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를 선생이라 부른다.

이름은 쓰지 않겠다. 이제 내 이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포라 엘리누에서 태어났다. 북슬북슬한 털과 축축한 코가 인상적인 이러퀴어 부족의 청년이었다.

누구는 나를 개라고 했고, 혹은 짐승이라 불렀다. 하지만 나는 내가 마음에 들었다. 정확히는 소령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평생 머리 위에 짊어지고 다녔다. 그것은 나의 아름다운 모자에 다름 없었다. 모자, 아니 황제는 평생을 나와 함께했다.

 

나는 킁킁거리며 축축한 코를 높이 쳐들고 그 모자를 쓴 채 포포리아의 대로를 활보했다. 옆집의 카오롱이 말했다. 정말 멋집니다! 정말로 맛있어 보이는 모자입니다. 그놈은 먹는 것 밖에 모르는 놈이었다. 고결하지 못했고 게다가 탐욕스럽기까지 했다. 데바 놈들이 너를 두더쥐 통구이로 만들고자 할 때도 니놈은 그 부식베낭을 목숨 걸고 챙겼었지.

궁정 연회에서 놈이 라자니아를 쳐먹을 때마다, 나는 옆 자리의 숙녀들이 그 부드러운 귀를 곤두세우며 주변에서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아야만 했다. 나는 그 망할  대위 자식이  내 옆에 오지 않기를 바랬다. 그래서야 내 멋진 광채도 이름을 바래버릴 것이 뻔했다. 놈의 식탐은 내 모자에 라자니아를 쳐발랐다. 망할 놈 같으니!

 

그 연회는 지난 전투가 가지는 의미를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엘린 왕실을 비롯하여 포포리아 가드의 모든 고관들이 참석하는 근래 가장 큰 규모의 축제였다.

멍청한 놈. 그놈은 상황 파악을 전혀 할 줄 몰랐다. 그저 살아남아 또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에 만족하는 그런 작자였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내 명예로운 황제는 머리 위에서 근엄하게 연회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잠시 자리를 비운 후 다시 돌아왔다.

짤랑 짤랑.

내 연미복 위로 황금색 천사들이 노래하고 있었다. 발걸음은 카펫 위에서 베이스를 연주했고 손짓은 우아하게 춤추었다. 물론 내 머리위의 황제를 위한 것 이었다. 모자는 이제 고대의 왕들 처럼 왕좌에 앉아 있었다.

아름다운 요정들이 하나 둘 나의 주변에 모이기 시작하자, 악단은 더욱 더 신이 나 연주하기 시작한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내 혀는 농담을 팀파니 처럼 두드린다.

그녀들이 웃을 때 마다 황제는 홉족해하며 나를 황금색으로 도금한다.  조금씩 조금씩.

그 빠알간 입술들은 나를 황금의 석상으로 만들었다. 나는 그녀들의 입술로 나를 색칠했다.

 

"즐거워 보이는군요. 소령. 저도 합석해도 괜찮을런지요?"

 

펑!

하고 내 머리위의 황제는 하늘위로 날아다닌다. 훈장들이 심벌즈를 울린다. 나의 털들은 바이올린의 선 처럼 떨렸다.

입술들이 들풀처럼 흔들리며  좌 우로 비켜섰다. 크림색 선풍은 내 늑골을 통과해 나의 심장을 부드럽게 움켜쥔다.

그 고동이라니! 나는 무릎을 꿇었다. 일어나세요. 대위.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말에 천사들이 수줍게 대답하며 내 가슴 위에서 흔들렸다.

 

샤를로테 드 엘린. 왕위 계승서열 4위.

나는 그녀를 말이 아닌 내 눈 앞에서 직접 바라보았다. 당신은 아르카니아 전투에서 3개 군단을 지휘했다.

그레이엄 헤인즈, 그 작자는 당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당신의 지략은 이미 고대 거인들을 능가했고 용맹은 전신 카이아와 비견되었다. 나는 내 눈 앞에서 당신을 보았다. 승리했다! 여신 엘리누에 영광을! 빌어먹을 데바 년의 머리통을 들고 바실리스크 군단의 시체 위에서 환희를 외치던 당신을 나는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받으시지요, 소령." 그녀가 내 잔에 포도주를 따랐다.

나는 녹아내린다. 황금빛 물결이 내 발 아래로 일렁이는 것이 보인다. 주변의 모든 시선이 그녀와 내게로 날아온다.

황제는 신이 나 내 머리위를 밟아댄다. 머리가 꽉 조여오는 것 같아, 나는 군모를 고쳐썼다. 손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포포리아 14연대의 활약이 컸습니다. 우익을 훌륭하게 막아주셨더군요. 덕분에 기병대가 후위의 궁병대를 분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푸른 색 눈이 별 처럼 빛났다. 그녀가 뭐라고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보다는 내 앞의 보석이 아름답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럼 또 뵙죠. 하고 그녀는 멀리 사라졌다.

내 심장 위에  나의 기억 속에 당신은 그렇게 궁전을 지었고 나는 이후로 영원히 그곳의 집사가 되었다.

되돌이켜보면 나는 그때 당신과 대면하지 말았어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동상이 되어 이야기 속에서 나의 황제와 함께 평생 만족하며 남을 수 있었을텐데.

 

그렇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세상일은 뜻대로 되는 일이 없는 법이다.

 

12년 뒤 나는 당신과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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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내 소재는 괜찮은데 글 쓰는 사람이 없네요.

본래 내러티브 따위 개나 준 게임이라 그런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