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카이사가 대회에서 뜨거운 감자다. LCK 결승에서는 아프리카 프릭스가, LPL에서는 iG가 카이사를 상대에게 풀어주고 카운터하려다가 된통 당했다. LCK 승격강등전에서도 MVP가 그리핀의 카이사에게 연달아 패배했다. 이들 모두 상대가 카이사를 뽑도록 유도하고 이를 받아치려다가 자꾸 실패했다.

아프리카 프릭스와 iG, MVP 모두 카이사를 상대로 딱 한 세트 승리했을 뿐이었다. 아프리카 프릭스는 결승전에서 '프레이' 김종인에게 카이사를 네 번 연속 풀어줬다가 1세트를 제외하고 3연속 졌다. MVP도 '바이퍼' 박도현의 4연속 카이사에게 당했다. iG는 1세트에 '우지'의 카이사를 상대로 승리한 뒤에 두 세트 연속 패배하고 카이사를 밴했다. 문제는 '프레이'와 '우지'의 카이사는 패배한 세트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카이사를 풀어주고 카운터하려는 전략이 과연 프로 경기에서 맞는 선택인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됐다. 의견도 다양했다. 경기 내용에서 카이사를 초반에 압박하는 장면이 다수 연출됐던 만큼, 카이사를 내준 것보다는 운영에서의 실수가 컸다는 의견. 그리고 패배를 연달아 하면서도 카이사를 계속 밴하지 않았던 밴픽 전략의 문제라는 의견. LCK 결승 이후 한창이던 카이사 논란은 LCK 승격강등전과 LPL 플레이오프 이후에 다시 시작됐다.


카이사를 풀어주는 이유
스크림에서 이겨본 경험 + 카이사의 명확한 한계


프로 무대에서 카이사가 풀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연습 과정에서 카이사를 상대로 충분히 승리해봤기 때문에, 그리고 카이사는 OP라는 인식과 다르게 명확한 한계를 가진 챔피언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프릭스가 LCK 결승에서 패배하고, 선수들은 개인 방송이나 인터뷰에서 카이사를 계속 상대에게 내줬던 밴픽 전략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카이사를 스크림에서 계속 압살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프로들은 실전을 위해 뼈를 깎는 연습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 연습 과정에서 얻어낸 결과물이 곧 공식 대회에서의 밴픽 전략이나 경기 내 운영이 된다. 스크림에서 자주 승리했던 조합이나 특정 챔피언은 자신들의 대회 경기에서 자주 활용되며 잘 통했던 밴픽 전략은 대회에서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되곤 한다.

그래서 아프리카 프릭스나 MVP, iG는 연습 결과를 토대로 카이사를 상대에게 내주고 이를 카운터하기 위해 본인들이 연습했던 챔피언을 꺼냈다. 바루스나, 진, 코그모, 케이틀린이 그렇게 등장했다.

그럼 이들은 스크림에서 카이사를 상대로 어떻게 자주 승리했을까. 아마 카이사가 가지는 명확한 한계를 잘 파고 들었을 것이다. 카이사는 물리 대미지와 마법 대미지, 공격 속도가 일정 수치 이상 올라가면 각 스킬을 진화시킬 수 있다. 그 말은 아이템을 많이 갖추게 되는 중반 이후부터 훨씬 강력해진다는 뜻이며, 초반에는 존재감이 미비하다는 말도 된다.

실제로 카이사는 초반 라인전 단계에서 생각 외로 약하다. 사거리도 짧고 상대와 라인전 단계에서 딜교환을 할 때 큰 이점을 주는 스킬 구성도 아니다. 그래서 카이사를 상대하는 팀은 초반 라인전 단계에서 주도권을 틀어쥐고 카이사를 박살내는 구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카이사를 내준 팀 쪽에서는 위의 바루스나 진, 케이틀린처럼 라인전이 카이사보다 강력한 챔피언 혹은 코그모처럼 같이 커도 캐리력에서 밀리지 않을 만한 챔피언들을 기용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실패였다. 아프리카 프릭스는 킹존 드래곤X의 카이사를 막지 못했고, MVP는 그리핀의 카이사에 연거푸 당했으며 iG는 RNG의 카이사를 감당할 수 없어 끝내 밴했다. '내주고 카운터'라는 전략은 프로 무대에서 성공률이 극히 낮은 전략이라는 결론이 난 셈이다.


2016 IEM에서의 진
'레클레스'의 전승 카드, 그러니까 밴


지금과 그 성격이 똑같진 않지만, 비슷한 논란이 일었던 때가 있었다. 과거 2016 IEM 월드 챔피언십에서 프나틱의 '레클레스'가 꺼냈던 진과 관련된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진은 출시 직후부터 성능이 좋지 않다는 평가를 꾸준히 받았다. 몇 번의 패치 이후에 랭크 게임에서는 종종 모습을 드러냈지만, 대회에서 쓰일 만한 챔피언인지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그 평가가 바뀐 계기가 바로 '레클레스'의 진이 2016 IEM 월드 챔피언십에서 기록했던 '5전 전승'이라는 데이터였다.


'레클레스'가 2016 IEM 월드 챔피언십에서 진을 처음 꺼냈던 경기는 CLG와의 2세트였다. 그때부터 '레클레스'의 진은 등장했다 하면 불을 뿜으면서 팀에 승리를 물어다줬다.

이를 두고 프나틱이 과연 '레클레스'의 진 덕분에 승리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경기를 상대보다 더 잘 풀어서 이긴 것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진의 CC 연계와 원거리 포격 덕분에 프나틱이 손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는 의견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조합 구성이나 운영 측면에서 프나틱이 더 잘했던 것이지, 진이라서 승리한 건 아니라는 의견도 나왔다.

결과만 놓고 보면 '레클레스'의 진이 풀린 경기에서는 프나틱이 모두 승리했다. 3승째 기록할 때까지만 해도 후자 쪽 의견에 무게가 실렸지만, 5전 전승이라는 데이터가 나오자 사람들의 생각이 차츰 전자 쪽으로 바뀌었다. 그도 그럴 것이, '레클레스'에게 진을 선택하지 못하게 밴했던 팀들은 프나틱에게 꽤 쉽게 이겼다.

물론, 밑도 끝도 없이 진을 밴하는 것이 정답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당시 진은 인식과 성능이 좋지 않았고 자주 등장하는 챔피언이 아닌, 깜짝 카드 같은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레클레스'의 진은 주요 픽이냐 깜짝 카드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진은 5전 전승이라는 엄청난 데이터를 보유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데이터가 프나틱을 상대했던 팀들이 '레클레스'의 진을 밴하게 만들었다.


르블랑-렝가-카밀
주면 이기기 너무 힘든 카드들, 그러니까 밴


LoL e스포츠 대회 경기에서는 정말 많은 '필밴' 카드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팬들의 뇌리에 깊숙하게 박혀 있는 친구들이 있는데, 바로 리워크를 맞이했던 르블랑과 렝가, 그리고 새롭게 등장했던 카밀이었다.


이들은 현재 카이사의 위치보다 한 단계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챔피언 성능에 단점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풀리면 무조건 챙겨야 하는 필수 챔피언이었다. 이 챔피언들 중에 하나라도 밴을 하지 않았던 팀들은 대부분 처참히 무너졌다. 그 이후로 모든 LCK 프로게임단들이 한동안 레드 진영에서 르블랑과 렝가, 카밀을 밴했다. '르렝카'라는 표현도 이때 처음 나왔다.

앞서 소개했던 '레클레스'의 진은 대세와는 거리가 먼 챔피언이었지만, 전승이라는 데이터 때문에 프나틱을 상대했던 팀들이 밴했다. 이번 '르렝카'의 경우에는 여러 번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필밴' 카드였다. 연습 과정에서 많은 프로게임단이 르블랑이나 렝가, 카밀을 풀어주고 카운터하는 걸 연습했지만 거의 통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대회 경기에서 풀어줬다가 무너지는 팀들을 보면서 교훈을 얻었을 지도 모른다.


카이사는 밴해야
진의 교훈, 그리고 '르렝카'의 교훈


다시 현재 시점으로 돌아오자. 카이사는 과거 '레클레스' 진의 교훈과 '르렝카'의 교훈을 동시에 품은 챔피언이라고 볼 수 있다. 카이사는 '레클레스'의 진처럼 대회에 등장했다 하면 고승률을 자랑 중이다. 또한, 카이사는 '르렝카'처럼 대처법을 찾아내서 대회 경기를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했던 팀들이 대부분 무너졌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유저들 사이에서 OP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도 '르렝카'와 같다.

프로들은 연습 과정과 스크림을 통해 얻어낸 데이터를 가지고 경기에 나서는 일이 잦다. 그렇기 때문에 '르렝카' 중에 하나를 풀어주고 자신들이 찾았던 대처법을 시도했고, 카이사를 풀어주고 카운터하려 했다. '레클레스'의 진이 보였던 고승률 데이터를 크게 신경쓰지 않고 변수를 차단하려 하지 않았던 팀들도 연습 과정에서 진이 그닥 위협적이지 않았다고 결론지었을 것이다.

물론, 그런 과정과 결론도 중요하겠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대회 경기에서 쌓인 데이터가 아닐까. 모든 프로는 대회 결과와 성적으로 말해야 하며 그걸 토대로 준비하고 생각해야 한다. 마치 '레클레스'의 진이 5전 전승을 기록했으니 챔피언의 성능을 생각하지 않고 밴했던 것, 그리고 '르렝카'의 성능이 워낙 좋고 대회에서 등장했다 하면 캐리하니까 '필밴'했던 것처럼 말이다.

▲ 카이사는 일단 밴(출처 : LoLesports 유투브 채널)

그럼 결론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카이사는 그 단점이 더욱 명확해지는 너프 패치가 진행되지 않는 이상 대회 경기에서는 밴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 이유를 변수 차단이나 대회에서 쌓인 데이터에서 찾아보면 당연한 결론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프레이'와 '우지'의 카이사는 패배했던 1세트에도 초반 상대의 집요한 괴롭힘에도 잘 성장해 끝까지 힘을 냈던 것을 기억하자.

카이사를 풀어주고 대비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를 하지 말자는 건 절대 아니다. 실제로 팀들은 카이사가 주목받기 시작할 때부터 직접 활용하는 법과 대처하는 법을 동시에 연구했고, 그게 맞는 준비 방법이다. 하지만 등장했다 하면 팀에 승리를 물어다주고 있는 카이사를 굳이 대회 경기에서 상대에게 내준다? 그건 지금은 너무 위험부담이 큰 행동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