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14일(현지시간) 일본 내 학교가 학생에게 하얀 속옷과 검은색 머리를 강요하는 교칙을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됐다고 보도했다. 과거에도 문제가 됐던 이런 '블랙 교칙'(없어져야 할 교칙)은 오사카에 있는 한 공립고등학교에 다닌 여성이 두발 지도에 관한 소송을 제기하면서 재조명받았다. 날 때부터 갈색인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이후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는 이 여성은 학생지도를 명분으로 괴롭힘을 당했다면서 학교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지난달 오사카 법원은 약 33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머리를 검게 염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난 뒤 받은 정신적 고통이 컸다는 것이다. 변호인 하야시 요시유키는 "이제 21살이 된 의뢰인은 정신적으로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거울이나 머리카락을 보는 것만으로도 과호흡을 겪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원은 교칙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학교 측도 판결 후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두발 지도 규정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오사카 시정부도 법원이 교칙을 문제 삼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WP는 일본에는 '규칙이 있으면 따라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일선 학교 광범위하게 무의미하고 잔혹하며 분열을 조장하는 교칙을 시행한다는 목소리가 사회학자와 시민단체에서 나온다"라고 전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도쿄도에 있는 고등학교 가운데 거의 절반이 생머리나 흑발이 아닐 경우 선천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도록 요구한다. 나가사키에 있는 공립학교 238곳 중 '하얀 속옷' 규정을 둔 곳이 60% 이상이었다. 한 학생은 체육복으로 갈아입을 때 교사들이 하얀 속옷을 입었는지 여부를 확인한다고 털어놨다. 후쿠오카에 있는 학교 69곳 중 57곳은 속옷 색깔을 규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일부 학교는 교칙을 위반했을 때 속옷을 벗으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블랙 교칙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온다고 WP는 전했다. 곱슬머리 학생에게 증명서를 지참하도록 요구하는 사립학교에 다녔다는 노즈 미유키(32)는 이 신문에 "양말은 흰색으로 신고 세 번 접어야 한다는 교칙도 있었다"면서 "혼혈 학생에겐 교칙이 더 엄격하게 적용됐다"고 말했다. 노즈는 "일본에는 한 민족만 사는 게 아니다"면서 "학교가 철 지난 이상을 학생에게 강요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계는 세상이 바뀌었음을 깨닫지 못한다"며 "다양성을 가르칠 능력도, 의도도 없다"고 덧붙였다. 일본 도시샤대 법학 교수인 오시마 가요코는 "(교칙 때문에) 상처받거나 자부심을 잃는 학생들이 있다"면서 "심지어 (교칙을 안 지키면) 같은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오시마 교수는 "일본에는 (겉모습이) 튀면, 표적이 되거나 괴롭힘을 당한다는 인식이 있다"면서 "젊은층은 튀지 않는 것을 생존 방식으로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2018년 블랙 교칙 철폐 운동을 이끌었던 스나가 유지는 "일부 교칙은 차별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성희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교칙 때문에 삶의 의지를 잃고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