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즘

우리는 먼저 평범한 사람들을 겨냥한 폭탄 테러에 단호히 반대해야한다. 테러가 단지 폭력적 방법을

사용해서 때문이 아니라, 테러의 희생자들은 언제나 대부분 '무고한' 사람들 이었기 때문이다.

테러리즘의 더 큰 문제는 폭력적 행위 자체에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진정한 모순을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로 수면 아래로 감추어버리는 역할을 한다. 테러리즘은 아래로부터의 대중들의 힘으로 모순을

해결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영웅적인 행동으로 사회 변화를 이루어 줄수 있다고

믿는 엘리트주의의 극단적 표현 방식의 하나이다.

 

모든 엘리트주의가 테러적 방식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엘리트주의가 극단으로 빠지면 테러리즘을

실천 대안으로 삼는 일이 빈번해진다. 예컨대 이나라 진보운동의 역사에서도 대학생들이 외국공관을

점거하고 방화하는 식의 테러적 활동 방식들을 채택했었는데, 이 또한 엘리트주의의 한 극단이다.

 

 

희생양

그러나 우리는 다른 한편으로 어떤 극단주의 정치집단의 테러적 활동방식 때문에, 그 집단이 포함된

사회구성원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그들이 공공 장소에서 줄지어 협박당하고 비난받는 것에 분명히

반대해야 한다. 1999년 런던 중심부에서 사제 폭탄을 터뜨려 한 사람을 살해한 폭탄 테러범이 기독교

도란 이유로 기독교인들이 비난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kkk단 (Ku Klux Klan)의

비이성적 인종차별과 그들의 폭력과 무자비한 살인만행을 보며, kkk단이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라는

이유로 모든 기독교인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라고 재단하고 기독교인들에 대한 사회적 통제 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80년대 김현장등... 일단의 nl학생운동권 구성원들이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벌였을 때,

당시 독재정권은 그것을 빌미로 모든 학생운동권을 탄압하고 마녀사냥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진보당에게 종북이라는 굴레를 씌우는데 성공한 조중동은, 진보세력 일반에게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당인 새정치연합에게까지 종북숙주당이라는 책임을 덧씌우려 하고 있지 않은가?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빈번해서 무고한 사람들이 무차별적인 테러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으로,

무슬림들에 대한 사회적 경계 강화 필요성이 필요하다? 어디서 많이 듣던 뉘앙스 아닌가?

'RO'조직이 테러와 국가전복을 예비했음으로 이땅의 모든 진보 세력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고

예비검속을 벌여야 하며, 그들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국정원에 합법적인 민간인 감시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는 TV조선이나 일베의 논법과 무엇이 다른가?  

 

생각해보라. 전세계 인구 1/4이 무슬림이다. 당신은 진짜 이 수많은 무슬림들이 잠재적 테러분자들

이라고 생각하는가? 정말 이 모든 무슬림들 중에 혹시라도 테러리스트가 숨어있을지 모르니 이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믿는가? 제발 우리 이성을 좀 찾자. 무고한 테러 희생자들에 대한

비통한 애도의 심정을 넘어서버린 지나친 일반화로, 편견과 증오를 조장하는 것은 오히려 테러리즘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감춰버린다.

 

 

이슬람주의에 대한 잘못된 견해 두가지

이슬람주의는 보수반동적이고 과거 회귀적 이데올로기인가? 이런 관점은 일부 이슬람권 국가들의

심각한 인권탄압이나 특히 여성에 대한 차별적 만행들을 보면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라, 인권탄압이나 여성에 대한 심각한 차별이 단지 이슬람권만의 문제던가?

여성차별 뿐만 아니라, 편견과 차별 증오는 모든 인종주의자들의 공통점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런 견해를 <한겨레> 같은 자유주의 언론들이나 일부 좌파들까지도 공유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2년 이집트의 대선을 보는 관점이었다. <한겨레>는 이집트 대선을 두고 "내용면

에서는 과거로의 회귀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며 사실상 군부와  무슬림형제단이 거의 차이가 없는 듯

묘사했는데, 그러나 '샤피크'는 이집트 지배계급을 대변했고, '무르시'는 주류 지배계급에 저항하는

'이슬람형제단'을 대변했다. 결과적으로 '무르시'가 당선되었고, 이것은 '샤피크'가 당선 되었다면

벌어졌을 광폭한 반혁명 책동을 일부 저지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것은 분명히 이집트 민중들에게는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일보 진전을 의미하는 일이다. '샤피크'가 당선 되었더라면... 정말 끔직하다.

 

이슬람주의를 바라보는 잘못된 견해로서 또 한가지 시선은, 이슬람주의를 피지배계급의 진보적,

반제국주의적 운동으로만 보는 관점이다. 이 관점의 실천적 결론은 이슬람주의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다.

예컨대 일부 좌파는 2009년 이란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면서 운동을 탄압하는 이란의 이슬람

정권을 지지했다. 이 두가지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문제의 원인을 이슬람주의 속에서만 찾으

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슬람주의 자체가 테러리즘을 유발하는 종교인가?

참 웃기는 질문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KKK단은 기독교근본주의를 기반으로 삼고있다. 반면 KKK

단의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흑인민권운동도 기독교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아이러니. 뿐만 아니다. 

17세기 유럽에는 봉건 세력의 반(反)혁명적 그리스도교(가톨릭)와 부르주아지의 혁명적 그리스도교

(칼뱅주의)가 공존했고, 라틴아메리카에는 독재자들과 미국 제국주의의 가톨릭과 빈민들의 가톨릭이

공존하고, 중동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친제국주의 이슬람교와 하마스나 헤즈볼라의 반제국주의

이슬람교가 공존하고 있음. 즉 현실 종교는 수없이 다양한 얼굴로 어느 현실에서는 민중투쟁의 기치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현실에서는 억압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에서 나오는 수많은 정치적 결론들은 흔히 알려진 상투적 주장들과 모순된다.

즉 특정 종교가 다른 종교보다 본래 더 반동적(이거나 더 진보적)이지 않다는 것이고,  종교의 형태와

규모와 기능은 다양하지만, 그것은 항상 구체적 사회 조건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종교와 계급    

어떤 사회적 조건에서는 종교는 지배계급 자체에게 그들의 지위를 정당화한다.(심지어 왕과 독재자들,

기업주와 군장성들도 자기 정당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회 질서는 신의 뜻이라고 설교하고 대중에게

세속의 권위를 존중하라 역설하며("가이사[로마 황제]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수동성을 부추기는

등 대중에게도 지배계급을 정당화한다.

 

그런가 하면, 천대받는 자들의 고통과 더 나은 세계를 바라는 그들의 희망을 표현하고 심지어 공공연히

반란을 옹호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종교를 가리켜, "종교는 현실의 고통을 표현할 뿐 아니라

현실의 고통에 항의하기도 한다. 종교는 천대받는 피조물의 한숨이고,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고, 영혼

없는 세계의 영혼이다." 라고 말했다지.

 

똑같은 불교, 똑같은 카톨릭, 똑같은 기독교, 똑같은 이슬람교인데, 어느 사회적 조건에서는 지배자들의

통치수단이 되기도 하고, 어느 사회적 조건에서는 저항의 신념이 되기도 한다. 힌두교 유교도 마찬가지다.

종교적 색채를 띠거나 종교 지도자들이 이끄는 정치 운동들 ― (가톨릭인) 우고 차베스나 (불교도인)

티베트 민족주의나 중국의 파룬궁이나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저항세력 등등... 모든 종교들이

어느 사회적 조건에서는 저항의 신념이 되고있다.

 

특히나 아랍권 세계는 여러가지 내외부적 요인으로 인하여, 지배세력의 교체가 매우 빈번하게 일어

나는 사회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로 지배세력이 유지되려면 잉여생산물에서 그 비용을 충당해야 하고

그것은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수탈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이런 과정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의

격차는 점차 심화되고, 투쟁이 시작된다. 그리고 여기에 석유에서 뽑을 수 있는 이윤 때문에 서방 열강

들의 정치적 군사적 개입이 가로로 세로로 얽혀있다. 아랍권의 어느 지배자들은 서구 열강의 힘에 기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고, 또 어느 지배자들은 반제국주의 명분을 내세우며 기득권을 유지

하려고 한다. 때문에 아랍 민중들은 외적으로는 제국주의에 맞서는, 내적으로는 지배계급의 착취에

맞서는 싸움을 벌여나가고 있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해관계들을 구체적으로 바라보고 민주

주의자로서 어떤 부분을 지지하고 비판해야 할지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니파'와 '시아파' 이들 이슬람 종파중 어느 종파가 더 극단적이고 온건하다는 결론도 극히 일면적

이다... 어느 집단에게는 억압과 착취를 정당화하는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이고, 어느 집단에게는 착취에

저항하는 종교적 신념이다. 지금 세계 곳곳의 평범한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돼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받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당장 논게만 해도 아랍권 분쟁의 이런 구체적인

상황은 무시한 채, 그냥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만악의 근원이라며 모든 이슬람을 비난해대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대체 우리가 무슨 권리로 제국주의와 계급 억압에 맞서 싸우는 아랍 민중들의 종교를 비난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맺으면서...

물론 나는 무신론자다. 나는 종교란 아직 자기 완성을 이루지 못했거나 이미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의

자기 의식이고 자기 인식이라고 생각한다.<마르크스의 분석을 빌리자면> 하지만 특별하게 종교에

적대적일 필요가 없다. 왜냐면 어느 사회적 조건에서 종교란 '고통받는 사람들의 한숨' <이건 내 표현>

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종교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 신념이 발현되는 사회적 조건에 따라 

각자 다른 사회적 행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모든 종교 신앙과 예배의 자유 원칙을 옹호한다. 왜냐면... 종교가 의미 없어질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종교를 낳는 소외와 착취 상황을 폐지하는 것뿐이다. 

 

당신에게는 무지하고 멍청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당신의 그 무지와 멍청함이 무고한 내 주변의 이웃이나 누군가를 향해 편견과 증오를 조장하고

공격하는 행동을 한다면, 난 일베충에 맞서 싸우듯이 그 행동을 단호하게 저지하고 맞서 싸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