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다 제국의 기반은 한조와 겐지, 두 형제의 아버지가 튼튼하게 다져놓았다. 시마다 제국을 견제할 조직은 이 땅에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이 악의 조직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중책은 큰 부담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한조는 그 짐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다. 거대한 수레를 밀고 있는 자신의 등 뒤를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가진 동생이
밀어준다면 그보다 더 든든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넌 어찌 그 모양이냐."

 

 하지만 동생은 사실상 한량이나 다름없었다. 오래 전부터 꾸준히 얘기를 해왔지만, 형은 물론이고 장로들의 뜻에도 따를
생각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악의 조직이라는 굴레에 신물을 느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책임을 회피한 채 유유자적, 편한 삶을 누리겠다는 안일할 정신으로 무장돼 있었다.

 

 한조는 수차례나 설득에 나섰으나, 이 견고한 정신 무장은 뚫을 수가 없었다.

 

  "형이 있는데 내가 뭣하러 그런 일을 해야 하지?"

 

 저렇듯 철없는 동생의 뻔뻔한 태도를 넘어가는 것도 이제는 한계에 달했다. 한조의 어조에는 분노가 서렸다.

 

  "너는 시마다 제국을 다스리는 위대한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명감을 갖고 행동해라!"

 

 그러나 그 모습을 태연히 바라보는 동생의 얼굴에는 언뜻 혐오감까지 비추고 있었다.

 

  "싫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거다."

 

  "... 그렇면 억지로라도 널 돌려놓겠다."

 

 한조는 굳은 얼굴로 검을 빼들었다. 물론 겐지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형이 한 발자국 걸음을 때었을 때,
그러니까 살기 가득한 얼굴로 검끝을 자신에게 겨눌 때가 돼서야 지금의 형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만둬."

 

  "그만둬야 할 건 너다, 겐지!"

 

 캉!

 쇳소리가 울리며 면전에서 불똥이 튀었다.

 

  "야이 미친 자식아-!!"

 

 황급히 휴대하고 있던 검을 빼들어 형의 공격을 막아낸 겐지는 당혹감에 물들어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한조는
간격을 내주지 않았다.

 날카롭게 벼려진 검이 겐지의 어깨를 노리고 한 번.
  깡!
 그리고 반탄력을 이용해 우측으로 밀려나더니, 이번에는 아래에서 얼굴을 노리고 한 번 날아들었다.

 

  "으악!"

 

 겐지는 한조의 맹공에 반격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다가, 하마터면 얼굴을 가를 뻔한 검의 궤적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껏 태연한 모습으로 수많은 인간의 생명을 거둔 겐지의 얼굴이 보기 드물게 새파랗게 물들었다.

 

  "진짜 돌았냐?"

 

 한조는 대답 없이 검을 들어 찌르기로 공격했다.
  챙!
 날카로운 일격을 사나운 기세로 걷어낸 겐지의 얼굴에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서려있었다.

 

  "죽일 거다-!"

 

 유려한 곡선을 뽐내며 광기를 발하는 카타나가 한조의 품을 파고들었다. 한조는 능숙하게 그 공격을 흘려내며 거리를 벌렸다.

 겐지는 거리를 좁히려 달려들었으나, 한조가 그보다 더 잽싸게 검을 집어넣고는 소지하고 있는 수리검을 꺼내 일제히 뿌렸다.

 겐지는 코웃음을 흘리며 그중 몇 개를 쳐내고, 몇 개는 몸을 틀어 피했다.

 한조는 무심한 얼굴로 좁혀지는 간격을 보고 있다가 다시 검을 꺼내 들어 공격할 자세를 취했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뒤쪽으로 높이 치솟은 검이 겐지의 급소를 노리며 차갑게 빛을 발했다.  

 

 

 

 (한조는 원래 활은 물론 검도 능숙하게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동생을 죽이고 나서 죄책감에 시달리더니 검을 사용하지 않게 됐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