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식자층들과 미디어들은 터키 사태의 본질을 이렇게 진단한다.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갈등" 혹은 "터키 경제가 발전하자 먹고 살만해진

 

중산층들이 정치적 자유의 확장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특히 후자의 진단에 있어서는 한겨레 신문의 논조가 대표적이다.

 

 

마치 경제성장에 따른 정치적 요구의 확대라는 민주주의 발전 단계의

 

자연스러운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즉, 먹고 살만해지니 이제서야 민주주의 확장에 대한 요구 투쟁이

 

생기고 있다는 식의, 판에 박힌 부르주아 민주주의 발전 단계 텍스트를

 

외워대며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난 이런 시각들에 반대하며 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왜냐면 대중들의 폭발적인 저항에는 반드시 "삶의 질이 개선될 것을 바라는

 

요구들" 즉 계급 갈등이 담겨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터키 사태의 본질이 뭘까에 대해 좀 갑갑해하는 이들을 위해 쓴 글이다.

 

글이 좀 길긴 하지만 터키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비극의 시작

 

처음에는 경찰의 곤봉과 최루탄. 물대포의 물줄기가 얼굴에 직사 되었는데,

 

그 다음엔 고무총과 헬기가 등장했고 헬기는 상공에서 신경가스를 살포했다. 

 

정부는 3G통신망을 끊어버렸고 SNS를 통제했다.

 

정부의 폭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시민들을 향해 총구가 겨눠졌고 장갑차

 

바퀴에 시민이 깔려 죽었다. 심지어 플라스틱 폭탄까지 등장했다.

 

 

그리고 터키 총리 '에르도간'은 이렇게 말한다.

 

(이십명의 반대자가 나선다면 나는 이백명의 당원을, 이백명의 반대자에게는

 

이천명의 당원을, 이천명의 반대자에게는 이만명의 당원을 동원하여 진압하고

 

정부의 뜻을 관철시킬 것이다)

 

 

사망자 5명. 중상 부상자 900명 총 부상자 7천명. 연행자 1800명...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든 것처럼 보여지지만 아직도 현재 진형형이다.  도대체 왜 이런

 

비극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대중투쟁의 발화점 '게지 공원'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에는 '탁심'이라 불리우는 광장이 있고 그 옆에는 '게지'

 

라는 이름을 가진, 터키 국민들에게는 민주주의 투쟁의 상징이자 자부심으로 

 

여겨지는 공원이 있다... 또한 게지 공원은 터키 이스탄불의 유일한 녹지 공간

 

이기도 하다.

 

 

터키 정부는 이 공원을 밀어내고 대규모 쇼핑몰과 '오스만 제국' 당시의 포병

 

부대 건물을 재건하겠다는 발표를 한다.(터키 역사중 가장 융성했던 제국시대)

 

수많은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터키 정부는 쇼핑몰 건설 계획을 밀어 부쳤

 

으며... 공원의 나무들을 벌목하려는 정부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시민들은 연일

 

토론.콘서트.불꽃놀이등 자발적인 축제을 벌이면서 공원을 점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비극이 시작되는데, 시민들의 비폭력 평화적인 축제에 터키 정부는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대응한다.

 

그리고 이날 최초의 수십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데, 이 경찰의 과잉 진압과

 

폭력이 하나의 발화점이 되어 버리면서 시위는 이스탄불 게지 공원을 넘어서

 

터키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과연 과잉진압이 폭발적인 대중투쟁의 원인이였을까?

 

상황을 보자면 터키 시위가 이런 사태로 까지 이르게 된 직접적이고 1차적인

 

계기는, 정부의 밀어부치기식 개발 방식과 경찰의 과잉 진압에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그 이면을 보면 좀더 복잡하다.

 

 

원래 터키는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중동 동맹국 중 하나였다.

 

터키는 이스라엘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소의 하나이며, 두 나라는 많은

 

양자 간 협정을 맺었다.

 

 

그러던 두 나라 사이에 긴장이 처음 나타난 것은 팔레스타인인 1천4백 명을

 

살해한 2008년 이스라엘의 야만적 가자 지구 공격이었다.

당시 터키 총리 에르도간은 이스라엘 대통령 시몬 페레스를 "사람을 어떻게

해야 잘 죽이는지 아는 자"로 지목했고 사회자가 자신의 발언을 중단시키자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슬람과의 반목을 내치로 활용해 영구집권을 꾀했던 터키 지배자들

 

이 일로 에도르간은 일약 아랍 세계의 영웅이 되었다.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랍 진영과 적대적인

 

관계라는 것을 감안하면 위 발언의 정치적 의미를 알수있다.

 

문제는 에도르간의 행보가 진정으로 이스라엘의 만행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등을 돌림으로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겨냥한 고도의 정치적인

 

계산이 깔린 행보였다는 것이다.

 

 

중동 지역에서의 상대적 경제호황을 통해 생겨난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과의 반목을 통해 지역 열강으로 자리잡겠다는 계산과... 이런 상황을 내치로

 

돌려서 영구집권을 꾀하겠다는 치밀하게 계산된 행보들이었다.

 

 

 

장기집권을 위해 이슬람과의 반목을 선택할수 있었던 경제호황의 배경

 

그러나...

 

터키 정부가 지역 열강으로의 꿈을 꿀수 있었던 토양, 즉 상대적 경제호황은

 

실상은 브릭스 국가들이(BRICS, 브라질,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2000년대에 누릴수 있었던 높은 경제성장률의 한 부분이었으며, 브릭스 국가

 

들의 높은 경제성장률은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서방 각국들이 앞을 다퉈서

 

쏟아낸 "양적 완화"로 인해 눈먼 돈들이 흘러들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서방 각국들의 '양적 완화' 정책들로 인해서 달러 가치가 급속하게 하락했고,

 

이 신흥국들은 외채를 빌려서 거품을 부양하고, 기업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썼는데... 이것이 상대적 경제 호황의 바탕이었다.

 

 

그러나 실물 경제의 이윤율이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정책들은 이제

 

결정적인 한계에 도달하게 되었으며, 그 거품이 꺼져가기 시작하자 수많은

 

문제점들을 노정시키게 되었다.

 

 

경제 지표는 성장했지만 내적 모순은 커져만가며, 자본주의의 고전적 위기

 

극복 방식인 '제살 깍아먹기와 폭탄돌리기'의 민낮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터키의 불평등 지수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40이 넘어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03~10년 경제는 평균 5.3퍼센트씩 성장했지만 실업률은  두 배로 늘었다.

 

게다가 외채에 의존한 버블이 꺼지면서 성장률이 급속하게 추락하고 있다.

 

특히 불어난 외채는 이 나라들 경제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터키는 단기 외채가 외환 보유액의 1백30퍼센트가 넘을 정도로 많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양적완화 정책을 중단하고 금리를 조금씩 올릴 경우

 

거품을 떠받치던 돈들이 빠져나가서 터키는 바로 파산에 직면하게 된다.

 

 

폭탄돌리기의 끝자락에 도달해서 자폭을 당할 수준으로 전락해버린 터키. 

 

이런 상황에서  터키 정부가 취할수 있는 선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대규모 토목 건설 사업을 통해 경기를 부양시키겠다는 방식을 택했다.

 

공원을 없애고 쇼핑몰을 지어 건설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터키 정부. 월드컵

 

유치를 위해 막대한 돈을 쓰면서 버스비를 인상해 재정 위기를 막겠다는

 

짓들. 어디서 많이 보던 것 아닌가?

 

 

4대강을 파헤치며 건설업자를 배 불리고, 지방정부 재정이 어렵다며

진주의료원을 폐업하는 한국 지배자들의 태도와 정말이지 너무나 닮았다.

최루액과 물대포 등을 쏘며 폭력적으로 민주주의를 억누르는 모습까지

어쩌면 그렇게 "형제의 나라"의 더러운 면들만 따라 배운 것일까?

하다못해 터키 국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사용되는 최루탄은 경북 문경에서

생산되며 물대포도 한국제다.

 

결론적으로 게지 공원을 밀어내고 대규모 쇼핑몰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은

더이상 깍아먹을 제 살이 없어져버린 신자유주의 물결의 끝자락에서...

궁지에 몰린 터키 정부가 선택한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서 강행될 수 밖에

없었던 사안이었다. 마치 이명박 정부가 4대강에 목숨을 걸었던 이유와도

매우 흡사하다. (이것도 형제의 나라 지도자 이명박에게서 전수받은 것일까?)

 

따라서 최근 터져 나온 신흥국에서의 저항은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사이의

갈등도 아니고, ‘먹고살 만한 중산층’의 투쟁도 아니다. 이 저항의 근원에는

세계 자본주의의 모순과 계급 갈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터키 사태를 통해서 보게 되는 또 하나의 진실...

 

자본주의 계급갈등은 아주 조그만 계기에서도 전혀 예기치 못한 거대한 대중

 

투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