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큰 기대는 안했다. 아니 사실 내가 가는거로 예정되지 않았었기에 별도의 조사를 안했다고 해야 할까? 게임 기자 일을 하다 보면 웬만한 게임은 다 접해보기 마련이고, 이름만 들어도 어느정도 게임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맞지만, 수도 없이 쏟아지는 게임을 죄다 머릿속에 집어넣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였을까. '블랙스쿼드'의 시연회에 갈 인원이 부족해 가는게 정해졌을 때도, 아니 판교 네오위즈를 향해 가던 중에도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FPS좀 갖고 놀아본 게이머라면 다들 알지 않나. 얼마나 많은 온라인 FPS가 등장했다 사라지고를 반복했던가. 달리 엄청난 임펙트가 있는 이름도, 잦은 프로모션을 거친 작품도 아니었기에 그런 마음이 좀 더 컸다 보다.

하지만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나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네오위즈'라는 퍼블리셔에 대한 믿음이라 해야 할까? RPG 쪽에서는 사실 큰 힘을 쓰지 못한 네오위즈이지만 FPS에 대한 퍼블리싱 노하우라면 쌓일 만큼 쌓여 있다. 걸출한 온라인 FPS A.V.A와 스페셜포스를 서비스해온 경력이 있지 않던가.

여러 복잡다난한 생각들을 하던 중 도착한 시연장. 각종 매체 기자들이 와서 몸을 풀고 있다. 개발사인 NS스튜디오와 네오위즈 관계자들의 짧은 인삿말과 QA 시간이 이어진 후, 자리에 앉은 기자들이 하나둘 접속을 시작했다. 나 역시 FPS좀 만져봤다 하는 게이머. 같이 온 루브 기자는 모 게임에서 별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FPS 매니아이지만 기사를 쓰느라 바쁘다. 이제 내 능력을 보여줄 때다.

일단 마우스와 키보드를 만져본 후, 헤드셋을 썼다. 숨어서 야비하게 쏘는 저격은 체질이 아니다. 남자라면 돌진. 미리 설정할 수 있는 세 가지 프리셋을 죄다 다른 종류의 라이플로 채워넣은 후 게임에 들어갔다.

  • [시연회] CBT 임박한 FPS 대작 '블랙스쿼드', 한 발 먼저 만나보다


    블랙스쿼드 섬멸전 플레이 영상


    ▲ 이른바 남자의 프리셋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색감과 광원. 언리얼 엔진3를 이용해 만든 덕에 눈이 불편한 그래픽은 아니다. 주피터 엔진같은 고대 유물로 만든 게임들에 비하면 눈이 호강할 정도. 하지만 딱히 좋은 것도 아니다.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최적화를 신경썼다고 하더니 과연 딱 그 정도 그래픽 같다. 아무렴 어떤가. FPS의 그래픽은 이 정도가 적당하다. 너무 화려하고 화사하면 적이 안보인다.

    어차피 처음하는 게임에 처음보는 맵이니 무서울게 없다. 무식이 용감이라 했던가. 최근 좀 문제가 많긴 하지만 안정성이 높아 선택한 이스라엘제 불펍 소총 'TAR-21'을 손에 들고 눈앞에 보이는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F를 누르니 소음기가 자동 장착된다.

    ▲ 소음기 매니아

    사실 진짜 소음 효과를 노리고 장착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끄러운 총소리보다는 소음기의 슉슉 하는 소리를 더 선호하므로 착용했다. 그리고 진입과 동시에 사망. 허허 내가 다른 기자님들을 너무 얕잡아 보았구나.

    ▲ 진입과 동시에 사망ㅋ

    칼과 총을 빠르게 바꾸며 플레이하는 플레이는 사실상 봉인. 무기 스왑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지 않다. 아니, 섬멸전이 아닌, 배틀 모드에서는 병과 특성에 무기 스왑 속도가 올라가는 것도 있는 걸 보니 일부러 노린 듯 하다. 어쨌든 크게 상관 있는 부분은 아니다. 나만 느린게 아니니까.

    실수로 주 무기를 선택하는 1번을 두 번 눌렀는데 조금 이상하다. 총을 비스듬히 들면서 익숙한 눈금이 보인다. 오호. 군시절때 많이 보던 M203 유탄 발사기 아닌가. 사실 기존의 게임들에서 유탄 발사기는 퍽 시스템이나, 병과 특성 등에서나 보아왔는데, 여기서는 라이플에 기본적으로 유탄 발사기가 장착되어 있다.

    ▲ 유탄 발사기는 기본장착

    실제로 특수부대에서 사용하는 무기들을 구현해냈다 하더니 과연 그렇다. 피카티니 레일과 레이저 사이트, 그리고 홀로그램이나 리플렉스 조준경이 모두 달려 있다. 원한다면 크로스헤어를 지우고 레이저 사이트로 대체할 수도 있는데, 조금 써 보고는 그냥 크로스헤어로 다시 바꿨다. 비조준 지향사격때의 정확도가 크게 올라가는 것은 좋은데 상대가 레이저쇼를 방불케 하듯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걸 보니 나도 저렇게 잘 보이겠구나 싶었다.

    ▲ 굉장한 어그로를 불러일으키는 레이저 사이트

    무기와 장비에 대한 고증은 제작사의 말대로 충분히 훌륭한 듯 싶었다. 다른 FPS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택티컬 리로드(약실에 탄약이 남아있을때 한발 더 장전되는 시스템)와 권총 탄약이 다 소모될 경우 슬라이드가 후퇴 고정 되는 듯 세심한 부분에서 신경을 쓴 것이 느껴진다. 골수 밀덕들도 100%는 아닐지언정 꽤나 만족할 수 있을 듯한 디테일이다.

    ▲ 최초엔 아예 29발만 장전되어 있다

    게임 시작 후 2분쯤이 지나가자 시연회에 참가한 다른 기자들도 다들 게임에 어느정도 익숙해진 듯 싶다. 처음엔 총소리 꽝꽝 내며 위치를 다 드러내고 다니더니, 이제는 적절한 위치에 매복하고, 수류탄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때쯤 들어서 한 가지 요소가 더 보인다. 이 게임. 지향사격의 정확도와 안정성이 굉장히 떨어진다. 연사를 할 수록 더더욱.

    앞서 루브 기자가 짧게 플레이하면서 "으아 총알이 튀어요. 으아아아" 했던 것이 괜히 나온 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근데 사실 이게 맞다. 실제 사격에서도 조준선 정렬을 거쳐 정조준을 해야 어느정도 정확도를 낼 수 있지 않던가. 전진무의탁 사격으로 적을 다 때려잡을 사람이 세상 천지에 존재할리가 없다. 이건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기계의 문제니까.

    ▲ 조준사격의 정확도는 굉장히 높은 편

    대신 정조준을 하면 정확도가 굉장히 올라간다. 정조준을 하기 위해 마우스 우클릭을 누르고 있을 필요도 없다. 한번 누르면 고정, 두번 누르면 다시 지향 사격으로 돌아가는 토글형이다. 게다가 조준을 한 상태로도 움직임이 물러지거나 둔해지지 않는다. 좌우 시야가 약간 제한되는 것 외에는 불편함이 없다. 애초에 그냥 조준 상태로 싸우라고 의도한 듯 싶었다.

    물론 점사를 주로 한다면 지향 사격도 못쓸 정도는 아니다. 연사로 발사할 경우 극도로 정확도가 낮아지긴 하지만, 두세발씩 끊어 쏜다면 어느정도 탄착군 형성을 기대할 만 했다. 하지만 무슨 소용인가 조준하고 쏘면 땡인데.

    ▲ 점사만 철저히 한다면 어느정도 명중률은 보장된다

    타격감은 매우 훌륭하다. FPS에서 가장 잡기 힘든 것 중 하나가 타격감 아니던가. 리얼리티가 뛰어나고, 그래픽이 훌륭하고, 다 좋아도 FPS 고유의 타격감이 모자란다면 김 빠진 콜라를 먹는 느낌이다. 블랙스쿼드는 타격감을 '소리'라는 매개체를 이용함으로서 굉장히 훌륭하게 잡아냈다.

    ▲ 매우 훌륭한 타격감. 착한 어린이들을 위해 모자이크...

    적중하지 못할 경우 별다른 이펙트가 없지만, 적에게 맞는 순간 '퍽' 하는 소리가 나에게 들린다. 그러다 죽기라도 하면 '쩍!' 하는 강렬한 사운드와 함께 사살 아이콘이 올라온다. 시각 효과야 선혈 연출이 어느정도 제한되는 것도 있기 때문에 100% 만족할 순 없다. 훌륭한 타격감 때문일까? 지속적으로 플레이해도 그다지 질린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 원킬! 투킬! 쓰리킬! 아싸 좋구나!

    다만 속도감은 다소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시연 때의 게임 흐름은 굉장히 빠른 편이었다. 문제는 그 속도가 유저의 움직임이 아닌, 맵 디자인에서 온다는 점이었다. 시연 중 플레이한 맵들은 대체적으로 굉장히 작았다. 하나 정도의 우회로가 있는 정직한 대칭 구도의 맵들이었다. 맵이 원체 좁다 보니 리스폰 후 10초 안에 적과 마주치게 되고, 게임의 흐름이 빨라지는 모양새였다.

    반면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캐릭터의 움직임은 그다지 빠른 편이 아니다. 일단 대쉬가 없다. 사실 좁은 전장에서는 대쉬의 의미가 없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으나, 차후 더 크고 복잡한 전장이 등장하게 되면 조금은 답답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무기를 스왑하는 속도와 줌 기능을 발동하는 속도도 느린 편이다. 게임의 흐름은 빠른데, 캐릭터의 움직임은 그 흐름만큼 빠르지가 않다. 정확한 느낌은 설명하기 힘드나 그 속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은 분명 존재했다.

    ▲ 등뒤에 수류탄이 있는데도 뛸줄을 모른다

    섬멸전을 플레이하면서 느낀 바는 대략 이 정도였다. 다른 명작 게임에서 보던 시스템들 중 좋은 것들은 어느정도 수용하고, 불편한 점들은 과감히 잘라내면서 정제된 작품과 같다고 해야 할까? 블랙스쿼드의 간판 모드인 배틀 모드 역시 참신했다.

    계정에 연계된 레벨이 아닌, 게임 내에서 점수에 따라 레벨이 오르고, 성장하는 시스템은 마치 과거 '울펜슈타인: 에너미 테러토리'의 멀티 플레이를 연상케 했다. 공중 폭격과 M32 유탄 발사기, 로켓 런처와 헬스팩 등 전술적 장비들이 대거 등장하면서도 복잡한 탈것 시스템보다는 보병전 위주의 싸움을 구현해놓은 것이 오히려 담백했다. 사실 조금 아쉽다. 배틀 모드에서 기자가 더 활약했는데 영상 파일이 깨져버리는 바람에 업로드를 못했다.

    아직은 속단하기 힘들다. 국내 온라인 FPS 시장이 경직되어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느낀다. 몇 겹이나 겹쳐진 시멘트와 같은 벽을 뚫어버리는 건 웬만한 게임으로는 힘들 것이다. 설령 뚫었다 해도 그 안에 있는 유저들을 끌어모으기는 더 힘들 것이다.

    블랙스쿼드는 기본에 충실한 FPS였다. 진면모를 느끼기엔 시연 시간이 짧았던 것도 있고, 모든 콘텐츠가 구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난 이 게임에서 경직된 온라인 FPS 시장을 녹일 만한 힘을 엿보았다. 이제는 플레이어의 몫이다. 블랙스쿼드가 26일부터 시작될 클로즈 베타, 그리고 이어질 오픈 베타와 상용화. 블랙스쿼드는 게이머들의 뇌리에 어떤 게임을 남게 될까? 한 발 먼저 만나본 나였지만, 이 게임에 대한 유저들의 평가가 기대되면서 또한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