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 내용은 μ's 멤버의 캐릭터를 따와 만든 오리지널 스토리 입니다.
2. 폭력적인 묘사나 안타까운 장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3. bgm과 같이 들으면 더욱 재밌습니다. 모바일 같은 경우, bgm 링크를 타고 재생시키면 보다 원활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4. 작품에 관한 모든 댓글과 추천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편-
-3편-
-4편-



-2편-

 마녀가 평범한 인간의 앞에 나타났다는 것은 세 가지의 의미 중 하나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 당신을 싫어해서 잔인하게 죽이고 싶거나 둘, 당신을 좋아해서 무언가를 해주고 싶거나 셋, 심심하거나.
                                   -유명저서 '마녀' 中 p.13 첫째 줄-



또다른 인물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난장판 속에 있던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움직임들이 동시에 멈췄다.

순식간에 찾아온 고요함.

눈을 질끈 감았던 에리도 그 조용함과 호기심을 이기지 못 하고, 다시 살짝 눈을 떴다.

그리고 이 상황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검은 망토를 온몸에 두른 것도 모자라 검은 고깔모자까지 푹 눌러 써 코 밑에서 턱까지 밖에 몸이 안 보이는, 보라색 양갈래 머리의 여자가 어느 새 그들 근처에 와있었다.

아니, 왔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이 이미 그녀는 카요찡의 옆에 서있었고, 목소리가 들린 다음에야 그 존재를 알아차린 카요찡은 화들짝 놀라 재빨리 거리를 넓혔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깔모자 여자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카드가 여기에 오면 불길하다고 해서 와봤더니만 이런 시시껄렁한 일 뿐인기가?"


이 지방에서 들을 수 없는 특이한 어투.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서 있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자연스러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소란스러웠던 자리를 고요하게 만들어버린, 알 수 없는 신비한 느낌.

그리고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옷차림은 마치...


 "다, 당신은 누구죠!"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며 검을 쥐는 자세를 고친 카요찡은 수상쩍은 인물에게 날카로운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고깔모자 여자의 한 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겁에 질리기는 커녕, 마치 이 상황을 즐긴다는 듯이.


 "보면 모르나?"


이윽고 망토 안에 가려져있던 자신의 한 손을 꺼내 고깔모자를 살짝 들어올렸다.

초록색 눈동자가 그들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내는 '마녀' 데이."

.
.
.

'마녀'.

악마와 계약했다고 전해지는 부정한 존재.

온갖 요술과 저주를 구사할 수 있는 괴능력자.

이 시대의 불행과 불길의 대명사.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안 좋은 칭호란 칭호는 전부 다 갖고 있는 인물이 지금 에리의 눈 앞에 있는 것이다.

처음 보는 마녀의 모습에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에리와는 달리, 어느 새 자리에서 일어난 린쨩은 코웃음을 쳤다.


 "헹~! 이제껏 들었던 농담 중에 제일 추웠다냐."


단도를 한 손으로 휙휙 돌리던 린쨩은 이윽고 다른 손으로 옮겨잡고는, 앞 쪽으로 나와서 자칭 '마녀'를 향해 겨눴다.


 "안 그래도 수확물이 없어서 난감했는데 마침 잘 됐네. 험한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 가진 것을 다 내놔라냐!"

 "그래, 맞아! 내놔!"


'마녀' 라는 말에 약간 당황했던 카요찡도 린쨩의 외침에 힘입어서 덩달아 외쳤다.

엉거주춤한 자세를 잡고 약간의 거리를 두며 무기로 위협하는, '산적' 이라 자칭하는 두 사람.

날이 너무나도 깨끗한 단도와 장검이 마녀가 보기에는 단 '한 번이라도' 사람을 벤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두 여자아이의 모습에 마녀는 쿡, 하고 웃었다.


 "니들은 너무 착해서 탈이구마."


마녀는 아까 망토 안에서 꺼냈던 손을 천천히 들어올리고는,


 딱─!


경쾌하게 엄지와 중지 손가락을 튕기며 딱소리를 냈다.

그러자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사르르륵─

 "뭐, 뭐냥...!"

 "에, 에?"

 휘우우우우우우웅─!

 "우냐아아아아?!"

 "꺄아아아악!!!"


생명의 기운을 잃고 땅의 양분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산적들 발아래의 썩은 나뭇잎들이 춤추듯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비처럼 날아다니던 나뭇잎들은 모이고 모여 린쨩과 카요찡의 몸 주변을 일정한 방향으로 빙빙 돌더니, 이윽고 맹렬한 속도로 검은색의 작은 폭풍이 되어 그 둘의 모습을 감쌌다.

시간의 변수와 기상 현상의 집합체인 폭풍을, 즉석에서 작은 형태로나마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보고 있던 에리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데에 시간이 걸렸는지 입을 떡 벌리고,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었다.

예상치도 못 한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두 산적은 마녀가 만든 폭풍 안에 갇힌 채, 속수무책으로 소리만 질러댈 뿐이다.


 "어린 애와 마녀는 그만 괴롭히고, 다른 사람이나 찾으러 가보는게 어떻겠나?"

 딱─!


다시 한번 딱소리가 들리자, 산적들을 집어삼킨 검은색 폭풍은 그 둘을 데리고 천천히 하늘 높이 오르더니 이윽고 어디론가로 날아가버렸다.

강하게 휘몰아치는 바람소리와 그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을 담은 채로...

.
.
.

그것은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일.

마치 구전 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기적.

에리는 그 비현실적인 일을 두 눈 앞에서 톡톡히 봤다.

자신을 괴롭힌 산적들을 마녀는 손쉽게 퇴치한 것이다.

자리에서 이제 막 일어난 에리는 자신이 꿈 꾸고 있다고 생각해 볼을 있는 힘껏 세게 꼬집었지만, 아픔은 뚜렷할 정도로 현실감있게 느껴졌다.


 "꿈이 아니구나..."


꼬집었던 볼을 비비고 있자 마녀는 에리에게 눈길을 돌렸다.

아까 보였던 장난기 많은 모습은 어디 갔는지 차가운 눈으로 에리를 내려다 볼 뿐,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쳐다보던 마녀는 망토를 흔들며 몸을 휙 돌리고는, 이동하려고 했다.


 "저, 저기...!"


왠지 가만히 있으면 그냥 떠나버릴 것 같은 느낌에 에리는 서둘러 말을 꺼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녀님!"


비록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지만 에리는 진심을 담아 허리를 숙이며 감사함을 표시했다.

그러자 나뭇잎을 밟고 가던 소리가 뚝 끊겼다.

고개를 살짝 들자, 마녀가 가던 길을 멈추고 우뚝 서있었다.

너무도 가만히 있어서 그런지, 에리는 자신이 무슨 말실수라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살짝 당황했다.


 "니는..."


마녀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니는 내가 마녀인데도 고맙다고 하는기가?"


마녀에게 있어서 민감한 질문.

하지만 에리에게 있어 이상한 질문.


 "네, 마녀라고 하셔도 저를 구해주신 분인걸요."


미소를 지은 에리의 대답에 망부석처럼 가만히 서있던 마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마치 지금까지의 마녀에 대한 인식을 뒤엎을 정도로, 에리에게 있어 언니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고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한번도 보지 못 한 초록색 눈동자는 너무나도 예뻐서 계속 바라보면 빠져들 것만 같았다.

비록 무표정이었긴지만 무슨 표정을 짓던 간에 다 덮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에리한테 마녀는 그만큼 아름다웠던 것이다.

마녀는 잠시 에리를 쳐다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방금 전에 내가 보여준 요술 못 봤나?"

 "당연히 봤죠, 대단했어요!"

 "마녀에 대한 소문을 모르는 것 같구마."

 "아뇨, 워낙 유명해서 웬만한 것들은 다 들었는데..."

 "안 무섭나...?"

 "오히려 아름다우세요!"

 "...혹시 마녀 신봉자, 이런 거가?"

 "네? 그건 또 뭐에요?"

 "..."


어떠한 말을 해도 에리의 막힘없는 대답에 마녀는 뭔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다시 몸을 훽 돌리고는 중얼거렸다.


 "희안한 아이구마..."

 꼬르르륵─


하필 그 타이밍에 잠잠히 있던 에리의 배꼽시계가 무참히 울렸다.

너무나도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던지라 본래 목적을 일깨워주려는 듯, 한 번 울린 배꼽시계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쉬잇! 조용히 좀 해줘...!"


배를 부여잡은 에리는 나무라듯이 배를 향해 소근거렸지만, 당연히 말을 듣지는 않았다.

아무리 어린 소녀라고 해도 여자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 앞에서의 꼬르륵 소리는 부끄러운 법.

얼굴이 빨개진 에리는 어쩔 줄 몰라하며 창피해 했다.


 "배고픈 것 갑네."


에리가 고개를 들자, 마녀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어느 새 소리없이 앞에 서있었다.

그러나 에리는 자신의 창피함을 숨기느라 그런 이상한 상황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사실 밥을 못 먹어서... 에헤헤."

 "밥도 안 먹고 여기는 뭐하러 온 기가?"

 "그게... 먹을 것 좀 구하려고..."

 "이유가 뭐든지 간에 부모가 걱정한데이. 얼른 들어가서 부모한테 밥 달라고 하그라."

 "...부모님은 이제 없어요......"


예상 외의 답변과 함께 에리가 슬픈 표정이 되자 마녀는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이고 말았다.

에리 또한 기껏 마음을 굳게 먹고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했지만, 막상 부모 얘기가 나오자 이때까지 참았던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헛기침을 몇 번 한 마녀는 재빨리 말했다.


 "미안하데이. 아무리 내가 마녀라 해도 그것까지 맞추긴 어렵구마..."

 "아, 아니에요! 제가 오히려 죄송해요. 감사의 뜻으로 뭔가를 드리고 싶은데 지금 가진게 아무것도 없어서..."

 "..."

 "죄송합니다..."

 "...한 끼 정도는 대접할 수 있다. 따라오그라."

 "네?"


에리가 마녀의 식사 초대에 깜짝 놀라 이런저런 답을 말하기 전에, 마녀는 엄지와 검지를 붙인 손가락을 입에다 대고서 있는 힘껏 불었다.


 피이이익─!


그러자 길쭉한 무언가가 하늘에서 순식간에 내려왔다.

그것은 '빗자루' 였다.

단지 특이한 점이라고 하면 흔한 빗자루는 막대 끝에 마른 풀들이 달려있는데, 이 빗자루는 그것 대신에 회색 깃털이 있다는 것일까.

눈 앞에 또다른 신기한 장면이 보이자 에리는 이 사람이 '마녀' 라는 것에 대해 더욱 실감났다.


 "타래이."


이미 허공에 떠있는 빗자루 위를 의자에 앉듯이 가지런하게 옆으로 앉은 마녀가 고개를 까딱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에리는 빗자루를 타본 적도 없을 뿐더러, 빗자루가 저렇게나 가느다란데 어떻게 앉아야할지 몰랐다.

에리가 우왕좌왕 하자 마녀는 다시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처럼 앉거나 편한대로 앉으면 빗자루가 알아서 잡아줄끼다. 걱정말고 타래이."


그 말에 에리는 약간 안심을 한 듯, 쭈뼛거리며 바로 그녀의 옆에 앉았다.

자세는 마녀와 같은 자세로.

그리고 약간 불안한지 두 손으로 마녀의 망토를 살짝 붙잡았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던 마녀는 고개를 살짝 절레절레 흔들고는,


 "가라."


짧게 말을 내뱉었다.

이윽고 빗자루가 두 사람을 짊어지고 약간 더 높이 뜨더니, 어느 방향을 향해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며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슈우우웅─!

 "우아아아앗...!!!"


생각보다 엄청난 속도에 에리는 자신도 모르게 마녀의 망토를 세게 잡고 말았다.

아름다운 금발 머리카락은 빠른 속도에 나부끼며 어지럽게 흐트러질 정도였지만, 신기하게도 몸은 빗자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말을 탄다면 이런 느낌일까, 라는 상상을 짧게 해봤지만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아무리 봐도 말은 이만큼 빨리 움직일 수 없기에.

빗자루는 한 방향으로 날아가지 않고,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날아갔다.

가끔 정방향으로 가다가 갑자기 역방향으로 움직일 때도 있었다.

너무도 불규칙한 움직임에 에리는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으면서 재밌어 했으나, 마녀의 생각은 달랐다.

혹시나 이 아이가 길을 기억해서 후에 자신의 집으로 다른 인간들을 데리고 쳐들어 올 것을 대비하여, 일부러 간단한 길을 복잡하게 가는 것이다.

하지만 애당초 인간을 태우고 자신의 집으로 간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 있어 위험한 일일 터.

이는 빗자루 스스로도 의아해하는 일이었다.

.
.
.

 "다 왔구마."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마녀가 말하자 그녀의 망토 뒤에서 빗자루의 질주를 재밌게 즐기고 있던 에리는 고개를 빼꼼 빼내어 마녀가 보고 있는 쪽을 바라봤다.

눈 앞에는 다른 나무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나무 밑둥이 보였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다른 나무들에 비해 색깔이 진한 나무는 마치 집을 넣을 수 있을 정도의 두께를 가지고 있었다.

그 나무 밑둥에 도착한 빗자루는 갑자기 수직으로 서더니 이내 그 나무의 몸통을 따라 위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졸지에 눕혀진 자세가 된 에리는 비명을 지르며 마녀의 망토를 더욱 세게 잡았다.

물론 그 손을 놔도 빗자루에서 떨어지지는 않았겠지만.


 슈우우우─

 우뚝─


거침없이 날아가던 빗자루는 어느 지점에서 멈춰 다시 평형을 잡고는, 나뭇구멍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마녀에게 있어서 이 거대한 나무의 구멍 속이 집이었던 것이다.

빗자루가 나무 안에 완전히 들어가기 전까지, 에리는 입을 다물지 못 했다.

우선 자신이 있는 높이가 엄청나게 높아 마녀의 숲을 전반적으로 볼 수 있어서 놀랐고, 그 다음에 놀란 점은 나뭇구멍 속의 집이 웬만한 귀족들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고급지고, 넓었기 때문이다.


 "이제 내리래이."


빗자루가 양탄자 위에 멈추자 마녀가 먼저 내린 뒤에 한 말이었다.

하지만 에리한테는 그 양탄자가 너무 고급스러워 보여서, 자신의 신발 때문에 괜히 더러워질까봐 망설이고 있었다.

그렇게 에리가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빗자루에게는 지루했던 것일까.


 휘리릭─

 "앗!"


가만히 있던 빗자루가 갑자기 스스로 한 바퀴 돌자 에리는 양탄자 위로 떨어졌다.

그렇게 에리를 떨군 빗자루는 쌩, 하고 날아가 책장 옆에 기대며 휴식을 취했다.

그 모습을 본 마녀는 혀를 찼다.


 "그러니까 내리라고 말 할 때, 내렸어야 하지 않겠나."

 "에헤헤..."


멋쩍은 듯한 웃음을 짓는 에리를 뒤로 한 체, 마녀는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망토와 고깔모자를 벗기 시작했다.

망토를 벗은 마녀의 옷차림은 이 시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차림으로 상의는 팔 부분이 아예 없는 보라색 민소매였고, 상의와 이어진 주름진 보라색 치마 또한 매우 짧았다.

치마 안에 하얀 속치마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짧았고, 검은색 양말은 그 목이 허벅지까지 올라온, 여러모로 기괴한 의복이었다.


 스르륵─

 사사사삭─


마녀가 벗었던 고깔모자와 망토는 땅에 떨어지지 않고, 원래 자리로 찾아가기 위해 직물로 짜여진 자신의 몸들을 제각기 꿈틀거리며 날아갔다.


 딱─!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또 한 번 들리자, 마녀가 자연스럽게 앉으려던 곳에 맞춰 어딘가로부터 날아온 카드들이 제각기 의자, 탁자로 변했다.


 "오른쪽 찬장 위에서부터 두 번째 칸, 소고기 안심 한 덩이 웰던 익힘, 훈제 베이컨 4줄 직화, 달걀 2개 반숙, 양상추 반통 체썰기, 발사믹 드레싱 소스 두 스푼 가미, 브로콜리 2개와 방울토마토 4개까지. 아, 참고로 내가 먹을게 아니라 이 애가 먹을끼다. 내는 왼쪽 찬장 맨 아래 칸에 있는 홍차 한 잔만 가져다 주그라."


한 쪽 다리를 꼬며 앉은 마녀가 허공을 향해 명령하자, 그 말에 따라 음식재료들이 찬장에서 튀어나와 부엌으로 보이는 공간으로 날아갔다.


 치이이익─

 지글지글─

 서걱서걱─


그리고 거기에서 요리도구들이 스스로 움직이며 날아온 음식재료들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 신기한 광경들에 눈을 떼지 못 하던 에리는 아까부터 입을 다물지 못 하고 있었다.


 "니는 입에 파리라도 들어가야 입을 닫을거가? 뭘 그리 멍하니 서있는 기고."


탁자에 한 쪽 팔을 올려 턱을 괴고 있는 마녀의 표정은 심드렁해 보였다.

마녀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별 것 아닌 일이었기에.


 "굉장해요, 마녀님! 정말 요술을 잘 하시는 군요!"


하지만 감탄을 외친 에리의 입장에서는 마치 동화와 같은 몽환적인 상황이었다.

한번쯤은 이러한 상상을 해보았기에, 현실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 줄은 몰랐기에 더욱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눈빛은 이미 초롱초롱하다 못 해, 반짝반짝 빛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소녀의 모습에, 마녀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찰그락─


잠시 후, 탁자에 1인분의 식사와 한 잔의 홍차가 놓여졌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스테이크와 부드러워 보이는 베이컨과 반숙 달걀, 싱싱한 샐러드가 담긴 접시 옆에 작은 포크와 나이프가 가지런히 놓여졌다.


 꼬르르르륵─


그 맛있어 보이는 모습과 코를 자극하는 냄새는 에리의 배를 다시 한번 요동치게 만들었다.


 "와서 묵으라."


마녀가 고개를 까딱거리며 말하자 에리는 쭈뼛거리며 마녀의 맞은편에 놓여져 있는 식사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의자에 앉은 에리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는, 마녀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마녀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까딱거려 먹으라는 제스쳐를 취했고, 이에 표정이 환해진 에리는 큰 소리로,


 "잘 먹겠습니다~!"


라고 식전인사를 하며 스테이크를 절반으로 자르고는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에리에게 있어 오랜만에 맛보는 고기라 그런지 제대로 씹지도 않고 넘기는 것 같았지만, 마녀는 어떠한 제지도 하지 않은 채로 몸을 돌려 우아하게 홍차를 마시기만 했다.

이제 둘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무언가를 씹는 소리와 무언가를 마시는 소리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
.

 "잘 먹었습니다!"


마녀가 마지막 한 입의 홍차를 마시고 입술을 떼는 순간, 식후인사가 들려왔다.

여전히 몸을 돌리고 있는 상태에서 홍차를 다 마신 마녀는 눈동자만 굴려 에리를 힐끔 쳐다보자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에리의 입가 주변에 우아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소스와 고기 조각이 어지럽게 붙어있었던 것이다.

분명 허겁지겁 먹느라 식사예절 따위는 잠시 내려놓은 듯 보였다.

그 끔찍한 모습에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은 마녀는 잠시 고개를 흔들더니, 나머지 손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천 조각이 날아와 에리의 입 주변을 사정없이 문대기 시작했다.


 "움, 우우웁~!"


에리가 천 조각에 얼굴이 이리저리 밀려 이상한 소리를 내는 동안, 마녀는 에리가 먹었던 접시를 보았다.

스테이크와 베이컨, 달걀, 샐러드가 정확히 절반씩 남은 상태.

배불러서 남긴 것 치고는 모든 것이 너무나도 균등한 양에 마녀는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에 에리의 얼굴을 닦던 천 조각이 물러나자 어느 새 그녀의 얼굴은 깨끗해져 있었다.


 "야옹~"


천 조각이 비볐던 부분을 다시 손으로 문지르고 있던 에리는 어디선가 들리는 고양이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에리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서, 적안을 가진 까만색 고양이가 가만히 앉아 에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녀는 검은 고양이를 기른다' 는 소문을 떠오른 에리는 그 말이 사실란 것을 절실히 실감했다.


 "우와, 예쁜 고양이다..."

 
반면에 불길하다고 소문난 검은 고양이지만 윤기나는 털과 기품 있는 자세, 또렷한 이목구비가 너무나 예뻐서 그 소문은 별로 와닿지 않은 에리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에리는 살금살금 움직여 고양이를 만지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샤아아아!"

 "꺄악!"


하지만 그녀의 손길이 반갑지는 않은 지, 야속한 고양이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꼬리를 세웠다.

덕분에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은 에리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문질렀다.


 "다 먹었으면 치우겠데이."


여전히 무관심한 표정을 지으며 나른하게 말한 마녀는 정리를 하기 위해, 손을 높이 들어 손가락을 튕길 준비를 했다.


 "아앗, 잠시만요!"


하지만 에리의 외침에 서로 맞닿은 마녀의 손가락은 소리를 내지 못 했다.

자신의 움직임을 방해한 에리가 마음에 들지 않은 마녀는 인상을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또 와 그러는데?"

 "저, 저기 죄송하지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에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남은 음식 좀 싸갖고 가도 될까요? 집에 혼자 계신 할머니한테도 맛보여드리고 싶어서..."


이 말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창피하게 느낀 나머지, 에리는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분명 어린 애여도 음식을 싸갖고 간다는 것은 그 시대 식사예절에서 금지된 행동 중 하나라는 것을 알 터.

그런 파렴치한 요구를, 이 아이는 자신의 집에 홀로 계신 할머니를 위해 면박을 받을 각오를 하고 어렵사리 얘기를 꺼낸 것이다.

잠시 그녀를 지켜보던 마녀는 한숨을 내쉬고는,


 딱─!


맞닿은 손가락을 마저 튕겼다.

그러자 고급진 천 조각 하나와 얇은 노끈 하나, 그릇과 뚜껑 비슷한 덮개가 튀어나오더니 에리가 남겼던 음식을 종류별로 질서정연하게, 깔끔하게 담아 포장하고, 매듭을 지었다.

순식간에 음식을 담은 포장물은 에리의 품 속으로 날아들어갔다.


 "아깝다고 아껴먹다간 배탈 날테니 가져가면 바로 묵으라."

 "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포장물을 꼬옥 안은 에리는 허리를 최대한 굽혀 마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몇 번이나 전했다.

근처에 계속 있던 고양이는 고개를 갸우뚱 한 상태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마녀는 에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갈 준비 하래이."


그 말은 에리에게 있어 아쉬웠다.

소문 속의 마녀를 실제로 만난 특별한 상황인 것은 둘째 치더라도, 오랜만에 받아보는 상냥함이 너무도 따뜻해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에리는 포장물을 품 속으로 더 세게 안으며 말했다.


 "호, 혹시... 다음에 또 와도 될까요...?"

 "하아~?"


예상대로, 마녀는 인상을 찡그리며 노골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에리는 포기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아까 구해주신 보답을 못 해드렸잖아요? 그 보답을 해드리기 위해서라도 다시 와야 될 것 같아요!"

 "이 맹랑한 꼬마가 무슨 말을 하는 기고? 앞으로 니가 올 일은 없을끼다."

 "저, 빵은 나름대로 잘 구울 수 있어요! 저를 구해주신 것 뿐만 아니라 식사까지 챙겨주셨으니 저도 똑같이 할..."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다시는 서로 보지 못 할 거래이. 얘기는 여기서 끝이고마."


어떤 말을 해도 단호하게 거절한 마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빗자루가 있는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너무도 쌀쌀맞은 마녀의 모습에 에리는 무척 풀이 죽고 말았다.

비록 짧은 만남이지만 그만큼 정이 들었던 것일까.

그렇다고 해서 주인이 나가라는데 남의 집에서 계속 머물 수는 없는 일.

터덜터덜 걸어간 에리는 마녀가 먼저 타고 있던 빗자루 위에 다시 엉덩이를 살짝 얹었다.


 "야옹~"


이를 배웅해주려는 듯, 검은 고양이는 그 둘이 있는 곳까지 따라나왔다.


 "잘 있어, 예쁜 야옹아..."


천천히 고양이에게 손을 흔들며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에리의 모습과는 달리, 고양이는 관심없다는 듯이 앞발의 털만 고르고 있었을 뿐이다.


 "가라."


아까와 같이 두 명을 태운 빗자루는 다시 약간 높이 떠오르더니 나뭇구멍 밖으로 나와 수평을 유지한 채,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
.
.

 "내리라."


숲의 바닥까지 에리를 데리고 온 마녀는 에리만 내리게 하고, 자신은 빗자루 위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제는 정말 헤어질 시간이란 것을 직감적으로 안 에리는 마지막까지 미소를 지으며 마녀에게 말을 건넸다.


 "그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빗자루야, 지금까지 나를 태워줘서 고마웠어."


에리가 자신을 태워줬던 빗자루까지 쓰다듬으며 감사를 표시하자, 빗자루의 몸통이 살짝 떨렸다.


 "이제부터 알아서 집에 가래이."


자신이 해야될 임무를 끝까지 완수했다는 듯, 마녀는 이 말만 짧게 남기고는 다시 순식간에 위로 올라갔다.

아마 자신의 집으로 간 것이겠지.

너무도 짧았지만, 너무도 꿈 같던 시간.

그 시간이 못내 아쉬워 마녀가 날아간 곳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던 에리는 온기가 남아있는 포장물을 꼬옥 안으며, 결국 거대한 나무를 등지고 터덜터덜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마녀가 알아서 집으로 가라고 했지만 에리는 자신이 있는 위치가 어딘지도 모른다.

당연한 것이 위에서 내려다 본 마녀의 숲은 매우 넓어보였고, 자신이 살던 마을까지 얼핏 보였었지만 그 방향과 거리감은 가물거렸다.

다시 말하자면, 처음부터 길을 잃은 상태로 집을 찾아가야 하는 난제에 휘말린 것이다.


 "어떻게 길을 찾는담..."


무작정 걸어갔지만 어두컴컴한 숲을 다시 혼자서 지나가게 되자 무서움도 같이 스물스물 기어올라왔다.

일단은 에리 자신이 나물을 찾으러 들어오면서, 돌아갈 길을 따로 표시한 나무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것만 찾으면 이후에 돌아가는 일은 쉬울 것이다.

그렇게 마녀의 집이 있던 나뭇구멍 높이에서 본 풍경을 되새기며 길을 헤매고 있을 때,


 푸드덕, 푸드덕─


뭔가가 날아오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평소에 들어왔던 새 날개짓 소리 치고는 뭔가 무겁고, 둔탁했다.

소리는 위 쪽에서 들려온 것이 틀림없었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 한 에리가 고개를 든 순간,


 "끼에엑!"


송곳니가 뾰족하게 튀어나온 박쥐 한 마리가 에리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꺄아아악!"


깜짝 놀란 에리가 허둥지둥 도망쳤지만 그녀를 목표로 삼은 것인지, 박쥐는 끈질기게 에리의 머리 위에서 괴롭혔다.


 "후에엥~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끼기기기긱!!!"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박쥐 때문에 손을 허우적 거리며 내쫓아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던 도중, 에리를 괴롭히던 날개짓 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윽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른 곳으로 간 것일까.

다시 찾아온 평화에 힘입어 주위를 둘러본 에리는 고개를 들어 위 쪽을 여러 곳 살펴봤지만, 박쥐는 안 보였다.


 "이제 괜찮겠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었던 고개를 다시 내리는 순간,


 "끼게게게겍!!!!"

 "꺄아아아아아악!!!!"


정면으로 날아오는 박쥐의 몸통에 부딪혀 쓰러지고 말았다.

그 상황에서도 마녀가 챙겨준 포장물은 놓지 않으면서.

바닥에 등을 대고 넘어진 상태에서 박쥐에게 부딪힌 곳을 만지려하는 것도 잠시,


 "오랜만의 인간인걸?"


자신의 몸 위에 있는 한 여자아이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언제 나타난 것일까?

그 여자아이는 에리가 깨달을 틈도 없이, 무릎과 허리를 굽힌 자세로 바닥을 짚은 팔 안 쪽에 에리를 가둔 상태에서 그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작은 검은색 날개 장식이 튀어나와있는 붉은색 머리카락에 반짝이는 보라색 눈.

에리에게 있어서 그 여자아이의 모습은 왠지 보통 인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은 특별식을 먹을 수 있겠군, 후후..."


미소를 지은 여자아이의 입가에 뾰족한 송곳니가 보였다.

마치 아까 봤던 박쥐와 같이...


 "그럼 잘 먹겠습니다~"


장식물인 줄 알았던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에 달린 날개가 퍼덕였고, 그녀의 입술에 살짝 나온 날카로운 송곳니가 입을 벌리자 더 뾰족하고, 몇 개 더 나있는 것을 본 에리는,


 "꺄아악...!"


그 충격적인 모습에 그만 비명을 지르며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
.
.

 "마키쨩~! 그만 두래이!"


만약 에리가 깨어있었으면 반가워 했을 목소리도 듣지 못 한 채로 말이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