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뇌혈관 장애로 인한 질환의 총칭, 의식이 없어지거나 신체가 마비되는 질환으로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씩은 들어봤던 병명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나라 중노년층에 사망원인 2위에 뽑힐 만큼 무서운 질환 중에 하나로 현재 뇌졸중으로 인해 재활치료를 받는 환자의 경우 2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런데 뇌졸중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리니지를 하는 분이 있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 기자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설마'였다. 이제까지 주변 뇌졸중 환자분들을 봐왔을 때 대부분의 뇌졸중 환자라면 본인의 적극적인 의지로 재활치료를 하기 전까지는 남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한다. 또한 재활치료를 통해 신체 기능 일부를 회복할 지라도 뇌졸증 후유증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에는 여전히 불편한 점들이 많이 있었다.


과연 뇌졸중 환자분이 리니지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사실일까?


반신반의 하면서도 뇌졸중 환자분이 있다는 켈로스 서버 벗님들 혈맹원 블랙v레드님과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고, 20분여에 걸친 통화가 끝난 순간 기자는 허공을 바라보며 깊은 탄식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뇌졸중 환자 유저의 나이가 중년층일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한참 혈기왕성 해야할 26살 청년이라는 말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뇌졸중 환자 유저의 자세한 상황을 알기 위해 벗님들 혈맹분들과 다시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고, 며칠 뒤 어렵게 시간을 내주신 혈맹원 두 분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 벗님들 혈맹 노르디아님, 블랙v레드님
벗님들 혈맹은 은평구에 거주하고 있는 지인들로 구성된 중립 혈맹으로 혈맹원 수가 너무 적어 외로움(?)을 느끼신 노르디아님이 혈원 가입을 받던 중 수호사(뇌졸중 유저님, 마법사)님을 만났다고 한다.


당시 노르디아님은 수호사님과 혈맹 가입에 대해 이런저런 애기를 하던 중, 1급 장애가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당시 챗팅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고 큰 문제가 될 거 같지 않아 혈맹에 가입을 시켰다고 한다.


수호사님 혈맹 가입 며칠 후 블랙님이 접속을 할 때마다 수호사님은 몽환의 섬에만 사냥을 하는 거 같아 궁금한 나머지 이유를 물어보았다고 한다. 수호사님에게 답변을 듣는 순간, 블랙님은 가슴이 조금 답답해 질 수 밖에 없었다며 말끝을 흐리셨다.


'왼손 중지로만 마우스를 움직이기 때문에 다른 사냥터는 갈 수가 없다. 또한 언어 장애로 인해 대화도 불가능하다' 라는 말을 수호사님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벗님들 혈맹원들은 수호사님의 심각한 장애 정도에 대해 알게 되었고, 몽환의 섬 말고는 다른 사냥터를 갈 수 없는 수호사님을 위해 혈맹원들은 접속하는 대로 수호사님과 몽환의 섬에서 같이 사냥을 하며 챗팅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며 지내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전체 채팅창에서 수호사님이 켈로스 서버에 알려지게 된 조그마한 문제가 생겼다. 신체가 불편하신 관계로 왼손 중지만으로 채팅을 하다보니 전체 채팅창에 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치게 되신 것. 이를 본 일부 유저들은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그 상황을 지켜보던 블랙님이 서버 게시판에 수호사님에 관한 양해의 글을 남기면서 어느 정도 오해가 풀리게 되었다. 그 후 댓글을 통해 수호사님을 응원하는 글들이 하나 둘씩 올라오면서 게시판은 어느새 잔잔한 감동의 물결로 출렁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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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벗님들 혈맹 인터뷰에서 만났던 수호사님과 함께 ]



▲ 수호사님의 된소리 표현법
그렇게 혈맹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수호사님의 현재 상황과 사정에 대해 점점 파악해 가는 도중, 수호연(수호사님 요정 캐릭터)이라는 캐릭터가 접속했다는 말을 듣고 혈맹 아지트에서 수호사님을 만날 수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마친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약간 느리게 타자를 치시긴 하였지만 별 다른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하던 순간, 화면에 좌측 사진과 같은 수호사님의 독특한 표기법을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노르디아님이 기자에게 말을 건냈다. '수호사는 왼손 중지로만 채팅하기 때문에 Shift키 사용을 못해요. 예를 들면 '쓰'라는 글자를 ㅅㅅㅡ라고 표기하죠.'

너무나도 생소한 표기법을 보는 순간, 수호사님을 직접 보고 인터뷰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는 곳이 춘천이라 이동해야 할 기자를 걱정하는 수호사님과 만날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7월 1일 금요일 오전 인터뷰를 위해 Vito기자와 함께 수호사님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춘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춘천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 물밀듯이 밀려오는 미안함


버스가 출발하고 춘천으로 향하는 내내 대범군(수호사님 본명)에 대한 미안한 감정때문에 연신 자리를 뒤척일 수 밖에 없었다. 인터뷰 전날 최종 인터뷰 일정을 점검하기 위해 수차례 대범군과 문자메세지를 통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고 시간은 저녁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인터뷰 진행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던 그 때. 기자에게 한 통의 문자가 날아왔다.


' 재활 치료를 받고 돌아와 기자님이 보내주신 사전 인터뷰 질문에 대한 답을 작성하느라 4시간이 걸렷네요. 핸드폰을 충전시키려고 ㄱㄱㅓ두어서 문자를 이제야 확인햇습니다. 죄송합니다.' - 대범군이 보내온 문자 메세지


인터뷰 일정을 짜던 중 대범군의 재활치료 시간이 오후 1시부터 진행되어 오후 5시 30분에 끝난다는 말을 들었었다. 대화가 안되는 상황이라 타자를 통해 인터뷰를 진행할 수 밖에 없었고, 대범군 재활치료 시간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몇 개의 질문을 이메일 통해 미리 발송하였다. 그리고 다 작성을 하지 못해도 좋으니 쉬엄쉬엄하라는 당부까지 드렸다. 그러나 대범군은 멀리서 온다는 기자를 위해 그 긴 시간동안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답변을 작성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범군을 위한 배려가 오히려 부담이 되었을꺼라 생각하니, 가슴 속에는 대범군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득찰 수 밖에 없었고 자꾸만 먹먹해지려는 가슴을 움켜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약 1시간 정도가 흘러 대범군의 집에 도착하여 어머니와 대범군을 만나는 순간...


이대범군과의 만남 -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멋진 왼손 중지


어머니의 마중을 받고 집 안으로 들어서며 대범군에게 인사를 건내는 순간, 병상에 누워서 웃는 얼굴로 반기는 대범군을 바라보며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주변에서 봐왔던 환자분들 보다 더 심각한 몸 상태였기 때문이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대범군은 병상 탁자를 두드리며 어머니에게 의사전달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탁자를 두드리기를 여러번, 그가 원한 것은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인 넷북이였다. 병상 위에서 몸을 가누기에도 벅찬 대범군은 넷북이 켜지자마자 가장 먼저 메모장을 통해 왼손 중지로만 힘겹게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 세상과 소통하려는 유일한 수단, 그의 왼손 중지와 넷북 ]

'어제 사전 인터뷰 질문 여러번 읽으면서 적었지만 다 작성을 못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오기 전부터 미안함으로 먹먹했던 감정들이 그 글을 보는 순간 터져 버릴 듯한 심정에 서둘러 웃으면서 대범군에게 괜찮다며 오히려 사전 인터뷰 질문을 드려 미안하고 말을 건냈다. 그리고 곧바로 미리 대범군이 작성해 둔 사전 인터뷰 질문 대답을 바탕으로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뇌졸중에 걸리 전, 대범군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살아왔을까? 대범군의 자기 소개가 이어졌다.


저는 올해 만 26살인 86년생 남자로 이대범이라고 합니다. 전문대 자동차 학과를 다니다가 학업을 중단하고 전차병으로 군복무를 마쳤습니다. 군 제대 후 PC방 알바부터 의류점, 스포츠용품점, 주류음료 납품 등 평일과 주말 가릴 것 없이 투잡은 기본으로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왜 하늘은 군 제대 후 열심히 살아가던 대범군에게 이런 시련을 주었을까 생각할 찰나 대범군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 이미 자신의 병을 알고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당시 인터넷을 통해 시계 하나를 구매를 했어요. 배송된 시계가 불량이라 수리 요청을 하였는데 또 불량인 시계가 배송되어 직접 매장으로 찾아갔죠. 그러나 매장 측에서는 자신들의 문제가 아닌 배송회사의 문제라며 책임을 회피했고, 이 과정에서 그쪽 매장분들과 언쟁을 벌이다 급기야 살짝 몸싸움까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몸싸움 과정에서 일어난 상처로 진단서 제출차 진찰을 받으면서 CT 촬영을 했구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저에게 그러더군요. 뇌질병이 의심되니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는게 좋겠다구요. 그 말을 듣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일단 강북상섬병원에서 MRI 촬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 거대뇌동맥류라는 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당장 입원하고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을 했죠. 충격이 컸지만 전 수술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군 제대 후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어머니는 지인을 따라 춘천으로 내려가셨고, 형과 저는 전세방을 겨우 얻어 자립해 나가는 중이라 형편이 많이 어려웠거든요.


결국 형과 상의 후 홀로 계신 어머니에게는 이 사실을 비밀로 하고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형과 저는 건설현장인부, 설비사업, 도서운반 공장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그 당시 대범군 형편이 좋았다면 아니 적어도 수술비만 있었다면 지금보다는 건강한 모습으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쉴 새 없이 타자를 치느라 대범군의 입에서 침이 흘러내렸고, 잠시 수건으로 침을 닦아 드리자 대범군은 타자를 계속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 때 제가 어렸는지 어미 품이 문득 그리웠어요. 추석날 얼굴도 뵐 겸 선물을 손에 들고 춘천행 고속버스에 올라탔죠. 도착하고 난 후 따뜻한 어머니 곁에서 몇 일을 편히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다시 일자리를 알아볼 겸 대문을 나서는데, 슬슬 머리가 어지럽고 몸에 힘이 없어지고 다리는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크게 개의치 않고 밖을 돌아다니다 점점 더 어지럽고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에 잠시 앉아 일단 몸을 겨우 추스렸죠. 그 후 겨우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대문 앞에서 힘없이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대문을 열고 나오시는 어머니의 대답을 순간 전 바로 쓰려졌구요. 다급히 어머니가 아는 분에게 전화를 하시더군요.


그리고 눈을 떳을 때 전 수술을 받고 말과 전신을 못쓰는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래전 본인의 병을 알고 있었지만 급작스럽게 바뀐 현실을 젊은 나이인 대범군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했으리라. 이미 거대동맥류로 인해 위험상태를 경고 받은 적이 있던 대범군은 사고가 나기 오래전 부터 뇌사상태를 생각해 장기기증센터에 신장기증 서류를 작성해 두었다고 한다.


대범군은 수술 후 4개월 동안은 의식을 제대로 회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차차 의식을 회복한 후 본인의 몸상태를 알게 되자 여러차례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 해봤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할 수 없음을 한탄하며 2년이란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고 한다.


대범군이 병마와 싸운지 이제 2년을 넘어가는 상황. 극한의 생각까지 했었던 대범군이 리니지를 할 정도로 마음의 변화를 갖게 된 사연을 들어보고 싶었다.


의식은 돌아왔지만 말을 할 수 없게 되자 가장 먼저 생각났던 건 넷북이었어요. 핸드폰으로 어머니에게 넷북이라는 글자를 쳐서 보여드렸고, 그 후로 1년 정도 시간이 흐르자 형이 넷북을 사다주었죠. 사실 어린 시절 다양한 게임을 해본 경험은 있어요. 리니지도 그 중 하나였구요.


그러나 예전같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넷북을 통해 리니지를 시작하게 된 건, 오로지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 때문이였어요. 말을 할 수 없는 답답함을 넷북과 리니지를 통해 내 생각과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리니지를 택한 건 다른 게임에 비해 그래픽이 단순하다보니 어지럽지 않더라구요.




[ 왼손 중지만으로는 제대로 게임을 즐길 수가 없다. 그러나 그의 왼손은 그 모든걸 이겨냈다. ]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없는 현실은 의식이 돌아온 대범군에게 큰 고통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소통을 위해 리니지를 한다고는 하지만 대범군은 왼쪽 팔만 겨우 좌우로 움직일 수 있고 그 가운데서도 왼손 중지만 사용할 수 있는 상황. 타자 뿐만 아니라 게임을 하는데도 불편함이 많았을꺼라 짐작할 수 있었다.


매번 리니지를 할 때마다 어머니가 수발처럼 챙겨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낼 때면 운동을 게을리 하실까봐 야단도 치세요. 그러나 게임은 저에게 유일한 의사소통 공간이자 취미입니다.


리니지를 할 때면 휠 클릭이 힘들지만, 내가 사냥터에서 만나는 분들에게 힐이나 버프를 드리는 정도로 게임을 하고 있어요. 마법사(수호사) 캐릭터를 하다가, 씽요정이 편할 꺼 같아 현재는 요정(수호연) 캐릭터를 하고 있구요. 물론 두 캐릭터 다 사고 전에 40레벨 까지는 키워둔 캐릭터들입니다.



본인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게임 상에서 남을 돕고 있었던 대범군.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혈맹원 분과 켈로스 서버 유저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하셨다.


대부분의 유저분들이 저에 대해 편의를 잘 봐 주세요. 벗님들 혈맹원들도 같이 지낸 지 몇 일 안되었지만 혼자서는 제대로 게임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을 알고 파티사냥과 더불어 심심치 않도록 많은 이야기거리도 던져 주시구요. 사실 벗님들 혈맹은 전에 제가 살던 지역인 은평구에 대부분 혈원이 있다고 해서 마음에 이끌려 가입을 했어요.


사고 후 처음으로 가입했던 은빛 혈맹에서도 많은 분들이 저를 생각하여 게임을 재미있고 즐길 수 있게 같이 해 주시고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인터뷰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많은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몸상태가 호전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스스로 지팡이나 거치대나 목발 균형잡이를 하고서라도 혼자의 힘으로 침대에서 화장실로 이동하며 조금이라도 거동을 해보고 싶다는 대범군은 마지막으로 대범군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분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솔직히 저도 하루하루를 스스로 팔운동만 하며 보내며 누워서만 지낸 생활이 너무도 지루하고 답답하여 미칠듯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게임을 취미로 갖게 되었어요.

할 수 있는 취미를 만들어 즐기면서 빠져보세요. 삶의 의욕을 찾는데 한 가지 취미라도 없으면 정말 힘이 듭니다. 물론 치료도 게을리 하지 마시구요.




[ 대범군의 환한 미소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

이대범군 어머니 - 세상에서 가장 강한 당신. 어머니!


대범군의 마지막 글을 보고 있을 때, 문득 마당 한 켠에서 물끄러미 아들을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가 시야에 들어왔고 대범군에게 양해를 얻어 잠시 어머니를 만나러 마당으로 나왔다. 어머니께서는 아들이 대화를 들으면 싫어할 수도 있다면서 자리를 이동하자고 하셨고 대문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려던 찰나, 어머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간의 고통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니 말 없이 손수건만 건내드릴 수 있을 뿐, 어떠한 위로의 말씀도 드릴 수가 없었다.


감사패를 제작해서 줄 정도로 착한 자식입니다. 고등학교 다니면서 장학생일 정도로 공부도 잘했구요. 속 썩이는 일 없이 밝게 자라주어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돈 벌어서 효도하겠다던 아들이 저렇게 되자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았어요. 수술 후 여러차례 힘들어하는 자식을 보면서 나도 여러차례 해서는 안될 상상들을 한 적도 많았습니다.


1급 장애 판정을 받았지만, 정부에서 지원을 받는 금액은 한 달에 9만원이 끝이에요. 그러나 재활치료로 한 달에 들어가는 비용은 80~90만원 정도 입니다. 물리치료, 한방치료, 언어치료등 치료 한 과목당 30분 정도가 걸리고 3~5만원씩 들어갑니다.


비용을 아끼려고 40분 동안 대범이를 휠체어에 앉혀두고 치료 가격이 싼 병원으로 걸어서 이동한 적도 있습니다. 그나마 예전에 보험에 가입해 둔 게 있긴 하지만, 4개월을 병원에서 입원하고 있어야 보험금을 탈 수 있어요. 가기 싫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범이가 게임을 하면서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볼 때면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재활치료를 게을리하고 게임을 한다 싶을 때면 속이 타들어 갑니다. 운동 게을리 하지 말고 우뚝 서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돌아오는 길 - 가슴속엔 무엇인가


어머니의 말씀이 끝날 무렵, 대범군 재활치료 이동을 위해 요양사분이 방문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1시, 대범군과 작별 인사를 해야할 시간이다. 취미도 좋지만 무엇보다 재활 치료가 우선이라고 신신당부하는 기자에게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조심히 돌아가라는 표현인 듯 연신 고개를 휘젓는다.


인터뷰가 끝이 나고 대문 밖을 나서 걷는 동안, Vito기자와 난 한참토록 아무런 이야기도 나눌 수 없었다. 아마도 같은 연유가 아니였을까? 소통의 끈을 위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자신을 조금씩 바꾸어 간 이대범군을 보며 가슴속엔 무언가 꽉 들어찬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문득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남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본 적이 몇 번인가 헤아려 본다. 그리고 오늘 또 한 번 진심을 담아 하늘을 향해 기도해 본다.


"대범군! 언제나 희망 잃지 말고 힘내세요! 당신에겐 세상에서 가장 강한 어머니와 왼손 중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많은 분들과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Inven KumA - 강태혁 기자
(kuma@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