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가 정해진 경기, 반전 없는 영화를 보는 건 꽤나 흥미가 떨어지는 일이다. 롤드컵에서 해외팀의 선전을 기대하는 이유다. 한국은 2012년부터 5년 동안 롤드컵 결승전에 진출했고 최근 3년 동안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올해도 우승이 가장 유력한 지역이다. 한국팀이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장면을 바라보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이지만, 한켠으로는 해외팀의 우승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중국을 바라볼 때 이러한 감정은 더욱 복잡해진다. 중국은 모든 리그 중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곳이다. 시장 규모와 열기만 보더라도 '언젠가 한 번 쯤은 중국이 우승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중국은 2015년, MSI를 통해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고, 롤드컵을 통해 실망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중국팀을 볼때면 기대감만큼 의심이 든다.

올해 롤드컵에는 EDG, I MAY, RNG 총 세 개의 중국팀이 참여한다. EDG와 RNG는 이미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경험이 있는 강팀이다. I MAY는 1군 리그 승격 후, 극적으로 롤드컵까지 합류하며 강렬한 기세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롤드컵에서 중국은 과연 지난 2015년의 악몽을 떨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까?

중국인들은 지난 2015년 롤드컵에 큰 기대를 걸었었다. 그럴만도 했다. 중국은 각 지역 리그들의 투자금액과 차원이 다른 엄청난 돈을 써가며 능력있는 선수를 불러보았다. EDG의 MSI 우승은 중국인들에게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다. 당연히 롤드컵에서도 잘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중국 언론들은 이번 롤드컵이 가장 우승에 근접한 대회라고 말했다.

한국의 불안감도 커졌다. 능력있는 많은 선수가 해외로 나갔다. 새로운 선수들이 그 자리를 채웠고, 이들은 분명 실력이 있었지만 낯설었다. 또한, 한국의 게임산업 경시 풍조와 중국의 어마어마한 투자가 대비를 이루면서 조만간 중국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게 될거라 생각했다. 그것이 2015년 롤드컵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막상 롤드컵이 시작하니 EDG를 제외한 중국팀들이 모두 하나같이 맥없이 무너졌다. 리그 챔피언이었던 LGD 게이밍, 늘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던 iG는 본선 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빠르게 귀국했다. EDG는 8강에 올랐지만 거기까지였다. 중국은 엄청난 실망감을 고국에 안겨주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대회가 끝나고 중국 언론은 일제히 이유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의사소통 문제가 다시 한 번 불거졌고, 선수들의 사생활 문제도 수 차례 터져나왔다. 무엇보다 프로의식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롤드컵에서 뛴 한 선수는 연습이 부족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e스포츠 판에서 가장 큰 최고의 무대를 서는 선수가 연습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1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이들이 다시 롤드컵 무대에 오른다. 이들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지난 해 겪은 수모를 얼마나 바로잡았는지가 관건이다. 달라진 모습을 보일 팀은 어느 곳이 될까?


가능성이 가장 큰 팀은 단연 EDG다. 2015년 MSI 초대 우승을 기록할 때, EDG는 정규 리그서 14승 4무 1패를 기록했다. 이번 롤드컵에 도전하는 EDG는 16승 전승으로 정규리그를 마감했다. 플레이오프 경기에도 RNG를 상대로 3승 0패를 거뒀다. 무패 우승. EDG가 이번 롤드컵에서 파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 이유다.

EDG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선도 심상치 않다. EDG가 이번 롤드컵에서 우승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LCK 경기 해설을 담당하고 있는 김동준 해설가는 EDG에 대해 이번 롤드컵에서 파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결승전에서 보여준 퍼포먼스가 굉장히 뛰어났다. 중국팀이 개인 기량서 문제가 없다는 것은 이미 검증된 사실이고, 매번 지적되던 커뮤니케이션 문제, 합류 속도 문제 등도 한국팀과 비교해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선수들의 '프로의식 부족'으로 인한 연습 소홀 문제도 극복했다. 정확히는 이에 따르지 못하는 팀과 선수가 도태됐다. 지난해 롤드컵에 진출했던 iG는 주전 선수들의 이탈과 인지도 있는 선수를 내치지 않으려는 무리한 운영으로 '루키' 송의진이라는 최정상급 미드 라이너를 원거리 딜러로 쓰는 이상한 행동 끝에 강등권으로 떨어졌었다. LGD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 최고 미드 라이너로 손꼽히던 '갓브이'는 기량이 떨어지면서 '티비큐'의 빈자리를 메우지 못한 정글러와 함께 팀을 강등권으로 떨어뜨렸다. 선수가 팀보다 위에 있을 때 나오는 문제다.


EDG 역시 MSI 우승 후 같은 문제를 겪었지만 극복했다. 정상급 기량을 보여주던 '코로1'이 메타를 따라가지 못하자 후보로 떨어뜨리고 미드 라이너였던 '마우스'를 탑 라이너로 기용해 성공을 거뒀다. '폰' 허원석이 허리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렵자 한국 솔로랭크 1위를 기록했던 '스카웃' 이예찬을 영입했다. '클리어러브'와 '데프트' 김혁규는 검증된 프로의식으로 변함없는 기량을 과시했고 덕분에 EDG는 다시 중국 최정상에 올랐다.

EDG에서 주목할 선수는 단연 '클리어러브'다. 그는 EDG가 우승 후유증에 걸려 여러 문제를 보일 때도 꾸준히 활약했다. 탱커형 챔피언이 각광받던 시절부터 킨드레드, 그레이브즈와 같은 캐리형 정글러가 판을 치던 시기까지 늘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많은 정글러들이 메타에 적응하지 못해 고생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의 재능과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I MAY의 선전이 기대되기도 하다. I MAY는 EDG의 2군 팀으로 출발해 1군 리그로 승격하며 스폰서를 교체했다. 이제는 EDG과 형제팀이 아니지만, EDG가 가진 체계적인 게임단 운영을 그대로 흡수했다. 이제 1군이 된 열정 넘치는 선수들과 오랜 코치 경력을 가진 손대영 감독이 만나면서 시너지가 발동됐다. 최상급 경기력을 뽐내는 EDG가 좋은 연습 상대가 되어줄 테니 I MAY의 선전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테나' 강하운이 보여줄 활약도 기대가 된다. 강하운은 지난 케스파컵에서 ESC 에버가 반전을 써내릴 수 있게 도와준 선수다. 준수한 라인전과 캐리력은 I MAY의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다만, I MAY의 경우는 다소 어려운 조에 속해 있다. 대만의 플래쉬 울브즈, 한국의 SKT T1은 롤드컵 경험이 많은 강팀이다. C9의 경우, '임팩트' 정언영이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어 모두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다.


RNG의 경우는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미드 라이너 '샤오후'다. 다소 좁은 챔피언 폭이 간파당하면서 공략하기 쉬운 약점이 드러났다. 미드 라이너의 부진은 곧바로 정글러에 영향을 끼쳤고 'mlxg'까지 함께 경기력이 나오지 않고 있다. '마타-루퍼'의 기량은 여전하고 '우지-마타'의 극강 라인전 능력도 대단하지만, 여전히 콜 플레이가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 EDG와 결승전을 통해 드러났다. 롤드컵을 앞둔 지금, 이러한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을지 궁금하다.

RNG가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마타' 조세형의 활약이 중요하다. 조세형은 경기의 전체적인 조율을 담당하고 있는데, 지난 결승전에는 EDG에게 합류속도가 많이 밀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맞라인전이 강요되면서 경기 중반 한타가 굉장히 중요해졌기에 합류 속도 문제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조세형은 본인이 전장에 도착하는 것 외에도 다른 선수들의 합류까지 챙겨야 한다.


중국의 사자성어 중에는 와신상담이라는 말이 있다. "장작 위에 누워서 쓰디쓴 쓸개를 맛본다"라는 뜻의 한자 성어로 복수, 혹은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떠한 고난도 참고 이겨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2016년 롤드컵에 도전하는 중국팀에 잘 어울리는 말이다.

중국은 지난해와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그들은 많은 자정 노력을 기울였고, 효과를 봤다. RNG는 지난 MSI를 통해 중국이 더이상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제 본 무대다. 복수를 위해 그들이 씹은 것이 쓸개인지, 복수심조차 잊게 만드는 사탕인지 판단할 때다. 중국팀을 눈여겨 보기 바란다. 그들의 변화를 판단하고 평가해보는 것도 이번 롤드컵의 좋은 관전포인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