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시즌이 끝난 뒤, 각 게임단은 결산을 합니다. 저마다 목표가 있고, 그것을 달성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데프트' 김혁규는 한국행을 결정한 뒤, 아직 웃지 못하고 있습니다. SKT T1과 킹존 드래곤X의 LCK 우승을, 젠지 e스포츠가 롤드컵 챔피언이 되는 모습을 씁쓸하게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2017년 kt 롤스터에 입단한 '데프트'는 "지금이 잘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빡빡한 경쟁 속에서 '데프트'는 염원하던 국내 대회 우승에 번번이 실패했고, 국제 대회와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이쯤 되면 실패라 생각해봤을 법하지만, 이제는 오기가 생긴 모양입니다.

같은 실수의 연속, 약한 멘탈을 지적한 팬들의 비난과 비판. '데프트'의 목표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막연하게 우승이 목표였다면, 지금은 계속해서 우승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각오만이 아닌, 자신감의 이유도 함께 들어봤습니다.


Q. 시즌을 마치고 정말 오랜만이에요. 어떻게 지냈나요.

시즌을 마치고, 무턱대고 쉴 수가 없겠더라고요. 2016년까지는 MSI나 롤드컵 등에 참가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저 멀리 있는 것 같더라고요. 스스로에게 실망도 하고, 팀 성적 역시 만족스럽지 않아 처음부터 시작하겠다는 생각으로 문제점들을 고치면서 지냈어요.


Q. 문제점이라면 반복되는 집중력 저하인가요?

제 개인의 실수라면 집중력 저하가 가장 컸고, 팀적으로는 콜 같은 게 서로 많이 엇갈렸어요. 간혹 너무 많은 콜이 나와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고요.


Q. 그래서 '단합의 kt 롤스터'를 그렇게 외쳤던 거군요. 팀원끼리는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나요?

시즌이 끝나고 팀원들끼리 답답했던 부분이나 아쉬웠던 부분들을 많이 얘기했어요. 이번 시즌만 해도 '스멥' (송)경호 형과 '마타' (조)세형이 형이 지난해와 다르게 플레이를 했지만, 성적은 제자리걸음이었잖아요. 팀원 모두가 승리하기 위해 발전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요.



Q. 구체적으로 두 사람이 어떻게 변화를 줬는지 설명해주세요.

경호 형은 원래 영리하게 정글러를 사용하고,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이번 시즌에는 자신의 욕심보다는 정글러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줬어요. 세형이 형은 맵을 넓게 쓰는 유형의 서포터였지만, 제 옆에서 집중적으로 케어해줬고요.


Q. 변화를 줬음에도 우승과 인연이 없어서 많이 아쉽겠네요.

세 시즌을 치렀는데, 모든 시즌이 다 아쉬워요. 첫 시즌은 잘하다가 결승전에서 너무 허무하게 무너져서 안타까웠어요. 서머 시즌은 정말 여러 기회가 있었는데, 하나도 잡지 못하면서 실패한 시즌이 됐죠. 그때는 정말 멘탈이 산산이 조각 났어요. 이번 시즌은 제가 원하고, 하려는 플레이가 올바른 방향인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Q. kt 롤스터는 꾸준히 3위 이상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데, 팬들의 비판은 끊이지 않고 있어요.

팬들의 질타는 충분히 이해하죠. 저 역시 이 정도 성적을 내려고 한국에 온 게 아니고요. 팬들과 플레이어 모두 만족을 하지 못하면 실패한 시즌이라고 생각해요. 비난이건, 비판이건 모두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Q. 플레이도 그렇지만, 밴픽에 대해서도 비판이 많아요.

밴픽은 정말 결과로 평가받는 거라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요. 옛날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카밀이 OP(Over Power)였지만,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카드가 있어서 열어주고는 했거든요. 자크도 그랬고요. 칼리스타가 밴이 되고 나서 시비르로 모두 패했던 경기도 연습 결과가 좋았어요. 전부 상의하고, 연습 결과를 토대로 짜기 때문에 변명거리가 없네요.



Q. 가장 가슴 아팠던 악플은 뭐였나요?

솔직히 욕 같은 것들은 이제 그냥 넘길 수 있는 경력이거든요. 그런데 '너는 열심히 해도 그게 한계다. 우승할 수 없다'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열심히 하는데, 못한다는 이야기는 프로게이머 입장에서 정말 슬프거든요. 그래서 그분이 판단하시는 것보다 더 열심히 해서 우승하려고요.


Q. 사실 kt 롤스터가 첫 해에 아무런 성과가 없어서 재계약이 어렵다는 소문도 돌았어요.

다들 1년 동안 함께 하면서 아쉬운 점과 맞지 않는 부분이 정말 많았어요. KeSPA컵을 준비 할 때까지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죠. 매번 연습 분위기 자체는 좋은데, 실전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하니까 팀원 모두 오기가 생겼나 봐요. 서로 자연스럽게 재도전을 하자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Q. 그렇다면 지금 멤버들과 계속 함께해서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지금 멤버들 모두 팀 게임에 대한 지식이 많아서 여전히 배울 점이 많아요. 다만, 아쉬운 점은 제가 팀원들을 너무 리스펙 하니까 수동적으로 플레이해요. 원거리 딜러라면 서포터를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형들의 말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해버리니까 그거 자체가 제 플레이를 펼치기 어렵게 만들지 않나 싶어요.


Q. 그래도 이제는 '유칼' 손우현이 들어오면서 막내는 벗어났네요.

'유칼' (손)우현이 같은 경우는 막내답지 않게 어른스러워서 아직도 제가 막내인 기분이에요. 가만 생각해 보니 제가 삼성 블루 시절에 '에이콘' (최)천주 형과 여섯 살 터울이었거든요. 우현이가 저랑 다섯 살 차이인데, 엄청 많이 나네요(웃음). 와. 얘가 스물다섯이면 전 서른이에요...... 그런데 왜 이렇게 어른스러울까요?


Q. 지난 번에 '레클레스'가 원거리 딜러 순위를 매겼어요. '레클레스' 자신보다 '데프트'를 낮게 평가했더라고요.

저도 봤어요(웃음). '레클레스'는 자국에서 우승하기도 했고, MSI에 출전하니까 저는 발언권이 없죠. 지금은 제가 꾹 참겠는데, 서머 시즌에는 제가 제일 잘한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요. 지금은 성적이 안 좋아서 원거리 딜러 순위는 못 매기겠어요. 나중에 성적을 내고, 이런 기회가 생기면 서열 정리를 해볼게요.


Q. 한국에 복귀할 때, 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어요. 그렇게 따지면 이제 정말 시간이 촉박하지 않을까요.

그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더 열심히 한다고 저 자신을 과대평가하면 안 되니까요. 진짜 얼마 남지 않았지만, 우승하고 은퇴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웃음). 최대한 오래 할 거예요. 대신 우승 한 번이 목표가 아니라 계속 우승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Q. 표현은 잘 안 하지만, 자존심이 많이 상한 것 같아요.

후회가 남는 경기가 많아서 그래요. 그래도 게임을 풀어가는 방식이나 여러 부분에서 많이 배웠으니 복귀 자체가 후회스럽지는 않아요. 자존심이 상한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네요. 다른 선수들은 저를 평가할 수 있지만, 저는 묵묵히 제 할 일만 해야 하는 상황이 아쉬워요.


Q. 서머 시즌에 사활을 걸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을까요.

서머 시즌을 앞두고 플레이 방향과 스타일을 아예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긍정적인 분위기고, 저와 팬 여러분 모두 만족할만한 경기력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Q.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큰 산들을 넘어야 해요. SKT T1을 넘었더니 킹존 드래곤X가 남았습니다.

예전에는 매번 SKT T1에게 패할 때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남들은 다 한 번씩 이겨봐도 저희만 SKT T1 앞에 무너지고, 될 것 같은데 안 되니까 답답하더라고요. 그러다 올해 처음 꺾고 눈물이 막 나왔어요. 경호 형은 뭘 이런 걸로 우냐고 하면서도 다들 같이 기뻐했죠. 킹존 드래곤X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현재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에 특정 상대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Q. 이제야 조금 자신감이 느껴지네요. 우승에 대한 욕심은 당연한 건데, 밑받침되는 자신감이 있을까요?

매 시즌 전 연습 때, 분위기를 바탕으로 우승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번에는 조금 달라요. 연습 결과보다 방향 자체에 확신이 생겼어요. 이대로만 할 수 있으면 우승도 꿈은 아니라는 느낌이랄까요.



Q. 국내 팀들과의 경쟁도 힘들겠지만, 이제 해외팀의 기량도 많이 올라왔어요. 특히 중국팀들 말이죠. 자신 있나요?

저는 중국과 한국에서 활동했잖아요. 종종 LPL을 무시하는 글들을 봤는데, 중국에도 정말 잘하는 선수가 많아요. 메이저 무대에 있는 선수들은 무시당할 실력도 아니고, 연습을 소홀히 하지도 않아요. 이번 MSI를 통해 잘하는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처럼 인정받는 모습을 보니 같은 프로게이머로서 뿌듯했어요.


Q. 한국 복귀를 생각하는 선수들 혹은 해외 진출을 꿈꾸는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 좀 부탁드릴게요.

한국과 중국에서 활동해본 결과, 지역은 별로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정말 열심히만 하면 어디서든 성공할 수 있어요. 리그 수준을 무시하거나 온갖 이유로 연습을 소홀히 한다면 당연히 어디서든 실패하겠죠. 누가 봐도 열심히 했다고 인정받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으니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Q. 마지막으로 인터뷰 중 못 했던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매번 팬분들이 실망하셨을 거예요. 그래도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하고, 서머 시즌에는 그 응원에 보답할 수 있도록 할게요. 그리고 리프트 라이벌즈에 출전하게 됐는데, 개인적으로 무척 재미있는 대회라 생각해요. 꼭 우승해서 최고의 리그 타이틀을 가져오겠습니다. 또 팬분들께 롤드컵 진출도 함께 선물할게요. 마지막으로 '폰' (허)원석이도 빨리 쾌유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