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팬픽은 인터넷에 떠도는 일러스트를 보고 문득 떠오른 상상을 짤막하게 적은 팬픽입니다.

단편적인 내용만 생각해서 적은 것이기 때문에 앞내용, 뒷내용은 모두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고 댓글이나 추천을 남겨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히어로-


-팬픽 소재 이미지 출처 : 不负时光Zwei




안녕?

요즘 날씨가 많이 더워지고 있네.

그래도 일교차가 크니, 그런 차림으로 있는 것보다 겉옷을 걸치고 다니는게 좋아.


...갑자기 찾아와서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정말 세심하지 못 하네...

보다시피 다른 멤버들은 각자의 일 때문에 흩어져서 난 너무나도 한가한 상황이란 말이지.

그러다가 할 일 없어 보이는 너한테 와주었다, 이 말씀!

그러니 이 '니시키노 마키'와 단둘이 얘기 나눌 기회를 가진 것에 대해 영광으로 알라구.


...뭐야, 그 시덥지 않은 반응은.


뭐, 됐어. 그런 사소한 반응에 태클 걸려고 만난건 아니니깐.

단지... 좀 심심해서 얘기 좀 나눠보려고 하는거야.


...어, 어쩔 수 없잖아! μ’s에 가입한 이후로 혼자 있게 된 것은 처음인걸!


그러니까 기분 나쁘게 히죽거리지 말아줄래?

하여간, 조금의 틈도 보여주면 안 된다니깐....


...아까의 날씨 얘기는 뭐냐고?


아아, 그냥~ 이제 초여름이 다 되어 가니까 좀 센티멘탈 해졌다고나 할까.

사람은 각자 자신에게 맞는 계절이 있기 때문에 굳이 가을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감성적일 수 있지.


...이런 초여름 날씨가 무슨 감성적인 의미가 있냐니, 너도 참 호기심이 많구나.


나한테 있어서는 충분히 그럴 만도 해.

잊을 수 없는 일과 관련되어 있는 날씨거든.


...너무나도 예상대로 말하네. 단번에 내 얘기를 듣고 싶다고 하는걸 보니.


후훗, 하긴 너의 그런 점이 매력이라면 매력이겠지.

뭐, 딱히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잊고 싶은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그런 과거가 있었지.

.
.
.
.
.
.
.
.


지금으로부터 3년 전. 계절은 초여름.

의학을 가업으로 삼는 가문에서 태어난 외동딸인 '니시키노 마키'는 중학생이다.

그것도 초등학교로부터 갓 졸업한 1학년.

단순히 나이로만 보자면, 그녀는 단순하고 순수해야 될 권리가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그녀를 괴롭혔던 '니시키노 가문의 후계자'란 꼬리표는 때이른 정신적 성숙함을 가져다 주었고, 세상의 복잡한 이치를 어느 정도 깨닫게 만들어주었다.

특히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삶에 있어서 큰 비중이나 중요성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어차피 자신은 의사가 되야만 할 것이고, 어떠한 사람을 사귄다고 해서 그 운명이 바뀌지 않을테니까.

진정한 친구를 만들어도, 아버지가 지정한 길로 가다보면 헤어질 수 밖에 없으니까.

이러한 연유로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학급 애들과는 필요한 얘기 외에는 쓸데없는 잡담을 하지 않았다.

연예인 얘기든, 짝사랑에 대한 얘기든, 노래방 얘기든, 그 어떠한 사적인 주제가 나오면 그녀는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여학생 A 「니시키노는 예쁘고, 똑똑한데 왠지 다가가기가 힘들어.」

 여학생 B 「응응, 잘 웃지도 않고 말이야. 한번 같이 놀러가면 재밌을거 같은데...」


대체적인 같은 학급 아이들의 평이 이럴 정도로 마키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애들은 있었지만, 그만큼 마키의 성격은 차가웠던 것이다.

사실 그녀도 이런 쑥덕거림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의 자신이 학급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사람으로 보여지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에 얽매인 자신의 마음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키 (그래, 이 상태로 중학교 과정을 넘기면 돼. 이 상태로...)


스스로에 대한 자기합리화.

그것은 곧 다른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그 당시의 마키는 몰랐다.

그렇게 그녀는 중간시험을 볼 때까지 무난한 학교 생활을 지냈다.

다행히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활발하게 학급 생활이나 활동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 문자 그대로 '무난하게' 보낸 것이다.

여느 날과 같이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고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 그녀는 거리 한 가운데에 멈춰섰다.


 마키 「좀 쌀쌀해지네. 낮에는 그렇게 더웠는데...」


아직 날이 밝은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변덕스러운 날씨는 아직 봄과 여름을 구분 짓지 않은 것 같았다.

겉옷을 여민 마키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애매하게 껴있어서, 햇빛 또한 애매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그녀는 왠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하늘 상태가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마키 (청소년기에 돌입하니 나도 감성적으로 변한걸까?)


쓴웃음을 짓던 마키는 문득 답답함을 느꼈다.

마음 한 구석을 봉인해둔 것과 같은 답답함.

이로 인해 그녀는 다른 곳에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보통 청소년기는 마음이 혼란한 시기에 이곳저곳을 다니며 많은 것을 경험해야 정체성이 확립된다고 했다.

마키 또한 그 문구를 어느 책에서 본 기억이 났기 때문에, 이 마음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키 (그럼 이 동네를 좀 벗어나볼까.)


평소 같았으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성실함을 보였겠지만, 오늘 만큼은 좀 달랐다.

어차피 다음날은 주말이기도 해서 잠깐 동네를 벗어나 사색에 잠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디를 가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던 마키는 멀지 않은 번화가에 가보기로 했다.

지하철로 두 정거장만 가면 도착하는 곳이라 부담도 적었다.

왠지 모르는 흥분감에 들뜬 그녀는 갈 곳을 결정하자마자 단숨에 그 번화가로 향해 발걸음을 돌렸고, 이동하는 동안 오랜만에 평안한 표정을 지었다.





마키가 도착하자마자 느낀 점은 그 번화가가 정말 시끌벅적하고, 반짝반짝하다는 것이었다.

정적이고 노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자신의 동네와는 달리 역동성과 젊음이 넘치는 곳이었다.

낯선 곳에 혼자 와본 적은 처음인지라 마키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맛있는 냄새가 이곳저곳에서 풍겨져 나왔고, 귀엽고 예쁜 악세사리와 인형들이 자신을 유혹하듯 즐비하게 널려져 있었다.

처음엔 한번 가보기만 해보자는 것으로 그치려고 했던 그녀는 단숨에 그 번화가에 빠져들었고, 이내 천천히 걸어다니며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마키 「여긴 정말 재밌는 곳이구나...」


이 때의 순수한 모습을 당시의 학급 애들이 보았더라면 정말 친해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번화가의 자유분방함을 즐기며 돌아다녔다.


 탁─


그렇게 정신없이 걷던 중, 마키는 실수로 어떤 여학생과 어깨를 부딪치고 말았다.


 ?? 「아얏! 뭐야, 이건!」

 마키 「앗, 죄송합니다.」

 ?? 「죄송하다고 말만 하면 다야?」

 ??2 「사람을 쳤으면 무릎 꿇고 사죄라도 해야될 것 아니야!」

 마키 「...네?」


일행으로 보이는 듯한 한 사람까지 가세하여 마키에게 갑자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긴 교복 치마를 입고 아무데나 침을 뱉는 여학생들.

소위 말하는 이 일대의 '불량학생'들이었다.


 불량학생 「가뜩이나 돈도 다 잃어서 기분도 꿀꿀했는데, 마침 잘 됐네. 이것도 인연인데 돈 좀 기부해주라.」

 불량학생2 「그래, 맞아. 지금 저 언니 어깨에 멍이라도 들었을 수 있으니 치료비라고 생각하고 주면 되겠다.」

 마키 「무슨 말씀들을 하시는거죠? 단지 어깨 부딪친 것 정도로 멍이 들다니 말이 안 되잖아요!」

 불량학생 「하, 요것 봐라?」


자신의 말에 대드는 마키를 보고 피식 웃던 불량여학생 한 명이 갑자기 마키의 뺨을 때렸다.

거리 한복판에서 뺨을 맞은 그녀가 어안이 벙벙해 있는 사이, 나머지 한 명은 거칠게 그녀의 옷을 잡더니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마키를 자신들의 앞에 세운 그 두 명은 인상을 찡그리며 번갈아 소리쳤다.


 불량학생 「촌스러운 교복이나 입고 다니면서 감히 우리한테 소리를 질러?」

 불량학생2 「엎드려서 싹싹 빌면 봐줄만도 했는데 주제를 모르고 까불어, 엉!」

 마키 「무, 무슨 짓이에요...! 더이상 나쁜 짓 하면 소리 지를거에요!」

 불량여학생 「소리? 그래 한 번 질러봐!」


아직도 자신들한테 바득바득 대드는 마키가 더욱 마음에 안 들었던 두 명은 이내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녀로써는 속수무책으로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애당초 불량학생들은 여고생으로, 체격부터가 차이 났기 때문에 쉽사리 덤벼들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번화가를 돌아다녔을 때 최고로 기분이 좋았다면, 지금은 정말 최악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마키를 때리던 불량학생 중 한명이 그녀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불량학생2 「이정도면 정신차렸겠지? 자, 이제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을 알아서 잘 해봐.」


비웃듯이 말하는 그 불량학생 옆에서 다른 학생은 이미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상황이 마키한테 있어서 너무나도 무서웠다.

생전 처음 겪는 일일 뿐더러 이렇게 맞은 적은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두려운 마음과는 달리, 이성적인 사고를 유지하고 있던 입은 다시 소리를 치고 말았다.


 마키 「웃기지마! 내가 해야될 말은 이미 했던 아까의 사과였을 뿐이지, 그 외에는 없어!」

 불량학생2 「뭐야...!」


마키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이 그녀를 세게 밀어버렸고, 동시에 뒤로 밀려난 마키의 등은 이내 벽에 부딪치면서 통증을 느끼게 되었다.

이로 인해 힘이 빠져버린 그녀의 다리는 몸의 균형을 잃게 만들어 몸 자체를 주저앉게 만들어버렸다.


 불량학생2 「너가 진짜 미쳤나보구나??」

 불량학생 「안 그래도 짜증났는데 잘 됐네. 어디 한 번 누가 이기나 해보자!」


몸을 풀고 으름장을 내놓으며 다가오는 두명을 본 마키는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미래를 예상할 수 있었다.

누군가 도와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은 당연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당초 자신은 혼자 왔다.

타인에게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

아까 거리 한복판에 뺨을 맞았을 때, 그 누구도 그 상황에 개입하지 않았기에.

사람들과의 친분을 멀리한 자신의 결정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자 조금은 이 상황에 대해 납득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다는 뜻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없다는 뜻은 절대 아니었다.

결국 두 눈을 꽉 감아버린 그녀는 이 지옥같은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바랬다.





 ?? 「그만 두세요.」


잠시 후, 다른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량학생 「넌 또 뭐야!」


그것도 바로 자신의 앞에서.

불량학생들과는 다르게 올곧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마키 (누구지...?)


마키가 천천히 눈을 뜨자 교복 셔츠를 입은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긴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는 여학생이 불량학생들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동갑내기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 여학생의 몸집은 마키와 비슷한데도 말이다.


 ?? 「성숙한 여성 분들이 이 무슨 추태를 부리시는 겁니까?」


그런데도 단호하고도 또박또박한 그 여학생의 말에 그녀들은 다시 기가 찰 수 밖에 없었다.


 불량학생 「하아, 진짜 오늘 일진이 안 좋은가 보네.」

 불량학생2 「얘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까불지 말고 집에 가줄래? 너까지 두들겨 팰 체력은 없을거 같은데.」


그런 비아냥 속에서도, 여학생은 꼿꼿한 자세로 불량학생들과 대치했다.

그 믿음직스러운 뒷모습에, 마키는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 「자신보다 어린 사람을 여러명이서 공격하는 것은 부정 중에서도 부정 행위. 하물며 하찮은 이유로 누군가의 가족인 사람을 트집 잡고, 욕보이는 것이 정말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불량학생 「아악! 시끄러워!!! 너도 오늘 죽었어~!」

 불량학생2 「설교는 멍청한 니 자신한테나 해!」


여학생의 말에 참지 못 한 불량학생들은 결국 분에 못 이겨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마키 「앗...!」


마키는 그녀 또한 험한 꼴을 당할까봐, 자신도 모르게 걱정을 담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러나 그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휘익─

 퍽, 퍽─!

 불량학생 「꺄악!」

 불량학생2 「크헙!」


불량학생들이 동시에 덤벼들자 여학생은 재빠른 몸놀림으로 둘의 빈틈을 파고들더니, 한명을 팔꿈치로 밀쳐내고, 나머지 한명은 뒤돌려차기로 응수했다.

덕분에 그녀들은 뒷걸음질치며 볼썽사납게 넘어지고 말았다.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에 마키 뿐만 아니라 역공 당한 그녀들 또한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래도 평범한 여학생이 아닌 듯 했다.


 ?? 「결국 이런 전개인가요...」


한숨을 쉬는 여학생과는 달리 불량학생들은 방금 맞았던 것이 분했는지 씩씩거리며 자신들의 가방을 집어들더니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퍽, 퍽─!


하지만 여학생은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가방을 잘 피했고, 그 틈에 다시 한번 그녀들의 배와 가슴에 팔꿈치와 발차기를 집어넣었다.

제대로 들어간 이번 공격 때문에 불량학생 한명은 계속 콜록거렸고, 나머지 한 명은 몸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괴성을 지르며 다시 여학생에게 달려들었다.


 불량학생1 「너어어어어어어어!!!!!!!!!!!」


그러나 아까 보여줬던 모습이 허풍 떠는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는 듯이, 여학생은 가뿐히 몸을 돌려 피하더니,


 짜악─!


그 불량학생의 뺨을 있는 힘껏 내려쳤다.

순식간에 얻어맞은 그녀의 뺨 한쪽이 매우 새빨갛게 물들며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그 충격이 강했는지 비명조차 못 지르고 몸이 휘청거리고는 이내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 「반성하라는 의미에서 최대로 세게 쳤습니다.」


연신 기침만 하던 불량학생은 그 어이없는 광경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져버렸다.

그리고는 떨리는 눈으로 그 여학생을 올려다았다.


 ?? 「그리고 다시는 이런 짓들을 하지 못 하게 경찰까지 불렀으니 얌전히 잡혀주세요.」

 불량학생2 「너, 너어...!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아?」


그 불량학생이 소리치는 순간, 갑자기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바뀌어버렸다.

여학생이 무서운 표정이라도 짓고 있는걸까.

뒤에서 보고 있는 마키로써는 그런 추측 밖에 할 수 없었다.


 ?? 「그럼, 다시 겨뤄보시겠습니까...?」

 불량학생2 「히, 히이익...!」


자리에서 허겁지겁 일어난 그 불량학생은 기절한 자신의 친구를 재빨리 부축하기 시작했다.


 불량학생2 「죄, 죄송합니다아!!!


짤막한 사과를 남긴 불량학생은 황급히 다른 곳으로 도망쳐버렸다.

삼류 악당처럼 허둥지둥 도망치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던 여학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 「정말이지, 한심하고 최저인 사람들이네요.」


이윽고 그 여학생이 고개를 돌리자 마키는 황급히 얼굴을 감췄다.

자신의 망가진 모습을 남한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기인한 행동이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다가온 여학생은 말없이 손수건을 건내주었다.

그 따뜻한 행동에, 마키의 목 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했지만 꾹 참고 손수건을 받아주었다.


 마키 「고맙습니다...」


손수건으로 얼굴과 옷 이곳저곳을 문지르던 중, 마키의 얼굴을 빤히 보던 여학생은,


 ?? 「좀 더 빨리 발견했어야 했는데... 그래도 많이 안 다쳐보여서 다행이군요.」


라며 부드러운 말로 위로를 해주었다.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정말 도와준다고 생각하지 못 했던 마키로써, 최악의 상황을 무마시켜준 그 여학생은 마치 TV에서나 보던 '히어로' 였다.


 ?? 「일어날 수 있나요?」


여학생이 손을 내밀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살며시 잡고 일어났다.

그제서야 마키는 그 여학생의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있었는데, 청초하고 단아해보이는 그녀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반창고 여러개가 붙어있었다.

마키가 뚫어지게 자신을 쳐다보자 뭔가 이상함을 느낀 여학생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얼굴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 「아, 이 상처들은 제 친구들이랑 놀다가 생긴거라... 저, 비행청소년이 아니니까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된다구요!」


묻지도 않은 말에 대해 당황해하며 열심히 변명하는 그 여학생을 보고 있자니, 마키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제 마음이 좀 진정되었다는 듯이.





잠시 후, 경찰이 오고나서 당시 상황에 대한 증언을 해준 뒤 거리로 나온 둘은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여학생은 번화가에서 특수한 도복을 사러 왔는데, 길을 걷다보니 마키가 위험에 처해있는 것을 보고 구해주러 달려왔다고 했다.


 ??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어서...」


그녀가 중간에 쑥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모습도, 마키는 멋있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마키가 자신이 그런 상황을 겪게 된 경위를 말해주자 여학생은 분개했다.

처음부터 기선제압이 중요하다, 그렇게 소리치는 사람일수록 실상은 형편없다, 좀 더 힘을 실어서 제압을 했었어야 했다는 등 마치 자기 일처럼 화내주었다.

인간미가 넘치는 여학생의 모습에 마키는 조금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 「그나저나 당신은 왜 여기에 온 건가요?」


분노를 다 표출하자마자 갑작스럽게 질문한 여학생의 말에 마키는 잠시 우물쭈물거렸다.

사실 여기에 온 이유가 마음의 답답함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인데, 어찌보면 중2병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어차피 모르는 사람이라 상관없겠지, 라고 생각함으로써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로 했다.

자신의 현상황, 가치관, 학급 친구들에 대한 태도, 그리고 알 수 없는 답답함 등등 많은 것을 얘기해주었다.

여학생은 진지한 태도로 마키의 고민 아닌 고민을 들어주었다.


 마키 「...그래서 여기에 온거에요. 좀 이상하죠?」


마키의 얘기가 끝나고 자기 자신에 대한 물음을 던지자, 여학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아니요, 이상하지 않아요. 누구나 한번쯤은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으니깐요. 단지...」

 마키 「단지?」

 ?? 「당신이 느끼고 있는 답답함은 인간관계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모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군요.」

 마키 「그게 무슨...?」

 ?? 「쉽게 말하자면 사실은 그러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일 수도 있다는 뜻이죠. 자기 자신은 타인이 필요없다고 생각해도, '인간'이란 정작 혼자가 되면 어떤 방식이던 간에 외로움을 느끼는 생물이니깐요. 음, 저도 지금 두루뭉술하게 느끼는 것이라 무어라 더 자세히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마키 「...」


여학생의 차분한 답변에 마키는 무어라고 더 말하려고 했지만, 어느새 지하철역까지 도착하고 말았다.

마키가 여학생에게 사례를 하고 싶다고 하자, 그녀는 거절하였다.

사례를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여학생이 마키에게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하자, 그녀는 거절하였다.

거기까지 도움을 받으면 실례라고 하면서.


 ?? 「그럼 부디 조심해서 가세요. 집에서 안정을 취하시고요.」


마키는 여학생이 원하는 도복을 아직 사지 못 했다는 것을 숙지하고 있었기에 더이상 그녀의 시간을 뺏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걱정스러워하는 여학생을 보면서, 마키는 다시 한번 고맙다며 인사했다.

그리고 둘은 그렇게 서로가 가야할 길을 가게 되면서 헤어지게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키가 집에 돌아온 시간에도 마키의 부모님은 일 때문에 부재한 상태였다.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던 마키는 이 때를 놓칠세라 재빨리 교복을 벗어 빨래통에 넣었고,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온몸이 조금 욱신거리긴 해도 다행히 눈에 띄게 멍이 들거나 상처가 난 곳은 없었다.

깊은 한숨을 내쉰 마키는 욕조 안에 들어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곱씹어보았다.

하루 사이에 좋은 일, 나쁜 일을 한꺼번에 다 겪었다고 느꼈다.

잊으라 해도 잊기 힘든 일들이었다.

그러나 몇 번씩이나 오늘의 경험을 되뇌어도 결국 최종적으로 그 여학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마키 (연락처라도 주고 받을걸 그랬나. 그러고보니 이름도 몰랐네. 아, 손수건 돌려주는 것 깜빡했는데 어떡하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마키는 욕조물에 입으로 거품을 보글보글 내었다.

대다수의 거품들은 터졌지만, 일부 거품들은 서로 모이고 모여 하나의 큰 거품을 형성했다.

그것을 본 마키는 복잡한 심경 속에서 무언가의 변화를 얻을 것 같았지만, 정확히 무엇에 대한 변화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마키 「모르겠어...」


결국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키는 욕조에서 나와 자신의 모습을 비춘 거울에 손바닥을 갖다댔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고 그 여학생을 떠올려보았다.

생면부지의 자신을 구해주고, 조언까지 해주었던 정체불명의 여학생.


 마키 「히어로...인가.」


그렇게 마키에게 있어서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모순된 날의 하루가 지나갔다.

.
.
.
.
.
.
.
.

그래서 그 날 이후로 학급 활동에 조금씩은 참여하게 되었던 것 같아.

아무 관계도 안 가지려는 내 마음의 병도 어느 정도 나아진 것이겠지.

뭐,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친해진 애들이 있어도, 결국 아빠의 명에 여기로 오게 되면서 다 헤어지긴 했지만...


...너 말대로 그게 아쉽긴 해도, 후회는 없어.


비록 오토노키자카 학원에 오게 되었다고 해서 그 애들과의 정이 사라진 것도 아니니깐.

그리고 μ’s에 속하게 되면서 내 자신이 좋은 쪽으로 많이 바뀌었으니,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싶어.


...그래, 맞아. 지금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지.


그 때 내 예쁜 미모에 상처라도 생겼으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잠깐, 또 그런 표정 지을거야? 정말 너무하네.

어차피 그 이후로 그런 불량학생들을 만날 일이 없었으니 다행이지.

그리고 다시 만난다고 해도 그 때처럼 호락호락 당하진 않을거야.

하여튼 그렇기 때문에 매년 이런 날씨가 될 때마다 그 사람이 떠올라.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 날 구해주고, 내 마음에 도움을 준 나만의 '히어로'가.


...그 히어로가 왠지 누구 같다고?


의외로 눈치가 빠른 것 같네.

그래, 맞아.

너가 생각하고 있는 그 사람이 내 히어로였던 거야.

왜냐하면 내가 아직 갖고 있는 손수건에 십자수로 박힌 이니셜이 'S.U.'거든.

나도 사실 깜짝 놀랐어,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 했으니까.

정작 본인은 나를 완전히 까먹은 것 같지만...

상관없어.

진짜 히어로는 자신이 구해준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하지 않는다고.

정말 쿨한거지, 응.

그래서 나도 일부러 모른 척 하고 있는거고.


...너가 굳이 그렇게 얘기 안 해도, 나중에 시간이 더 지나거나 중요한 순간이 오면 그 때 얘기를 꺼낼거야.


그 때까지 이 얘기는 나만의 비밀이야.

그러니 절대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하면 안 돼, 알았지?

너가 왠지 물어볼까봐 미리 말해주는데...

굳이 이런 비밀을 꺼낸 이유가 너는 그, 나한테 있어서 신뢰가 좀 있는 편이니까...

그래서 가끔은 이런 진지한 얘기도 괜찮을 것 같아서...


...아아, 정말! 그렇게 웃지 말라니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이제 슬슬 집에 가야될 시간이야.

다음번엔 너의 비밀을 듣고 싶어.

왜냐하면 나만 얘기해주는 것은 불공평하니까.

그러니 다음번에도 또 얘기하자.

약속한거야!

그럼 안녕~!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