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하게 밝혀진지 오래인데, 극우성향의 사람들이 인정을 안 하는 것일 뿐임.


1. 최초사망자가 누구인가 논쟁

5.18최초사망자는 청각장애인 김경철씨로 밝혀졌는데도 가족이나 지인의 증언이 엇갈린다는 반론도 있는데.

공식 자료에 5월 19일 새벽 3시라고 명시되어 있다.

김경철씨 사망자 자료에 계엄군으로 부터 병실에 넘겨졌으며 사망시간은 5월 19일 새벽 3시라고 명시.





2. 발포는 누가 먼저 했나 논쟁

검찰발표문 보면 공수부대 발포가 먼저라고 나와있다.

광주에서의 최초 발포는 5월 19일 오후 5시께 광주고 부근에서 있었던 바 (중략) 20일 밤11시께 3공수여단이 광주역 일대에서 3공수여단장은 경계용 실탄을 예하대대에 전달하고 대대장은 이를 장교 위주로 분배해 자신들을 향해 돌진하는 차량을 향해 발포했으며 (중략) 시위대가 무기탈취에 나선 것은 21일 오후 1시께 전남도청 앞에서 공수부대의 발포가 있은 후로 시위대는 광주 인근지역으로 진출, 화순,나주 등 지방의 지.파출소와 화순광업소, 한국화약 등 방위산업체 등에서 대량의 무기와 실탄을 탈취했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902648



3. 광주시민이 전두환을 몰랐나 논쟁


누구인지도 모르는 전두환을 찢어죽이라고 현수막을 걸었다니. 말이 안 되지.



4. 어떤 대통령이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만들었나 논쟁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처음 민주화운동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5.18은 6共태동을 눈앞에 둔 88년에 가동된「민주화합추진위원회」를 거치면서 정부로부터「光州민주화운동」이라는 명칭을 공식 인정 받았고 그후 국회光州특위의 활동에 힘입어 당시의 진상이 9년만에 미흡하나마 어느정도 국민들에게 직접 전달됨으로써 역사속에서 제위치를 찾는가 싶었으나 정부.여당을 비롯한 정치권의 무성의와 현정권이 갖는 정치적 한계성으로 인해 완전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후속작업이 지지부지한 채 표류하고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1997년 민주화운동 기념일 만들면서 민주화운동으로 확정됐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5·18민주화운동은 국가 차원에서 재평가되었고, 각종 기념사업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광주시의회는 1996년 4월 30일 기념일 제정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고, 5월 18일을 ‘5·18민중항쟁기념일’로 지정하는 광주시 조례를 제정하였다. 광주시는 이러한 의견을 수렴하여 1997년 2월 정부에 법정기념일로 제정해 줄 것을 건의하였고, 1997년 5월 9일 이 요구가 수용되어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다. 그리하여 1997년부터 5월 18일에 새로 조성된 국립 5·18묘지에서 정부가 주관하는 기념식이 거행되기 시작했다. 한편 광주 시민사회에서는 광주시 기념일도 5월 18일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을 수년 전부터 제기하여 점차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