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백수의 오늘자 <가우스 전자> 를 보다가 말해봅니다.

 

   우선 토론에 대해 2가지 방식의 사고, 흑백논리는 지양되어야겠습니다.

단순히 게임은 좋다/ 나쁘다 의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이든 과하면 나쁘고, 적당하면 좋겠지요.

게임의 좋은 점은 여가활동적 측면이고, 나쁜점은 중독적 측면일 겁니다.

 

   여가부에서 셧다운 시행을 하면서, 내세우는 근거는 중독적 측면과 함께 학생들의 폭력성입니다.

학생들의 폭력성은 게임에서 비롯되었다는 얘기지요.

 

   이런 논리는 과거 만화나 록음악, 당구 같은 것에 똑같이 적용되었습니다.

 

   <가우스 전자>는 게임이 아니라 학교(시스템)의 문제라고 지적을 합니다. 과도한 경쟁이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우정이 자리할 자리에 폭력을 있게 했다는 주장입니다.

학교 교육의 스트레스에서 폭력이 발생했다고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현 시스템은 무한경쟁, 승자독식 시스템입니다. 등수를 매기고 1등을 제외한 모두에겐 반성을 강요하지요.

'넌 1등 만큼 노력하지 않았어.' 라는 식입니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개인에게 하는 알리바이이기도 합니다.

영웅, 롤모델로 스티브 잡스를 내세우지요. 그의 우주적 상상력과 노력을 말하면서,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노력했으며 우주적인 상상력을 발휘했다. 너도 그렇게 해라.

하지만 생각 해봅시다. 승자독식의 세계에선 60억명이 스티브 잡스라고 해도 오로지 하나의 스티브 잡스만 성공할 뿐입니다.

 문제는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게도 있는데, 시스템은 그것을 다음과 같은 말로 은폐하려고 하지요.

'네가 실패한 건 스티브 잡스처럼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학생들은 그런 시스템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게다가 학생들은 여가활동을 할 곳도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공부'만을 '하라'고 하지, 다른 것은 다 '하지 마라' 입니다.

성인들은 각자 알아서 스트레스를 풀지만 학생들은 그럴 곳이 거의 없습니다.

학교는 경쟁이고, 성적 하나에 죽고 살고, 스트레스 풀 곳은 없는데.

성적 떨어져서 극단의 선택을 한 학생에게 혹자는 그렇게 말합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그런 건 별거 아니라고.

요즘 TV에서 하는 광고가 있습니다. 여자들이 명품 백 가득한 방에서 열광하자, 바로 옆에서 아이들이 장난감 방에서 열광하는 장면이 나오는.

똑같은 겁니다. 고작 명품 백이냐, 장난감이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우리에겐 사회의 경쟁이 중요하고, 부도나고 파산하고 신용불량자가 되어 사채업자에게 쫓기면 죽고 싶듯,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스트레스를 도대체 풀 곳이 없습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하지 마라. 공부만 해라' 입니다.

 

   여가부가 학생들의 폭력성을 게임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시스템의 책임을 은폐하려는 것입니다.

원인을 보지 않고 현상에만 집착하는 것이죠.

또한 시스템의 문제에 대한 현상을 단순히 폭력에만 국한시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시스템에 소외되고 다치는 개인들은 다치고 작아지게 마련이고, 그런 현상은 더 복합적이고 다양하게 일어납니다.

 

   여가부의 논리는 비단 게임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과거 만화나 대중매체, 록음악이나 당구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외국에서 학우들을 향해 총질을 한 학생이 데스록을 좋아했다, 는 식의 적근처럼 말입니다.

가정환경, 학우관계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 학생 방에 붙여진 포스터에 책임을 전가하는 식이죠.

 

   셧다운제의 근거가 되는 다른 하나는 위에서 말씀드렸듯 중독성입니다.

이것은 학생에게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죠. 뭐든 과한 게 문제입니다. 

분명 학생들은 적당 시간 게임을 해야합니다.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면 부모가 절제하든 해야겠죠.

게임시간을 조절하기 위해 게임 산업내에서도 노력해야할 문제이고, 또 많은 게임들이 그런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중독에 관해 정부가 나서고, 게임산업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야하는 것은 맞지만, 셧다운제는 아닙니다.

 

   사람마다 게임을 하는 시간대가 다르고, 즐길 수 있는 여건이 다릅니다. 하지만 여가부에서 절대적인 시간을 기준으로 개인을 억압하는 것은, 개인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부모나 보호자에 의해 선택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지, 일괄적으로 적용되어질 수 없는 문제입니다.

 

   학교가고 학원가고 집에오면 11시. 씻고 게임 할라치면 12시.

이런 학생도 있을 겁니다. 이 학생의 여가나 개인 선택의 의지는 박탈되는 것이죠.

 

   셧다운제는 자유를 제한하는 법입니다. 모두 동시에 같은 법을 적용하면 시행, 적용하기 편하겠죠.

하지만 제도를 만드는 것은 편하면 안됩니다. '모두' 라는 말에 포함될 수 없는 개인들이 있기 마련이고,

'시스템' 속에 담을 수 없는 개인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개인들을 위해서 제도와 법은 더 어렵고 심사숙고해서 시행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