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오브레전드(이하 롤)에는 가장 최근 합류한 나르까지 총 120개의 챔피언이 있다. 잦은 밸런스 패치와 메타의 변화에 따라 OP(오버 파워)로 불리는 챔피언은 수시로 바뀌지만, 한 번 유저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버린 챔피언들은 웬만한 대형 패치가 진행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외면받는다.

유저들로부터 외면받는 챔피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자 인벤팀이 나섰다. 오늘도 구석에 남아 기자의 선택을 받길 원하는 수많은 비주류 챔피언들이 있지만, 이들을 모두 다룰 수 없는 현실에 저절로 고개를 떨구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최대한 많은 비주류 챔피언들을 다뤄보기로 했다. 최근 들어 모습을 보기 힘든 '초식 정글러'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 초식은 초식초식해~


◈ 한 때는 주류에 속했던 '초식 정글러'

최근 일반 게임과 대회를 통틀어 봐도 초식 정글러에 속하는 아무무나 노틸러스, 세주아니, 스카너, 워윅, 마오카이 등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 옛날 바론을 잡으면 챔피언 주변에 보라색 별들이 돌던 시절에는 오히려 육식 정글 챔피언을 선택하면 팀원들에게 비난을 받곤 했다.

그 당시 롤은 지금의 운영과 플레이와는 많이 달랐다. 탑 라인은 그야말로 남자 대 남자의 화끈한 1:1 대전이 펼쳐졌고, 미드 라인에는 엄청난 성장형 챔피언이 와서 cs를 비롯한 각종 정글 몬스터를 섭취했으며 서포터로는 방어적인 잔나나 알리스타 등이 대세였다. 그리고 이러한 챔피언 조합으로 인해 게임은 저절로 느릿느릿 흘러갔다.

그렇다면 정글 챔피언이라도 공격적인 아이들을 선택해서 경기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려 했을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정글러들은 무난한 성장을 거둬 중후반 한타에서 막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초식 정글 챔피언을 선택했다.

이 시절에도 여전히 초식 정글러의 카운터는 육식 정글러였다. 리 신으로 대표되는 육식 정글러가 가끔 등장하긴 했지만 그때마다 육식 정글러는 '초반 상대 정글을 말리게 하지 못하면 시간이 갈수록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로 인해 무조건 경기 초반에 엄청난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기 싫은 대부분의 유저들은 육식 정글러 대신 초식을 선택했다.

▲ 리 신은 한 때 ' '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잘 쓰지 못하는 챔피언이었다.


◈ 고대 공룡처럼 한순간에 몰락해버린 초식 정글러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이니시에이팅과 탱킹을 담당하던 초식 정글러들이 어느 순간부터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그것도 서서히 사라진 것도 아니고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마치 백악기 말기에 어떠한 이유로 순식간에 멸종해버린 공룡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초식 정글러가 자취를 감춘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기자가 솔로인 것이 외모, 성격, 재력 등 복합적인 원인에 의한 것처럼 생각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초식 정글러는 게임 내에서 힘을 못 쓰게 됐다.

우선 시간이 흐르면서 프로 수준의 경기에서 메타가 크게 바뀌었다. 탑 라이너와 봇 듀오는 서로 위치를 바꾸며 변수를 노리는 라인 스왑을 자주 선보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육식 정글러가 대세가 됐다고 보기엔 어려움이 있다. 물론 라인 스왑을 통해 초식 정글러가 정글을 빠르고 수월하게 돌기에 무리가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탑 라이너가 다이브를 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초식 정글러도 어느 정도 이를 커버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나서스와 누누 등이 있다.

▲ 탑 라이너에겐 고통과도 같은 라인 스왑 (출처: 온게임넷)

라인 스왑 이외에도 육식 정글러가 강세를 보이는 원인은 또 있다. 각 라이너들은 경기 초반부터 잦은 딜교환을 통해 라인전에서 이득을 챙기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딜교환에서 손해를 본 쪽은 반드시 정글러를 부르게 마련이고, 정글러가 한 라인으로 움직임이 강제된다는 것은 상대하는 입장에서 이득이므로 초반부터 기싸움을 펼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글러는 초식과 육식 중 어느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까? 빨리 6레벨을 찍어야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하는 초식? 2, 3레벨부터 살상력을 가지는 육식? 정답은 정해져 있다. 마치 여러 번 만나봐야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기자보다 첫인상이 좋은 훈남이 미녀를 차지하듯이 말이다.

마지막으로 초식보다 육식이 선호되는 원인으로 '시야 장악' 운영이 대세가 되었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최근 많은 강팀들은 초반부터 다량의 와드를 구매해 상대 정글 지역에 설치함으로써 상대 정글러의 이동 경로를 최대한 파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는 곧 정글 지역, 특히 레드와 블루 버프 지역에서 잦은 소규모 교전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소규모 교전에서 한없이 약하며 버프 의존도까지 높은 초식 정글러는 육식 정글러에게 밀려 대회에서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었다.

▲ 자신의 정글 지역에 상대 와드가 도배된다면 초식은 암울해진다.


◈ 초식 정글러의 대표 주자, 현재 정글 메타를 심층 분석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초식 정글러가 대세에서 한순간에 밀려난 원인은 다양하다. 목감기나 코감기, 몸살감기가 종합 감기보다 치료가 그나마 쉽듯이, 한꺼번에 많은 문제가 발생해 자취를 감춘 초식 정글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엔 많은 조건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롤챔스 대회에서 우리는 초식 정글러의 가능성을 봤다. 진에어 팰컨스는 초식 정글러로 구분되는 스카너와 워윅을 활용해 경기 승패와 상관없이 좋은 초반 운영을 보이며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물론 최근 리워크된 스카너가 초식인지 육식인지 구분이 쉽지는 않지만, 이들이 보여준 초반 운영은 스카너뿐만 아니라 다른 초식 정글러가 그대로 활용해도 괜찮을 정도로 안정감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번 롤챔스 섬머 시즌에서 초식 정글러가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는 말이 되지 않을까? 심지어 이번 패치로 인해 초식 정글러에게 좋다고 평가받고 있는 '가시 외투' 아이템이 추가됐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많다.

이쯤에서 그분을 모실 때가 됐다. 초식 정글러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사람! 모두가 예상했겠지만, 이번 힐링챔프에서 초식 정글러를 변호해줄 사람은 전 CJ 프로스트의 전자두뇌 정글러이자 현 롤챔스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클템' 이현우 해설위원이다.

▲ 껄껄껄 초식하면 역시 나 밖에 없지!


Q. 자기소개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한 번 부탁한다.

전 대표 초식 정글러이자 현재 롤챔스 해설을 맡고 있는 '클템' 이현우라고 한다. 얼마 전에 결혼에 골인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러분들에게도 결혼을 강력 추천한다(웃음).


Q. 초식들이 자주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메타의 변화가 가장 크다고 본다. 정확히 말하면 게임 스피드가 매우 빨라졌다. 예전에는 초반 무난한 성장 이후 빠른 한타 구도가 정석적인 흐름이었다면, 요즘은 초반부터 매우 빠르고 빡빡한 운영을 통해 스노우볼을 굴리는 운영이 대세가 됐다. 그러다 보니 라인 스왑과 상대 정글 지역 장악 등이 필수가 됐고, 이는 상대적으로 초식 정글러가 초반을 무난하게 버티기 힘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름대로 초식 정글러라는 것을 정리하자면, 버프 의존도가 높고 정글링이 느리며 정글 지역에서의 소수 교전에서도 약하고 갱을 시도할 때 데미지보다는 CC기에 의존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조건이 많이 붙어 있다는 것 자체가 최근 메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한다. 최근 유행하는 육식 정글러는 이러한 점을 모두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Q. 육식들이 판치는 상황 속에서 초식들이 힘을 쓰려면?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롤챔스 경기 중에 나왔었다. 진에어 팰컨스가 워윅 정글과 스카너 정글을 활용했었던 경기 내용을 보면 된다. 정글러는 별다른 방해 없이 6레벨을 빠르게 달성했고, 그 과정에서 어느 라인도 망하지 않았다. 이걸로 이미 초식 정글러들의 단점은 극복된 셈이다. 이러한 운영이 최근 메타에서 많이 어려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리 어렵지도 않다.

또 확실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초식 정글러를 사용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스카너나 마오카이처럼 생각보다 데미지가 강력하거나 아무무처럼 확실한 접근 기술이 있는 초식 정글러가 활용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CC기와 데미지 모두 살짝 애매한 세주아니나 노틸러스 같은 챔피언들은 약간의 버프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Q. 새로 등장한다고 알려진 정글 아이템에 대한 생각은?

초식 정글러에게 어느 정도 버프라고 생각한다. 탱킹 아이템 위주로 구매하는 초식 정글러의 특징상 추가 체력의 25%가 더 생기는 건 정말 좋다. 또한, 정글을 돌 때 반사 데미지를 주면서 체력과 마나를 회복하는 점도 유지력 측면에서 좋아졌다. '강인함' 효과가 삭제된 건 아쉽지만, 전반적으로 초식 정글러에게 버프라고 생각한다. 물론 애초에 고대 골렘의 영혼을 갔던 육식 정글러인 엘리스에게도 상향이라고 생각한다.


Q. 현재 상황에서 그나마 활용 가능성이 높은 초식 정글러를 꼽자면?

아무래도 아무무를 1순위로 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이번 패치가 없었어도 충분히 대회에서 나올만한 챔피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순위는 마오카이라고 본다. 이번 패치를 통해 마오카이가 많이 바뀌었는데 괜찮은 챔피언이 된 것 같다. 이번에 새로 등장하는 아이템과의 효율적인 측면만 따져보면 체력을 기반으로 하는 문도 박사나 초가스도 정글러로 다시 나올 확률이 높다고 본다.

사실 초식 챔피언들의 출연을 막고 있는 건 챔피언의 성능보다는 사람들의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초식이면 무조건 약하다는 그 생각! 최근 들어 그 고정관념이 슬슬 무너지려던 참이었다. 이러한 인식 변화를 더욱 빠르게 만든 것이 이번 패치다. 이번 패치 이후의 경기 양상이 많이 기대된다.


Q. 최근 롤을 즐길 때 육식을 많이 하는가, 초식을 많이 하는가?

요즘 솔로랭크를 돌리면 80% 정도는 탑에 간다. 솔로랭크에서 정글러는 고통받기 때문에 피곤하다(웃음). 가끔 정글을 돌게 되면 엘리스와 아무무를 주로 한다. 50대 50이라고 봐야 할까?


Q. 마지막으로 대표 초식 정글러로서 한 마디 부탁한다.

게임을 즐기면서 가장 무서운 것이 다름 아닌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프로게이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점이 있다면,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패치와 같은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반갑다. 다시 한 번 대회에서 리 신같은 육식 정글러가 초반 갱킹에 실패하면 상대 초식 정글러에 비해 좋지 않다는 말을 하게 됐으면 좋겠다.

물론 평균적으로 바라보면 육식 정글러가 게임을 풀어나가기 편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초식 정글러는 조금 더 팀원들과의 호흡을 중시하는 매력을 가진 챔피언이다. 이런 점을 종합해볼 때 모든 정글 챔피언들이 두루두루 쓰이는 날이 왔으면 한다.


이현우 해설위원과의 인터뷰가 끝난 후 '사실 게임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것은 편견이다'는 말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맞는 말이다. 일반 게임에서, 솔로랭크에서, 심지어 프로들 간의 경기에서 '편견'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크게 작용한다. 특히 대회에서 '이 챔피언은 못 써먹는다'는 안일한 생각은 상대로 하여금 그것에 대비하게 만들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스스로 깎아 먹는 셈이다.

▲ '편견'을 버리면 밴픽에서부터 상대를 압박할 수 있다. (출처: 온게임넷, 각 팀은 본 내용과 연관이 없습니다.)

최근 대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탑 라인과 봇 라인의 챔피언 종류는 대격변을 거듭했다. 탑 라인에서는 AP 기반 원거리 챔피언이 유행했다가 탱커들이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했고, 최근 다시 AP 챔피언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추세다. 봇 라인은 베인, 미스포츈, 피들스틱, 애니 등 엄청나게 다양한 챔피언이 활용되다가 최근 들어 어느 정도 고정된 픽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글 포지션은 달랐다. 꽤 오랫동안 이렇다 할 메타에 변화 없이 꾸준하게 리 신, 카직스, 엘리스, 이블린으로 대표되는 육식 정글러만 소환사의 협곡을 누빌 뿐이었다. 물론 경기 초반 흐름을 정글러가 조율하는 메타 속에서 초식 정글러를 선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바꿔서 생각해보면 다른 라이너들은 유행하는 메타 속에서 추세를 바꾸기 쉬웠을까? 물론 게임사의 이런저런 패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곤 하지만, 충분히 고민해볼 일이다. 고민과 발전을 거듭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이번 '가시 외투' 패치가 나온 만큼 끊임없는 정글러들의 연구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새로운 아이템의 등장은 항상 설렘을 동반한다.


그동안 많은 비주류 챔피언이 왜 외면받게 됐는지를 나름대로 분석해보고 해결책을 제시했던 힐링챔프. 이번 이야기를 끝으로 힐링챔프 시즌1이 마무리된다. 체력적 한계라고나 할까...? 그래도 힐링챔프를 쓰기 시작한 이후 게임 내에서 힐링챔프의 주인공이었던 피오라, 이렐리아, 우르곳, 우디르, 빅토르, 다이애나를 볼 때마다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 힐링챔프를 기획했을 때가 생각난다. '왜 항상 대회에서, 그리고 일반 게임에서 정해진 챔피언 조합만 등장할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했었다. 나름대로 비주류 챔피언을 좋아하고 많이 활용해봤었기에 더 열정적으로 기사를 작성했던 것 같다.

내 글로 인해 작은 인식 변화가 일어나 항상 나왔던 챔피언만 계속 등장하는 '노잼' 리그오브레전드가 아닌, 색다른 챔피언이 등장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예스잼' 리그오브레전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던 힐링챔프. 언젠가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인벤팀의 '힐링챔프'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아마도?


힐링챔프 모음집

힐링챔프 1화 : [힐링챔프] 엄청난 후반 캐리력의 소유자, 하지만 태생부터 비주류인 피오라!
힐링챔프 2화 : [힐링챔프] 옛 영광을 재현하기엔 뭔가 아쉬운 그녀, 이렐리아
힐링챔프 3화 : [힐링챔프]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주류의 향기, 우르곳
힐링챔프 4화 : [힐링챔프] 변신 로봇의 강력함은 어디로? 우디르 편
힐링챔프 5화 : [힐링챔프] 영광스런 진화는 이뤘지만 외면받는 당신, 빅토르 편
힐링챔프 6화 : [힐링챔프] 밤하늘을 환하게 비추던 달의 몰락, 다이애나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