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싸우거나 물리쳐야하는 전투가 없다. 레벨이 없기에 성장도 없으며, 채팅같은 대화도 없다. 게다가 게임 내내 들려오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음악 뿐. 그런데 해본 사람은 누구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지금까지의 게임이 갖고 있던 편견을 깨트린 멋진 재미의 게임이라 인정한다.


마치 한 편의 짧은 무성 영화를 보는 듯한 감동을 선사한 이 게임의 제목은 저니(Journey). 플레이타임이 2시간여에 불과할 정도로 짧고 PSN으로 출시되었기 때문에 이런 게임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게이머들이 많지만, 해외 매체들의 연이은 9점 러쉬가 증명하듯 멋진 재미와 독창성을 갖춘 명작 게임이다.







금일(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KGC (한국 국제 게임 컨퍼런스) 2012의 첫날, 저니의 개발에 참여한 유명 개발자 랜달 로우(Randall Rowe)가 강연에서 발표한 주제는 '산타모니카 스튜디오의 인디 게임 - 당신의 인디 게임 성공을 돕는 법' 이었다.

강연자인 랜달 로우는 '저니' 외에 SCEA에서 '갓 오브 워 - 고스트 오브 스파르타'와 '플라워'에 참여하였고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분야에서 11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베테랑 개발자이며, 산타모니카 스튜디오는 사운드 쉐이프, 플라워, 이스케이프 플랜 등 독창적인 콘셉의 게임을 다수 제작한 유명 스튜디오이다.


랜달 로우가 인디 게임의 성공에 있어 필수 요소로 꼽은 것은 1. 게임 제작의 동기 부여, 2. 게임 구조(mechanic)의 정의, 3. 반복을 통한 다듬기, 4. 매니지먼트의 중요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게임 제작의 동기 부여는 뼈대를 구성하는 단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단계. 따라서 너무 구체적일 필요는 없으나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꼭 새로울 필요는 없지만 항상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추가해나가야한다는 점이 중요하며, 저니 역시 시작부터 이런 단계를 거쳤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저니의 시작은 '완전히 무작위로 기분좋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다툼이 아니라 서로 공감하고 인류애를 갖게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고.

결국 의논끝에 결정된 저니의 목표는 특정인의 권력에 대한 환상이나 욕구를 채워주는 형태를 피하고, 심리스 형태의 온라인 플레이로 지속적인 체험이 가능하며, 기존의 온라인 협동 게임과 비슷하면서도, 게이머들이 게임의 세상 속에서 스스로 나약하다고 느끼면서 서로 뭉치고 도우면서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게임.


그러나 이렇게 잘 만들어진 기획서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랜달은 발표에서 '누구나 기획서 상으로는 어떤 대작에도 뒤지지않는 멋진 게임이나 아이디어들을 선보일 수 있다.'면서, '동기 부여가 끝난 뒤 게임의 구조를 다시 정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즉 그가 언급한 게임 구조의 정의는, 쉽게 말하면 아이디어들을 실현 가능한 게임으로 제작하는 과정. 즉 멋진 설계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게임을 제작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이런 과정은 여러번의 수정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으며 저니 역시 초반의 아이디어를 통해 제작되었던 부분들이 나중에 출시될 때에는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변화를 거쳤다고 한다.






세번째인 반복(Iteration)을 통한 다듬기는 게임의 재미에 관여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부분. 특히 랜달은 수많은 테스트를 거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특히 반복을 통해 다듬기가 잘된 게임은 옆에서 설명해주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직관적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저니의 초기 버전에서는 협동으로 돌을 움직여 갈라진 틈을 메꾸거나 캐릭터에게 팔이 있는 버전 등도 있었으며, 간단히 말해 모래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 모양의 캐릭터 외에는 모두 바뀌었다는 것. 물론 이 과정은 수많은 반복을 통해 다듬어진 결과라고 한다.


물론 단점은 있다. 반복을 통한 다듬기 작업은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하나의 팀 내부에서만 작업이 진행될 경우 프로젝트 전체가 위험해질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테스트 외에 중요한 부분이 바로 매니저의 존재.


네번째로 중요한 요소인 프로젝트 매니저는 기본적으로 팀의 커뮤니케이션을 돕지만 좀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한 중재자가 되어 외부와 개발팀을 연결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게임 개발의 시간에 제한을 두거나 올바른 동기를 부여하는 등 다양한 역활을 수행하게 된다.

결국 내외적으로 게임이 완성되기까지 훌륭한 지원자가 되어야 하며, 사람들이 게임에 대해 올바른 기대를 할 수 있도록 만들거나 파트너 및 퍼블리셔들과 논의를 통해 올바른 방향을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에 게임의 완성 및 출시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화도 없이 사막을 떠도는 게임을 만든다고 했다면 설득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개발사를 설득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에는 게임의 콘셉을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시각적인 데모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니 역시 개발이 진행되면서 초기와 많은 부분이 달라졌지만, 처음에는 음악은 물론 그래픽 담당자까지 모두 함께하여 멋진 테마곡과 애니메이션 데모를 만들었고, 결국 성공적으로 제작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랜달 로우는 한국에서도 뜨거운 열의를 가진 개발자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는 말을 끝으로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