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공기가 사정없이 사람들의 안면과 피부를 할퀴려드는 초겨울의 동래구.

 부산광역시에서도 눈에 띄게 중산층의 비율이 높은 이 지역의 특성상, 유독 눈에 띄는 직군에 종사하는 시민은 보기 드문 편이다. 대다수의 가정이 40~50대 부부와 학생 자녀로 이루어져있으며 점차 들어서는 고층 아파트에 밀린 단독 주택들이 한편으로 조금씩 밀려나고 있는 와중에, 이 평범하고도 느긋한 흐름에서 한 발짝 벗어난 사람들 또한 소수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크래프트 6 프로게임단, ‘플래시 스톰’의 아담한 3층 숙소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는 이우혁 감독과 그 소속 선수들도 이 몇 안 되는 사례에 속할 것이다.


 “두성아!”

 아침 댓바람부터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협소한 숙소 실내를 뒤흔든다. 뒤이어 목소리의 주인이 진한 구레나룻과 더러운 수염자국을 내보이며 민소매 런닝 차림으로 어슬렁거리자, 황급함이 엿보이는 발소리의 젊은 주인이 그를 맞았다. 짧은 곱슬머리에 깊은 연갈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청년이다. 잠에서 깬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부스스한 모양새다.

 “네, 감독님!”
 “지금이 몇 시냐?”
 “……9시 46분입니다.”

 면목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하는 플래시 스톰 선수단의 주장 황두성. 그러자 감독 우혁의 미간이 살짝 좁아진다.

 “일요일엔 몇 시에 깨우랬지?”
 “8시입니다.”
 “늦은 이유를 말씀해보실까?”
 “죄송합니다. 덩달아 늦잠을 자버리는 바람에요.”
 “8명이나 되는 애들이 전부?”

 우혁은 미심쩍은 듯이 두성을 째려보다가,

 “거 이상하군. 일주일에 한번밖에 없는 자유 시간 버리기 아까워서라도 일찍 일어날 텐데.”
 “아, 그게……. 한 명 빼고는 아직 잠자리에 있습니다.”

 그러자 우혁은 그 한 명이 누군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혀를 쯧쯧 찼다. 플래시 스톰의 홍일점이자 막내, 그 망할 년의 골칫덩이가 또?

 “송하나, 이 녀석.”
 “죄송합니다. 관리를 잘 했어야 하는데.”

 두성은 자라목이 돼서 거듭 잘못을 빌었지만 의외로 우혁은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뭐, 사고만 치지 않으면 됐다. 기껏해야 저번처럼 번화가에 가서 사비로 개인 사인회를 연다던지 그러겠지. 일단 연락 걸어서 현재 위치부터 알아 봐.”
 “그러면 좋겠습니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어서.”
 “뭔데?”

 두성은 쭈뼛거리며 품에 감춘 스마트폰 하나를 꺼내보였다. 케이스에 선명히 박힌 분홍색 토끼 문양이 그 주인을 알려주고 있다.

 “숙실에 두고 갔더군요. 저도 방금 나오면서 발견한 거라서,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 이러언…….”

 드디어 우혁의 이마 한 구석에서 힘줄이 잔뜩 불거져 튀어나올 듯이 꿈틀댄다.

 “송하나아아아아―!!!!!”




 “으아, 귀 간지러워!”

 한 소녀가 난데없이 오른손 검지로 귀를 후벼 파면서 짜증을 냈다. 아름다운 웨이브의 밤색 생머리와 약간 세모나게 각진 눈, 고양이상의 얼굴을 한 미소녀로 한껏 꾸미면 아이돌로 활동해도 손색이 없을 외모가 돋보인다.

 “또 누가 내 얘기를 하나? 보나마나 감독님이겠지, 뭐.”

 우혁의 험상궂은 얼굴을 떠올리며 입을 삐죽 내민 채 혼잣말로 툴툴대는 소녀. 플래시 스톰의 에이스이자 무려 3년 전부터 세계 챔피언의 왕좌를 4연속 차지했고 지금까지 그 커리어가 이어지고 있는 자타공인 스타크래프트 6 최고의 프로게이머, 해외에선 닉네임 ‘D.Va’로 훨씬 더 널리 알려져 있는 그녀의 본명은 다름 아닌 송하나다.

 이제 막 스무 살에 접어든 아가씨답게 주말의 소중한 자유 시간을 맞아 친구들과 시내를 돌아다니며 아이쇼핑이라도 하는 편이 훨씬 어울리련만, 그녀를 알고 있을 법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광경에 녹아들어있다.

 “이 철조망, 저번보다 더 낮아진 거 같은데? 관리자가 내 안티인가?”

 다름이 아니라 하나는 짧은 청바지와 흰색 민소매 셔츠라는, 초겨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한 채 차갑게 얼은 흙바닥과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낑낑대며 포복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옷이 더러워지는 것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하다.
 가까스로 철조망을 지나자 이번엔 수풀이 우거진 구릉이 나오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100m 정도 뜀박질로 올라간 그녀 발치에 웬 울퉁불퉁하고 얇은 쇠 판자 하나가 나타났다. 하나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고는 그 판자를 들어냈다. 그러자 그 밑에는 매우 반듯한 직사각형의 구멍이 드러났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좁은 환풍구다.

 하나는 잠깐 심호흡을 한번 내쉬고는 미끄럼틀 타듯이 환풍구의 경사진 입구에 몸을 내맡겼다. 비교적 완만한 편이라 잠시 후 나타난 철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도 딱히 다치진 않았다. 다만 아프긴 아픈지 인상이 절로 찡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쿠쿠, 다음번엔 쿠션을 깔아둘까?”

 하나는 화끈거리는 엉덩이를 한손으로 매만지며 발걸음을 옮겼다. 좁은 환풍구에 비해 꽤나 넓은 실내다. 천장까지 높이 또한 어림잡아 10m는 될 법하다. 그에 비하면 하나의 가녀린 몸은 거의 쥐나 곤충으로 보일 정도로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이만큼 커다란 공간도 그 주인의 덩치를 감안하면 마냥 넓다고만은 할 수 없다.

 “버니, 나야. 하나.”

 하나는 짙게 내려깔린 칠흑 너머로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갑자기 인공조명들이 일제히 빛을 발하며 어둠을 몰아내고, 그 지하실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 손에 각각 세 개의 포신이 달려있고 반투명한 초록색 유리 너머로 조종석이 비치며, 토끼처럼 뾰족한 귀가 머리 위로 툭 튀어나온 검은색 이족보행병기. 대한민국 육군이 창설한 중장갑 무인 조종 로봇 부대 MEKA의 한 모델이다.

 버니라고 이름이 불린 그 MEKA는 조종석을 가리고 있는 반투명한 초록색 유리를 깜빡이며 에코 섞인 청년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침입자 신분 확인. 경계 태세를 해제한다.』
 “오랜만이지? 그동안 많이 심심했어?”

 하나는 셔츠와 청바지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내며 버니의 발치에 다가와 동체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버니는 마치 사람이 고개를 돌리는 것처럼 동체를 움직여 하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래, 하나야. 정말 외로웠다. 이렇게 직접 보니 반갑구나.』
 “히히, 나도 이 짬 내려고 고심 많이 했거든. 감독님께서 내가 여기 이곳에 몰래 들락날락거리는 걸 알면 화가 머리끝까지 뻗치실 테니까.”

 하나는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다가,

 “아참, 버니. 내가 출전한 코퍼레이션스 컵 결승전 봤어?

 의기양양하게 콧대를 세우면서 물었다. 그러자 버니는 흐뭇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 물론. 네 경기는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서 보고 있다. 공식 홈페이지에 고화질로 매주 올라오니까 말이다.』
 “3경기도 봤어? 쩔었지! 그치!”
 『3경기가 그거였구나. 빌드가 완전히 갈렸는데도 컨트롤로 극복한 역전극.』
 “맞아. 완전 시망이라고 봤는데, 때마침 상대가 앞마당에서 용기병을 4기나 흘리더라. 개이득이다 싶어서 놓칠 새라 잡아먹었지!”
 『그래, 매우 멋졌다. 네 지난 경기들의 데이터를 모두 훑어봐도 그만한 고도의 컨트롤은 찾아보기가 힘들더구나.』

 버니는 동체를 조금씩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원래대로라면 이 시점에서 콧대가 피노키오처럼 치솟아야 할 하나가 미심쩍다는 듯이 미간을 좁혔다. 이물감을 감지한 표정이다.

 “버니, 무슨 일 있어?”
 『뭐? 갑자기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구나.』
 “너 평소랑 조금 다른 거 같은데?”
 『글쎄.』
 “솔직히 대답해 봐.”

 하나는 그녀답지 않게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이전까지 분위기랑 많이 달라. 날 대하는 태도도 예전보다 좀 딱딱하다고 해야 하나? 억지로 무언가를 감추려 든다고 해야 하나? 톤도 훨씬 낮고 생기가 없는걸.”
 『그런 게 정말 느껴지는지 궁금하구나.』

 여전히 시치미를 떼는 버니에게 일침을 가하듯이,

 “당연하지! 네 인공두뇌의 신경망 구조는 사람이랑 똑같잖아. 사람한테 느낄 수 있으면 너한테도 느낄 수 있어.”
 『…….』

 갑자기 침묵으로 대응하는 버니. 하나는 문득 불안함이 엄습해와 조르듯이 버니의 다리에 매달렸다.

 “버니,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말해봐, 들어줄게. 나 말고 누가 네 이야기를 들어주겠어?”
 『그, 그게, 실은…….』

 버니는 무언가 켕기는 듯이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몇 번이나 주저를 했을까, 드디어 버니의 무거운 입이 열렸다.

 『참 하기 어려운 말이다만, 하나야.』
 “응?”
 『너, 나랑 처음 만난 이래로 줄곧 일기를 쓰고 있다고 말해준 걸로 기억한다.』
 “맞아. 매일 쓰는 건 아니지만 찾아올 때마다 쓰긴 해. 그게 왜?”
 『그렇다면 그 일기, 오늘 오후에 다시 가져와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자 하나는 난색을 표했다.

 “으응, 미안하지만 그건 힘들 거 같아. 폰까지 내버리고 이렇게 군사 기밀기지에 몰래 들어오는 것만 해도 큰 모험인데, 하루에 두 번씩이나 찾아오는 건 아무래도…….”
 『제발 부탁이다.』

 버니가 짐짓 무거운 어조로 하나의 말을 끊었다. 그제야 하나는 뭔가 심상찮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얼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 알겠어. 어떻게든 해볼게. 그런데 왜?”
 『……그건 네가 다시 왔을 때 말해주마. 대신 딱 한 가지 약속을 해줬으면 좋겠다.』

 하나의 불안에 휩싸인 얼굴이 반투명 조종석 유리에 희끄무레하게 비친다.

 『울지 말아다오.』





 “하, 무인 조종 로봇 부대?”

 솜브라는 절로 터져 나오는 조소를 참으려 들지도 않고 손으로 화면을 휙휙 넘겼다.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홀로그램 영상에는 대한민국 국군의 군사 기밀들이 등급을 가리지 않고 적나라하게 문서화, 수치화되어 드러나고 있었다. 데이터를 보는 그녀의 왼눈 밑에 위치한 큼지막한 눈밑점이 미소로 실룩거리며 움직이고, 한쪽만 밀린 머리 밑에는 기계 부품이 드러나 섬뜩하고 무기물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그녀는 테이블을 무성의하게 걷어차 회전식 의자를 빙글 돌리고는, 자기 뒤에서 한심하다는 듯이 시선을 내리깔고 있는 보랏빛 피부의 여자를 응시했다.

 “탈론에 몸담은 뒤로 이만큼 멍청한 상대를 맞아본 적이 없는데, 아무래도 요즘 들어서 내 실력이 평가절하당하는 것 같단 말이야?”

 그러자 장난기 가득한 그녀를 다그치듯이, 세간에도 악명이 자자한 살인마이자 여성 저격수 아멜리 라크루아는 자신의 거미 형태 보안경을 검지로 쓰다듬으며 대꾸했다.

 “그런 방심이 실패를 항상 불러오더군. 내가 박물관에서 겪은 일처럼.”
 “으흠, 있잖아?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해?”

 솜브라는 한쪽 입 꼬리를 귀에 건 채로 물었다. 그러자 아멜리는 탐탁치 않아하는 태도로,

 “글쎄, 네가 낸 질문이라고 정상적인 건 없었지.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의 차이?”
 “너와 나의 차이.”

 솜브라는 그렇게 이죽거리며 보던 데이터를 정리하고 거만하게 팔짱을 꼈다.

 “옴닉들을 상대하기 위해 만든 무인 조종 네트워크가 도리어 조종당하는 꼴이 되니까 부랴부랴 유인 조종식으로 바꾸고 파일럿들을 급히 양성한다고? 그럼 알고리즘이 훨씬 단순해져서 그 로봇들이 내 손에 들어오기도 편하다는 뜻을 저 나라의 높으신 분들은 잘 모르나 봐.”
 “그렇게 자신만만하다면 한 번 두고 보겠어. 쉬운 임무이니만큼, 실패했을 때 물을 책임이 작지 않다는 것도 알아줬으면 하네.”

 아멜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시선을 한층 날카롭게 하자,

 “분수에 넘치는 걱정은 안 해주셔도 돼. 할당량 다 채우고 나면 심부름용으로 한 대 보내줄 테니까.”

 솜브라는 장난스럽게 아멜리의 오뚝한 콧대를 검지로 살짝 눌렀다.


 “Bo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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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격군 영웅 D.Va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오버워치 팬픽입니다.

주요 무대는 대한민국이고, 소수의 오버워치 게임 캐릭터들 외에도 오리지널 캐릭터 또한 많이 등장시킬 예정입니다.

연중은 절대 하지 않고 매편 새로 출발한다는 느낌으로 성실히 쓰겠습니다.




조아라에서도 연재를 시작했으니 혹여 나중에 작품이 마음에 드신다면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다이아 갈 때까지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