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바일로 보시는 것이 가독성이 더 좋습니다.
- 습관상 줄글로 쓰는 것이 익숙하여 PC버전에서 읽으실 때는 불편함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 이 글은 오버워치 영웅 '시마다 겐지'의 배경 스토리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쓴 글입니다. 겐지의 어린 시절부터 시네마틱 트레일러 '용'의 시점까지를 다룰 예정입니다.
- 타 사이트로의 무단 스크랩과 도용을 금합니다.


*


"형, 형! 이것 좀 봐봐!"

어린 겐지가 두 볼이 잔뜩 상기된 채 고사리 같은 손 안에 무언가를 소중히 품고 한조에게 달려왔다. 선선한 봄바람이 불자 겐지의 숱 많은 까만 머리카락 틈에서 연분홍빛 벚꽃잎이 한 장 떨어진다. 활 쏘기 연습을 하랬더니 필시 또 성의 뒤뜰에 가서 나무를 타고 놀았던 것이 분명하다. 한조는 고개를 저으며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이번엔 또 뭘 발견했니?"

"이것 봐! 하나무라에서 이런 새를 본 적이 있어?"

겐지가 발견한 것은 아주 작은 새 한 마리였다. 검정색 바탕에 회색 무늬가 들어간 깃털을 한 그 새는 겐지의 두 손 안에서 명랑하게 지저귀고 있었다. 겐지는 갈색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신이 난 목소리로 한조에게 물었다.

"귀엽지? 형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래, 귀엽구나. 이제 그 새는 날려주고 하던 연습이나 마저 하는 건 어때?"

그러자 겐지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실룩거렸다.

"오전에도 많이 했잖아. 오늘은 일요일인데 나도 좀 쉬면 안 돼?"

"어른들 말씀 기억 안 나? 넌 일족의 미래야. 너와 내가 수련을 게을리 하면 할 수록 아버지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아버지께서는 내가 일요일 오후를 좀 즐긴다고 해서 나무라실 분이 아니신걸."

한조는 동생을 쳐다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아버지는 언제나 겐지를 감싸주셨다. 시마다 일족의 수장이자 외부 세계에서는 공포의 대상으로까지 인식되는 막강한 아버지였지만, 아버지는 겐지에게는 늘 자애로운 모습만 보여주셨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아마도 겐지가 세 살도 채 되지 않았을 적에 어머니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가여운 겐지에게 어머니 몫의 사랑까지 베풀어 주고 싶으신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일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아버지께서는 한조에게는 장남이자 시마다 일족의 계승자로서의 책임감을 늘 강조하셨지만, 겐지는 늘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겐지가 막 아홉 살이 되었던 4년 전, 한번은 수련 시간에 몰래 하나무라 성 밖으로 빠져나가 오락실에서 또래 아이들과 시비가 붙어 크게 싸우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동생을 찾으러 나갔던 한조는 아버지 앞으로 겐지를 끌고 갔다. 한조는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으라고 하려 했으나, 겐지는 천연덕스럽게 웃어 보이며 '그래도 제가 이겼어요, 아버지!'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껄껄 웃으면서 겐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고, 결국 잔뜩 골이 난 한조가 겐지에게 따로 훈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겐지가 마냥 게으르기만 한 아이는 아니었다. 겐지는 활쏘기는 지루하다며 싫어했지만, 검술은 유달리 좋아했기에 그 시간만큼은 수련에 엄청나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언젠가는 형보다 꼭 뛰어난 검객이 되겠다는 것이 겐지의 다짐이었다. 하지만 그 외의 수련이나 공부는 겐지에게 너무나 따분한 것들이었다. 때문에 지금처럼 하나무라의 뒤뜰에 가서 나무를 타고 놀거나 주방의 음식들을 훔쳐 먹거나 몰래 성 밖의 오락실에 가는 게 다반사였다.

"아무리 네 편인 아버지라고 해도, 네가 전혀 발전이 없으면 호되게 나무라실거야. 자, 가서 같이 연습하자."

"치..."

겐지는 잔뜩 풀이 죽은 채로 일어서서 손에 올려놨던 작은 새를 창문 밖으로 날려 주었다. 새는 즐거운 듯 지절거리며 물빛 하늘로 날개를 펴고 날아갔다. 겐지는 날아가는 새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새가 될 거야. 저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가고 싶은 곳에 마음껏 가고, 그렇게 자유로운 내가 될래."

"하, 거의 매일 같이 마음대로 수련을 빼먹는 천하의 시마다 겐지님이 지금은 자유롭지 않으신가보지?"

"그런 뜻이 아니야."

"그러면 뭔데?"

"나도 학교에 가서 친구들도 사귀고, 방과후에는 부활동도 해보고 싶고, 학교 앞에서 친구들이랑 타코야키도 사 먹고, 오락실에서 신나게 놀다가 집에 오고 싶어."

한조는 겐지의 말에 멈칫했다. 시마다 일족의 후계자였던 형제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하나무라의 성 안에서 개인 교습을 받았다. 때문에 간혹 형제가 오락실에 갈 때 만나는 얼굴만 아는 동네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또래 아이들 중 아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한조는 그런 것쯤은 별로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무라의 성 안에서, 시마다 일족의 후계자로서 한조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족함 없이 안전한 이곳에서 지낼 수 있는데 아쉬울 것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무엇보다도 시마다 일족의 일원이자 미래의 후계자라는 것은 한조의 자긍심이었기에 그는 자신의 삶에 만족했다.

하지만 겐지는 늘 또래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학교에 가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투정을 부리는 일이 잦았다. 겐지에게 언제나 너그러운 아버지도 학교에 가는 것만은 금지하셨기에, 겐지는 더 이상 떼를 쓸 수 없었지만 언제나 자기 또래의 평범한 아이들의 삶을 동경하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한조는 후계자로서의 너의 입지를 생각하라며 겐지에게 훈수를 두었지만, 겐지의 마음이 아예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한조마저도 겐지가 평범한 집안의 평범한 아이로 태어났다면 훨씬 행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했으니 말이다.

"겐지, 한 마리 위풍당당한 용으로서 살아갈지 아니면 보잘것 없는 뱀으로 삶을 마감할지는 너의 선택에 달려 있는거야."

한조가 겐지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겐지는 방 바닥에 철푸덕 누워 기지개를 키고는 멍하니 벽에 걸린 대나무 그림이 그려진 족자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용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용을 부리는 거, 생각보다 어렵더라."

대대로 이어져 오는 시마다 일족의 특별한 힘, 그것은 바로 용을 소환할 수 있는 것이다. 일정한 나이가 지나고 일정한 만큼 수련을 쌓으면 일족의 후계자들은 용을 다루는 힘에 눈을 뜨게 된다. 한조는 여덟 살 적에 처음으로 푸른 빛의 용을 소환할 줄 알게 되었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상당히 익숙하게 용을 부릴 수 있었다. 겐지는 한조보다 많이 느렸다. 겐지가 처음 초록빛 용을 소환했던 건 올해 정월 초였다.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바로 기절해버렸던 겐지는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용을 소환하려 하지 않았다.

"형은 좋겠다. 용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고."

"......."

"나도 형처럼 되고 싶은데... 검술이나 체력 훈련이랑은 다르더라구."

"겐지."

"그게... 사실은 잘 모르겠어. 용을 소환할 때는 뭔가 뜨거운게 내 몸 속에서 마구잡이로 치받쳐 올라오는 느낌인데, 그걸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 또 다시 불러냈다가 감당하지 못하고 정신을 잃을 것 같아서 두렵기도 하고..."

오랜만에 보는 근심에 찬 겐지의 표정에 한조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이제 겐지는 열 세살 생일을 앞두고 있었고 그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일족의 어른들은 겐지에게 더욱 더 책임감을 요구할 것이다. 워낙 자유분방한 탓에 눈총을 받고 있는 겐지인데, 용을 부리는 일족 고유의 능력마저 뒤떨어진다면 그 때 겐지가 받게 될 비난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 분명했다. 한조는 조금 머뭇거리다 겐지에게 나지막하게 말을 건넸다.

"아버지께서는 늘 요행을 바라지 말고, 두려움에 떨지 말라고 하셨어. 조금만 더 수련을 쌓으면 너도 시마다 일족의 후계자답게 자유자재로 용을 부릴 수 있게 될 거야."

한조의 말에 겐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 한조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그렇게 될까?"

"그럼, 당연하지. 형이 도와줄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러자 겐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조를 힘차게 끌어안으며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쾌활하게 말했다.

"역시 형밖에 없어! 형이 도와준다면 나, 좀 더 용기 낼 수 있을 것 같아. 아버지 앞에서 멋지게 용을 부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 도와줄거지?"

"그래, 그래. 넌 얼마든지 할 수 있어. 형이 널 믿고 있으니까."

"고마워, 형. 형의 동생이라서 정말 다행이야"

2051년 4월, 찬란했던 그 시간속에서 형제는 미치도록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