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과 AMD는 다릅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키텍처, 팹의 소유 여부, CEO, 시장 점유율 등 다양한 변수들을 떠올릴 수 있겠죠.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더하고자 합니다. 제품군 말입니다. 인텔은 원래 메모리를 만들던 회사입니다. 지금은 정리를 좀 랬지만 시작은 메모리였고 지금도 메모리 제품군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인텔의 주력 제품인 CPU는  메모리 다음에 나온 겁니다. AMD는 로직 카운터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CPU를 만들고, 또 GPU 전문 회사인 ATI를 인수하면서 CPU와 GPU 기술을 모두 갖춘 회사가 됐습니다. 두 회사의 역사까지 따져가며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정작 여기서 하려는 말은 그에 비하면 소소해 보이는 제품입니다. 내장 그래픽 이야기거든요.


인텔 CPU의 내장 그래픽은 성능이 빈약합니다.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진짜 많이 나아졌다는데 이견은 없으나, 절대적인 성능은 여전히 떨어집니다. '바탕화면 표시기 주제에 게임이 실행은 되네?' 정도의 평가를 벗어나진 못합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인텔이 그래픽 분야에서 근본적인 기술이 없어서 그런거라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다른 거 하느라 바빴을 수도 있겠죠. 10nm 공정이나 5G 모뎀 개발 같은거 말이에요. 둘 다 말아먹긴 했지만요. 그에 비해 AMD는 CPU와 GPU를 함께, 그리고 꾸준히 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갖고 있는 제품이 그렇게 두 개니까요. 그러니 내장 그래픽의 개발도 지극히 단순합니다. 갖고 있는 GPU 기술을 그대로 내장 그래픽에 운용하면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게 PS4와 Xbox One에 들어가는 커스텀 프로세서이기도 하지요. 이러다보니 AMD의 내장 그래픽은 인텔처럼 성능이 저조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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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D 라이젠 3000 시리즈에는 내장 그래픽 모델도 포함됩니다. 내장 그래픽이 공략하는 시장은 은근히 까다로운데, 가격은 가장 저렴하지만 사무용부터 캐주얼 게임까지 바라는 게 꽤나 많은 시장이거든요. 이 까다로운 시장에서 내장 그래픽을 탑재한 대표적인 보급형 CPU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를 테스트해 봤습니다. 다만 테스트를 하기 전부터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있습니다. AMD의 내장 그래픽이 압승을 거두리라는 건 뻔합니다. 이유는 위에서 말한대로입니다. 바탕화면 표시용으로 CPU에 덤을 끼워주는 제품과, 전문적인 GPU 기술을 갖춘 회사는 제품 개발부터 구성까지 임하는 자세가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비록 결과는 뻔하다 한들, 그래도 결과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직접 확인하는 것도 의미는 있겠죠.

 

비교 대상은 AMD 2종, 인텔 2종을 골랐습니다. 모두 내장 그래픽을 갖춘 모델입니다. 내장 그래픽을 쓴다면 으레 보급형 시스템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걸 전부 같은 '보급형'에 넣고 비교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가격 차이가 많이 납니다. 인텔 쪽이 많이 비싸거든요. 싼 제품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워드와 엑셀, 웹서핑 이상을 기대해선 안될 것 같은 듀얼코어 CPU는 옆으로 좀 치워 둡시다. 최근 인텔 CPU가 F 시리즈를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내놓긴 했지만, 이건 값이 싸도 이 테스트에 쓰지 못합니다. 가격을 빼면서 내장 그래픽도 같이 뺐거든요. 코어 i5 같은 제품에서 내장 그래픽의 의미가 많이 줄어들긴 하지만, 코어 i3 수준에서도 내장그래픽을 갖춘 CPU 가격이 비싼 건 아쉽습니다. 반면 AMD는 20만원 이하의 가격으로도 내장 그래픽을 갖춘 라이젠 3000 시리즈의 4코어 8스레드 모델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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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코어i3-9세대 9100 (커피레이크-R). 4코어 4스레드, 클럭 3.6~4.2GHz, 6MB 캐시, 65W TDP, DDR4-2400MHz, UHD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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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코어 4스레드를 맞춘 모델입니다. 이보다 더 저렴한 CPU도 있지만 그건 2코어 4스레드입니다. 예산이 정말 빠듯해서 최대한 쥐어 짜겠다면 모를까, 요즘 세상에 어느 정도 여유를 갖고 컴퓨터를 쓰려면 최소 4코어 4스레드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인텔 코어i5-9세대 9500 (커피레이크-R). 6코어 6스레드, 클럭 3~4.4GHz, 9MB 캐시, 65W TDP, DDR4-2666MHz, UHD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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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9세대 CPU의 코어 구성은 4코어 4스레드 다음에 4코어 8스레드를 거치지 않고 6코어 6스레드로 뛰었습니다. 스레드보다 물리 코어가 더 높은 성능을 내는 건 당연한데, 문제는 가격까지 함께 올랐네요. 내장 그래픽을 쓰기 위해 27만 원짜리 CPU는 좀 가격이 쌔 보이는데 말이에요. 가격으로 따지면 9100과 9500 사이의 내장 그래픽 모델이 하나 더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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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D 라이젠 3 3200G (피카소). 4코어 4스레드, 클럭 3.6~4GHz, 4MB 캐시, 65W TDP, DDR4-2933MHz, 라데온 베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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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코어 4스레드의 라이젠 3000 시리즈 CPU입니다. GPU는 구성이 완전히 다르니 일단 넘어가죠. CPU 스펙만 보면 코어 i3-9100과 비슷해 보이는데 가격은 라이젠 3 3200G가 쌉니다. 보급형 시스템에서 이 정도의 가격 차이는 절대로 적지 않습니다.

 

AMD 라이젠 5 3400G (피카소). 4코어 8스레드, 클럭 3.6~4.2GHz, 4MB 캐시, 65W TDP, DDR4-2933MHz, 라데온 베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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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 그래픽이 달린 AMD CPU는 최대 구성이 4코어 8스레드입니다. AMD는 코어와 스레드 구성을 아끼지 않기로 유명하지만, 내장 그래픽 시스템에서는 많은 코어보다는 저렴한 가격이 더 필요하겠죠. 라이젠 5 3400G는 3200G에서 CPU 스레드와 클럭 외에 내장 그래픽의 구성도 높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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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 환경도 설명이 필요하네요. 기본 구성은 다 똑같고, 드라이버는 최신 버전, 해상도는 1920x1080입니다. 여기까진 지극히 당연하지요. 게임 옵션은 조금 다르게 설정했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나온지 10년이 넘은 게임입니다. 아무리 내장 그래픽이어도 매우 높음에 안티 앨리어싱 정도는 넣어줘야 하지 않나요? 물론 오버워치는 그렇게 하면 힘들겠지요. 조금 타협해서 화질은 높음으로 두고 안티 앨리어싱은 쓰지 않았으며 렌더링 스케일은 100%로 맞췄습니다. 오버워치보다 더 높은 스펙을 요구하는 게임은 내장 그래픽에서 돌아갈 게 아니라고 판단해서 게임은 이 두 가지만 썼습니다. 그리고 게임 외에 다른 성능, 시스템의 전체적인 성능을 파악하기 위해 PC마크 10을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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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플랫폼의 구성을 똑같이 맞춰야 공평합니다. 하지만 잠재력이나 지원하는 스펙에서 분명 차이가 나는데 그걸 무시하고 일괄적으로 맞추는 것도 공평하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인텔과 AMD 시스템을 비교할 때마다 항상 메모리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AMD 피카소는 DDR4 2933MHz 메모리까지 지원합니다. 거기에 가장 저가형 칩셋인 A320조차도 램 오버클럭이 가능합니다. 어떤 메인보드를 사도 메모리 오버클럭은 된다는 소리죠. 평범하고 수수하며 흔하디 흔한 삼성의 녹색 램, 속칭 시금치 램으로도 3200MHz를 찍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이러다보니 말이 '오버' 클럭이지 누구나 할 수 있는 국민 셋팅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반면 인텔의 경우 메모리 스펙에서 상당히 빡박한 제한이 들어갑니다. 일단 제품마다 스펙이 다릅니다. 코어 i3는 보급형이라서 DDR4-2400MHz까지만 지원하고, 상위 모델인 코어 i5도 DDR4-2666MHz이 끝입니다. 기본 메모리 스펙부터 라이젠과 차이가 나네요. 오버클럭도 까다롭습니다. 최상위 칩셋인 Z 시리즈가 아니면 메모리 오버클럭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AMD는 돈을 안 들이고 메모리를 오버클럭해서 성능을 높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텔에서 램 오버를 하려면 비싼 메인보드를 사야 합니다. 가뜩이나 CPU 가격도 AMD보다 더 비싼데, 고성능 하이엔드 시스템도 아니고 내장 그래픽을 쓰기 위해 그렇게 많이 투자하는 게 맞는 일일까요?

 

그래서 인텔은 CPU 공식 규격에 맞췄습니다. 코어 i3-9100은 2400MHz, 코어 i5-9500은 2666MHz가 CPU에서 지원하는 최고 메모리 클럭입니다. AMD는 두 가지 조합을 넣었다. 우선 오버클럭을 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현재 DDR4 메모리에서 가장 흔한 클럭인 2666MHz를 넣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오버클럭을 하는 경우를 상정해서 3200MHz를 넣었습니다. 공식 스펙인 2933MHz보다는 높으나 3200MHz로 오버클럭은 결코 아려운 일이 아니니, 라이젠을 구입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한번쯤 시도해 볼 만합니다. 용량은 8GB 2개로 16GB 듀얼채널을 구성했습니다. 램값이 워낙 싸다보니 16GB는 보급형 시스템에서도 보기 어렵지 않은 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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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된 게임이지만 여전히 인기가 높은 리그 오브 레전드입니다. 10년 전 그래픽 그대로라면 굳이 이 테스트에 나올 일은 없었겠으나, 게임 그래픽을 조금씩 개선되면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스펙도 조금씩 올랐습니다. 물론 내장 그래픽의 성능도 그 동안 꾸준히 발전했지요. 덕분에 리그 오브 레전드는 풀 HD 해상도에 이것저것 줄건 다 준 옵션으로도 충분한 성능이 나옵니다. 라이젠은 2666MHz 메모리에서 80fps 초반. 3200MHz에서는 90fps 중반까지 평균 프레임이 올라갑니다. 당연히 최소 프레임도 함께 오릅니다. 인텔도 AMD보다는 낮으나 아주 나쁘지는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가장 성능이 낮은 코어 i3-9100으로도 최소 프레임 60fps는 사수하는 것처럼 나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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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소 프레임'이 말 그대로의 최소 프레임은 아닙니다. 1%와 0.1% Low 값을 봅시다. AMD 라이젠은 어떤 조합이건 50fps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는 안정적인 성능을 보여주나, 인텔의 경우 30~40fps까지 떨어집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 같은 브론즈 원주민이야 이런 짧고 급격한 변화를 느낄 피지컬은 없습니다. 하지만 승급전을 앞두고 몹시 예민해진 상태라면 이게 몹시 거슬릴지도 모릅니다. 이번에도 기회를 놓치고 패배의 원인을 찾을 때, 딱 한끝이 부족한 그래픽 성능이 유력한 범인이 될 수도 있겠죠. 그리고 이건 리그 오브 레전드니까 그나마 성능을 덜 쓰는 편이고요. 더 높은 그래픽 성능이 필요한 게임이라면 상황이 않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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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입니다. 내장 그래픽 테스트인데 여기서 오버워치가 왜 나오냐고 의아해하실 분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내장 그래픽으로 실행하가이엔 다소 버겁다는 평을 들으니까요.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라이젠은 평균 35fps 이상, 최소도 25fps는 나옵니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게임 특성상 아주 만족스럽다고 할 수 없어도 게임이 가능한 성능은 분명 됩니다. 메모리 오버클럭을 하면 프레임에 더욱 여유가 생깁니다. 최소 프레임에서도 30fps 가까이까지 올라가니까요. 반면 인텔 내장 그래픽의 경우 평균 30fps가 나오지 않습니다. 아니, 20fps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해상도를 낮추고 옵션도 낮춰서 오버워치가 아니라 10년 전 게임처럼 보이는 그래픽으로 만든다면 모를까, 인텔 내장 그래픽으로 오버워치를 원활하게 즐기기는 어렵다고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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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와 0.1% Low는 더더욱 볼 것도 없습니다. 라이젠 3 3200G도 0.1% Low가 18.9fps는 나옵니다. 메모리 오버클럭을 더하면 22.6fps까지 올라갑니다. 상위 모델인 라이젠 5 3400G는 그보다 더욱 안정적인 성능을 내줍니다. 인텔 내장 그래픽은 볼 것도 없습니다. 평균 프레임에서 좋지 못한 결과가 나왔는데 1% Low에선 말할 것도 없지요. 이쯤 되면 게임이 아닌 슬라이드 쇼를 보는 느낌이겠군요. 인텔 내장 그래픽으로 게임을 하겠다면 딱 리그 오브 레전드까지, 오버워치는 무리입니다. 반면 라이젠은 오버워치도 충분히 해볼만한 성능이 나옵니다. 이게 GPU를 만드는 회사의 힘일까요?

 

하나 더 있습니다.. 라이젠은 메모리 오버클럭 후에 상당한 성능 향상을 보였습니다. 이를 두고 '라이젠은 램 오버가 필수'라던가 '라이젠은 램 오버를 해야 제 성능을 낸다'고 해석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CPU건 내장 그래픽의 성능은 시스템 메모리 대역폭에 큰 영향을 받으며, 메모리 대역폭은 메모리 클럭과 채널 구성에 따라 정해집니다. 인텔과 AMD의 차이점이라면  라이젠은 기본적으로 고클럭 메모리를 지원하며, 보급형 칩셋에서도 메모리 오버클럭이 된다는 겁니다. 오버클럭하는데 돈이 안 들어가고, 하기도 어렵지 않으니까 안 하면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분위기가 생기는 것이죠. 반면 인텔은 비싼 고급형 칩셋의 메인보드가 있어야 하니 사실상 메모리 오버클럭이 어렵습니다. 인텔도 고클럭 메모리를 조합하면 분명 성능이 많이 오르겠지만, 그렇게 쓰기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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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 그래픽의 성능을 주로 봤지만, 그것만 보고 CPU를 골라선 안 됩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게임 머신이 목표였어도, 나중에는 다른 용도가 하나 둘씩 늘어날지도 모를 일이죠. 기왕 사는 김에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성능을 추구해도 나쁠 건 없습니다. 여기에선 시스템의 종합 성능을 측정하는 PC마크 10으로 성능을 비교했는데, 라이젠 3000G 시리즈는 인텔 9세대 코어 i3/i5 프로세서와 동급이거나 더 높은 성능을 보여줬습니다. 라이젠이 그냥 게임 성능만 높고, 내장 그래픽만 우수한 CPU가 아니라, 각종 연산부터 멀티스레드 성능까지 두루 좋은 표현을 보여주기에 가능한 결과입니다.

 

마지막으로 가격을 따져봐야 합니다. 사실 가격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텔은 AMD에게 뺏긴 점유율을 되찾기 위해 가격을 많이 낮춘 F 시리즈를 출시했으나 여전히 라이젠의 가성비는 높으며, 무엇보다 그 F 시리즈는 내장 그래픽이 없습니다. CPU 내장 그래픽은 저렴한 시스템을 맞추기 위해 쓰는건데, 인텔의 노말 모델은 F 시리즈보다 가성비가 훨씬 나쁩니다. 반면 AMD는 내장그래픽 CPU에서 성능과 가격 모두 경쟁력을 갖췄습니다. 라이젠 3 3200G는 코어 i3-9100보다, 라이젠 5 3400G는 코어 i5-9500보다 쌉니다. 하지만 성능은 더 높습니다. 그럼 내장 그래픽이 달린 CPU를 쓰겠다면 뭘 골라야 하는지 답은 이미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