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대작 게임이 줄 지어 있는 올해. 엔씨의 블레이드앤소울이 끝나나 싶으면 다시 아키에이지가 자유도라는 단어로 게이머들을 유혹한다. 올가을 디아블로3의 베타테스트 소식이 뜨니 나머지 게임은 시간 보내기용이 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몇백 억을 쏟아부은 대작이 아니라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대작 게임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다른 게임을 놓치는 우를 범하는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의 손해다.


그래서 찾은 엠게임의 신작 MMORPG 워베인 개발팀. 처음 워베인의 500대 500 전장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제는 흔한 느낌마저 드는 '대규모 전쟁'을 내세우는 게임인가 했다. 대규모 공성전이 있다는 건가 싶어 슬그머니 '그럼 공성전도 있는 건가요?'하고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워베인은 필드에서 PVP하며 아이템 먹는 정통 한국형(?) MMORPG도, 성 먹고 세금 먹는 공성전을 강조한 게임도 아니었다. 500대 500의 대규모 인원이 드넓은 평원에서 영화처럼 맞붙는 그런 장면과도 거리가 있었다. 차라리 워베인의 500대 500은 거점 점령을 목표로 전략적인 플레이가 필요한 '전장'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나마도 그건 워베인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전장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하니... 대체 워베인은 어떤 게임인지 감이 얼른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전장 콘텐츠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야 할 성싶었다. 의자를 바싹 당겨 앉았다. 귀를 세웠다.






■ 많았던 테스트의 의미. 워베인 방향을 잡다


워베인은 테스트가 잦았던 게임이다. 작년 10월 1차 CBT를 시작으로, 11월 2차 CBT를, 12월 3차 CBT를 하는 등 속도감 있는 테스트가 이어졌다. 올해 1월에는 와일드테스트라는 독특한 이름의 테스트에 이어 보통 오픈베타 전 마지막 테스트이기도 한 '사전' 공개테스트를 시작했다. 계획대로라면 며칠 간의 사전 공개테스트가 끝난 이후 바로 오픈베타로 넘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워베인은 오픈베타를 하지 않았다.


▲ 김석민 기획실장
김석민 기획실장은 그때를 가차 없이 표현했다. "프리오베를 하고 나니 많은 부분이 부족한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안정성도 문제가 있었고, 그 외 오픈 이후 보여줘야 할 콘텐츠의 준비나 완성도, 유기적인 관계들 또한 정립이 되어 있지 않았던 상태였죠."


당시 엠게임 내부에서는 이대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감돌았다고. 오픈 베타를 코앞에 두고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위기감의 발로. 하지만 마냥 미룰 수만은 없었다. 김석민 기획실장이 얻어낸 시간은 5개월뿐이었다.


5개월이라는 시간은 절대 길지 않다. 이미 오픈베타 수준으로 콘텐츠가 개발된 게임이므로 더욱 그러했다. 차라리 아직 덜 만들어졌을 때라면 좋았을 것을. 이제는 바꿀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다.


김석민 기획실장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새롭게 어떤 거창한 걸 만든 것은 아닙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안정성 측면을 보강하는 것이었고요. 더 주력한 것은 방향성을 잡아나간 것이죠. 과연 워베인이라는 게임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미 PVP 전장 관련 콘텐츠가 많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유기적으로 게임에 녹여내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퀘스트도 있고 사냥도 하고 생산도 하고 채집도 하고 특성도 찍고... 하는 '없는 게 없는' MMORPG였던 워베인은 김석민 기획실장의 손을 거쳐 전장과 PVP로 모든 콘텐츠가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게임이 되어갔다.



■ 500대 500에서 독특한 길드전까지


워베인의 목표는 매일매일 새로운 전장을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 그 결과 서버 점검하는 목요일을 빼면 매일 국가전이나 비국가전 중의 하나는 일어난다고. 비정기적으로 항상 가능한 전쟁의 모습 또한 여기에 더해진다.


정리를 해보자. 24대 24, 12대 12 전장이 있다. 가장 큰 국가전은 500대 500 국가전이다. 국가와 상관없이 길드끼리 순위를 다투는 길드전도 열리고, 일종의 투기장에 해당하는 아레나도 열린다. 상시로 열리는 필드세력전과 특별한 이벤트로 상대 국가를 침략할 수 있는 전면전도 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전장이 각각의 독특한 룰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500대 500 전장. 언뜻 대규모 PVP의 모습을 강조할 수 있어 보이는 이 콘텐츠는, 절대 양쪽에서 두 진영이 와~하고 출발해 가운데서 맞붙는 곳이 아니라고 한다.


40레벨 이상의 유저들이 참여하는 500대 500 전장은 전체 20개의 거점을 어느 편이 많이 점령하느냐를 겨루는 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 장소에 500대 500명이 모두 만나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거점을 비워두면 상대세력의 빈집털이에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일부는 수비를 일부는 공격 해야 한다. 김석민 실장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스타크래프트의 '헌터맵'을 예로 들기도 했는데 그런 식으로 언제 어느 거점에 공격력을 집중시키느냐 하는 전체적인 전술이 중요하다고. 헌터맵과 마찬가지로 두 세력이 리스폰 되는 장소도 제각각으로 섞여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군단장과 여단장이라는 독특한 개념이다. 처음 전장이 시작되면 레벨이나 업적 등의 순위에 따라 군단장과 여단장이 설정되는데 이들은 전장 내에서 특별한 스킬을 쓰게 된다. 다수의 대포를 소환해 폭격한다거나, 아군 유저들을 특정 지역으로 모두 소환해 이동하는 스킬들로 전체적인 승패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





비슷한 국가전인 24대 24 전장은 또 룰이 달라서 유물을 쟁탈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고, 12대 12 국가전은 필드에 배치된 NPC를 포섭해 아군으로 만들어 활용하는 것이 특징인 식으로 같은 국가전이라도 전장의 성격이나 규모, 구성, 전략이 모두 달라 거기에서 느껴지는 재미도 다양하게 구성되어있다.


국가소속과는 상관없이 길드끼리의 승패가 가려지는 길드전의 룰도 독특하다.


데스매치 형태로 진행되는 길드전은 상대방을 쓰러뜨리면 '영혼의 의지'라는 버프를 받게 된다. 이 버프를 받으면 받을수록 캐릭터의 몸 크기가 커지고 점점 강해지게 된다. 하지만 게임의 승리는 이 영혼의 의지를 먼저 반납하는 쪽이 가져가게 된다. 무작정 자기 캐릭터를 강하게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또 영혼의 의지를 어떻게 활용할지도 선택의 한 요소다. 길드원끼리 영혼의 의지를 하나씩 나눠서 획득할 것인지, 아니면 한 명이 모든 영혼의 의지를 몰아 가져서 굉장히 강해지는 것이 유리한지도 전략. 하지만 이렇게 되었을 때 이 한 명의 길드원이 쓰러지면 모았던 영혼의 의지를 모두 잃게 될 수도 있다.


서로 대립하고 있는 두 개의 국가를 그리고 있는 게임이니만큼 레벨업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상대국가 캐릭터와는 늘 전쟁상태. 단순히 개인 PVP가 아니라 33레벨 이상에서 가게 되는 분쟁지역에는 지역마다 점령할 수 있는 탑이 있어서, 한쪽 국가에서 모두 점령하면 전체 국민이 이로운 버프를 받게 된다고.


특별한 이벤트로 전면전을 빼놓을 수 없다. 레벨업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중간재를 국가에 기부하면 국가의 평판이 올라가게 되는데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상대방 국가의 본거지로 바로 넘어갈 수 있는 차원의 문이 열린다. 이 문을 통해 상대방 국가의 영웅 NPC들을 공략하는 전면전을 펼치게 된다. 당연히 보상도 크다.






■ 중요한 것은 전장을 어떻게 녹여내느냐


워베인은 PVP 전장의 문턱도 낮췄다. 10레벨부터 참여할 수 있는 워베인의 아레나는 결과에 따라 업적포인트 외에 경험치도 주기 때문에 사냥이나 퀘스트를 하다가도 PVP를 즐기며 레벨업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사실 아레나뿐 아니라 모든 전장이 업적 포인트와 함께 경험치도 제공한다.


경험치를 제공하는 것이 PVP 뿐은 아니다. 물론 퀘스트를 수행하는 것이 레벨업의 지름길이긴 하지만 채집을 하거나 생산을 하는 등 게임 내 모든 행위의 결과로 경험치가 주어진다고. 명예레벨을 얻기 전 실질적인 만렙에 해당하는 50레벨까지 평균 플레이 시간은 300시간 정도. 만약 전용 PC방이나 각종 이벤트 혜택을 받는다면 더 줄어들 수도 있는 시간이다. 레벨업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그만큼 빠르게 PVP 전장을 느껴보라는 것이다.


50레벨 이후에는 명예레벨에 도전하게 된다. 업적 포인트의 순위에 따라 서버 전체의 인구 중 상대비율로 명예레벨을 달성할 수 있다. 최고 명예레벨인 60레벨은 서버에 단 한 명만 존재한다.


물론 여기도 선택이 존재한다. 조금 더 PVP의 성능이 강화된 명예레벨 아이템을 구입하면 업적포인트가 소모되어 명예 레벨이 낮아질 수 있다. 적당한 명예레벨을 달성한 뒤에는 PVP 아이템으로 무장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51레벨 이상의 명예레벨은 특별한 호칭을 받게 되는데 이 호칭에 붙은 보너스가 상당하다고. 업적 포인트에 매진해 60레벨 최고사령관에 도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PVP 전용 아이템으로 인해 전장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이미 PVP 아이템을 잔뜩 획득한 유저를 이제 막 PVP 전장에 들어간 유저는 절대 이길 수 없는 모습은 다른 게임에서 종종 보아왔던 것이다.


김석민 실장은 다양한 PVP 전장의 존재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한다. 국가전에서 참여한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 게다가 PVP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는 업적 포인트는 PVP의 결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일종의 트로피 개념으로 캐릭터의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플레이에 대한 결과로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PVP 장비 보유 여부에 따라 장비 격차는 있겠지만, 누구나 쉽게 PVP 아이템 획득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한때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투기장 매니아로 생활하며 탄력템의 빈부격차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는 김석민 실장의 복안이다.






■ 레볼루션 테스트, 그리고 앞으로...


PVP 전장의 강화, 그리고 게임 콘텐츠와의 유기적인 결합. 워베인의 방향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답을 얻기 위해 워베인은 또다시 테스트를 선택했다. 직접 테스트를 하면서 게임의 완성도와 방향성을 검증해나가야 한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5월 세 차례에 걸친 레볼루션 테스트의 결과는 이제까지와는 달라졌다.


우선 게임에 대한 피드백보다는 안정성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이전과 달리 안정성이 확보되었다. 그래픽의 향상이나 신규 클래스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이 오기 시작했다. 사냥 시간이 길다거나 스킬을 배울 때 돈이 부족하다는 사소한 의견에도 귀를 기울였다. 즉각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그날 패치할 정도였다. 그러자 또 다른 콘텐츠의 건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밸런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게임이 할 만해졌다는 이야기다.


6월 23일 프리오픈베타를 앞둔 워베인은 13일부터 다시 테스트를 시작한다. 이번에는 각오를 다졌다.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파이널 테스트'라고 이름을 붙였다. 파이널 테스트는 캐릭터를 만들면 바로 33레벨이 된다. 33레벨은 양 국가의 유저들이 서로 만나게 되는 분쟁지역으로 가게 되는 때. 항상 열려 있는 필드세력전과 상대국가 플레이어와의 전투를 바로 맛볼 수 있게 된다.


프리오픈을 앞둔 개발팀은 지금 모든 기능을 최종 점검하고 있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콘텐츠 개발도 병행하고 있다. 오픈 이후 3개월 안에 메이저 패치가 들어갈 예정이기 때문. 전장 또한 유저들의 성장 곡선에 맞게 단계별로 오픈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위한 전장 콘텐츠의 막바지 조율 작업도 한창이다.


이제는 만족하냐는 질문에 "개발자는 늘 아쉬움이 남는 것 같다.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김석민 실장은, 앞으로 워베인을 서비스함에 있어서 유저들의 의견에 귀를 많이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퀘스트 이름이나 아이템의 이름을 유저들의 제안을 받아 정하거나, 혹은 유저 이름을 그대로 쓸 생각도 하고 있단다.


유저들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함께 개발하는 게임이 되겠다는 워베인. 어쩌면 PVP 전장이나 게임의 특징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