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 오브 레전드에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챔피언이 존재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프로게이머와 유저들의 사랑을 받는 '주류 챔피언'과 그렇지 못한 '비주류 챔피언'이라는 신분 차이가 존재한다. 이 기사가 작성되는 지금도, 독자들이 이 기사를 읽고 있는 순간에도 수많은 비주류 챔피언이 밴픽창에서 외면받고 있다.

이러한 챔피언들을 위해 베.이.가가 나섰다. 이번 주인공은 한 때 대회를 풍미했지만, 현재는 등장하지 않는 챔피언이다. 탑 라인의 패왕으로 군림하며 모든 탑 라이너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주인공, 레넥톤의 회고록을 들여다보자.

▲ 내가 살아 있는 한, 모두 죽는다!


■ 나의 탄생과 정체성에 대해

내가 처음 등장했던 것은 2011년 1월 17일이었다. 어느덧 4년의 세월이 흘렀다.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나서스와의 형제 관계와 더불어, 크고 거대한 무기를 휘두르는 모습이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성능도 좋았다. 다른 챔피언들과 달리 분노라는 특이한 시스템을 사용한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마나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챔피언이라니. 상황 판단만 가능하다면 언제든지 스킬을 활용해 적을 도륙할 수 있었다.

이를 라이엇 게임즈에서도 감지한 모양이다. 나의 성능을 이리저리 건드렸다. 어떤 부분은 향상해주고, 다른 부분은 약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작업이 한창 진행됐다. 뭐... 그리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정체성은 확실했으니까.

처음에는 '아트마의 창'과 '워모그의 갑옷'을 함께 구매해주는, 일명 '워트마' 아이템 트리를 주로 선택했다. 애매한 '딜탱'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당시 CLG.EU의 탑 라이너였던 '윅드'가 새로운 아이템 트리를 개발한다. '피바라기'와 '정령의 형상'을 구매해주는 방식이 등장한 것이다. 정말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이때부터 내 역할은 '암살자'와 '딜탱'의 사이에 있는 무언가에 가까워졌다. 얼마 전부터 리그 오브 레전드를 시작한 사람들이 들으면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리븐과 역할이 비슷했다고나 할까? 그래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영상 하나를 준비했다.

▲ '최고의비둘기' 님의 행복한 레넥톤 영상


소름 돋지 않나? 레넥톤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강력했다. 사실 내 스킬 구성을 살펴보면, 요즘 내가 맡은 탱커라는 역할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패시브 스킬은 별것 아니다. 그냥 마나 대신 분노를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내용이다. 분노가 50 이상 차오르면 스킬이 더욱 강력해진다. 이건 밑에서 다른 스킬들을 설명하면서 더 자세히 알려주겠다.

Q스킬인 '양 떼 도륙'은 근접형 범위 스킬이다. 내가 들고 있는 무기를 힘껏 휘둘러 거기에 맞는 적에게 피해를 준다. 여기에 내가 피해를 준 양에 비례해 내 체력을 회복할 수 있다. 만약 분노가 50 이상 차올라 있을 때 '양 떼 도륙'을 사용하면, 대미지와 체력 회복량이 크게 상승한다.

가장 중요한 W스킬인 '무자비한 포식자'를 설명하겠다. 이 스킬을 사용하면 다음 일반 공격으로 상대를 기절시킬 수 있다. 단지 이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미지도 상당하다. 안 그래도 강력한 스킬이 분노 50 이상일 때 사용하면 더욱 강력해진다. 기절의 지속시간도 늘어나고, 대미지도 엄청나게 강력해진다. 중요한 스킬이니 잘 활용하도록.

저런 스킬들의 단점은 모두 상대 가까이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에게는 꽤 준수한 이동기가 존재한다. E스킬인 '자르고 토막 내기'가 바로 그것이다. 한 번 사용하면 지정한 방향으로 몸을 비틀면서 이동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한 번 사용했을 때 적을 때리면, 이 스킬을 한 번 더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잘 활용하면 추격과 도주 모두에 쉽다.

궁극기는 '강신'이다. 사용하면 내 몸집이 거대해지면서 체력이 일정량 상승한다. 내 몸 주변에 어둠의 기운이 빙글빙글 돌면서 주위 적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거기에 분노도 초마다 증가시켜준다. 더 설명할 필요가 있는가?


어떤가. 스킬 구성을 자세히 살펴봤으니 감이 올 것이다. '양 떼 도륙'과 '강신'에 생존을 위한 효과가 붙어 있긴 하지만, 스킬 대부분은 공격에 특화되어 있다.

한번 상상해봐라. '자르고 토막 내기'를 통해 단숨에 상대에게 접근해 '무자비한 포식자'로 상대에게 엄청난 대미지를 선사하며 잠깐 기절시킨다. 그래도 '양 떼 도륙'을 통해 또 한 번 대미지를 주고, 나는 체력을 회복시킨다. 이것만으로도 상대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 충분하다.

정리하자면, 내 스킬 콤보는 '궁극기 - E스킬 - W스킬 - Q스킬 - E스킬'이다. 이 모든 대미지를 전부 활용하면 상대 챔피언은 탱커를 제외하고는 맵에서 사라지기 일쑤였다. '윅드'가 만들어낸 획기적인 아이템 트리에 의하면 말이다.


■ 메타에 적응해 단점을 보완하다

그랬던 내가 시즌3에 들어서면서 기존 콘셉트를 버려야 했다. 안 그래도 암살자와 딜탱들의 설 곳이 없어지는 시기였기에, 나는 조금씩 유저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 극복을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정체성을 포기하는 고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솔로랭크에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기존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시즌3를 맞이해 내가 보여준 모습을 탱커였다. 물론, 단순한 탱커는 아니었다. 내 정체성에 의해 충분한 대미지를 뽑아낼 수 있는 탱커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하긴, 날 그렇게 묻어 두기엔 너무 아까웠을 테지.

하지만 이를 두고 처음에는 말이 많았다. 그동안 암살자로 활약했던 나를 한순간에 탱커로 활용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몇몇 유저들은 프로게이머의 아이템 선택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지금은 과거의 일이 됐으니 이쯤에서 그 이야기는 넘어가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내가 드디어 '비주류'에서 '주류 챔피언'이 됐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나는 깜짝 카드가 아니었다. 당당하게 '선픽'으로 가져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챔피언이 됐던 것이다. 그 사실이 정말 기뻤다. 지난날의 설움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 당당하게 선픽으로 등장 (출처 : 온게임넷 방송 화면)

그동안 내 단점으로 지적됐던 부분은 '유통기한'에 대한 것이었다. 강력한 라인전을 바탕으로 공격력 관련 아이템을 둘둘 휘감아도, 정작 후반 한타에서는 존재감이 떨어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후반에는 모든 챔피언이 비슷한 성장을 기록할 수 있어서 나 같은 건 금방 녹여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걱정이 없어졌다. 대회에서 선보인 '탱커 레넥톤'에게는 더 이상 그런 단점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타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었다. 워낙 스킬 대미지가 강력해 공격력 관련 아이템 없이도 어느 정도의 대미지를 뽑아낼 수 있었고, 궁극기를 통한 대미지 역시 깨알 같았다. 말 그대로 딜도 되고 탱도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기존의 장점인 강력한 라인전을 더욱 극대화했다. '도란의 검'을 첫 아이템으로 선택해 지속적으로 라인을 밀면서 상대에게 피해를 누적시키는 플레이를 해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기적인 딜교환'이라고 불리는 내 딜교환 방식 역시 그대로였다. 상대 챔피언은 여전히 짜증을 냈다. 나로서는 상당히 재미있지만.


그렇게 주류 챔피언으로 자리 잡은 나는, 유저들의 연구 덕분에 더욱 강력한 모습을 선보일 수 있었다. '티아맷'을 아이템 트리에 추가하면서, 내 강력함은 배가 됐다. 그때부터 나는 '딜도 되고 탱도 되는' 수준이 아닌, '딜도 엄청 좋고 탱도 좋은' 챔피언이 됐다. 이때부터 내 정석적인 아이템 트리에는 항상 '티아맷'이 들어간다.


■ 다시 찾아온 암흑기

그렇게 좋았던 시절이 가고, 나에게 또다시 암울한 시기가 찾아왔다.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은 탑 라인에 나보다 더 좋은 챔피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들의 등장으로 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들은 라인전과 한타 모두에서 나보다 더 안정적이고 좋았다. 심지어 내가 상대하기 껄끄러운 친구들이다.


퓨어 탱커는 모두 내가 상대하기 까다롭다. 그중에 마오카이를 예로 들어보겠다. 이 친구는 라인전에 별로 하는 것 없이 CS만 먹는다. 그런데 문제는 마오카이에게 그런 플레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탱킹력에 마오카이는 내가 초반 라인전 단계에서 아무리 강력하게 때려봤자 별로 개의치 않는다. 묵묵하게 CS를 먹는다. 후반으로 가면 자기가 더 좋다나.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다. 나는 라인전에 장점이 있는 레넥톤이 아닌가. 이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고자 있는 힘껏 라인을 밀면서 딜교환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마오카이가 누구인가. 갱호응의 최강자 중 한 명 아닌가. 그럼 라인을 밀지 않고 딜교환을 통해 솔로 킬을 기록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마오카이의 단단함 앞에 무력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최근 엄청나게 자주 등장하는 헤카림. 이 친구 또한 골칫거리다. 라인 푸쉬와 딜교환에서도 내가 크게 밀리고, 한타에서의 영향력도 내가 뒤처진다. 한 마디로 나보다 훨씬 좋은 탑 챔피언이다. 정말 초반에는 내가 라인전을 주도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주도권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헤카림 쪽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원인에는 많은 것이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라이엇 게임즈의 패치였다. 라이엇 게임즈는 지난 1월 22일 진행된 5.1 패치를 통해 나의 많은 것을 바꿨다. 이 때문에 내 강력한 초반 라인전에 힘이 많이 빠졌다. 자세한 패치 내역은 다음과 같다.



■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서리라!

나처럼 다양한 변화를 겪은 챔피언도 드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암살자와 비슷한 역할에 충실하다가 메타의 흐름과 함께 유저들에게서 멀어졌다. 그 후에 역할 자체를 바꾸면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또다시 메타의 흐름에 밀려 찬밥 신세가 됐다. 이처럼 다채로운 인생이 또 어디 있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완전히 못 써먹을 만한 챔피언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위에서 라인전이 약해졌고, 나보다 좋은 챔피언이 많아졌다고 불평하긴 했지만, 난 여전히 괜찮은 챔피언이다. 소모 자원도 없고, 라인 유지력과 푸쉬력도 준수하며, 갱 호응과 갱 회피에도 좋다. 한타에서도 여전히 나쁘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래도 대규모로 쾅하고 붙는 한타에서는 내 존재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내가 달라붙기 어려운 챔피언이 많이 등장하는 흐름 속에서는 어쩔 수 없다. 그렇기에 내 장점을 좀 더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초중반에서의 강력함과 확정적인 기절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똑똑한 운영을 해야 한다.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수 없듯이, 변화하는 메타를 막을 수는 없다. 모두 승리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옛 향수에 젖어 나를 선택해 전장을 누벼보는 것도 나쁜 선택이 되진 않을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그러다 보면 또다시 내가 탑 라인을 휘젓는 날이 돌아올지.


■ 힐링챔프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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