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2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한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흔히 기본기라 불리는 피지컬, 상황 판단능력, 센스, 전략& 전술을 만들어내는 능력 등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승리'에는 위에 언급한 경기 내적인 것뿐만 아니라 경기 외적인 부분도 굉장히 중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췄어도,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사용할 환경을 만들지 못해 패배하는 것만큼 억울한 건 없다. 바꿔말하면 실력에서 조금 밀린다고 생각해도 판짜기, 상대 선수의 특징, 컨디션 등을 고려해 분석을 철저히 한다면 승산은 있다.

그리고 2015년 4월 14일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2015 시즌 2라운드 7주차 마지막 경기에서 'sOs'김유진(진에어)은 최근 분위기가 가장 좋다고 평가받는 김준호(CJ)를 상대로 경기 내, 외적인 심리전을 기반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 프로 레벨에서는 미묘한 차이가 승패를 좌우

▲ 예언자로 김준호의 체제 파악 및 견제에 나서는 김유진


김유진과 김준호의 초반 빌드는 매우 무난했다. 김유진은 예언자를 생산했고, 김준호는 프프전에서 가장 안정적인 점멸 추적자로 출발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었다. 김준호는 평범한 12관문, 김유진은 살짝 빠른 11관문으로 시작했고, 프로게이머 중에서도 S급인 김준호는 미묘한 관문 타이밍 차이를 알아채고 모선핵을 생략하며 점멸 추적자를 보다 빠르게 준비했음에도 수비적인 태세를 갖췄다.

■ 김유진의 칸영화제 남우주연상급 연기력

▲ 승부의 분수령 '몰래 멀티'


예언자를 통해 주도권은 김유진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김유진은 앞마당이 아닌 5시 지역에 몰래 연결체로 승부수를 띄웠다. 보통 연결체 건설에 필요한 400의 미네랄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사용되었을 때 김준호 정도 레벨의 선수라면 충분히 눈치챌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김준호는 1년 전, 우승자에게만 1억원의 상금이 주어졌던 IEM 시즌8 월드챔피언십 결승전에서 김유진에게 패배한 뼈아픈 기억이 있다. 알게모르게 김유진에 대한 트라우마가 김준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김준호는 관측선으로 김유진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려 했지만, 맵 중앙에서 차단당했고 환상 불사조로 얻은 정보는 '김유진의 앞마당 타이밍이 나보다 느리다'였다.

■ '김유진 트라우마'에 좁아진 김준호의 시야

▲ 김유진의 앞마당 타이밍을 확인한 김준호


자신보다 앞마당 확장 타이밍이 느리다고 결론지은 김준호는 굳히기 운영에 돌입했다. 김준호의 입장에서는 체제가 같은데 앞마당이 빠르다면 오히려 조급한 쪽은 '김유진'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 때 김유진의 연기력은 더 빛났다.

김준호에게 5시 확장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나는 지금 너보다 확장이 느려서 어떻게든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야'라는 메시지를 계속보냈다.

▲ 결국, 마지막 교전에서 대승을 거둔 김유진


김준호의 입장에서는 트리플 확장마저 자신이 빨랐고, 김유진은 앞마당뿐이었다. 이는 곧 '막으면 이긴다'로 직결됐고, 탐사정 생산까지 중단하며 병력 생산에 집중했다. 하지만, 김유진의 5시 몰래 확장은 너무나 평화롭게 자원채취가 활성화되고 있었고, 병력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만약 김준호의 상대가 '김유진'이 아닌 다른 상대였다면, 5시 몰래 확장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김유진이 의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김준호가 김유진을 의식하여 확실히 시야가 좁아졌다는 사실이다. 최근 주춤했던 김유진이지만 이날 경기만큼은 전성기 시절을 방불케 했다. 이번 경기를 계기로 다시 한 번 예전처럼 날아오르는 '빅가이' 김유진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