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하반기, 배틀그라운드의 전 세계적인 흥행과 함께 e스포츠화에도 많은 관심이 모였다. 이윽고 온갖 배틀그라운드 대회가 개최되기 시작했고, 국내에선 2017 지스타 인비테이셔널을 시작으로 아프리카TV 펍지 리그, PUBG 서바이벌 시리즈, PUBG 워페어 마스터즈 등 각종 대회가 쉴틈 없이 진행됐다. 방송사들은 대규모 상금과 스케일을 내세우며 경쟁적으로 배틀그라운드의 e스포츠화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팬들의 반응은 점차 싸늘해졌다. 리그가 진행될수록 게임 내외의 온갖 문제점이 드러났다. 가장 기초적인 경기 지연 문제는 물론 뚝뚝 끊기는 관전 인터페이스는 선수들의 실력을 보는 게 아니라 예측하게 했다. 정돈되지 않은 규정에 선수의 대리 게임 기록이나 욕설, 게임 내 버그 등 각종 변수에 대한 대처가 중구난방으로 급하게 이뤄지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쉼 없이 이어진 경기 일정은 선수와 팬을 모두 지치게 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본질적인 문제는 대회 자체의 재미가 없다는 점이었다. 게임 자체는 훌륭하지만, e스포츠엔 '보는 맛'이 없었다. 약 30분으로 진행되는 한 라운드에서 교전의 99%는 후반 10분에 집중되는데, 박진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긴 파밍 구간을 보내면 정신없는 난전이 시작된다. 순식간에 줄어드는 인원 속에 모든 교전 장면을 보여주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이에 시청자들은 재미를 느끼기는커녕 킬 로그를 통해 경기 양상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 중반 난전 속 옵저빙 문제가 두드러졌다 (출처 : APL 시즌2, 아프리카TV 중계 화면)

물론 펍지주식회사도 가만있진 않았다. PKL(PUBG Korea League) 출범과 함께 확실한 규정을 만들었고, 자기장 속도 변화나 생성 위치 조정 등 온갖 인게임 패치를 진행했다. 관전 인터페이스도 나날이 개선됐으며 미라마와 1인칭 모드를 대회에 섞어 넣으며 다채로움을 더했다. 각 방송사는 선수들의 개인 화면을 제공하고 인포메이션 전용 방송을 따로 개설하며 관전에 편의성을 더했다. 하지만, 그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시청자 수는 리그가 진행될수록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굳어가는 대회 양상에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는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이를 지켜본 팬들 역시 다양한 개선안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OGN은 서울컵 OSM에서 신선한 시도를 택했다. 대회 진행 과정과 결과에 따라올 비난을 감수하면서 말이다.

서울컵 OSM에 적용된 'OGN 매트릭스'라는 새로운 포인트 매트릭스는 기존 대회에서 주어졌던 세세한 순위 포인트를 모두 없앴다. 대신 오직 1위 팀에게만 10점의 순위 포인트가 부여됐으며, 킬 당 1점의 킬 포인트가 주어졌다. 여기에 더해 3인칭 모드가 주를 이뤘던 PKL과는 달리 모든 경기를 1인칭 모드로 진행했다.

▲ 출처 : OGN 공식 홈페이지

해당 규정이 적용되자 경기 흐름이 달라졌다. 새로운 규정에 각 팀이 본인들만의 색깔을 선보이며 전체적인 경기 흐름이 달라졌다. 초반에도 화끈한 싸움이 벌어졌고, 중후반 변수가 더욱 많아졌다. 후반에 몰려 있던 교전이 분산됨에 따라 시청자들은 끊임없이 벌어지는 교전을 볼 수 있었다. 1위 팀에게 주어지는 큰 보상은 시청자들에게 '치킨'을 먹었을 때의 쾌감을 그대로 전해주며 경기 몰입도를 더욱 높였다.

서울컵 OSM이 종료된 후 OGN 매트릭스에 대한 팬들의 의견이 갈렸다. 한층 박진감 넘치게 바뀐 경기에 찬사를 보내는 팬들도 있었지만 1위에게만 주어지는 생존 포인트에 대한 불합리성을 주장하며 반기를 든 팬들도 있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펍지주식회사가 해당 포인트 매트릭스의 대회 진행을 허가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지켜봤다는 점이다.

물론 OGN 매트릭스의 허가는 서울컵 OSM이 이틀간 진행된 이벤트 형식의 대회였기에 가능했을 수 있다. 다소 긴 일정의 PLK 예선, 본선, 파이널 등을 진행하게 되면 문제점이 더욱 드러날 것이다. 이에 'OGN 포인트 매트릭스'가 PKL에 적용될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진보적이고 발전된 새로운 포인트 매트릭스는 충분히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에 적용될 가치가 있다.

펍지주식회사에겐 지금까지 실시해왔던 규정과 앞으로의 규정에 대해 심도 깊이 고민하고 연구할 시간이 있다. 내부 협의는 물론 각 방송사의 담당자들과 중계진, 선수, 코칭 스태프, 팬 등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를 만들어가는 모든 이해관계자와 대화를 나눠 최적의 발전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이후엔 'OGN 포인트 매트릭스'를 허가한 것처럼,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신선한 규정을 선보임으로써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의 재미와 팬들의 만족도를 한층 끌어올려야 한다.

한편, 포인트 매트릭스 외에도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엔 당장이라도 변경할 수 있는 것들이 상당수 있다. 가장 뜨거운 감자인 사녹 맵 적용부터 총기 및 아이템 드랍률, 자기장 생성 시간, 크기, 속도 및 대미지 등 인게임적인 부분을 수정해 더욱 치열하고 짜릿한 교전을 연출할 수 있다. 물론 이 외에도 훨씬 다양한 각도에서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과감한 변화를 시도한 펍지주식회사의 유연함에 박수를 보내며, 향후 행보에도 기대를 걸어 본다. 변화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를 것이다. 단 몇 번의 행동으로 이상적인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를 만들 순 없다. 하지만 'OGN 매트릭스'가 화두로 떠오른 지금 이보다 더 나은 대안을 찾아 움직여야 한다.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 가라앉고 있는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를 수면 위로 끌어낼 한 수가 필요하다.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의 흥행 가능성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 세계의 팀들이 모였던 2018 PUBG 글로벌 인비테이셔널의 대성공이 이를 잘 말해준다. 또한 중국과 동남아에선 수십만 명의 팬들이 외국 대회에 출전한 자국팀들의 선전을 응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잠재력을 어떻게 끌어내느냐다. 아직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는 정식 개막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았다. 초창기의 화제성은 사라졌지만, 지금까지 시도해온 것보다 시도하지 않은 것들이 훨씬 많다. 변화와 발전의 갈림길에 선 펍지주식회사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서울컵 OSM가 보여준 OGN 매트릭스는 단지 시작일 뿐이다. 펍지주식회사의 도전과 혁신을 통해 '보는 맛' 넘치는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가 될 수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