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조선구마사 이슈를 계기로 기회?를 잡은 KBS가 사극 '징비록'을 방영하였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선조 - 광해군 - 인조 로 이어지는 시기의 역사를 좀 되돌아보는 기회가 있었구요.

역사란 것이 참 신기한 것이, 학교에서 타의반으로 공부할 적에는 그토록 재미없던 것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사극과 다큐, 그리고 강의자료들을 보게 되면서 누가 강요하지 않고도 집중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머리속에 쏙쏙 내용들이 들어오게 되며, 수백년전의 역사가 결코 현시대의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군요.


1. 선조
오직 성리학 명분만을 유일신?으로 삼는 사림의, 조선을 전,후기로 나누어서 보게 되는 후기 300년의 붕당 권력독점기의 기틀을 마련...

임진왜란 발생 당시 의주지역까지 몽진하면서 광해를 세자로 책봉하며 전례가 없던 분조(조정을 분할)를 단행.
본인은 요동쪽으로 망명까지 생각하고 분조를 넘어 선위까지 생각.

하지만 광해를 중심으로 의병규합 + 왜적들에게 공포의 대상 이순신 조합으로 막아냄.

그 이후 질투의 화신으로 변모... 그나마 남아있던 조정의 생각있는 대신들이 이어지는 사화로 씨가 마르게 됨.

결국 명에 대한 사대를 최우선적 가치로 여기고 성리학 only 개념을 장착한 이들이 이후 조선 후기 300년을 지배.


2. 광해
임진왜란 당시 전국을 돌며 경험한 것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개혁과 중립외교에 중점을 둠.
왜란 당시 진행했던 수미법(공납을 쌀로 대신 납부 - 그동안 특산품 납부를 관리들이 중간에서 가격을 부풀려 중개하면서 얻던 이익이 줄어듬)을 기반으로 대동법을 도입.

명-청 관계를 중립적으로 유지하려고 실리외교를 시도.

하지만 선조의 유산인 사림들은 이미 친명 이외의 생각은 불순한 것으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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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보니 흐름이 왠지 자연스럽게 박근혜의 널뛰기 외교가 떠오르게 되더군요.

그리고, 광해군이 조선시대 끝까지 복권되지 못하게 만든 성리학 명분 탈레반들 또한... 결국 겉으로 내세운 명분이 성리학이었을 뿐, 결국은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들게 되는 개혁군주를 마뜩찮게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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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은 변할지언정 본질은 변하지 않은 역사의 수레바퀴.

과연 광해(노무현)를 넘고 인조(이명박근혜)를 넘어 과거의 붕당정치 300년의 시대와는 다르게
촛불혁명을 주도한 시민이 올바른 선택을 하게 될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