초 동안 흐르자, 린쨩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으음, 아직 어린애라 그런지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것 같네~"


그 모습에 '카요찡' 은 풋, 하며 웃었다.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린쨩은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날이 잘 다듬어진 짧은 '단도' 였다.


 "자, 이래도 안 내놓을거냥!"


눈 앞에 흉기가 생기자 안 그래도 무서움에 질려있던 에리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산적' 이라 지칭하는 둘이 오히려 당황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너무 어린애라고 했잖아...!"

 "에에,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

 탁탁탁탁탁─


그렇게 둘이 어쩔 줄 몰라하던 사이, 에리의 몸은 본능적으로 도망쳤다.

일단은 저 이상한 차림의 이상한 사람들을 따돌려야겠다는 생각에 겨우 발이 움직인 것이다.

그 모습에 더욱더 당황한 린쨩은 카요찡에게 물었다.


 "어, 어떡하지, 카요찡...!"

 "으으으, 일단 쫓아가서 우리를 봤다는 입막음이라도 해야될 것 같은데..."

 "좋아~! 그럼 얼른 쫓아가자냐!"

 "아앗... 린쨩, 같이 가자니까...!"

.
.
.

정신없이 도망치던 에리는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분명 돌아오기 쉽게 나무 중간중간마다 표시를 했지만 지금 달리고 있는 쪽은 그 어떤 표시도 없었다.

하지만 일단은 무서웠기에 에리는 그것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누구 없나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본능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런 급박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구해줄 사람 따위 없다는 사실에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이 떨어지고 말았다.


 턱─

 철푸덕─!

 "아얏...!"


그러다가 그만 땅 위에 튀어나온 나무 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나름 있는 힘껏 달리던 와중에 넘어진 것이라 무릎이 까지고 말았다.


 "아파..."


에리가 무릎을 부여잡고 아픈 신음을 내던 사이, 자신을 쫓아오던 산적 둘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어차피 어린 애가 달려온 거리를 성숙한 여자가 못 따라잡을리 없었다.

특히 '산적'이기 때문에 보다 산 생활도 많이 했을 터이니 쉽게 달려왔을 것이다.

뭐, 한 명은 가뿐한 몸놀림에 평상시와 같은 모습이지만 다른 한 명은 이 세상 모든 공기를 빨아들일 것 같이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보면 전부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잡았다, 요 꼬맹이 녀석! 감히 우리한테서 도망치다니!"


린쨩이 짐짓 화난 목소리로 외치자 에리는 움찔했다.

겨우 숨을 고른 카요찡은 린쨩의 어깨를 붙잡고 속삭였다.


 "린쨩, 일단은 최대한 강하게 말해서 우리를 봤다는 말을 못 하게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좋은 생각이다냐. 지금까지 우리가 습격했던 사람들 전부 입막음만큼은 확실히 시켰으니까."

 "특히 애들은 거짓말을 안 하니깐 평소보다 더 마음 독하게 먹고 해야 돼..."

 "그래야겠지..."


둘이서 뭔가 쑥덕거린 후 각자 자신의 주머니에서, 검집에서 흉기들을 꺼냈다.

린쨩이 주머니에 넣고 있던 '단도'와 카요찡의 등에 메져 있던 검집에서 나온 거대한 '장검'이 에리의 눈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에리의 몸은 극심하게 떨려왔다.


 "이 꼬맹아! 여기에서 산적을 봤다는 말을 하지 말아라냐!"

 "부드럽게 얘기할 때, 입 막고 있는 것이 좋을거야."


산적 둘이 동시에 협박하자, 손으로 땅을 짚은 채로 조금씩 뒷걸음질치던 에리는 다시 일어나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금세 뒷덜미를 린쨩에게 잡혀 다시 땅바닥으로 내팽겨쳐지고 말았다.


 철푸덕─

 "아윽...!"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네..."


나즈막히 중얼거린 린쨩은 넘어져있는 에리를 향해 무릎을 굽히더니 이윽고 한 손으로 그녀의 목을 살짝 잡았다.

에리는 자신의 목이 감싸쥐어지자 흠칫했지만 더이상 도망칠 상황도, 힘도 안 되었다.


 "그렇다면 뜨거운 맛을 보여줄 수 밖에!"


그 말을 외친 린쨩은 나머지 손에 들려있던 단도를 높게 쳐들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이 두려운 나머지, 결국 에리는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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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재밌어 보이는구마."


때마침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에리의 귀에 스며들기 전까지.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