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하디 습한 어느 7월의 밤
털털 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가 선선한 바람을 불어주고 있으나
여름의 습기 가득한 무더위 앞에 약풍으로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은 위안 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불쾌지수가 치솟는 상황에도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남자의 얼굴에는 만연 미소가 가득하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분노 유발이 없다는 이유와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배척당하여 폭풍의 엘카라스 호 던전을 구경도 못하고 게임을 접어야했던 이 남자는 1년여가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곳에 당도한 것이다.
처음 보는 두번째 네임드 앞.
긴장이 되기도 하지만 1네임드 클리어를 10분도 안돼 해낸 팀원들과 연속된 너프로 엘상이 옛날 같지 않다는 인벤의 게시글들을 떠올리며 남자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파란 모닥불 앞 모두의 컨디션이 회복되자 시작 전부터 의욕이 좋았던 마공사가 운을 땠다.
"그럼 이제 갈까요? 검투님 초분 가능하시죠?"

남자는 그 오랜시간 진정과 항의를 통하여 얻어낸 분노유발 스킬을 새로 생긴 애인이라도 되는 양 사랑스럽게 얼마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넵 당연하죠ㅎㅎ"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각기 전진 스킬로 뛰쳐나가는 팀원들을 뒤로한 채 남자는 돌진베기와 뒤잡기를 이용하여 가장 먼저 페리모스의 뒤에 도착했다. 그리고-
"으오오오오!!!"
검투사의 함성이 땅을 뒤흔들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듯 페리모스는 분노로 가득차 이쪽을 돌아본다.
그 짧은 틈새를 놓칠새라 남자는 투지의 일격을 꽂아넣고 무쌍난무:찌르기로 보스의 맷집을 감소시키고 있었다.
연계가 가르기에 넘어들 때 익숙한 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검투님 이제 후방에서 빡딜해주세요"
1네임드 때 이미 분노유발을 사용하여 쿨타임에 들어간 창기사였다. 그는 보란 듯이 페리모스의 앞을 방패로 막아서며 팀원들에게는 강한 딜링이 가능하도록 공격 버프를 주었다. 실로 이상적인 탱커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며 검투사는 입을 땠다
"ㅈㅅ 결의 바꿀 스테 좀 채울게요."

그 여름 제대로 된 장마가 내리지 않아 나라에는 가뭄이 들었지만
다시금 테라를 접은 검탱 유저의 마음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