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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nicola(니콜라) : 패션을 중심으로한, 라이프 스타일 정보 전반을 다루는 잡지. 주요 독자층은 초등학교 고학년생~중학생

*니코모 : 패션지『nicola』에 등장하는 10대 초반~중반의 여성 패션 모델. 「nicola의 전속 모델」. 잡지 내의 표기는 「ニコ㋲」.

*新垣結衣(아라가키 유이) : 오키나와 출신. 88년생. 레프로 소속. 제4회 nicola 모델 오디션 그랑프리. 애칭 각키. 당시 nicola 최다 표지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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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보 유리카

1989년 출생. 나라현 출신. 제6회 nicola 모델 오디션에서 그랑프리를 수상.

nicola 모델 졸업 후에는 모델 뿐만 아니라, 그라비아 아이돌, 탤런트, 성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2009년 차이나쿡 2009 이미지 걸『초대 차이퀸』에 취임.동년, 미스 FLASH 2009 파이널 리스트(*결승 출장자).

2010년 ~ 2012년까지 인터넷 방송『나의 사슴이 이렇게 ○○할 리 없어』를 부정기로 방송하여 화제가 되었다.

성우로서는 현재, 애니메이션 2기 제작이 결정된 스쿨 아이돌 프로젝트『러브라이브!』

9인조 유닛 μ’s에서『코이즈미 하나요』역으로 활동 중.

또한, 테레비 아사히·음악방송「music루TV」내(內) 애니메이션

『완전 지하 아이돌 아카에 쨩(地下すぎアイドルあかえちゃん)』의 페페론폿푸포폰츄미도리카와 역으로 출연 중.


인터뷰 / 宮本英秀 • 水谷美紀

편성 • 글 / 水谷美紀

번역 / 러브라이브 갤러리 화속마도


보이시한 헤어스타일, 페셔너블한 룩, 서글서글하게 웃는 얼굴, 그리고 칸사이 출신 다운 유쾌함.

니코모 시절과 거의 변함이 없는 인상의 쿠보 유리카.

하지만, nicola 졸업 후에도 니코모 시절과 같은 노선을 추구하는 동료 모델들과는 달리,

모델 활동을 계속하면서 그녀가 새로이 택한 것은 그라비아 아이돌의 길.

현재 성우로서 인기가 오르는 등, 니코모에서 활동할 때와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빛나고 있는 쿠보 유리카.

하지만 그녀에게는 몇 번이고 좌절할 뻔한, 의외로 괴로운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과 같이 응모, 혼자만 합격



미야모토 : 니코모 오디션을 보려고 한 계기는 뭐였어?


쿠보 : 그 당시는 모닝구 무스메. 가 정말 유행하고 있어서, 저 뿐만 아니라 주변 애들도 아이돌이 되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친했던 애들하고 같이 니코모 오디션에 응모했던 것이 계기에요. 거기서, 저만 합격을 해버려서.


미즈타니 : 같이 응모한 친구들의 리액션은 어땠지?


쿠보 : 무서웠어요...... 다들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아서(웃음).


미즈타니 : 그건 직설적이었네...... 요즘 애들은 시샘 안 하고 따스하게 응원해준다는 이미지 였는데.


미야모토 : 지방 출신이면 아직 그런 분위기가 있는 건가. 도쿄 출신 모델한테선 그렇다는 말을 들은 적이 그다지 없었는데.


쿠보 : 다 같이 (엽서를) 보냈었는데「나는 보내는거 까먹었으니까」라고 말하는 애도 있었어요.


미야모토 : 저와 유리카는 2차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었죠. (그 때) 확실히 아버님도 오셨고.


쿠보 :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도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셔서, 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오셨죠.


미즈타니 : 부모님께서 응원해주셨구나. 어떤 가정에서 자랐지?


쿠보 : 극히 평범한 가정이에요. 나라의 시골에서, 아버지는 회사원, 어머니는 파트 타이머, 오빠가 두 명. 3남매 중 막내입니다.


미즈타니 : 나라에선 스카우트 될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는데,

어릴 적부터 귀엽다는 말을 듣는 둥, 예능계로 진출하라는 권유를 받은 적은 없었어?


쿠보 : 나라에 있을 때는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적이 없었지만,

숙모님께서 제가 모르는 새에 액터즈 스튜디오에 제 사진을 보내셔서, 1차만 통과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SPEED의 전성시대 였기에.

그런 일도 있어서, 저도 모르게 예능계를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미야모토 : 최종 오디션은 카메라맨이 촬영하는 방식이었는데, 당시엔 어떤 생각이 들었어?


쿠보 : 다들 컬러풀하고 귀여운 의상이었는데, 저 혼자 수수한 의상이었죠.

그래서 아아, 난 이 시점에서 이미 그랑프리 후보 제외겠네,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웃음).

후일 생각해보니, 당시 키가 161cm라 다른 애들보다 키가 컸으니까 차분한 의상을 입게 되었던 것뿐이었는데

「난 별론가봐, 이제 글러먹었어」란 생각을 했죠.


미즈타니 : 역시 혼자 수수한 의상이었다면 '의심암귀'가 되겠죠.


미야모토 : 내 기억 속에서 당시의 유리카는, 호리호리하고 키가 큰 아이였다는 인상이었지.

른 애들은 아직 150cm 될락말락 했으니까.


미즈타니 : 첫 촬영은 어땠어? 어떤 페이지였었지.


쿠보 : 첫 촬영 때도 아버지가 데려다 주셨었죠. 확실히, 헤어 특집 페이지였어요.


미야모토 : 신인이라면 포즈 잡는 것이 익숙치 않으니 바스트 업 페이지가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쿠보 : 저는 긴장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마이페이스로「어째서 우리 딸을 고른거죠?」라면서, 편집자 분께 묻기도 했었어요.

그랬더니「그건 말이죠...... 일단, 발목이 가는데다......」라고 답했는데, 오늘 우리 딸, 발은 안 찍는거 같은데요? 이러고 (웃음)


미야모토 : 좀 더 (이유를) 잘 말했다면 좋았을텐데. 여튼, 니코모로 활동해 본 뒤 어땠어?


쿠보 : 팬인 여자애들이 꺅꺅거리는 것에 놀랐어요. 니코모 때 제일 팬 레터를 많이 받았었죠(웃음). 매주 엄청난 양이 도착했어요.

자신의 마음을 가득 담은 편지라든지, 제 이름만 쓴 심플한 편지라든지......어쨌든 그 수가 엄청나서.

저는 니코모에 많이 실리지 않는 편인데도 그만큼 받았어요.

대부분이 동년배나 조금 어린 여자애들이 보낸거라, 그런 면에서도 기뻤죠.


미즈타니 : 촬영 현장은 어땠어? 금방 익숙해졌어?


쿠보 : 의외로 바로 익숙해졌어요. 다른 분들과도 금방 친해졌고요. 이 시절엔 정말로 아무런 고민도 없었어요.

와-이, 촬영이다, 예이-! 같은 느낌. 도쿄에 오는 것도 즐거웠고요.

「칸토의 우동은 국물이 진하군요!」라기도 하고(웃음). 낯가림도 없이 천진난만 했었죠.


미야모토 : 오디션에 합격한 것 만으로도 시샘을 하던 학교의 친구들과는 그 이후에 어땠어? 잡지에 실리고 나니 더 심해졌다던가?


코보 : 변함없이 무서웠어요(웃음). 주말에 촬영을 가서, 월요일에 학교에 가면「촬영 어땠어??」라면서 물어요.

그래서 마지못해「후지 테레비에 갔었어」라고.

묻는 것에 답했을 뿐인데도 뒤에서「후지 테레비에 갔었다고 자랑했어」라고 하는 둥.


미즈타니 : 진짜 그런 애가 있구나......


쿠보 : 선배들이 불러 내기도 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귀여운 수준이지만, 당시는 중학생이었으니까 무서웠었죠.

「요즘 nicola는 말야, 끈으로 묶여있어서 서서 읽을 수가 없잖아」라기도 하고. 그거, 내 책임이 아니잖아(웃음).


미즈타니 : 흠을 잡을 곳이 없으니까 끈인가! (웃음). 정말이지 중학생다운 어린애 같은 괴롭힘이지만, 당시엔 힘들었겠지.


쿠보 : 그런 일이 계속되니까, 성격도 조금 바뀌었죠. 천진난만, 예이-! 거리는 애가 아니게 되버렸다고 할까......

이제 학교에서의 인간관계로 끙끙 앓는 건 싫어, 여기서 열심히 해도 별 소용이 없구나 같은 생각을 하게 되어서.

사귀는 친구도 자연스레 달라졌었죠. 그 전까지는 의외로, 반에서 눈에 띄는, 흔히 말하는 잘 나가는 팀에 속해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괴롭힘을 당한다면 사귈 필요가 없겠다 싶어서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주위에 휩쓸리지 않는,

가 모델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별 말이 없는 마이페이스인 친구와 사귀게 되었죠. 실제로, 그렇게 한 이 후로 꽤나 편해졌고요.


미야모토 : 남자 애들의 반응은 어땠어?


쿠보 : 잘 나가는 팀에서 나온 순간, 쌀쌀맞더군요(웃음). 잘 나가는 팀이 아니니까 가치가 없어, 같은 느낌으로.

그렇지만 그런 것을 중학교 때 알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모델이 되었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대단해, 같은 착각을 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미즈타니 : 그런 만큼 nicola가 '거처'가 되었다는 건가.


쿠보 : 그렇네요. 하지만 그것도 처음 뿐이었어요. 니코모로 선택된 해엔 촬영이 많았지만,

배가 들어오니, 점점 그 수도 줄어들어 학교, 직장 모두 거처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져서. 이 때가 제일 힘들었네요......


미야모토 : 매번 말하는 거지만, 나도 그 부분이 괴로워. 니코모로 선택된 이상, 책임이 있어.

하지만 모두를 평등하게 (잡지에) 실어야 하는거냐 한다면, 그것도 무른 행동이지.

어떤 면에서는 인기 차이가 얼마나 심한 지를 보여줘야 하는데다가,

좋은 일만 있는건 아니란 것을 알려줄 셈이었겠지만. 꽤나 어려웠어.

애초에 유리카의 세대는 각키의 인기가 엄청나서 다른 애들이 활약할 수가 없었지. 그 전 세대도 잘 안 실렸어.

니코모가 많아진 것도 관계있는데다가. 초기에는 니코모 자체도 적었는데 유리카 때 쯤에는 니코모가 많아져서,

유리카가 인기가 없었다기보다, 정말 인기가 있는 애가 아닌 이상 대개 (잡지에) 실리지 않게 됐지.


쿠보 : 극 초기 시절에는 권두에도 실렸으니까 슬펐어요. 중2 쯤에는 나올 기회도 많이 줄어들어서, 졸업식도 못했어요.


미야모토 : 미안해.



니코모 졸업후는 고향에서 진학

차츰 상경을 생각하게 돼



미즈타니 : 그 후 진로는 어땠어? 고향에 있는 고등학교로?


쿠보 : 네. 그 땐 모델 일을 계속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사무소에서도 결정하라고 해서.


미야모토 : 특히 지방에 있으면 다른 일이나 오디션을 볼 기회도 없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사무소 입장에서도 큰 고민이었지.


쿠보 : 각키와 같은 사무소 소속이었는데, 마침 그녀가 잘 나가기 시작한 때라서 사무소는 각키 일색.

그런 상황이라서 일도 없는데 갑자기 상경해도 소용이 없으니까, 그럼 일단 고향에 있는 고교로 진학하겠습니다 라는 느낌으로.

그 이후에도 오디션에는 가끔 불려갔지만, 역시 그 횟수가 적어서.

그래서 고향에 있었던 시절 저는,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모델 일도 순조롭지 않은데다가, 학교에 다니는 보람도 느끼지 못했으니, 왠지 머릿 속이 새하얘져서......

결국 그런 식이었으니까, 고교시절의 추억도 전혀 없어요.


미즈타니 : '모델 이상의 (어떤)것' 을 고교에서 찾지 못했었구나...... 그래도 오디션이나 일은 있었나보네.


쿠보 : 오디션 제의는 가끔 들어오는 느낌이었어요.

게다가 저에게 맞는 일이라기보다, 어쨌든 다양한 모델을 많이 보내서 그 중에서 누군가 한 명 합격하면 럭키, 라는 내용 뿐이었어요.

그래서 전혀 합격도 못하고. 교통비는 자가 지참이라서 큰일이었죠.

그 시절은 너무 괴로워서 그런지, 거의 기억에 없어요(웃음).


미야모토 : 그 시절, 잘 나가고 있는 동년배의 모델을 잡지나 TV에서 보고선 어떤 생각이 들었어? 부럽다라든가, 샘난다든가.


쿠보 : 어느 쪽도 아니었어요.

뭐라고 할까, 오히려 나 자신은 애초에 이런 식으로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난 애초에 웃는 얼굴로 모두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타입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모델 일도 들어오지 않는 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고...... 네거티브한 방향으로 납득해버렸었죠.


미즈타니 : nicola에 실리던 시절에는 완전히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타입의 모델이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미야모토 : 실은 유리카한테 꽤 기대하고 있었어. 그래서 처음에는 나올 기회도 많았었다고 생각해.


쿠보 : 그렇네요. 그렇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때 저, 갑자기 엄청 살쪘었죠. 저뿐만 아니라, 동기 애들도 갑자기 그래서.


미야모토 : 그 나이대에는 다들 그렇지만, 유리카는 지방에 있어서 좀처럼 만나지 못했던 만큼, 만났던 때「어, 살 많이 쪘네」란 인상이 계속 이어지니까 불리했지. 모델을 누구로 할 지 생각할 때 자주 만나는 모델이라면 저렇게나 살을 빼왔으니까 괜찮겠지란 생각이 들겠지만, 유리카는 살쪘다는 인상 그대로니까 조금 상황을 지켜보자...... 같은 식으로 흘러가는 일도 많았을지 모르겠네.


미즈타니 : 고등학교는 어떤 학교였어? 학생 생활은 즐겼어?


쿠보 : 고등학교는 중학 시절의 동급생이 아무도 없는 곳을 골라서 진학했죠.

학교에서도 제가 니코모였다는 것을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고, 사무소에 속해있다는 것도 일절 말하지 않았어요.

말한다면 또 중학교 때처럼 될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학교는, 혹시 이대로 모델 일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떤 기술을 익히는 편이 좋겠다 싶어서 간호학을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선택했었죠. 졸업하면 홈 헬퍼 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학교요.

그 시절, 어머니께서 할머니를 간병하고 있어서, 제가 자격증을 따면 할머니를 간병해 줄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랬던 할머니도 제가 고1 때 돌아가셔서,「난 왜 이 학교에 왔던거지?」하고.

게다가 그 학교 갸루(날라리) 뿐이어서, 또 친해지기 어려워서... (웃음)


미야모토 : 모델 일도 없고, 가정사도 그러면 꽤 힘들었겠네.


쿠보 : 그래도 상경의 계기는 되었습니다. 마침 그 때, 제 소속사에서 큰 기숙사를 만들었거든요.

집세도 광열비(전등, 연료비)도 자가 지불이지만, 그래도 살 수 있는 곳이 도쿄에 생기니까 상경하기로 했어요.

매니저도「오는게 어때?」라고 해주고. 오히려 이제서야 운이 따라주는구나 싶었죠.

부모님께서도 기숙사라면 안심이라면서 흔쾌히 보내주셨어요.



일대 결심하여, 17세에 단신 상경.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델 생활



미야모토 : 상경은 몇 살 때? 기숙사 생활은 어떤 느낌이었어?


쿠보 : 딱 17살일 때네요.

기숙사에선 대학을 다니면서 모델을 하고 있는 연상인 언니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모델을 하고 있는 연하인 애들 2명이랑

3LDK(3 Living-Dining-Kitchen)에서 4명이서 살게 되었어요.

저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막간에 오디션도 다니고 일도 나가면서 생활했어요.


미즈타니 : 꽤나 큰 결심을 하고 상경했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잘 풀렸어?


쿠보 : 상경했을 때 이건 최후의 도박이라며, 꽤나 머리를 싸맨 느낌이었어요.

그렇지만, 모처럼 상경했는데, 역시 그다지 생각한 만큼은 일을 못 따내서......

아르바이트가 없을 때는 기숙사에서 게임을 하면서 보내는 경우가 많아서 많이 우울했었죠.


미즈타니 : 지금 유리카 쨩의 룩을 보면, 그 시절에 일이나 오디션 제의가 없었다는 건 조금 믿겨지지 않네......

그런 우울한 마음이 룩에도 드러났었을지.


쿠보 : 그 때는 더 이상 살이 찌면 안됐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일이 없었죠(웃음).

무얼 위해서 상경한 거지, 나는 도대체 뭘하고 싶은 거지 라며 점점 코너에 몰렸죠.

그 시절엔 하루하루가 괴로워서, 어머니께 자주 전화를 했었어요. 맨션의 깜깜한 게스트 룸에서 혼자서 울었던 적도 있었어요.


미야모토 : 그 시절에 의지가 되는 친구라든지 남친이라든지 없었어?


쿠보 : 기숙사 통금 시간이 무려 5시였어요(웃음).

그래서 달리 친구를 만든다든지, 밤놀이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일 같은 건 전혀 불가능했죠.

사무소 입장에서는 모델다운 생활을 보내도록 하기 위해서 통금시간을 그렇게 설정한 것이라, 그건 정말 좋은 의도라 생각하지만

모델 일도 없고 아르바이트만 하는 저에겐 가혹했죠.


미즈타니 : 잘도 혼자서 버텼구나...... 어머니가 힘이 되어주셔서 다행이군.


쿠보 : 네. 그 시절에는 어머니와의 전화가 유일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너무 힘들어서 통금시간을 어겨버렸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성년자라 술을 마시러 간다든지, 밤놀이를 가진 않았죠. 단지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멍하니 있었을 뿐(웃음).

공원 벤치에 앉아서,「아아, 통금 어겨버렸네. 이걸로 이제 사무소에서 짤리겠지.」

그래서, 이런 상태로는 더 이상 도쿄에 있을 수 없다 싶어서, 일단 나라에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좌절하여 귀성했지만,

그라비아 아이돌로서 부활



미야모토 : 나라에 돌아가버렸구나......


미즈타니 : 어? 그래도 지금은 도쿄에 있지?


쿠보 : 네(웃음). 그게 정말 신기하다고 할지, 뭐라 할지...... 저는 항상 아슬아슬한 시점에서 운이 좋은 걸지도 몰라요.

사무소도 그만두고, 기숙사도 떠나고, 나라로 돌아와서 잠시동안은 혼이 나간 사람처럼 살았어요.

물론 모델의 길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잠시동안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나라에서 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조용히 살았습니다.

그러고 있었는데 그 해에 마침, 5살 연상인 오빠가 취업 때문에 상경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빠는 원래 애향심이 강한 사람이라 처음부터 도쿄에서의 생활이 싫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도쿄에 있는 집을 떠날 때 모처럼 사놨던 가재도구는 어떡하지...... 라길래,

그 때 마침 귀성하기 전에 우연히 저를 스카우트한 사무소에서

우리 사무소에서 다시 한 번 모델을 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이 들어왔었죠.


미야모토 : 엄청난 타이밍이네.


쿠보 : 정말요. 그 때 연락이 오지 않았다면 지금도 나라에서 프리터로 살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웃음).

귀성해서 조금 정신적으로도 회복된데다가, 역시 모델 일을 계속하고 싶어.

딱 18살이 되었기에, 이게 진짜로 마지막 찬스라고 생각하며 오빠의 가재일습을 물려받고,

재상경하여 이번에는 기숙사 생활이 아닌 자취 생활을 했습니다.


미야모토 : 그 사무소에서 그라비아 일을 시작했어?


쿠보 : 그렇습니다. 그 곳은 여자애 3명 뿐인 작은 사무소로,

처음엔 지금까지와 같은 노선의 모델을 하기 위해 워킹 레슨 같은 것도 받았지만, 별 득이 없어서.

그러면 그라비아를 해보면 어떨까? 란 쪽으로 흘러가서. 니코모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노선이었지만, 도전해보게 되었습니다.


미야모토 : 풍문으로 유리카가 그라비아 모델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처음엔 놀랐지만,

실은 가슴이 없는 소녀체형인 애들이 많았던 니코모 중에서 유리카는 인상과는 다르게 정말 그라비아모델에 알맞은 체형이었으니까,

과연 그렇군 하면서 납득했어. 그땐 확실히 예명으로 활동했었지.


쿠보 : 네. 나라하라 유리카라는 이름으로 다시 데뷔했었죠.


미야모토 : 거기서 드디어 붐을 일으켰지.


쿠보 : 네. 처음으로 발매한 DVD를 많은 분들께서 봐주신 모양이라, 그 덕에 여러 잡지에 실리게 되었죠.

니코모를 졸업한 이래로, 그렇게 많이 실린 적은 없었기에 기뻤어요.


미즈타니 : 팬층도 완전 달라지지 않았어? 어떻게 생각했어?


쿠보 : 와, 정말로 놀랐어요. 그전까지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여자애들이 꺅꺅거렸는데, 이번에는 남자, 게다가 성인 남성 뿐(웃음).

제 차림새가 girly(소녀스러운)한 패션에서 수영복으로 변신한 것이니까 당연하겠지만, 왠지 그 차이도 재미있었어요.



모델, 그라비아, 여배우, 성우...

다양한 가능성에 도전



미야모토 : 어떤 의미로는, 니코모 시절의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으로부터 성공할 수 있었구나.


쿠보 : 그렇네요. 니코모 출신 중에서 본격적인 그라비아 모델을 하고 있는 사람은 제가 유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일찍이 그랬었지만, 니코모에서 어른 모델이 되려고 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던 애들도 많았었던 것 같아요.

저는 니코모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또다른 길을 하나씩 알게 되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미야모토 : 니코모가 그라비아를 한다는 것은, 당시에는 꽤나 상상이 안 가서 복잡한 기분도 들었지만

니코모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서, 거기서 벽에 부닥치고, 어떻게 해서든 이겨내주었으면 한다는 마음이었지.


미즈타니 : teen지의 모델을 하던 애들의 대부분이 어른 모델이 되지 못하고 좌절하지만,

고민하면서 자력으로 이겨냈기에 지금이 있는거겠지.


쿠보 : 네. 막 20살을 조금 넘었으니까, 지금의 노선에 접어들었죠.

DVD를 내고, 수영복을 입고 촬영하는 일도 늘고,『SPA!』의 그라비안 혼에 나가기도 하고.

오디션에 응시해서 성우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것도 이 쯤이네요.

애니메이션『러브라이브!』의 코이즈미 하나요 역은 작품·역 모두 은혜로워서, 그 이후로 다양한 성우 일이 들어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야모토 : 유리카는 니코모 시절부터 '애니메이션 목소리' 같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그게 성우 까지 이어지다니 정말 잘됐네.

그 이후론 계속 순조로웠어?


쿠보 : 실은 그렇지도 않았어요...... 사무소가 바뀌기도 하고, 다양한 일이 부담이 되어,

사실은 그 시절에도 한 번, 이 업계를 그만둘지 고민한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역시 그 타이밍에, 이번엔 ZOZOTOWN의 레귤러 모델로 발탁되었어요.

그것이 마음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여겨져서, 일을 계속할 수 있었죠.

원래 니코모 였으니까, 양복을 입는 일은 좋아해요.

그라비아 일도 성우 일도 즐겁지만,

자신의 루트라고도 말할 수 있는 패션계의 일이 없으면 슬플거라고 생각했기에 정말로 기뻤어요.

사실 저는 항상「이제 글렀어」라고 생각할 때쯤, 찬스가 찾아와요(웃음).


미야모토 : 지금은 쿠보 유리카라는 이름으로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있지. 모델로서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것 같던데?


쿠보 유리카 : 네. 해외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디지털 포토 그래퍼인 Julie Watai 씨의 모델로서

월간 후지에 실리기도 하고, 지금까지 없었던 그라비아 촬영을 콜라보레이션하고 있어요.


미즈타니 : 지금까지의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지만, 점점 사정이 나아졌구나. 지금까지를 되돌아보면 어때?


쿠보 유리카 : 사실은 저, 니코모 오디션에도 정말 아슬아슬하게 나왔어요.

서류를 보내는 걸 깜빡해서 곧 마감일인데 잘 도착할까? 싶은 타이밍에 보냈더니, 합격해서 니코모가 될 수 있었죠.

모델로서 잘 풀리지 않았을 시절,

어머니께서「그 때 그대로 내지 않았더라면, 이렇게나 고민할 일도 없었을텐데......」같은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역시 저는 니코모가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지금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니코모 시절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여기기에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니코모 시절의, 아무런 고민도 걱정도 없었던 반짝이던 나날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노력해올 수 있었던 거니까.


미야모토 : 정말 잘해줬어. 니코모 출신 중 예능계에서 활동을 계속해 온 사람들 중에서도, 유리카처럼 우여곡절이 많았던 사람은 없을지도 몰라. 그런 가운데, 새로운 길을 찾아서 자력으로 극복하고, 지금은 프리랜서로서 어엿하게 활동하고 있으니,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건 그렇고, 유리카에게 있어서 가족이라는 버팀목의 존재는 컸구나.


쿠보 : 정말 그래요. 지금까지, 몇 번이고 이젠 글렀어 싶은 때가 있었지만, 꼭 아슬한 시점에서 어떻게든 고비를 넘겨왔어요.

그 때 항상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 가족입니다만, 특히 항상 전화로 격려해준 어머니의 힘이 컸어요.

어머니께서 안 계셨더라면 지금까지 올 수 없었을 거에요.

이제부터는 걱정 끼쳐드리지 않고, 많이 웃고, 좋은 일을 많이 하면서, 안심시켜 드리고 싶어요.

 

출처 : 루리웹(http://bbs1.ruliweb.daum.net/gaia/do/ruliweb/detail/etc/read?articleId=7454706&objCate1=&bbsId=G001&searchKey=subjectNcontent&itemGroupId=&itemId=81035&sortKey=depth&searchValue=%EC%97%BD%EC%84%9C&platformId=&pageIndex=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