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의 e스포츠 시장은 전통의 강호 스타크래프트2부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리그오브레전드, 그리고 넥슨이 야심차게 추진중인 피파온라인3와 도타2, 서든어택과 카트라이더 등 그 어느때보다도 종목다변화가 심했던 한 해였다. 하지만 e스포츠에 빠삭한 매니아라 하더라도 '월드오브탱크'는 다소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전차를 타고 내달리는 밀리터리 FPS가 낮설어도 너무 낮선 만큼, e스포츠에 정통한 관심이 있는 팬이라도 월드오브탱크 리그인 WTKL이나 WGL을 모르는 것이 무리는 아닐 터. 이에 워게이밍은 2013년 곰exp에서 시작한 리그를 2014년에는 온게임넷을 통해 리그를 진행하면서 많은 부분을 고치고 다듬었다.

하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도 국내의 팀이 세계를 향해 당차게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아니, 단순히 도전장만 낸 것이 아니라 괄목할만한 성과도 거뒀다. 2014년, 변방의 작은 나라 한국이 월드오브탱크에서 무슨 일을 낸 것일까?


■ 월드오브탱크 리그의 격동기 2013년, 그리운 천하삼분지계

▲ 월탱리그 태초, ARETE-NOA외에 '드라키 바이퍼스'란 팀도 있었으니…


2013년은 WTKL이 본격적으로 자리잡으며 월드오브탱크가 e스포츠 종목으로 급부상하는 한해였다. 오픈시즌에는 다양한 팀들이 참여했지만 모두 승리를 할 수는 없었을 터, 결국 결승에는 '드라키 바이퍼스'와 형제팀인 '드라키 해츨링의 반란' 두 팀이 올라 내전을 펼치게 됐다. 여기서 해츨링의 반란이 바이퍼스를 꺾으면서 WTKL 초대 우승자로 등극한다.

이후에 열린 WTKL 시즌1에서는 해츨링의 반란이 NOA로 이름을 바꿔달면서 본격적으로 독자행보에 나섰다. WTKL 시즌1은 월드오브탱크 e스포츠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시즌이 되었는데, 현재는 국내 최강으로 등극한 ARETE가 오픈시즌의 부진을 딛고 본격적인 활약을 시작한 시즌이기 때문이다. 시즌1 결승에서 지난 시즌 우승자 NOA와 ARETE가 정면으로 맞붙었고, 여기서 ARETE가 승리하면서 NOA와 ARETE의 라이벌 구도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WTKL 시즌2에서는 이 구도가 훨씬 깊고 복잡해졌다. NOA와 ARETE가 극적으로 대립하며 경기 안팎으로 많은 이슈를 만들어냈다. 드라키 바이퍼스 역시 이 두 팀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천하삼분지계를 노렸으나, 4강에서 NOA에게 패배하면서 정상 등극은 물건너가게 됐다. 결국 시즌2에서도 NOA와 ARETE가 다시 만났고, 이 당시 두 팀의 라이벌 구도는 정점에 달했다. 그러나 NOA가 복수에 실패하고 ARETE가 2연승에 성공하면서 국내 최강자의 타이틀은 ARETE의 것이 되었다.

하지만 세계의 벽은 너무 높았다. WTKL 연속 우승으로 WGL 그랜드파이널 진출권을 따낸 ARETE와 WTKL 플레이오프에서 드라키 바이퍼스를 다시 한 번 꺾고 국가대표 자격을 획득한 NOA가 나란히 세계를 향해 도전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NOA는 1승 2패를 거두며 상위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고, ARETE는 아예 2패를 거두면서 정말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들어야했다.


■ 모든 것이 변한 2014년… 리그도 통합되고, 라이벌도 통합됐다

▲ '알파'와 '오메가'의 만남, 그렇게 라이벌은 하나가 되었다


2014년은 WGL 체제가 출범하면서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리그를 제작하던 주체도 곰exp(당시 곰TV)에서 온게임넷으로 바뀌고, 월드오브탱크 한국 리그였던 WTKL이 WGL로 승격되어 아시아 패권을 놓고 다투는 거대한 리그가 되었다. 리그도 골드 시리즈와 실버 시리즈, 브론즈 시리즈로 삼원화되어 아마추어와 프로레벨을 모두 수용하는 장미빛 청사진을 그렸다.

이와 같은 변화도 중요했지만, 가장 극적인 변화점은 ARETE와 NOA가 합병되어 새로운 ARETE가 된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렇게나 불꽃튀기는 라이벌 구도를 그렸던 두 팀이 하나가 되면서 국내에서는 대적할 적수가 없는 최강의 팀이 되어버렸다. HEEIK이 유일하게 꾸준히 ARETE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WGL 시즌1 결승에서 ARETE를 넘어서지 못했고, 시즌2에서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ARETE를 거칠게 위협했지만 이마저도 패하면서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혹자는 ARETE와 NOA, 두 팀의 라이벌 구도가 계속 됐다면 더욱 다이나믹한 리그가 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두 팀의 통합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국내에서 적수가 없을 정도로 성장한 ARETE는 세계 무대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WGL 시즌1에서 동남아 대표들을 모두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를 향한 ARETE로 변모하게 됐다. 특히 시즌2에서는 러시아만큼 월드오브탱크에 열정적인 중국을 꺾고 우승하면서 세계 수준의 기량을 확보하게 됐다.

한국 시장도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앞서 밝혔던 대로 HEEIK이 결국 ARETE를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중간중간 ARETE의 뒷덜미를 서늘하게 만들면서 가능성을 엿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HEEIK의 2015년이 기대되는 이유다. 2014년은 명실상부한 ARETE의 해였지만, 2015년에서는 HEEIK이 ARETE의 질주를 막아내고 새로운 패왕으로 등극할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 연초에는 세계 최하위던 그들, 연말에는 러시아도 잡아내며 우승해

▲ 세계에서도 거침없는 ARETE,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지…


ARETE는 국내 시장을 완전히 평정한 만큼, 이제 눈을 돌려 세계 무대에서 눈부신 성장을 거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지난 WGL 그랜드 파이널에서의 성적은 정말 처참했다.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면서 조별 최하위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으니, 갈 길이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러나 NOA의 해외대회 경험과 ARETE의 조직력이 합쳐지자 무시무시한 시너지가 나기 시작했다. 솔직히 시즌1은 동남아 대표들간의 경쟁이었으니 세계 최정상 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는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열린 쿠빈카 컵에서 중국 팀을 꺾고 값진 3위를 차지하더니 중국에서 열린 WCA 2014에서는 러시아 팀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월드오브탱크 종주국인 러시아를 한국 팀이 꺾은 것은 엄청난 대사건이었다. 그간 ARETE의 성장을 단번에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셈. 월드오브탱크를 통한 프로스포츠 무대가 활성화 된 중국조차도 러시아는 언제나 버거운 상대였다. 이런 러시아 팀을 기업의 재정적 지원 없이 클럽팀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ARETE가 잡아낸 것이다.

그래서일까, WGL 시즌2 결승에서는 시즌1과 달리 중국 팀 ELONG이 참여하며 훨씬 경쟁이 치열해졌지만 여기서도 ARETE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 최강을 넘어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꿰찼다. WGL이 날을 거듭할수록 점차 경쟁이 거세진 만큼, 시즌3에서도 ARETE가 최강의 면모를 자랑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그 어느 팀보다도 유력한 우승후보임은 확실해 보인다.


■ 불모지에서 이룬 성과, 계속해서 기적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

▲ 오늘은 승자지만, 내일도 승자일 순 없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2014년은 한국의 월드오브탱크 유저들에게는 엄청난 해였다. 연초만 해도 세계 무대에서는 어림도 없던 팀이 연말이 되자 우승을 넘볼 수 있는 팀으로 급성장을 이뤘다. 한국의 e스포츠 문화가 각 종목에서 세계 정상을 차지하는 사례가 차고 넘치기야 하지만, 월드오브탱크처럼 1년도 안되는 사이에 이렇게 급성장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나 분명 한계점도 존재한다. 러시아까지 갈 것도 없고 당장 중국의 ELONG과 같은 팀들만 해도 기업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연습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있다. 지금은 ARETE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지만, 투자 없이 영원한 승리를 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국내 월드오브탱크 대부분의 선수들이 전업으로 선수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현실이 향후 성장 가능성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렇다고 워게이밍이 한국 지역에 대한 접근이 올바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난 WTKL의 가장 큰 단점이었던 지루한 경기를 만회하기 위해 새로운 룰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고, 이번 WGL 시즌3에도 이와 같은 실험은 계속 될 예정이다. 또한 ARETE와 NOA의 합병으로 국내 무대에 적수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HEEIK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면서 새로운 강자로 자라나는 상황이다.

탄을 소모하고 재장전까지 기다리는 그 기다림의 미학, 7대의 전차가 각기 다른 목표와 전술을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 협동플레이, 그 밖의 모든 부분이 낮설었던 월드오브탱크가 한국에서 메인스트림 게임이 되기엔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간 갈라파고스와 같던 대한민국에서 월드오브탱크와 ARETE가 거둔 성과는 실로 눈부셨다. 그 누구도 이 성과가 올해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변방의 작은 나라가 이제 세계 최고의 전차장을 노린다. 2015년에도 부디 좋은 성과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