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태어나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을 손에 넣은 것이다. 중국을 통일했던 진시황, 로마 제국의 카이사르,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했던 칭기즈칸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은 모두 그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이다.

리그오브레전드가 전 세계적인 e스포츠 종목으로 자리 잡은 지금,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은 한 시즌을 대표하는 가장 큰 행사이자 그 시즌의 최강자를 가리는 세계 대회이기도 하다. 전 세계인이 즐기는 게임에서의 시즌 최강. 충분히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봐도 무방할 만한 타이틀이다.

오는 9월 18일부터 약 한 달간 열리는 롤드컵 시즌 4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과연 어느 팀이 그동안 리그오브레전드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었는지 궁금해졌다. 롤드컵 시즌 1 우승팀부터 시즌 3의 우승팀까지 순서대로 되짚어보도록 하자.


■ 리그오브레전드 시즌 1

◈ 국내 팬들에게 생소한 시즌 1의 모습

리그오브레전드 시즌 1은 국내 팬들에게 상당히 낯선 이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에는 아직 국내에 리그오브레전드라는 게임이 상용화되지 않았다. 일부 유저들이 '북미에는 이런 게임도 있다더라'는 소문을 듣고 북미 서버에서 게임을 즐기는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리그오브레전드 시즌 1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자.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므로, 설레는 마음으로 과거로의 여행을 즐기기 바란다.

일단 리그오브레전드 메타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EU 스타일(탑 라이너, 정글러, 미드 라이너, 원거리 딜러, 서포터)이 시즌 1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다. 시즌 1에는 미드 라인에 시비르가 가는 것과 브랜드가 탑 라인에 서는 것에 아무도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소환사 주문인 '점멸'은 지금보다 약 두 배 정도 되는 사거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점멸을 사용하면 웬만한 벽은 눈 감고도 넘을 수 있었다. 실제로 점멸의 사거리가 너프되면서 많은 유저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벽 점멸을 하는 실수가 심심찮게 일어났다.


또한, 랭크 게임은 지금과 같이 티어 제도로 운영되지 않았다. 유저들은 티어 대신 '레이팅'이라고 불리는 점수로 서로의 실력을 가늠했다. 자신의 현재 점수보다는 가장 높았던 점수인 '탑 레이팅'이 정확한 기준으로 통용됐다.


◈ 롤드컵 시즌 1을 풍미했던 유럽의 맹주 '프나틱'

지금의 모습과 많은 차이를 보였던 시즌 1. 그때도 어김없이 롤드컵은 열렸다. 롤드컵 시즌 1 우승을 차지했던 팀은 현재까지도 유럽의 맹주로 불리고 있는 '프나틱'이었다.

▲ 그 당시 프나틱의 멤버들

프나틱은 MyRevenge라는 팀에서 출발했다. WetDream과 xPeke를 필두로 총 다섯 명의 유저들이 힘을 모아 팀을 만들었다. MyRevenge의 멤버들은 별다른 교체 없이 프나틱이라는 팀의 멤버가 됐다. 롤드컵 시즌 1이 시작되기 약 한 달 전에 WetDream이 팀을 나온 것이 유일한 멤버 교체다.


이후 2011년 6월 18일부터 20일까지 열린 라이엇 챔피언십(지금의 롤드컵) 시즌 1에 프나틱도 참가하게 됐다.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던 프나틱은 많은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조별 예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1승 2패. 여차하면 조별 예선에서 탈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프나틱의 예상치 못한 고전에는 이유가 있었다. 팀의 중심이자 에이스였던 xPeke가 여권 문제로 인해 조별 예선에 참가하지 못했던 것. 대회 첫날 일정을 xPeke 없이 치른 프나틱은, 그 다음 날 xPeke의 합류 이후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으로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 이래서 xPeke, xPeke 하나 봅니다!

탈락 결정전에서 CLG를 상대로 2:0 깔끔한 승리를 거두며 기사회생한 프나틱은 4강에서도 Epik Gamer를 2:0으로 제압하며 결승전에 진출했다. 그야말로 'xPeke 효과'였다. 그가 팀과 함께 하는지 아닌지가 프나틱의 경기력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승에 오른 프나틱의 상대는 조별 예선에서 그들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겨줬던 Against All Authority였다. 복수의 칼날을 갈았던 프나틱은 결승에서도 좋은 모습을 이어갔다. 결과는 2:1 프나틱의 승리였다. 결국, 프나틱이 극적인 과정을 거쳐 롤드컵 시즌 1의 우승팀이 됐다.


■ 리그오브레전드 시즌 2

◈ 지금의 모습과 비슷해진 시즌 2

시즌 1의 모습이 지금의 리그오브레전드와 많은 차이를 보였다면 시즌 2부터는 슬슬 현재와 비슷한 리그오브레전드를 볼 수 있었다. 물론 맵이나 챔피언 등의 그래픽은 지금보다 많이 부족했지만, EU 스타일이 완벽하게 정착하면서 챔피언별로 주로 가는 라인이 요즘처럼 정해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화로는 리그오브레전드가 시즌 2부터 한국에 공식적으로 상륙해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더 이상 국내 유저들은 리그오브레전드를 즐기기 위해 높은 핑을 감수하며 북미 서버를 이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 동남아의 신성 TPA, 시즌 2를 제패하다

스포츠는 '이변'이 있어 언제나 흥미롭다. 신예팀이나 처녀 출전팀이 파란을 일으키며 돌풍의 주역이 되는 경우가 있다. 리그오브레전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롤드컵 시즌 2의 우승팀은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던 동남아시아 지역의 LoL 게임단, TPA였다.

TPA는 일반 유저였던 Mistake가 솔로랭크 게임에서 친해진 Stanley와 팀원을 모아 만든 For the Win이라는 팀에서 출발했다. 좋은 경기력으로 WCG 2011 출전 기회를 얻은 For the Win이었지만 아쉽게도 조기 탈락하고 말았다.

실의에 빠져있던 For the Win에게 가레나가 손을 내밀었다. 2012년 3월 9일, 가레나의 도움으로 For the Win은 Taipei Assassins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후 Toyz와 BeBe가 팀에 새롭게 합류했다.

팀 창단이 끝나자마자 TPA는 대만 리그를 휩쓸게 된다. 신생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빠른 시간 내에 대만을 대표하는 게임단으로 성장했다. 결국, TPA는 대만 대표 자격으로 롤드컵 시즌 2에 합류했다.


2012년 10월 4일 개막해 13일까지 펼쳐진 롤드컵 시즌 2. TPA는 추첨을 통해 8강 직행 팀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전 세계 리그오브레전드 팬들은 TPA를 외면했다. 그저 운 좋게 8강에 진출한 팀 정도로만 여겼다.

하지만 TPA는 보란 듯이 치고 올라갔다. 8강 상대였던 나진 소드를 2:0으로 완파해 팬들을 놀라게 하더니, 4강에서 갬빗 게이밍을 2:1로 따돌리며 결승에 진출해 돌풍의 주인공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TPA가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그 당시 한국 최강팀으로 손꼽히던 CJ 프로스트였다. 팬들은 CJ 프로스트가 TPA의 돌풍을 잠재우고 우승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TPA는 주눅들지 않고 본인들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3:1로 승리, 롤드컵 시즌 2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라이엇 게임즈는 그들의 롤드컵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TPA 헌정 스킨을 출시했다. 쉔과 문도 박사, 오리아나, 이즈리얼, 그리고 누누가 TPA 스킨의 주인공이 됐다.

▲ 동남아의 신성에서 세계 최강으로!


■ 리그오브레전드 시즌 3

◈ '대격변'이 일어났던 시즌 3

시즌 1에서 2로의 발전이 좀 더 유행하는 게임다워지는 과정이었다면 시즌 2에서 3로의 변화는 리그오브레전드의 세계화에 발맞추기 위한 '진화'였다.

경기 초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룬과 특성에 큰 변화가 일어났고, 아이템 또한 대격변을 거쳤다. 이로 인해 유행하는 메타가 이전에 비해 크게 뒤바뀌었다.

방어 아이템의 대대적인 상향으로 탑 라인에는 탱커 역할을 수행하는 챔피언이 등장했다. 탑 라이너가 탱커 역할을 수행하게 되자 정글러 자리에는 육식 정글러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반면, 데미지 관련 아이템의 너프로 원거리 딜러의 역할은 크게 제한되어 '타워 철거반'이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게임 내적인 부분만 변화한 것은 아니었다. 두 시즌 동안 랭크 시스템의 기본 바탕이었던 레이팅 제도가 사라지고 '티어 제도'가 도입됐다. 현재 유지되고 있는 랭크 시스템이 시즌 3로 넘어오면서 처음 생긴 것이다. 자연스럽게 승급전과 강등 시스템도 함께 도입됐다.


◈ 한국 최강에서 세계 최강으로! 시즌 3 우승팀 SKT T1 K

SKT T1 2팀(현 SKT T1 K)은 시작부터 남달랐다. 카오스에서 'Coach'라는 아이디로 유명했던 이정현, 제닉스 스톰 출신의 정언영, 원거리 딜러 3대장 중 한 명이었던 채광진, 아마추어 팀에서 활약했던 배성웅, 그리고 아마추어 미드 고수 '고전파' 이상혁이 SKT T1 2팀에 합류해 기대를 모았다.

결과는 만족을 넘어선 대성공이었다. 창단 후 첫 시즌인 롤챔스 스프링 2013시즌에서 3위 자리에 오르며 팬들을 놀라게 하더니 롤챔스 섬머 2013시즌에서 15승 3패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결승전에서 나온 이상혁과 그 당시 KT 불리츠의 미드 라이너였던 류상욱의 제드 일기토는 아직까지 최고의 장면으로 손꼽히고 있다.

▲ 창단 두 시즌만에 한국을 제패한 SKT T1 K


순식간에 국내를 제패한 SKT T1 K는 국가대표 자격으로 2013년 9월 16일부터 10월 5일까지 열린 롤드컵 시즌 3에 참가했다. 지난 시즌 롤챔스 우승팀이 롤드컵에서 2위를 차지하는 장면을 목격했던 국내 팬들은 과연 이번 시즌 1등은 세계 무대에서 얼마나 통할 것인가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SKT T1 K는 그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했다. 북미의 강호 TSM, 유럽의 레몬독스와 게이밍기어, 중국의 다크호스 OMG와 같은 조에 편성된 SKT T1 K는 세계 강팀들을 상대로 7승 1패를 기록, 8강에 안착했다.

8강에서 만난 대만의 감마니아 베어스를 완파한 SKT T1 K의 4강 상대는 롤드컵 출전을 위해 인천 공항에서 함께 출발했던 나진 소드였다. 양 팀은 5세트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쳤고, SKT T1 K가 나진 소드를 3:2로 누르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그들의 결승 상대는 중국 대표 로얄 클럽이었다. 로얄 클럽의 상승세가 무서웠던 만큼 결과를 알 수 없는 치열한 접전이 예상됐지만, 우승팀은 의외로 쉽게 결정됐다. SKT T1 K가 로얄 클럽을 3:0으로 완파하면서 손쉽게 롤드컵 시즌 3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 순식간에 한국과 세계를 휩쓸었던 SKT T1 K

이로 인해 라이엇 게임즈는 SKT T1 K의 롤드컵 우승 기념 헌정 스킨을 발매했다. 잭스와 리 신, 제드, 베인, 자이라가 그 주인공이 됐다. 또한, 롤챔스 우승과 롤드컵 우승을 연달아 맛본 SKT T1 K는 이후 열린 롤챔스 윈터 2013시즌에 무패 우승을 차지했다. 말 그대로 SKT T1 K의 시대였다.


■ 리그오브레전드 시즌 4

◈ 게임 내적 변화가 극심했던 시즌 4

시즌이 넘어가면서 변화는 항상 일어났다. 이번 시즌 4만의 특징이 있다면, 게임사의 패치를 유저들이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발전시켜 주체적으로 끊임없는 변화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특히, 게임 내에서 유행하는 메타가 계속해서 바뀌었다.

시즌 4 초창기에는 시즌 3의 '탑 탱커+육식 정글 메타'가 이어졌다. 이후 방어 특성이 너프되자 유틸성이 뛰어난 챔피언이 탑과 미드 라인에 등장했다. 이로 인해 원거리 딜러를 지키기 편해지자, 하드 캐리형 원거리 딜러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메타의 유행은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

또한, 시야석과 장신구 아이템의 등장은 운영에 무게를 두는 플레이를 유행시켰다. 예전보다 시야 장악이 더욱 치열해졌고, 이를 상대보다 잘 수행하는지가 경기 승패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 상향 평준화가 진행 중인 시즌 4, 새로운 최강팀은 어디?

많은 팬들은 한국이 리그오브레전드 세계 최강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항상 뚜껑을 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법이다. 최근 지역별 실력이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해외 팀의 기세가 무섭다. 이번 롤드컵 시즌 4가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이 있다. 이번 롤드컵 시즌 4에는 시즌 1 우승팀이었던 프나틱과 시즌 2를 휩쓸었던 TPA가 출전한다. 시즌 1과 2의 롤드컵 우승팀이 시즌 4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출전한다.

▲ 롤드컵 우승 경험이 있는 프나틱의 xPeke(좌), TPA의 BeBe(우)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팀은 다음 시즌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하지 못한다는 징크스 또한 이어졌다. 시즌 3 챔피언인 SKT T1 K는 한국대표선발전 최종전에서 나진 실드에게 패배하면서 이번 월드 챔피언십 시즌4에 출전하지 못하게 됐다.

지역 간의 실력 격차가 좁아지는 동시에, 시즌 1과 2의 챔피언이 출전을 확정지은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승부가 예상되는 롤드컵 시즌 4. 과연 어느 팀이 롤드컵 시즌 4 우승을 차지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팀으로 기억될지 전 세계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