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때 같은 글을 썼는데 또 선거가 다가와서 제꺼 퍼와봅니다
선거날에는 이런풍경도 있구나 하고 보셨음 좋겠습니다~
편의상 음슴체(로 작성했었더라구요)

시작

2016년 2월말 쯤인가 3월초 쯤인가
20대의 패기로 당당하게 6년동안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내던지고,
준비없는 이직이란 끝없는 고통의 연속이란것을 침대 이불속에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중
3수끝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선관위에서 일하게된, 우리 친구들과 우리 고장의 자랑 공무원 친구께서 전화가옴

선관위 친구 : 너 요즘 놀지? 꿀알바 하나 할래?
나 : 무슨 알반데?
선관위 친구 : 선거날 개표하는 알바
나 : 오오 ㅈㄴ 잼있겠다. 콜콜
선관위 친구 : 근데 투표날까지 주말마다 나와서 교육 받아야뎀
나 : 역시 나랏일은 개빡시구나
선관위 친구 : 여튼 이번 토요일 낮 1시까지 xx구 선관위 와서 전화해라

그래서 어쩌다 보니 개표알바를 하게 되었음

당일날 가서 보니까 교육을 한달넘게 받아야 했던 이유가, 기계 조작을 해야하는 분류기 운용 담당이라 조작 교육을 받았던 것이었음

나갈때마다 교육비를 받았는데, 선거라는게 나라의 중대사라 교육비도 꽤나 달달해서 날 꼽아준 칭구에게 (선거기간이라 술 마시면 일하는데 힘들다는걸 억지로 붙잡고 새벽 통틀때까지) 거하게 한턱 쐈음

이렇게 나의 개표 경험이 시작 됐음


- 선거 임박 -

교육을 매주 주말마다 받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디테일 했음
처음에는 기본 작동법을 배웠는데 가면 갈수록 어려워졌고, 심지어는 개표 분류기를 일부러 고장내고 그걸 고치는 과정까지 테스트를 했음
그동안 몰랐었는데 다른 개표 인력은 몰라도 분류기 운용하는 사람들은 진짜 대충 만들어지는게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음
그만큼 빡쎘고 스트레스도 꽤 받았음
그렇게 교육 받으며 교육비를 따박따박 받다가 선거일이 3일 앞으로 다가왔음

이때부터 선관위 사무실에서 교육을 받는게 아니라 실제 개표장에서 교육을 받았음
특히 선거 바로 전날에는 실제상황과 비슷하게 리허설을 했음
당시 교육담당 직원이 갖가지 상황을 연기 하는데 선거마다 얼마나 엿같은 일을 당했던건지 연기가 매우 리얼했음
그렇게 마지막 교육을 마무리 지으며, 절대 선거날 제끼지 않는다는 서약을 하면서 마지막 교육을 마쳤음
그날은 겜도 밤새 안하고 일찍 잤음


- 시민의 눈 -

어느날 교육을 받는중 선관위 친구에게서 깨톡이 옴
'쉬는 시간에 전화해. 담배 하나 피자. 나올때 비타500도 하나만 가져와줘'
비타500은 교육받는 사람들에게만 지급되던것이었고 공무원 직원들도 못먹는 고귀한것이었음
그렇게 우린 애지중지 키워지고 있었던거임
쉬는 시간이 되었고, 친구랑 같이 나가고 있는데 내 기억에 빈방이었던곳이 무언가로 꽉 채워져서 문이 잠겨있었고, 못보던 사람 두명이 그 문앞을 지키고 있었음
'여기는 뭐고 저 사람들은 누구야?'
알고보니 선거날 쓸 집기들을 (특히 투표함) 가둬놓은 방이었고, 다른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게 시민의눈이라는 선거감시 단체에서 파견나와서 24시간 감시하는것이었음
시민의눈은 선관위를, 선관위는 시민의눈을 서로 감시하고 있었고, 이모든 상황은 씨씨티비로 녹화되었음


- 선거 당일 개표 개시 전 -

개표장에 오후4시까지 가야 했고 전날 필요이상으로 철저하게 체력관리를 했던터라 너무 일찍일어나서 겜좀 하다가, 나도 유권자중 한명이기에 투표장에서 투표하고 개표장으로 향했음

그동안 선관위 직원들과 분류기 운용요원 밖에 없었던 모학교 운동장과 강당에는 경찰차, 구급차 등등 나라재산들이 일찌감치 들어와있었고, 나는 담배 한대 피고 들어와서 맥심커피 하나 타갖고 담당 직원과 인사를 나눈 뒤 내 지정석에 앉아 기계 점검과 셋팅을 했음

서서히 개표 인력들, 참관인들 등등이 속속 들어왔고 강당이 북적북적해지면서 점점 내가 개표를 하러 왔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음

어느정도 시간이 되자 개표 인원들 각자 자리로 와서 자리 지키라는 안내가 떨어졌음

드디어 투표 마감시간이 지났고, 한 30분 지난 시점부터 투표함이 하나씩 도착하기 시작했음
각 투표소의 투표함은 선관위 직원1명, 경찰 1명, 시민의눈 1명 이 한 조가 되어 가지고 왔고, 투표함은 직원과 경찰이 같이 들고 들어왔음

어디서 온 투표함인지 알리고, 해당 투표구 선거인 명부가 넘겨지고, 투표함이 벽 한쪽에 차곡차곡 쌓이고, 그곳을 체격 건장한 남자들이 가로막았음
이 건장한 남자들은 오늘 징집(?)되어 온 인근 체대생들이 투표함을 지키는 임무를 받고 온것이었음

그렇게 모든 투표함이 도착한것이 확인 되었고, 국민의례나 지역 선관위 대빵의 당부말씀이나 개표선서등 개표전 행사가 진행되었고, 대빵의 개표시작 선언과 함께 개표가 시작되었음


- 개표 시작 -

개표가 시작되고 건장한 체대생들이 투표함과 그 투표함의 해당 선거명부를 개함부라는곳에 갖다줬음
개함부는 투표함을 최초 오픈하는파트였고, 역할은 투표지를 분류기에 넣을수 있게끔 접혀있는 투표용지를 잘 펴서 한쪽 방향으로 정리해주는 것이었음

그렇게 정리된 투표용지가 바구니에 담겨졌고, 정리가 다 되면 여학생들이 그걸 선거명부랑 같이 분류부에 갖다줬음
이 여학생들은 각 파트간 사람들이 접촉할수 없도록 가운데서 이어주는 셔틀역할이었음

그렇게 나도 첫 투표지를 받았고 드디어 나의 최초 임무가 시작 되었음
나는 분류부에 속했고, 분류부는 사무원 1명, 분류보조 3명, 분류기 운용요원 1명으로 구성되어있었음
내가 분류기로 한 후보당 50장 단위로 분류해주면 보조 3명은 그걸 고무줄로 묶어서 후보별로 차곡차곡 쌓았고 사무원은 그걸 바구니에 후보별로 잘 담았음
그렇게 한 투표소 분량이 모두 분류 되었고, 사무원이 후보별 득표수와 미분류표수를 기록해서 선거명부와 함께 바구니에 담겨서 셔틀 여학생들에 의해 계수부로 보내졌음

계수부는 분류된표를 육안으로 직접 확인하여, 표가 잘 분류되었는지 여부와 미분류표의 유효표,기권표 여부를 최종 판단하여 계수기로 후보별 득표수를 확정하는곳이었음
분류부에서 기계로 분류 하는건 그냥 개표 효율을 위한 1차 분류였고, 모든표는 사람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여 득표수가 확정되었음

득표수가 확정되면 개표소마다 파견나온 검사(인지 판사인지 잘 기억이 안남)들이 최종 득표 서명을 했고, 이걸 전산부에서 전산으로 득표 반영하여 중앙선관위나 방송국에 뿌려지는 시스템이었음


- 참관인 -

개표인력들도 많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참관인도 엄청 많았음
참관인들은 맥심커피를 손에들고 개표장 이곳저곳을 누비며 개표가 정당하고 잘 되고 있는지 감시를 했음
참관인들은 각 정당 당원의 비중이 많았고, 그냥 개표 구경하고싶은 일반인들도 있었음
분류기를 첫 가동했을때 수십명의 참관인들이 내 등뒤에 섰고, 겉으로는 태연한척 했지만 사실 엄청나게 긴장이 되었음
초반에는 별 문제 없이 분류기가 잘 돌아가줘서 다행이었지만, 곧 한번의 위기가 찾아왔음
한 투표소의 분류를 진행하는데 대부분 표가 미분류표로 분류가 되었음
당연히 참관인들의 태클 폭탄이 이어졌고, 분류기 내부를 보니 분류센서에 있었던 유리막대가 금이 가있었음
분류기 요원은 분류중에는 자리를 절대 뜰수 없기 때문에 손을 들어 선관위 직원을 호출했고, 내가 속해있던 조의 다른 구성원들은 테이블 아래로 손을 내려놨고, 선관위 직원은 해당 부품을 가져다 주어서 부품교체후 처음부터 다시 분류를 했음
다행히 교체후 분류기가 정상으로 돌아가서 별 문제 없이 해결되었음


 - 개표 마무리 -

비례대표까지 개표가 거의 마무리 되고 퇴근싸인을 기다리는중 사건이 터졌음
지역구대표 표수랑 비례대표 표수가 맞지 않았던것
3표차이가 났는데, 당연히 정당 참관인들은 난리가 났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하는 위기에 놓였음
일단 비례대표 표부터 다시 확인했고, 이때는 계수기를 제외한 모든 기계는 동원되지 않고 일일이 사람손으로 표 분류를 했음
다행스럽게도 30분정도 지났을 시간에 문제점이 발견되어 해결됐고, 최종 득표수가 확정된후에 모든 개표요원들은 퇴근 하라는 안내가 떨어졌음
그렇게 아침 6시쯤 개표소를 나섰고, 집에서 꿀잠 때린담에 그날밤 선관위 친구에게 전화해보니 오후 2시쯤 퇴근했다고 했음
개표소에 있던 온갖 집기들을 옮겨놓고 개표소 정리 마무리 하고 퇴근했다고 했음


- 마무리 -

생각보다 개표가 엄청 힘들었음
국가의 중대사이니 만큼 예민하고, 힘들겠지만 이번 선거 관련해서 어떤일이든 하시는 분들에게 화이팅하시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음
난 저날 이후로 다음 선거에도 연락이 왔지만 (개표 빡시다고 유명한 지방 선거라) 안할꺼야!! 하고 튀어버렸음


이 글은 본인이 직접 작성했으며, 시간이 꽤 오래 지난 일이라 기억에 왜곡이 있을수도 있고 틀린점이 있을수도 있습니당
카테고리는 정치 관련이지만 정치얘기는 없어서 이슈는 아닌것 같고 계층으로 했습니다
정치얘기는 하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