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세대와 우리 세대의 차이점을 보면,
아버지 세대에는 '권위'가 인정되고, 연대감과 소속감이 중요시되는 세대였습니다.

우리 세대는 '탈권위적이고', 연대와 소속보다는 개인주의적인 세대죠.

 

아버지 세대에서는 연대와 소속이 강조되는 분위기라,
선배의 권위가 강했습니다. 당연히 선생님의 권위도 막강했습니다.
후배는 선배의 말에 따르는 것이 당연했고,
일탈을 일삼는 일진들이라도 선생님의 호통에 기가 죽었습니다.
선생님께 대든다는 건 정말 상상도 못할 '똘아이' 취급 받았지요.

 

우리 세대로 넘어와서는 (좀 어려운 말로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하는데요.)
어떤 가치관에 대한 모든 권위가 무시되고 개인주의화 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어떤 중심이 되는 권위가 사라지자 '물질만능주의'가 그 자리를 대체합니다.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체제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게 된 거죠.

 

선생님은 더 이상 학생들에게 좋은 가치를 심어주는 스승님이 아니라
'선생질 하면서 벌어먹고 사는 사람' 정도로 취급받게 됩니다.
더 이상 스승과 제자 사이가 아니라,
선생님은 지식을 파는 사람, 학생은 지식을 사는 고객... 이런 관계가 되면서
교권 붕괴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이는 학부모들의 태도의 변천을 살펴보면 잘 알게 됩니다.
'체벌'에 대해서, 아버지 세대에서는 '니가 잘못했으니까 선생님께서 벌을 주신 거겠지.'

하면서 선생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분위기였다면,
우리 세대에서는 제 자식 감싸주기가 우선하면서 학교에 항의하는 학부모들이 많아지게 되었지요.

 

여기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선생님의 권위가 상실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는 곧 학생들에 대한 선생님의 '구속력 약화'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선생님은 지식을 파는 직업이므로, 자신에게 지식 전달만 잘하면 되는 것이고,

지식 이외의 삶에 대한 가치 전달 측면, 즉 '인생의 멘토' 역할은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생활지도에 있어서 선생님들이 무력감을 호소하는 데에는 이런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소위 '일진'과 '왕따'라는 학교 폭력의 변화 양상을 유심히 살펴보면,

교권 붕괴(선생님의 구속력 약화)로 인하여, 학교 폭력의 확대 재생산을 차단하지 못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통받는 학생은 선생님께 자신의 문제를 알려도 대부분 구제 받지 못하고,

오히려 이로 인해서 폭력이 심화되는 공통된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학교 폭력의 양상을 지켜보면, 한 마디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권력 관계의 축소판'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학교 교육의 현실을 한번 보시죠.

어느 누가 학교에서 인생의 비전이라던가 꿈, 행복, 공생, 상생, 협동, 나눔이라는 선한 가치를 배우고 있다는 말을 하겠습니까.

오히려 사회의 주류층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더 잘먹고 잘 살기 위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니 공부하라는 '경쟁'을 가르치고 강요합니다.

 

옆에 앉은 친구는 함께 살아야 할 공생관계가 아닌, 밟고 일어서야 하는 경쟁자로 인식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경쟁을 통해, 앞으로 자신들이 진출해야 되는 이 사회는 무한 경쟁의 세계이며,

승자의 위치에서는 모든 것이 합리화되고 칭송받기까지하는, 승자 독식의 세계라는 것을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서서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육환경적 토양에서 학교 폭력은 '주류 계층에 소속되고 싶은 연대감과

권력관계의 우위에 서고 싶어하는 욕망의 분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것을 차단하고 선한 가치로 계도해야 할 '선생님의 권위'가 사라지면서

고삐 풀린 망아지 처럼, 학교 폭력이 심화 되고 있는 것이죠.

 

이제 정부는 교권이 붕괴되었다고 판단하고, 이 문제 해결에 있어서 '공권력'을 투입하기로 결정 합니다.

이는 사법부가 더 이상 청소년들을 '계도하고 선도해야 되는 교육의 대상'에서

'사회로 부터 격리시켜야 마땅한 범죄인'으로 보겠다는 뜻이죠.

 

그동안 청소년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았던 것은, 이들은 사리판단에 있어 아직 미성숙하므로

성인에 비해서 실수할 가능성이 높고, 사회로 부터 격리시키는 것 보다는 청소년 개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계도하고 선도하여 다시 사회로 진출시키려는 목적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계도적 가치관을 버렸다는 것은

정말 벼랑끝까지 몰린 정부가 '최후의 수단'이라는 카드를 꺼낸 것입니다.

 

 

상실된 교권 대신 '공권력' 투입은 단기적인 해결책이지,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더더욱 상황을 심화시킬 것으로 생각 됩니다.

단, 교권을 상실한 이 시점에서 피해자의 보호를 위해서는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학생들에게 선한 가치를 심어줄 수 있는..

그런 대책도 같이 나와야합니다. 그런데

교육 실패의 한 원인에 대해 '게임'을 지목했다는 것은 교육정책을 펴는 자들의 인식이

현실과 얼마나 거리가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서 참 답답합니다.

 

학교 폭력의 해결은 정부만 노력해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학교 폭력은 권력지향적인 인간의 본능 상 아예 사라질 수 없다고 봅니다,

다만 지금처럼 너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지 않고, 적절히 통제 가능한 상황을 만들면 그것이 학교 폭력 해결이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대학 진학률 70%라는 터무니 없는 진학률도 문제고,

그에 따라서 대학은 고등학문의 성취가 아닌 취업 전단계로 전락하였으며,

대학 진학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역차별이 심화 되었습니다.

 

또한 기업 문화에 있어 너무 대졸자 위주로 가는 것도 문제입니다.

기업들도 우리 사회로부터 우수한 인재를 공급받는 입장이므로,

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고요.

 

대학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 사회에서 자아 실현이 가능해야,

다양성이 인정받는 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고, 그에 따라

이런 학교 폭력 심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너 대학 진학해야 잘 살 수 있어.'

 

'좋은 대학 나와야 좋은 데 취직할 수 있어.'

 

'좋은 대학은 한정되어 있고, 성적 좋은 사람만 갈 수 있으니, 옆에 앉은 니 친구는 경쟁자야.'

 

'뭐든 해도 돼. 돈만 많으면 돼. 이기기만 하면 돼. 승리자가 되면 모든게 해결 돼.'

 

라고 말하는 분위가 말고...

 

'너는 무엇을 좋아하고, 또 무엇을 잘 할 수 있니?'

 

'너의 적성은 이런 것 같은데, 너의 적성에 맞는 직업은 이런 거고,

이런 직업을 가지려면 이러 이러한 교육을 받아야 돼.

직업 전문 기술 학교나 전문 대학 가면 될 것 같다. 넌 어떻게 생각하니?'

 

'너는 학업 성취도가 높으니 학문의 길을 가는 것이 좋겠다. 너는 운동하면 딱이네.

너는 그림을, 너는 음악. 너는 연기하고 싶니?

너는 프로그램에 관심있다고? 게임을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재밌을 것 같지 않니?

 그래. 일단 다 해보면서 너의 적성을 찾아가렴.'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야.

옆에 앉은 니 친구는 너와 함께 역경과 시련을 해쳐나가야 할 소중한 동료야.'

 

우리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사회라면 그나마 학교 폭력이 적어지지 않을까요?

 

경쟁이 아닌 격려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