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 내용은 μ's 멤버의 캐릭터를 따와 만든 오리지널 스토리 입니다.
2. 폭력적인 묘사나 안타까운 장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3. bgm과 같이 들으면 더욱 재밌습니다. 모바일 같은 경우, bgm 링크를 타고 재생시키면 보다 원활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4. 작품에 관한 모든 댓글과 추천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편-
-2편-
-4편-



-3편-

 마녀는 여러가지 생물들을 하수인으로 데리고 있다. 더불어 마녀답지 않게, 그 '애완동물들' 만큼은 매우 아낀다고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마녀가 좋아하는 생물들을, 보통 인간들은 싫어한다.
                                -유명저서 '마녀' 中 p.23 열네번째 줄-



이제 막 송곳니를 에리의 목에 대려던 '마키쨩' 이라고 불린 붉은 머리의 여자아이를, 어디선가 나타난 마녀가 황급히 말렸다.

기절해있는 에리의 입장에서는 마녀가 조금이라도 늦게 왔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를 타이밍이다.

그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든 마키쨩은 불청객을 향해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내 식사를 방해할 권리가 없는 줄 알았는데."


서리가 내릴 듯한 차가운 말투와 강철이라도 베어버릴 것 같은 날카로운 눈빛.

보통 사람이었다면 끽소리도 못 했을 분위기다.

하지만 마녀에게는 그것이 먹히지 않았는지,


 "그래도 그 아이는 건들면 안 된데이."


부드럽고, 차분한 어조로 답하는 것이다.

그 대담한 모습에 할 말을 잃은 마키쨩은 한숨을 짧게 내쉬고, 에리의 위에서 물러나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자신의 옷을 툭툭 털고는, 허리에 한 손을 얹으며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평소 같았으면 신경도 안 썼을 거면서."


그 말이 사실인지라 마녀는 잠시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마키쨩의 식사 대상에 대해서 마녀는 지금까지 간섭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 대상이 토끼, 개, 멧돼지, 늑대, 곰, 심지어 인간일지라도.

그런 그녀가 뜬금없이 튀어나와 자신의 식사를 막다니, 마키쨩으로써는 기가 막힐 입장이다.

사실 마녀는 자신도 모르게 빗자루를 타고 몰래 에리를 쫓아가고 있던 중에 불상사가 일어나자 재빨리 내려왔다.

이는 오랜 세월의 경험에 비추자면, 전혀 납득되지 않는 이상행위.

자기 자신이 납득되지 않는데 어떻게 설명하고, 변명하란 말인가?

그래서 마녀는 대충 얼버무리기로 했다.


 "이 아이는 중요한 연구 대상이래이. 지금도 관찰중이니까 마키쨩이라고 해도 해를 끼치면 안 된다, 이 말이다."

 "흐응~? 연구? 인간을 대상으로? 너가?"


그녀답지 않은 어색한 이유에 마키쨩의 말꼬리가 올라갔다.

그 반응에도 마녀는 눈을 피하지 않으며 단호한 어조로 답했다.


 "그렇데이."


마치 자기 자신에게 당당하다는 듯한, 너무나도 뻔뻔한 모습.

하지만 마녀가 그렇다는데 그 누가 딴지를 걸 수 있을까.

마키쨩은 더이상의 질문을 그만 두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 애, 지금 기절했는데 냅두고 가도 상관없는 건가?"


머리카락을 빙빙 돌리며 무심하게 말하는 마키쨩의 말에 마녀가 아래쪽을 내려다보자, 한 손에 자신이 포장해준 포장물을 꼭 쥔 채로 기절하고 있는 에리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새근거리며 작게 숨을 내뱉는 모습은 마치 잠든 것처럼 보였다.

문득 들었던 생각이, 마녀의 온몸을 빠르게 휘감고 지나갔다.

이때문에 그녀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고, 인상을 찡그렸다.

오늘의 자신은 뭔가 이상하다.

처음부터 이 아이를 챙겨줄 의무 따위는 없다.

산적으로부터 구해준 것은 간혹 가다가 생기는 단순한 심심풀이였을 뿐이니 굳이 이 소녀와 대화하고, 소녀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여러가지 요술을 소녀의 눈 앞에서 보여주지 않았어도 됐다.

하지만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했고, 왜 그렇게 대해줬으며, 왜 그렇게 신경쓰고 있는 것인가.

더 깊게 신경쓰면 평소의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았던 마녀는 이내 생각을 접어버림으로써, 그에 대한 고찰을 그만 두기로 했다.


 "일단 집에 데리고 가자. 뒷일은 그 이후에 생각해 봐야겠제."

 "...뭐어? 인간을 데리고 간다고?!"


경악하는 마키쨩의 반응에 상관없이, 마녀는 에리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 안에 안았다.

몸무게는 생각보다 가벼워서 힘들지 않았다.

에리의 손에 들린 포장물이 그녀의 품 밖으로 삐져나오자, 마녀는 그 포장물마저 에리의 품 속에 가지런히 놓아주었다.

기절한 것 치고는 너무나도 평온한 모습의 에리를 자신의 품에 안은 마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빗자루를 띄우고는 자신의 집을 향해 날아갔다.
 
잠시 벙찐 표정을 짓고 있던 마키쨩 또한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푸드드덕─


날개짓을 하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
.
.

 "으음..."


푹신푹신하고, 좋은 향기가 에리의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느끼지 못 하는 달콤함.

그것이 '봄' 이라는 계절에 맞게 너무나도 포근한 나머지, 침대 속에 있는 에리는 조금만 더 자기로 했다.


 "...아앗!"


하지만 아까 겪었던 일과 자신의 집이 아니란 사실을 생각하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분명 자신의 얼굴로 박쥐가 날아들어서 넘어졌는데, 갑자기 나타난 여자아이가 자신의 위에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말을 하다가 입을 벌렸는데, 보통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송곳니 몇개가 있어서 그만 기절을 하고 말았다.

겨우 여기까지 생각해낸 에리는 자신의 기억력에 감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남았다.

지금 자신이 누워있던 침대는 누구의 것이며, 이 곳은 또 어디란 말인가?


 "일어났나보네."


퉁명스러운 말투의 여자아이의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에리는 고개를 돌렸다.

침대 옆에 검은색 트윈테일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여자아이가 다리를 꼬며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 여자아이의 옷차림도 마녀에 못지 않게 짧고,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분홍색 계통의 색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어리둥절해하는 에리의 눈에 다른 점들이 더 눈에 띄었다.

그 여자의 머리에는 분홍색 고양이 귀가 달려있었고, 손은 분홍색 고양이 발 모양이었을 뿐더러 잘 안 보이지만 분홍색 꼬리까지 달려있다는 점들이.


 "똑똑하지 못 한 표정을 짓기는... 진정하고, 주위를 둘러봐."


그녀의 말에 따라 에리가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니, 익숙한 분위기의 물건들이 많이 보였다.

고풍스러운 장식물과 이상한 옷들, 양피지 두루마리들이 잔뜩 들은 책장, 그리고 나무로 된 벽...

하나하나의 단서를 모아 어떠한 결론을 내렸다.


 "여긴 마녀님의 집...?"

 "빙고."


손, 아니 고양이 발로 잘했다는 제스쳐를 취하는 여자아이.

그녀의 얼굴이 앳되고, 몸집이 왜소한 탓일까.

그 모습이 괴상하거나 무서우기는 커녕, 오히려 잘 어울리는 탓에 에리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뿜고 말았다.


 "...너 말야, 남의 모습 가지고 웃는 것 같은데 그거 되게 실례인거 알아?"


쿡쿡거리며 입을 막고 웃는 에리를 향해 여자아이가 인상을 찡그리며 핀잔을 주었다.

그제서야 웃음을 진정시킨 에리가 그제서야 원초적인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저는 어째서 마녀님의 집에 다시 온 것인가요?"

 "그건 니코가 묻고 싶은 거라구."

 "니코...?"

 "아, 그건 내 이름이야."


'니코'란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는 팔짱을 끼며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아까부터 너를 챙겨주던 노... 아니, 함부로 이름을 알려주면 화내겠지. 다시 말할게. 아까부터 너를 챙겨주던 마녀는 이렇게까지 인간을 대우해 준 적이 꽤 오래 전부터 없었어. 그런 애가 갑자기 인간 소녀를 이렇게까지 대접하다니... 너, 뭔가라도 한거야?"


그러면서 니코는 자신의 몸을 앞으로 당기며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을 지었다.

동시에 그녀의 꼬리가 살랑거리면서 호기심에 대한 정도를 나타내주었다.

사실 에리는 니코가 말하는 내용들을 잘 이해하지 못 했다.

처음 본 자신을 구해주고, 식사까지 대접할 정도로 좋은 성격을 가진 그녀가 정작 인간에게 친절을 베푼 적이 거의 없다니?

에리로써는 그 말의 의미가 궁금했지만, 일단 니코의 질문에 답해주기로 했다.


 "아뇨, 딱히 마녀님께 해드린 것은 없는데..."

 "거짓말! 그렇지 않으면 노조...가 아니라 마녀가 인간을 자기 집까지 데려올 리가 없잖아!"

 "지, 진짜에요... 제가 가진 것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 해드렸어요..."


우물쭈물하는 에리의 말에 니코의 머리에 달린 귀가 쫑긋, 하고 움직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예? 그, 그러니까... 제가 산적들한테 괴롭힘 당하고 있을 때, 마녀님이 나타나서 구해줬어요."

 "뭐, 그 녀석 성격이면 심심풀이였겠지."

 "그래도 마녀님은 요술로 멋지게 산적들을 퇴치해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아무런 보답도 못 했..."

 "잠깐, 잠깐만. 방금 뭐라고 그랬어?"

 "예? 또 말씀드리지만 보답을 해드리지 못..."

 "아니아니, 그거 말고. 그 전에 말이야."

 "에에, 마녀님이 요술로 멋지게 산적을 퇴치했다는...?"

 "아니!!! 그 중간에 있는 말!"

 "우으으... 가, 감사하다고 말씀드린거...?"


니코의 윽박에 에리는 제대로 움츠러들었다.

이를 아랑곳하지 않은 니코는 턱을 고양이 발에 괴고 제대로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이 너무도 진지해 보여서, 에리는 조용히 있었다.

니코가 생각에 잠기는 동안 꼬리가 몇 번 이러저리 움직이더니, 이윽고 그 움직임은 멈췄다.

그리고 니코는 에리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물었다.


 "너, 마녀에게 감사를 표시한거야?"


그 모습이 에리한테는 약간 부담스럽게 느껴져 살짝 뒤로 피했지만, 어찌됐던 간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니코의 표정이 잠시 멍해지더니,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몸을 뒤로 뺐다.


 "그런 거였나..."


너무나 쉽게 바뀐 니코의 표정에 대해, 에리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나저나 에리의 입장에서 보면 니코는 마치 자신을 아까부터 봤었다는 식으로 얘기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은 이 여자아이를 처음 봤다.

그래서 호기심을 못 참고, 용기를 내어 물어보기로 했다.


 "저기, 궁금한게 있는데..."

 "뭐야."

 "저를 언제 보셨나요...? 저는 니코님을 보지 못 했는데..."

 "...보기보다 정말 둔감하네. 니코가 이렇게 알기 쉬운 모습인데도 모른단 말이야?"


말을 마친 니코는 잠시 집중을 하듯이 눈을 감았다.

그러자 온통 분홍색이었던 옷, 고양이 귀, 발, 꼬리가 점점 검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검은색으로 된 니코의 눈은 다시 떴고, 가만히 에리를 응시했다.

윤기가 나는 검은색 털을 가진 고양이의 부위와 장미꽃처럼 붉디 붉은 적안.

이 몸 색깔과 적안을, 에리는 본 적이 있었다.


 "앗, 설마...?"

 "그래. 그 '설마'야."


말을 마친 니코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을 살짝 박차서 공중제비를 돌았다.

그러자 니코가 착지했을 때, 그녀의 모습대신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의자 위에 떨어졌다.

그것은 에리 자신이 마녀에게 식사를 대접받은 뒤에 봤던, 예쁜 검은색 고양이였다.


 "아아앗~?!"

 "깜짝이야... 갑자기 소리지르마!"


검은 고양이 입에서 앙칼진 사람의 말이 흘러나왔다.

방금 전에 대화를 나눴던 니코의 목소리.

그 모습에 에리는 다시 한번 입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검은 고양이는 의자에서 자리를 박차 공중제비를 돌았고, 순식간에 니코로 변해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은 형태가 되었다.


 "우와아... 아까 봤던 고양이가 니코님이었다니...!"

 "이미 요술도 많이 봤으면서 이런 것으로 놀라고 그래? 하긴 이런 모습으로 변신할 때는 내 취향의 색으로 염색하니 알아차리지 못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가... 참고로 말하자면, 인간 앞에서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너가 처음이야. 영광으로 여기라구."

 "앗, 이런 귀중한 모습을 저한테는 보여줘도 되는 건가요?"

 "윽..."


에리의 순수한 질문에 니코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어찌보면 별로 중요한 질문은 아니지만, 어찌보면 매우 날카로운 질문.

비록 잠시 동안 있었던 것 뿐이지만 자신을 보고 '예쁜 고양이' 라고 말해준 인간은 지금까지 에리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니코는 죽어도 말을 할 수 없었다.


 "니, 니코니코니~! 니코는 착하니까 특별히 마음 써줘서 그렇답니다니코♥"


양 손의 중지와 약지를 접고 나머지 손가락을 전부 핀 특이한 제스쳐를 머리 옆에 대고 취하며, 이상하게 말하고, 어색하게 웃는 니코.

아무래도 인간 앞에서 감정을 숨기는 것이 영 서툴러 보였다.

그래도 에리는 그 모습이 재밌어 보였는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니코님!"


너무나 순수한 그 모습에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본 니코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다시 에리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이기엔 평범한 아이.

하지만 마녀의 집까지 들어온 평범하지 않은 인간.

그 사이의 상관성을, 에리의 말을 통해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저기...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면 저, 부끄러운데요. 헤헤."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게 웃는 에리에게 니코는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저런 바보가 마녀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말인가..."

 "네?"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아무래도 특이한 인간인 것 같네."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요..."


그렇게 니코와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던 도중,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와준 마녀가 다시 생각났다.

이 방의 주인이 지금 자리를 비우고 어디를 간 걸까, 라고 생각하던 중,


 다시는 서로 보지 못 할 거래이─


떠나기 직전에 유난히 쌀쌀맞게 대한 그녀가 떠올랐다.

물론 자신이 그런 대우를 받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래도 에리는 너무나도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마녀님은 나를 싫어하고 있는 걸까..."

 "무슨 말을 또 하는 거야?"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에리의 말을, 니코가 주워듣고 말았다.

이에 에리는 떠나기 직전에 있었던 마녀의 차가운 모습에 대해 얘기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고, 마녀가 무엇 때문에 화를 내는지 궁금하다고,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니코는 꼬았던 다리를 바꿔꼬며,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건 화를 내는게 아니야. 애당초 너는 마녀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으니 이 니코가 얘기를 해주겠어. 너도 이 시대의 인간이라면 알다시피 마녀의 존재는 해충과 전염병보다 끔찍하고, 역겨운 존재라고 여기고 있어. 비교대상을 그나마 순화시켜서 해충과 전염병으로 들었지만, 이런 것들조차 마녀가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자신들의 불행과 비관적 상황을, '마녀'라는 허울 좋은 공격 대상에 쉽게 떠넘긴거야.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마녀가 자신들을 구해주거나 도움을 줘도, 이를 호의로 받아들이기는 커녕 오히려 도망치거나 욕을 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달려들기도 했어."

 "네...?"

 "물론 처음에 호의를 표시했던 인간들도 있었지만 이는 마녀라는 사실을 몰랐을 때의 얘기지. 시간이 지난 뒤에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마녀란 것을 알게 되자, 그 동안에 쌓았던 정을 전부 분노와 살의로 바뀌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어. 자신에게 도움을 줬다는 사실보다 마녀와 접촉했다는 사실이 더욱 크게 다가온 나머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일으킨거지. 이것이 너를 구해준 마녀의 삶이야. '우리'가 마녀와 같이 살기 훨씬 전, 아니... 아마도 마녀가 이 세상에 있을 때부터 일어난..."

 "그럴수가..."

 "'그럴수가' 라니, 너도 인간이잖아? 최소한 내가 봤거나 들었던 인간들 전부 그런 행동을 했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 지금까지 예외따윈 없었다구. 어떤 인간이던지 호시탐탐 마녀를 처리하고 싶어하지. 뭐, 마녀 뿐만 아니라 니코 역시 원래 이런 색의 고양이라 인간들에게 많이 학대당했지만..."

 "..."

 "어이어이, 그런 불쌍한 눈으로 니코를 보지마. 지금은 잘 지내고 있으니까. 어쨋든 그렇게 인간들로부터 멸시와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니 마녀가 인간을 좋아하겠어? 나라면 가지고 있는 요술로 전부 쑥대밭을 만들어버렸을거야."

 "그렇군요... 아, 그래서 떠나기 전에 그렇게 차갑게 대하신 거구나..."

 "이미 그 전제가 이상하다는 거야. 본격적으로 주목할 점은 그런 '인간' 을 자신의 집까지 데리고 왔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거지. 너를 구해준 것도 분명 할 일이 없을 때 아주 가끔 일어나는 이벤트일 뿐이야. 생각해보니 너도 참, 마녀라는 것을 알고도 따라온게 용하다... 어쨋든 너가 말한 마녀의 차가워진 태도는 이런 인간에 대한 안 좋은 마음과 너를 대해주는 마음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마녀는 오랜 세월 동안 시달려서 인간을 별로 안 좋아했지만, 너의 순수한 인사 한 마디가 이런 마녀의 마음을..."

 "오늘따라 쓸데없는 말이 평소보다 늘었는걸, 니코쨩."


위로부터 들려오는 딱딱한 여자아이 목소리에, 니코의 얘기를 주의깊게 듣고 있던 에리는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시선을 올렸다.

그러자 거기에,


 "꺄아악!"


자신을 습겼했던 박쥐가 높은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푸드덕, 푸드덕─


비명소리에 맞춰 천장에 매달려있던 박쥐가 날개를 펴고, 에리가 있는 아래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어느 새 에리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뭄을 웅크린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박쥐가 자신을 습격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시간이 잠시 지난 후,


 "언제까지 이불 속에 있을 셈인데?"


아까 들렸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왔다.

이불 속에서 에리가 고개를 빼꼼 내밀자, 침대 옆에 어떤 인물이 떡하니 서있었다.

복장은 여기서 지내는 인물들 답게 짧은 의상이었고, 색상은 마녀의 옷보다 더 진한 보라색이었다.

고개를 살짝 들자,


 "오랜만이네, 인간."


송곳니가 살짝 튀어나온 붉은머리의 여자아이가 팔뚝까지 올라오는 장갑을 낀 채로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박쥐가 자신을 덮치자마자 튀어나왔던 그 여자아이였다.


 "꺄아아아악!!!!"


더 큰 비명을 지르며 더 깊게 이불을 뒤집어 숨는 에리.

그런 그녀의 모습에 붉은머리의 여자아이는 인상을 찡그렸고, 니코는 옆에서 크게 웃었다.


 "아하하하! 어지간히 무서웠나보네. 최대한 상냥하게 대해달라구, 마키~"


마녀에게 '마키쨩'이라고 불렸지만 실제로 '마키'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는 고개를 돌려 니코를 잠시 째려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네, 라는 말을 중얼거린 마키는 에리가 뒤집어 쓰고 있는 이불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꼬마 인간아, 마녀가 너를 건드리지 말랬으니 이제 괴롭히지 않을거야. 어쨋든 무사히 일어나서 다행이네. 이제 여기서 나갈 준비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 말에 이불 밑에서 에리의 얼굴이 슬금슬금 나왔다.

자세히 보니 '마키' 라고 불린 여자아이는 약간 날카롭게 생겼지만 얼굴 자체는 예뻤고, 몸매는 니코보다 훨씬 좋아보였다.

단지 아까 자신을 습격하고, 방금 전에 날아왔던 박쥐가 정황상 마키로 변했다는 것이 조금 찜찜할 뿐이다.

에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조용히 물었다.


 "저 이제 안 잡아먹으실 건가요...?"


그 말에 니코는 의자를 흔들거리며 더욱 박장대소를 했다.

반면에 얼굴이 빨개진 마키는 입술을 꽉 깨물며 소리쳤다.


 "참고로 말하지만, 난 너를 잡아먹지는 않아! 단지 '피'만 약간 빨아먹을 뿐이라고! 애당초 나같이 작은 박쥐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그렇게 겁을..."


말을 잇던 마키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다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에리의 모습에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어린 아이에게 '피'라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필요한 요소가 아닌, '무서움'에 상응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에에~ 마키가 어린애를 울려버렸다~"


옆에서 놀리는 니코의 말에 당황한 마키는 에리의 눈높이에 맞게 쪼그려 앉아 달래주기 시작했다.


 "저기, 내가 말이 좀 심한 것 같네. 넌 성숙이 되지 않은 인간이라서 잘 모르겠지만 나 같은 박쥐는 피가 꼭 필요한 영양분이야.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굳이 피를 안 먹어도 다른 것을 먹으면 상관없는데 뭐랄까... 가끔씩은 맛있는게 땡기잖아? 나한테 피는 그런 맛있는 음식이자, 특별식이라서 불가항력으로 너를 덮쳤다고나 할까. 어쨋든 그 때의 나는 매우 배고픈 상태였는데 하필 너가 눈에 띄어서 그만..."


한참을 변명하던 마키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곰곰히 생각해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잠깐!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인간 따위한테 사과를 해야하는건데!!!"

 "벌써 눈치 채버린 거야? 재미없어라~"


머리 뒤로 깍지를 끼며 장난스럽게 얘기하는 니코의 말에 더욱 발끈한 마키는 그녀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따지기 시작했다.


 "니코쨩은 맨날 이런 식으로 장난만 치고 진지함은 없지? 애당초 바보 니코쨩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해서 내가 자제시키려고 온 거잖아!"


마키의 고함에 덩달아 발끈한 니코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맞대응하기 시작했다.


 "하아~? 너한테 바보 소리 들을 만한 행동은 안 했다구!"

 "과거 얘기를 굳이 인간한테 할 필요는 없잖아? 뭐 좋을게 있다고 그런 얘기를 하는건데! 거기다가 자기가 불리하니까 '니코니코니'라니 정말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만 하고! 아예 니코쨩 얘기나 실컷 하지 그래? 사실 변신을 보여준 것도 저 인간한테서 들었던 칭찬 때문... "

 "우아아아?!?! 더이상 얘기하지마! 그렇게 말하는 마키쨩도 괜히 저 애한테 미움 받는게 싫으니까 변명을 늘어놓은거 아니야? 그리고 내가 만든 니코니코니를 무시하지마, 이 생쥐!"

 "뭐어~? 생쥐?! 그러는 니코쨩이야말로 살쾡이인 주제에!"

 "지금 고귀한 이 니코를 품격없는 살쾡이와 비교한거야?!"

 "그렇다면 어쩔건데!"


니코와 마키가 서로 으르릉거리는 동안, 에리는 천천히 이불 속에서 나왔다.

계속 실랑이를 벌이는 둘이지만 에리의 눈에는 그 다툼 속에 친밀감이 느껴졌다.

어찌됐던 간에 자신에게 이런저런 말을 한 니코와 마키, 둘 다 성격이 특이할 뿐이지 나쁘지는 않아보였다.

더이상 자신을 신경쓰지 않는 둘을 냅두고, 에리는 천천히 침대 위에서 나온 후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상한 물건들이 많지만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에 반사되어 유난히 광택이 반짝거리는 나무 책상이 에리의 마음을 끌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책상 위에는 회색 깃털이 담겨있는 까만 잉크병과 그 옆에 여러 장이 쌓여져 있는 낡은 양피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양피지의 맨 위에는 마녀가 직접 쓴 듯 한, 알 수 없는 언어로 구성된 필기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국적인 것 같으면서, 동시에 이 세계에 있지 않은 것 같은 언어.

거기에 적힌 말을 에리로써 알아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녀님은 외롭지 않았을까...'


양피지를 부드럽게 한번 훑는 에리의 손 끝은 혼자 끄적거리고 있었을 마녀의 모습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니코가 말하기를 '자신들이 같이 살기 전'부터, 마녀는 인간들로부터 박해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 누가 오기 전까지, 마녀는 계속 혼자서 지냈던 것일까.


 "내 왔데이~"


익숙한 목소리가 방 문 밖에서 들려오자 언성이 높아지던 니코와 마키의 목소리가 뚝 끊겼고, 에리 또한 손길을 멈췄다.

뚜벅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방 문이 열렸다.

그리고 피곤한 모습의 마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잘 다녀왔어?"

 "정말이지, 기다리기 지쳤다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툼을 멈춘 니코와 마키는 각각의 인사로 마녀를 환영했다.

이에 화답하듯 살짝 미소를 짓던 마녀는 책상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는 에리를 발견하고 말았다.

오랜 세월 동안 써왔던 자신의 마음이 담긴 기록물들을 인간 앞에서 들켜버렸다고 생각한 걸까.

대뜸 화난 표정을 지은 그녀는 니코와 마키를 지나 에리가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책상을 손으로 쾅, 치며 외쳤다.


 "누가 남의 책상을 함부로 보라고 했나!"


거기에 흠칫 놀란 에리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잔뜩 독기를 품었던 마녀는 뭐라고 말을 더 하려고 했지만 시무룩한 에리의 모습이 그녀의 언성을 가로막았다.

잠시 동안의 정적 후, 마녀는 손가락을 튕겼다.

책상 위에 있던 양피지들이 각자 알아서 둥글게 말렸고, 어느 새 나타난 노끈이 각각의 양피지 두루마리들을 묶었다.

그렇게 가지런히 정리된 두루마리들은 각각 자신의 자리에 맞는 책장 칸에 알아서 날아들어갔다.

책상이 정리가 되자, 마녀는 에리로부터 등을 휙 돌리며 나즈막히 말했다.


 "깨어났으니 다시 집으로 가재이."

 "네..."


거침없이 걸어가는 마녀의 뒤를 에리는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따라갔다.

에리는 어리둥절해하는 니코와 마키 앞을 지나가게 되면서,


 "아, 같이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살짝 허리를 숙이고, 인사하며 갔다.

처음 받아보는 인간의 인사에, 니코와 마키는 어떤 말도 하지 못 했다.

그 둘이 방 문을 나서서야 니코와 마키는 서로를 쳐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소근거렸다.


 "봤어?"

 "응, 봤어."

 "우리에게까지 인사를 하다니 정말 특이한 애네."

 "정말 이상한 인간이라니깐..."

 "그나저나 걔가 인간에게 화를 내다니... 지금까지 인간에게 수없이 당했어도 직접적으로 화낸 적은 없었잖아?"

 "뭐, 너무 표현을 안 해서 걱정이었는데 잘 됐네."

 "거기다가 저렇게 금방 또 화를 풀 줄은 몰랐어. 최소한 개구리나 돼지로 만들어 버릴 줄 알았는데..."

 "그런 걸 가지고 동물로 만들어 버렸으면 이 세상에는 인간 따위 진작 사라졌을걸. 너무 깊게 생각하는거 아니야, 니코쨩?"

 "흐음~ 수상하단 말이지... 분명 뭔가 변화가 온 걸거야, 틀림없이. 이 니코의 감은 정확하다고!"

 "니코쨩의 감, 맞았던 적이 있었던가..."

 "뭐얏~!"


다시 투닥거리기 직전에 마키는 먼저 방 문을 나섰고, 이를 갈며 마키를 노려보던 니코도 그녀의 뒤를 쫓아 나갔다.

.
.
.

 "이제는 정말 헤어질 시간이래이. 도와주는 것도 여기까지. 앞으로 니가 무슨 상황에 처하든, 상관 안 할 거고마."


빗자루 앞에서 신신당부 하는 마녀의 앞에서 에리는 고개를 숙인 채로 조용히 있었다.

아까 마녀가 화를 냈던 것 때문에 지금도 풀이 죽어있는 걸까.

자신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안 하는 것이 신경쓰였는지, 마녀는 에리의 눈높이에 맞춰 허리를 숙이며 나즈막히 물었다.


 "왜 아무런 말도 안 하는 거가?"

 "그게, 사실은..."


그제서야 입을 뗀 에리는 그냥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 길을 몰라요..."

 "...뭐라꼬?"

 "숲이 너무 넓고, 헷갈려서..."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마녀에게는 성가신 일 밖에 안 됐다.

이 애를 구해주고, 먹여주고, 포장해주며, 심지어 또 구해줬는데 이제는 집까지 데려다주란 말인가?

이 애를 어디까지 데려다 줘야 하나, 라는 생각을 잠시 하고 있던 마녀의 어깨를 누군가 톡톡 두드렸다.

마녀가 뒤를 돌아보자, 그 사이에 사람처럼 일어서 있던 빗자루가 잠시 몸을 흔들고는 방 어딘가로 쌩, 하고 날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빗자루는 자신의 몸통에 무언가를 얹고 다시 마녀 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나무 테두리 안에 납작한 유리판이 있었고, 그 안에는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절반씩 나뉜 마름모꼴 형태의 침이 들어있는 '나침반' 이었다.


 "아, 이게 있었구마."


빗자루가 가져온 나침반을 잡은 마녀는 에리 앞에 쪼그려 앉더니, 다시 그녀의 손에 쥐어줬다.


 "이것은 요술 나침반이래이. 니가 가고 싶은 곳을 알아서 가르쳐줄끼다. 파란색 부분이 향하는 곳으로 가면 된데이."

 "우와... 감사합니다!"


에리는 양손에 나침반을 살며시 들고, 미소를 지으며 마녀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오늘 하루, 마녀는 몇 번이나 감사를 받은 것인가.

쪼그려 앉은 상태로 가만히 에리를 응시하는 마녀의 뒤에서 빗자루는 뭐가 신났는지, 이러저리 몸통을 흔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뚝 멈춘 빗자루는 뭔가를 까먹었다는 듯한 움직임으로 다시 어느 방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돌아온 빗자루의 몸통에 무언가가 얹어져 있었다.


 "앗, 이건...!"

 "...잘도 챙겨와주는구마."


그것은 에리가 마녀의 집에서 챙겼던 '포장물'이었다.

기절하는 와중에도 꿋꿋이 손에서 놓지 않은, 에리에게 있어서 할머니의 배를 맛있게 채워줄 수 있는 소중한 포장물.

나침반을 주머니에 넣은 에리는 바로 빗자루 위에 있는 포장물을 다시 품 안에 꼬옥 안았다.

그리고 빗자루의 몸통을 쓰다듬으며 환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빗자루야!"


에리의 손놀림에 맞춰, 빗자루의 몸통은 살랑살랑 흔들렸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는 마녀는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적어도 그 한숨 만큼은 지금까지 내쉬었던 것과는 달리, 나쁜 기분이 들어가있지 않았다.


 "그럼 이제 타래이."


마녀가 빗자루 위에 몸을 얹자 에리도 그에 맞춰 가볍게 뛰어올라 엉덩이를 올렸다.

떠나기 전, 주변을 둘러보자 방 안에서 나온 니코와 마키가 아까부터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아챈 에리는 그녀들을 향해 다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자 마키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흔들어 인사해버리고 말았다.


 "어라~? 천하의 마키가 인간에게 친히 인사를 해주다니 별일이네~"

 "앗..."


히죽거리는 니코의 말에 얼굴이 빨개진 마키는 인사했던 손을 황급히 등 뒤로 숨겼다.


 "가라."


아까와 마찬가지로 둘을 태운 빗자루는 나무 구멍에서 나와 수평을 유지하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
.
.

밖으로 나오면서 아까와 다르게 마녀는 에리를 나무 밑에서 바로 내려주지 않고, 마을이 있는 쪽까지 어느 정도 이동해주었다.

그 자리라면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갔을 때, 에리가 자신의 집까지 가는데에 30분 정도만 걸릴 것이다.

지상에 내린 에리가 무어라고 말하기 전, 마녀는 앞으로 만날 일은 없을거라고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

그 말에 에리의 표정이 시무룩해졌지만 마녀 자신과 상관없는 일.

자신의 말을 마친 마녀는 돌아가려고 했으나, 그래도 에리는 마녀에게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와 만났던 시간에 대한 즐거움을 담은 인사를 전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떠한 답도 하지 않은 마녀는 에리를 뒤로 한 채, 무심하게 자신의 집으로 날아갔다.

거목에 도착하자마자 마녀의 몸에 피곤함이 몰려왔다.

별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많은 일이 있었던 것과 같은 피곤함.

하지만 마녀는 그 피곤함이 마냥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나무 구멍 안으로 들어와 빗자루에서 내려 자신의 방으로 이동하던 중, 팔짱을 끼고 벽에 등을 기대며 서있는 마키를 발견했다.


 "어째서 나침반까지 준거야? '노조미'..."


이름이 없을 줄만 알았던 마녀는 '노조미'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노조미' 라고 불린 마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깜빡했구마."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이동하려 했으나, 그 걸음마저 앞을 가로막은 마키 때문에 멈춰지고 말았다.


 "'깜빡'...? 거짓말 하지마. 너가 염두에 두지 않았을리가 없어. 그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데...!"

 "..."

 "그 꼬마 인간을 정말 믿는 거야? 나중에 우리에게 이빨을 드러낼 수 있다고! 더군다나 그 나침반이 '인간'들에게 들키면 여기로 습격하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도 있는데 어째서...!"


신경질적인 마키의 말도, 역시나 통하지 않는 것인지 노조미는 오히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 전부 다 처리하면 된데이."

 "그래도...!"

 "걱정말래이. 내는 한다면 하는 성격이잖나?"

 "...말을 참 쉽게 하네. 여기를 전쟁터로 만들 셈이야?"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구마."


그런 노조미의 부드러운 말과 손길을, 마키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마키의 머리를 쓰다듬은 노조미는 그녀의 옆을 지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더이상의 할 말을 잃은 마키는 가만히 서있는 상태로, 더이상 노조미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런 일이 벌어져도 새삼스럽지는 않겠제..."


하지만 작게 중얼거리는 노조미의 말에, 마키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방 문은 닫아진 상태.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긴 마녀의 짧은 혼잣말이 마키의 머리 속을 맴돌았다.

저렇게 말할 정도로 오랜 세월 동안 인간들에게 핍박을 당해왔던 주제에,

여태까지 인간들이 무슨 짓을 해도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았던 주제에,

어째서 그렇게까지 그 인간 소녀를 잘 대해주고, 다양한 감정을 보여줬던 것인가.


 "의미를 알 수 없어..."


혼자서 중얼거린 마키는 실타래처럼 얽힌 생각을 차마 풀지 못 하고, 이내 박쥐로 변하여 자신의 방으로 날아갔다.

.
.
.

 "할머니, 아~ 하세요."

 "에리치카, 오늘 저녁은 정말 맛있구나..."

 "헤헤, 야심차게 준비 했어요!"


에리는 집에 도착하자마 바로 집안 정리를 하고, 할머니의 저녁 식사를 마련했다.

물론 메뉴는 자신이 계속 품어왔던, 마녀의 집에서 포장한 스테이크와 샐러드다.

맛이 전혀 변하지 않은 스테이크를 자신이 직접 썰어 할머니의 식사를 도와준 에리는 식사가 끝나자마자, 남은 음식을 먹음으로써 저녁을 때웠다.

그리고 뒷정리를 한 후, 몰려오는 피곤함을 풀기 위해 물을 뎁히기 시작했다.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물이 뎁혀졌고, 에리는 찌그러진 양동이를 이용해 낑낑거리며 화장실 안에 있는 욕조로 그 물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번 왔다갔다하자 어느 정도 욕조에 물이 채워지고, 힘찬 숨을 내뱉으며 양동이를 내려놓은 에리는 천천히 옷을 벗은 뒤에 욕조 안으로 발을 담갔다.

하얗고 여린 살결에 뜨거운 물이 닿아 에리의 몸이 살짝 움찔했지만 물 온도에 금방 적응했고, 거기에 맞춰 몸 전체를 담그기 시작했다.


 "후아아아~"


비록 원래 허름한 집에 있던 욕조라 변색이 되고, 여러군데 이가 빠졌지만 에리에게 있어 하루의 피곤함을 풀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적당히 따뜻한 물은 에리의 몸을 안마하는 듯한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몸을 담그고 있던 에리는 오늘 들었던 말들을 되새김질 했다.


 "내는 '마녀' 데이."

 "...한 끼 정도는 대접할 수 있다. 따라오그라."

 "앞으로 니가 올 일은 없을끼다."

 "어떤 인간이던지 호시탐탐 마녀를 처리하고 싶어하지."

 "그렇게 인간들로부터 멸시와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니 마녀가 인간을 좋아하겠어?"

 "과거 얘기를 굳이 인간한테 할 필요는 없잖아? 뭐 좋을게 있다고 그런 얘기를 하는건데!"


오늘 있었던 일들이나 들었던 말들만 해도,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마녀의 소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적어도 에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자신이 만났던 마녀가 정말 '상냥'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던 에리의 마음에 촉촉히 적셔주는 단비였다.

하지만 더이상 만나지 못 한다면, 이 단비는 한 순간의 여우비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도 한 번 더 만나고 싶어...'


최대한 애써서 길을 곱씹어보았지만, 빗자루가 워낙 빠른데다가 불규칙하게 움직여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이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워진 에리는 욕조 물에 입으로 숨을 불어넣으며 의미없는 거품을 만들어냈다.


 뽁, 보그르르─

 뽁, 뽁─

 보그르르르르─

 보그르...

 뽁...


그러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러고보니 그 나침반...!"


마녀의 말대로라면, 그 나침반은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향한다.

그렇다면 에리 자신이 마녀의 집으로 다시 가고 싶다고 생각하면, 나침반의 침 또한 그 곳을 향해 가리킬 것이 아닌가?

그 생각까지 도달한 에리는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주먹을 쥐고 위아래로 살짝 흔들었다.

마녀가 인간을 좋아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어찌됐던 간에 에리 자신을 도와준 사실은 변하지 않기에.

그녀는 처음부터 마녀에게 '보답' 을 할 생각을 가졌으니 찾아갈 수 있는 수단이 생긴 이상, 더이상 고민할 문제는 없었던 것이다.

물에 젖었던 몸이 식어서 싸늘함이 느껴지자, 에리는 다시 욕조 속으로 몸을 담갔다.


 "좋아, 그럼 내일 빵을 만들어서 가져가는 거야! 그러려면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재료를 사러가야겠지? 어디보자... 필요한 재료가 버터, 땅콩, 설탕, 또..."


그리고 행복한 목소리로 내일 마녀의 집에 찾아갈 준비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이 기분을 대변하려는 듯, 달빛은 에리의 집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