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진산업 이석진 대표이사를 만났다. 오직 한 가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다. 최근 나진산업은 리그오브레전드(LoL)의 유명한 ‘EDG’ 클랜과 창단 계약을 맺었다. 대한민국 최초 LoL 프로게임단의 탄생이다.

요즘 LoL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마치 철옹성 같았던 게임순위 TOP 10에 단숨에 올라섰으며 어제는 인벤 게임순위 1위까지 차지했다. 케이블, 인터넷 방송 등 다양한 경로로 대회가 진행되고 있으며 시청자들의 반응도 가히 폭발적이다. 그래서인지 혹자는 과거 스타크래프트1을 떠올리며 부푼 마음으로 장미빛 전망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 상륙한 기간이 짧고 AOS라는 장르적인 특색이 있는 만큼 e스포츠로서의 발전 가능성은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2010년 여름에 정식출시한 스타크래프트2가 아직 국내 e스포츠계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나진산업이 덜컥 일을 저질렀다. 합숙훈련을 위한 숙소 제공은 물론 선수들의 연봉까지 지급하는 정식 프로팀을 창단해버린 것이다. 대외 이미지가 극도로 중요한 중견 기업 입장에서 한번 칼을 빼면 도로 집어넣을 수도 없다. 최근 국내 LoL 선수와 유저들에게 나진사업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말 대단한 용기’.


[ ▲ 여러분은 전자제품 유통단지 나진전자월드의 나진산업을 아시나요? ]



1967년에 설립된 나진산업은 국내 최대의 전자제품 유통단지인 나진전자월드를 용산에 최초로 설립한 기업이다. 나진산업이 보유하고 있는 전자상의 숫자만 1,600여 개가 넘고 관련 상인만 수천 명이며 강동냉장, 나진코퍼레이션, 대둔산호텔, 나진식품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작년 4월에는 대전격투게임 ‘철권’ 프로게임을 창단해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간에는 28세의 젊은 CEO인 이석진 대표와 나진산업의 e스포츠 프로팀 창단을 두고 단순히 허세 내지는 패기로 평가절하하는 다소 고까운 시선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왜 나진산업은 철권에 이어 LoL 프로게임단 창단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됐을까. 과연 이석진 대표가 가슴에 품은 노림수는 무얼까’ 나진산업 대표이사실에 초대받은 기자.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이석진 대표는 한숨을 돌리며 일단은 자신의 어린 시절로 우리를 초대했다.




“아버지께서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어릴 때부터 당시에는 꽤 비쌌던 컴퓨터들이 집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게임을 즐기게 됐습니다. 주로 대항해시대2나 삼국지3 같은 게임들이었는데요, 집에서는 제가 운동선수나 과학자가 되기를 바라셔서 게임 하는 걸 크게 반대하셨습니다. 매번 친구 집에 가서 몰래 숨어서 했죠.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쯤에 뉴질랜드 유학을 갔는데 “이제 내 세상이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거예요. 그때부터 게임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됐습니다. (웃음)”

PC로 시작된 이석진 대표의 게임 라이프는 슈퍼패미콤 구입을 계기로 콘솔 쪽으로 전환기를 맞게 된다. 방학시즌 한국에 귀국할 때마다 용산에서 게임패키지를 수십 개씩 구해 돌아간 것은 예삿일. 당시 이석진 대표가 제일 좋아했던 시리즈 3개가 있는데 “파이널판타지, 바이오해저드, 환상수호전”이 바로 그것이었다.

“99년쯤이었을 거예요. 한국에 불어닥친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1년이 지나자 뉴질랜드 한인계로 옮겨왔어요. 뉴질랜드의 인터넷 환경이 굉장히 좋지 않았는데 어떤 분이 PC방을 하나 창업하면서 교포들과 유학생들이 난리가 났었죠. 그 당시에 즐겼던 게임이 스타크래프트와 포트리스였습니다. 스타크래프트는 제가 실력은 떨어졌어도 정말 좋아했습니다.”

이석진 대표가 다시 한국으로 귀국해 군대를 가야 했던 시기. 스타크래프트로 대표되는 국내 e스포츠는 절정기를 맞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시청했던 스타크래프트 경기에서 박정석 선수의 플레이에 홀딱 반하게 되고 그 즉시 KTF 구단과 박정석 선수의 열광적 팬이 된다. 수년이 지난 아직도 KT의 에이스, 이영호 선수 경기는 가끔 챙겨볼 정도라고.

“오직 팬심(心)만 있던 건 아니었어요. 나중에 어떤 회사에 취직해서 일하게 된다면 e스포츠 마케팅을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효과가 정말 클 것 같았거든요. 제가 원래 풋볼매니저 같은 매니지먼트 게임도 좋아하는데 그 당시 레알 마드리드로 불리던 KTF 구단을 보면서 ‘내가 만약 구단주가 된다면 어떻게 운영을 해볼까’ 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죠.”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이석진 대표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24세의 나이로 나진산업 기획실에 사원으로 입사한 이석진 대표, 나진산업의 기획실장을 맡게 되면서 비로소 e소프츠 마케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 ▲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e스포츠의 기본을 세웠던 명작 중의 명작 '스타크래프트1' ]



“제가 입사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이 회사와 나진상가 자체의 홍보가 너무 안 되어있다는 점이었어요. 용산 전자상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업체인데 주위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죠. 분명 문제였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돈을 써서 홍보하는 것은 결코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상가를 주로 찾는 10대에서 40대 초반의 고객에게 특화된 홍보전략이 절실했죠.”

사실 이석진 대표도 회사에 e스포츠 사업을 건의하기까지는 많이 망설였다. 회사 기획실장 또는 임원으로서의 입장이 아닌 단순히 팬심 내지는 게이머의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됐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e스포츠 마케팅 외의 대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때가 이석진 대표가 기획실장에서 대표이사로 승진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e스포츠 마케팅으로 대표이사로서의 역량까지 시험대에 올리는 상황이었던 것.

“시간이 갈수록 타겟 고객층에 집중한 마케팅법에 대한 확신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강하게 밀어붙이기 시작했죠. 반대가 엄청나게 심했습니다. 회사 임원진분들 평균 연령이 상당히 높은 편인데요, 제일 나이가 어리신 분이 50대였고 70세가 넘은 분들도 계셨거든요. 일단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조차 못 하셨어요. ‘e스포츠 방송이 뭐지?’ ‘돈은 왜 이리 많이 들어가지?’ ‘게임을 하는 게 우리 회사에 뭐가 중요하지?’ 라는 반응들이었죠. 물론 성심성의껏 도와주시는 직원분들도 있었지만 얼굴은 하기 싫은 표정이 가득한데 억지로 마지못해 따라오는 분위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굳은 의지로 e스포츠 마케팅에 가속도를 내기 시작한 이석진 대표. 어떤 종목을 나진산업의 최초 종목으로 할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당연히 스타크래프트1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물망에 올랐으나 이석진 대표는 반대했다. 들어가는 투자 규모보다 얻을 수 있는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제 와서 스타크래프트1을 하기에는 너무 후발주자였고요, 선수들의 평균 몸값이 상당했기 때문에 저희 회사의 마케팅 전략적 관점에서도 좋은 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콘솔 쪽 종목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원래부터 FPS는 제외하고 콘솔 쪽 하나, 온라인 쪽 하나 하려고 구상을 했었어요. 때마침, MBC 게임에서 방송 중이었던 ‘테켄크래시’를 보게 됐고 급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이석진 대표의 눈길을 사로잡은 매력은 바로 이것. 철권 방송이 게임 내용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도 ‘보는 것’만으로 큰 재미를 선사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프레임 계산 및 캐릭터 상성 정보를 기반으로 한 선수들의 치열한 심리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서로 대립하지만, 함께 어우러질 때 빛을 발하는 요소가 나진산업 철권 프로게임단 창단의 결정적 이유가 된 것이다.


[ ▲ 작년 10월 인벤 LoL 방송에 참가했던 나진 철권팀 소속 '레인'(좌), '썬칩'(우) 선수 ]



“철권팀 창단에 대해 결과적으로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테켄크래시의 시청률이 상당했기 때문에 회사 홍보도 많이 됐고요. 콘솔, 패키지 게임, 컴퓨터 부품 유통회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해야 하는 저희 회사 입장에서도 사업적으로 다양한 공동 프로모션을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MBC 게임이 문을 닫아 테켄크래시도 더는 존재하지 않지만 철권팀은 계속 유지하면서 자체적으로 대회도 열 생각입니다.”

때론 친구처럼 때론 형처럼 나진 엠파이어 철권팀 선수들과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던 이석진 대표. 다른 선수들이 ‘한쿠마’ 한동욱 선수를 보고 ‘한가렌’이라고 부르는 것을 목격한다. ‘웬 중국식 이름이지?’라며 호기심을 드러냈는데 비시즌 기간에 철권 선수들이 즐기던 게임이 바로 ‘리그오브레전드(LoL)’였던 것이다.

“제가 원래 온라인 게임은 기피했습니다. 회사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진득하게 플레이하는 게임을 잘 못했어요. 그리고 오래전부터 게임을 해서 그런지 그래픽이 너무 좋거나 FPS 게임들은 멀미도 나더라고요. 근데 선수들이 저한테 딱 맞는 게임이 있다며 LoL을 소개해줬습니다. 한판에 30, 40분만에 끝난다면서 저를 막 꾀었죠. 그때부터 본격적인 멘탈붕괴가 시작됐습니다. (웃음)”

철권 프로팀의 썬칩 선수가 LoL 미국 서버에서 레이팅 2,000대를 찍을 정도로 LoL 고수였는데 기꺼이 이석진 대표의 LoL 스승이 되어줬다. 처음에는 외모 위주로 챔피언을 선택하며 심해를 벗어나지 못하던 이석진 대표. 원거리 캐릭터를 거쳐 서포터 챔피언 ‘소나’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소나 장인’, ‘소나 패기보소’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실력이 크게 향상된다. LoL의 진정한 재미를 알아가기 시작한 바로 그때. 또 하나의 큰 사건이 발생한다.

“우연히 WCG 국가대표 선발전을 보게 됐습니다. 별다른 이유 정말 없었고요. 제가 한참 LoL을 좋아하던 시기여서 우리 프로팀 친구들 말고 다른 고수들은 어떻게 플레이하는 지가 매우 궁금했었습니다. ‘아니 우리 썬칩보다 잘하면 도대체 얼마나 잘하는 거야’라는 원초적인 호기심이 있었죠.”

“EDG와 MIG의 경기였는데 막눈과 모쿠자 선수의 플레이를 보고 순간 충격에 빠졌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프로선수의 경기가 아니었어요. 신중히 침착하게 손해 안 보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할 거로 생각했는데 이건 완전히 반대되는 성향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거예요. 굉장히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이게 진정한 LoL이구나.’라며 감탄에 또 감탄을 했죠.”


평소에 LoL을 플레이하는 이석진 대표도 e스포츠 가능성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했었다. e스포츠는 무조건 보는 사람이 재미있어야 한다는 지론이 있었는데 LoL의 초반 라인전과 옵저버 형태는 관중들에 큰 재미를 주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그러나 EDG 선수들의 경기를 본 후 그런 선입관은 한방에 무너져 내렸다.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습니다. 선수들이 실력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새로운 긴장감이 생기고, LoL을 알면 알수록 경기가 더 재밌어졌습니다. 인터페이스도 단순하다 보니 의외로 LoL을 잘 모르는 관중도 재미를 느끼는 거예요. 해설자들도 적절한 역할을 해주며 즐거움을 배가시켜주었고요. 진입 장벽이 예상보다 훨씬 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본격적으로 조사를 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철두철미한 이석진 대표의 성격이 다시 한번 드러난다. 직접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현장으로 출동했다. LoL 전국 PC방 가맹점 현황부터 PC방 점유율을 파악하기 시작했고 LoL 인벤(lol.inven.co.kr) 명예의 전당 코너까지 샅샅이 뒤지며 국내 LoL 선수정보를 수집해 나갔다. 스타테일, TeamOP, MIG 등 여러 프로팀이 물망에 올랐지만, 이석진 대표의 가슴 속 영순위는 역시나 EDG였다.

“WCG 때의 경기가 좀처럼 잊혀지지 않았어요. 근데 소문을 들으니 EDG는 모 업체랑 이미 이야기가 진행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포기하고 EDG 2군 팀이라도 영입할까 고민하던 찰나였습니다. 근데 LoL 선수 영입 건으로 조언을 해주던 친구가 EDG 팀원들이 저랑 이야기할 의향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이게 웬 행운인가 싶었죠.”


[ ▲ 2011 WCG 국가대표선발전, EDG와 MIG의 대결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중들 ]



하지만 이석진 대표에게 찾아온 행운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EDG팀, 선수 5명의 고향이 인천부터 강릉, 대구, 광주, 경남까지 다들 제각각. 협상을 위해 한자리에 모이기도 힘든 상황에서 때마침 '온게임넷 인비테이셔널'이라는 기회가 왔고 이석진 대표는 근처 괜찮은 일식집을 예약해 EDG 팀을 본격적으로 영입할 준비를 한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선수들이 제가 젊어서 그런지 대표이사인 줄도 모르더라고요. '대표가 시켜서 대리나 사원이 대신 왔나?' 이런 표정이었습니다.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회사소개부터 했습니다. 그리고는 단도직입적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했습니다. 대회에서 획득한 우승 상금 다 가져가셔도 된다. 급여도 별도로 드리겠다. 환경 좋은 연습실도 제공하겠다. EDG 팀을 영입하고 싶은 생각이 정말 간절했습니다.”

“제가 프로팀을 영입할 때 눈여겨보는 두 가지 부분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스타일리쉬한 플레이’입니다. 스타성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모두가 기계적인 완벽한 플레이를 하기보다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허를 찌르는 플레이를 해주길 바랐습니다. ‘저 선수 도대체 뭐하나요?’라면서 짜증이 나면서도 팬들에게 두근거림을 줄 수 있는 플레이 있잖아요. 두 번째는 프로팀에 들어왔을 때 별 탈 없이 잘 적응할 수 있는 인성입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춘 팀이 바로 EDG라고 판단했던 거고요.”


“프로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구단의 ‘대우’이며, 그것은 곧 선수의 자존심이다. 프로선수의 자존심이 무너지면 슬럼프가 온다.”라는 평소 지론을 떠올리며 2시간에 걸친 식사자리에서 끊임없이 구애를 보냈던 이석진 대표. 하지만 EDG 팀의 리더 격인 ‘훈’ 선수에게 돌아온 답변은 “좀 생각을 해보겠습니다.”였다.

“쿨하게 답하더라고요. 훈선수가 정말 제 애를 많이 태웠습니다. (웃음) 일단 그렇게 헤어지고 그 다음 날 온게임넷 인비테이셔널 대회도 직접 가봤습니다. 현장에 팬들이 1,000명 넘게 왔더라고요. 단순히 ‘스킨’ 이벤트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LoL에 대한 팬들의 기대치가 높았던 거죠. 일부러 행인인척하고 LoL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반응이 정말 뜨겁더라고요. LoL의 e스포츠 가능성, 100%라는 확신이 들었죠.”

가족, 절친 외에는 절대 비공개로 했었던 개인 휴대전화 번호까지 선수들에게 알려준 이석진 대표. 이런 간절함을 EDG 선수들도 느껴서일까. 경기가 끝난 후 저녁 시간, 이석진 대표와 EDG 선수들은 또 한번 술자리를 갖게 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게 된다.

“금요일 경기가 끝나고 토요일도 마치 친구처럼 함께 놀았습니다. 그러면서 팀을 허술하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는 제 마음을 계속 어필했죠. 결국, 선수들이 긍정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고, 다음 날 훈 선수에게 연락이 와서 저에게 오겠다는 마음을 비쳤습니다. EDG 팀 못 잡으면 아예 LoL 프로팀 창단을 포기한다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던 때라 정말 기뻤습니다.”

“성적에 대한 부담도 안 주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스타크래프트1 KT팀을 롤모델로 생각했거든요. 계속 준우승만 해도 끊임없이 투자를 하다 보니 최근에는 2연속 우승도 이뤄내잖습니까. 그런 마인드로 즐겁게 자신을 위해서 팬을 위해서 게임을 하자고 선수들을 격려했습니다. 제발 부탁한 것이 인성적인 사고는 치지 말자. 도덕적인 것은 지키자. 팬들을 실망하게 하지는 말자. 선수 생활하다 보면 안티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부러 안티팬을 만드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도 속상하고 선수 입장에서도 속상한 일이다. 이런 얘기들을 했죠”



[ ▲ 나진 e엠파이어 게임단으로 새롭게 태어난 EDG 선수들 ]



혼자 살던 이석진 대표에게는 최근 가족이 생겼다. LoL팀 창단이 급하게 진행되다 보니 아직 연습실이 준비되지 않아 선수들이 2주 정도 지낼 곳이 없었던 것. 이석진 대표는 형 같은 마음으로 당장 급한 선수들에게 일단 자신의 집에서 지내라고 했고 처음에는 훈과 비닐캣 선수, 2명만 온다더니 모쿠자 선수까지 덜컥 찾아오게 된다. 지금은 막눈 선수까지 서울에 올라와 한 집에 다섯 사내가 동거동락하고 있다. 대학 시절 북적북적한 하숙생활을 하며 고통받은 적이 있던 기자, 이석진 대표에게 함께 사는 게 불편하진 않느냐고 물었지만, 그의 입가엔 즐거운 웃음만 가득하다.

“기묘한 동거 생활이긴 한데 정말 재밌습니다. 원래는 한 명만 오는 줄 알았는데 점점 불어나서 처음에는 놀라기도 했어요. 부랴부랴 마트가서 같이 장도 보고 컴퓨터도 3대 맞춰서 게임도 함께 하다 보니 더 많이 친해졌어요. 어색함도 점차 사라지고 서로 말도 편하게 하기로 했고요. (웃음)”

EDG 영입이 확정된 후 이석진 대표의 행보는 더욱 바빠졌다. 원래 2월 중순으로 예정되어있던 연습실 오픈이 다시 한번 늦어진 이유도 메인 스폰서 외에 PC 하드웨어 등을 제공해주는 서브 스폰서를 완벽히 확정 짓고자 한 이석진 대표의 꼼꼼함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이석진 대표는 인벤 기사로 크게 화제가 됐던 전문 코스프레 팀 ‘스파이럴 캣츠’와 계약을 체결하고 LoL 프로게임단은 물론 나진산업에 특화된 마케팅 전략에 힘을 쏟고 있다.


2월 말, 나진 e엠파이어(E-mFire) 게임단의 정식 창단식을 앞둔 이석진 대표에게 앞으로의 포부를 묻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e스포츠 팬으로서 함께 나눴던 친밀함이 금세 사라지며 어느덧 중견기업의 대표이사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사실 용산의 전반적인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도 주변에는 ‘용팔이’라며 질타하는 소리도 제법 들리고요. 앞으로는 예전의 나쁜 이미지는 떨쳐버리고 고객분들의 말씀에 항상 더 귀 기울이겠습니다.

팬과 고객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다양한 e스포츠 마케팅을 더 많이 펼치겠습니다. ‘나진산업은 정말 유쾌한 회사’라는 인식을 심어 드리고 싶습니다. 선수들을 다독여 멋진 경기와 함께 팬들에게 '두근거림'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대충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e스포츠계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나진산업의 대표이사로서, 그리고 e스포츠 한 명의 팬으로서 진심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나진 e엠파이어 게임단, 잘 부탁합니다.”



[ ▲ 나진산업 이석진 대표 "나진 e엠파이어 게임단, 잘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