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요 생일 기념으로 짤막하게 글연성을 해봤습니다.


그림은 젬병인 똥손이라 글이라도....


그럼 돌 맞을 준비....



후우...
센터시험이 끝났다.
아직 본고사가 남아 있으니 마음을 놓긴 이르지만, 그래도 큰 짐 하나를 내려놨으니 마음이 편하다.
시험이 끝나고 나와 보니 바깥은 이미 어둑어둑하다.
다들 시험이 끝났다는 기쁨에 겨운지 표정이 밝아 보인다.
나는 시험이 끝났다는 그 자체보다도, 오늘 저녁은 하나요랑 같이 먹기로 약속했다는 것이 더 설렌다.
하나요랑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처음 만났다.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 자리 배치를 했는데 그 때 옆자리가 된 게 인연이 되어 친해지게 되었다. 비록 그 이후로는 같은 반이 된 적이 없고 고등학교는 아예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지만, 우리는 꾸준히 서로 연락하면서 친하게 지냈다.
대략 고1 때까지만 해도 나는 하나요를 친한 친구 이상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고2가 되면서 나는 하나요에게 연락을 할 때마다, 그리고 하나요가 나에게 답을 줄 때마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내가 하나요를 이성으로서 좋아하게 된 것은 아마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멋도 모르고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은 수도 없이 있었기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 이런 감정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다.
문득 고1 때 읽은 한국의 극작가 이강백의 '결혼'이라는 희곡이 생각났다. 빈털터리인 남자가 어느 부자의 집을 45분 동안만 빌려서 여자와 맞선을 보는데, 처음에는 시간에 쫓겨 조급한 마음에 무턱대고 "결혼하십시다"라고 외쳤던 남자가, 시간이 다 되어 쫓겨나기 직전에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는 "결혼해 주십시오. 당신을 빌린 동안 오직 사랑만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쫓겨나는 그 순간에 여자의 마음을 돌려 결혼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내 상황이 이 남자의 말과 정확히 들어맞는다. 하나요를 향한 나의 마음은 예전같은 수박 겉핥기식 사랑이 아닌, 진짜배기 사랑의 감정이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오늘 하나요와의 저녁 약속이 더욱 특별하다고 나는 느꼈다. 덤으로, 저녁을 먹고 나면 하나요에게 생일 선물도 줄 겸 내 마음을 고백하려고 마음먹고 있다.
아무튼 각설하고 시험장을 나온 나는, 하나요와 만나기로 약속한 집 근처 일식집으로 향했다.
사실 나는 센터시험 전날에도 돈까스를 먹으러 일식집에 한번 온 적이 있었기에 오늘은 중식이나 양식이 더 땡겼지만, 흰 쌀밥을 그토록 좋아하는 하나요에게 맞춰 주기로 했다. 하나요를 좋아한다면 이 정도는 기본이니까.
약속 장소에 도착할 무렵, 하나요로부터 전화가 왔다.
"코지로, 어디야?"
"응, 여기 요요기공원이니까 거의 다 왔어."
"빨리 와. 난 지금 도착해서 자리 잡아 놨어!"
이런, 한 발 늦었다. 내가 먼저 자리를 잡고 하나요를 맞이해야 하는 건데....
그래도 하나요의 귀여운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놓인다.
이윽고 전철이 내가 내려야 할 역에 도착했고, 나는 내리자마자 전속력으로 뛰어 음식점에 도착했다.
"코지로, 여기야!"
"하나요, 거기 있었구나!"
나는 정말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요랑 같이 자리에 앉았다.
"우리 진짜 오랜만이다. 작년 12월 이후로 첨이지?"
"응! 그동안 잘 지냈어?"
"고3인데 대학입시 준비하느라 바빴지 뭐 ㅋㅋㅋ"
"나도 ㅎㅎ 게다가 난 아이돌 연구부 부장이기도 하니까... 그래도 하나 끝나서 홀가분해!! 아 그리고 네가 지난주에 나한테 수학 가르쳐준 덕분에 나 수학 잘본것같아!! 고마워!!"
"헤헷 뭘 ㅎㅎ;; 잘 본것 같다니까 나도 기쁘다"
"어엇! 얼굴 빨개졌다!"
이런, 들킨 건가? 아직은 때가 아닌데...
하나요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자신이 수학에 가장 약하다고 나에게 털어놓았다. 다른 과목들은 괜찮은데 유독 수학만 안 된다나. 반면에 나는 국어, 그 중에서도 문학을 가장 못했다. 대신 수학은 가장 자신 있었고,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기도 했다. 하나요에게는 국어가 딱 그 포지션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수시로 서로에게 약한 과목에 대해 물어보면서 더더욱 우정을 다졌다. 그리고 나에게 그것은 지금 사랑으로 발전하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너도 나한테 국어 많이 도와줬잖아. 비록 이번 시험은 어려워서 잘 본것 같진 않지만...ㅜㅜ"
"괜찮아! 지금은 잊어버리고 얼른 밥 먹자!"
참 밥순이 하나요다운 말이다.
나는 라멘을 하나 시켰고, 하나요는 카레라이스에 언제나 그랬듯이 공기밥 하나를 추가했다.
"린이 라멘을 참 좋아하던데. 오늘 원래는 린이랑 저녁 약속을 잡으려고 했는데 육상부 일 때문에 못 온대서 널 불렀어."
하나요가 나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하나요의 단짝이었던 린. 하나요의 친구들 중에 오로지 린만이 하나요를 카요찡이라고 부를 정도로 허물없는 사이이다. 나도 중학교 때 하나요를 통해 린을 알게 되었다. 여자애 치고는 꽤나 짧은 머리에 발군의 운동신경을 보여준, 흔히 말하는 보이시한 여자애의 전형이었다. 고1때 하나요가 뮤즈에 들어갈 무렵, 린도 같이 들어갔다는 말을 들을 때, 린에게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과연 린에게 스쿨 아이돌이 어울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해 가을에 Love wing bell 라이브를 보면서부터 이런 생각은 싹 사라졌다.
"린도 안 본지 꽤 됐네. 린은 요새 어떻게 지낸대?"
"뮤즈 해체 이후로 나랑 같이 아이돌 연구부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육상부에서도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어. 학교에서도 준프로급이라고 명성이 자자해. 나같은 몸치가 보면 어떻게 저렇게 뛸 수 있나 할 정도로."
"나도 몸치야 ㅋㅋㅋㅋ 정말 린의 운동신경은 보면 볼수록 부럽다니까"
그렇게 얘기를 하면서 저녁을 먹고 나니 어느새 밤 8시가 다 됐다. 배도 부르니 우리는 근처 요요기 공원에서 산책을 하기로 했다. 마침 오늘은 밤치고는 딱히 춥지도 않아서 산책하기엔 제격이었다.
밤이라 그런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에게는 이게 좋았다. 하나요에게 내 마음을 고백하기엔 조용한 분위기가 딱일 테니까.
요요기 공원에서 산책하면서 나는 어디가 고백하기에 좋을지만을 살펴보고 있었다.
몇 분을 걷다 보니, 이윽고 벤치 하나가 보였다. 마침 하나요가 다리가 아프다고 해서 벤치에 앉아 좀 쉬기로 했다.
하나요에게 생일 선물을 줄 타이밍을 노리며 나는 말을 꺼냈다.
"그러고보니 곧 너 생일이네."
"응! 바로 내일 모레야. 그래서 생일날부터 가족들이랑 오키나와로 여행 가기로 했어."
"와, 좋겠네. 재밌게 놀다 와! 아 그리고, 나도 너 생일이니까 선물을 하나 준비했어."
"우와! 뭔데?"
나는 가방을 뒤져서 고무찰흙으로 빚은 흰 쌀밥 모형을 꺼내 들었다. 이걸 만드느라 센터시험이 코앞인데도 불구하고 보름 가까이 없는 시간을 쪼개야 했다. 그것도 대충 모양만 낸 것이 아니라 밥그릇과 밥알은 최대한 실제 크기로 맞춰서, 하나요가 즐겨 먹는 고봉밥으로 쌓아 올린 것이다. 밥그릇은 하루만에 만들었지만, 나머지 밥알을 빚는 데 거의 2주가 걸렸다. 흰색 고무찰흙이 몇 개나 들었는지는 상상도 가지 않는다. 그리고 센터시험 첫째 날 가까스로 모형을 완성한 후 밥알이 쏟아지지 않도록 랩으로 정성껏 씌워서 오늘 센터시험을 보는 내내 가방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쌀밥 모형을 받아든 하나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와, 이거 네가 직접 만든 거야? 어떡해, 진짜로 먹고 싶어져!"
"실은 나도 점심시간에 내 도시락 대신 그걸 먹을 뻔했어. 다행히 진짜 먹진 않았지만."
"진짜 고마워!! 넌 진짜 내 맘을 잘 알아주는 것 같아!"
이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이 타이밍을 놓치면 안되겠다고 생각할 즈음, 하나요가 다시 말을 꺼냈다.
"있잖아... 코지로..."
"응?"
"나... 정말로... 여기서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하나요의 얼굴에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워낙에 수줍은 성격이라 가끔 나랑 얘기할 때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이긴 했지만, 하나요가 이 정도로 얼굴을 붉힌 적은 중학교 때 처음 만났을 때밖에 없었다. 하나요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좋아하는데.... 좋아하나요...?"
응?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뭐야 이거, 지금 나 고백받은 건가?
낌새를 채긴 했지만, 혹시나 해서 되물었다.
"응? 갑자기 웬 너랑 코토리 누나의 노래 제목을?"
"그게...아니라... 나... 너 좋아하는데.... 너도... 나 좋아하냐고..."
정말 심쿵의 한 마디였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나는 정말 하나요를 좋아하긴 했지만, 하나요도 나를 이성으로서 좋아해 주는 것인지는 확신이 들지 못했다. 그런데, 하나요도, 나랑 똑같은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나도 전례 없이 가슴이 뛰고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응... 정말....좋아하고 있었어..."
그리고 나는 이 때다 하고는 주머니에서, 고2 때 화학 시간에 만든, 겉에 은도금을 한 하트 모양 핸드폰 고리를 하나요에게 건넸다.
"이건... 또 다른 선물이야..."
선물을 받아든 하나요는 눈물이 맺힌 채 그대로 내게로 와서 안겼다.
"고마워.... 이런 나를.... 받아줘서..."
'이런 나를'이라니, 내게 하나요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친구이자, 이제는 연인인데.
그렇게, 오늘은 내 인생 사상 가장 행복한 날이 되었다.
하나요, 생일 축하해.
그리고 사랑해.
앞으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줄게.
-FIN-

설명충 등판: 반쯤 자전적인 팬픽입니다. 초반에 서술한 주인공 코지로와 하나요의 일대기(?)는 실제로 제가 제 첫사랑을 만난 기억을 투영해서 적었습니다. 비록 그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쓰면서 대리만족 하는 것이랄까요. 제 첫사랑도 하나요랑 비슷한 구석이 많았는데, 그래서 제가 하나요에게 그렇게 애착이 가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후반에 나오는 은도금한 하트 모양 핸드폰 고리도 실제로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화학 시간에 만든 겁니다. 만약 첫사랑이 이루어졌으면 그 핸드폰 고리는 첫사랑의 것이 되었겠지만, 그러지 못했으니 제가 4년 넘게 간직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