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라는 선수를 처음 접한 건 2018년. LCK 관계자들은 챌린저스에 괴물 탑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챌린저스 코리아에서는 일찌감치 '너구리'의 적수가 없다고. LCK에 올라온 뒤에도 '너구리'는 듣던 대로 대단한 선수였다. 무력의 끝판왕. 마치 삼국지 여포를 연상시키는 그의 무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까.

단점도 명확했던 선수다. 강한 라인전 능력 덕분에 언제나 상대팀의 표적 1순위가 되기도 하고, 오히려 좋은 딜교환이 강한 자신감으로 표출돼 죽지 않아도 될 죽음을 자주 당했다. 다른 선수라면 연이은 죽음이 치명적으로 다가오지만, 중계진도 어느 순간부터는 '너구리'의 '고립 데스'를 재치 있는 이야기 소재로 웃어 넘겼다. 아무리 죽어도 본 궤도에 오르는 좀비 같은 선수가 바로 '너구리'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죽어도 팀 차원의 큰 손해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죽지 않는 게 무조건 더 좋다.

강한 상체 덕분에 상대적으로 언제나 하체가 담원의 약점으로 손꼽혔고, 2019년 담원은 상체 파워로 롤드컵까지 오른 패기 넘치는 팀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담원이 본격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2020 시즌, '고스트' 장용준의 영입도 있었지만, '너구리' 장하권의 진화도 꽤 큰 지분을 차지한다.

농구만화인 슬램덩크의 주인공 중 한 명, 서태웅은 '너구리'와 비슷한 면이 있다. 엄청난 무력으로 탑 라인전을 지배하는 괴물 '너구리', 서태웅 역시 뛰어난 피지컬과 본능적인 감각으로 신입생에 불과하지만, 1:1 대결만큼은 날고 기는 선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그런 인물이었다.

하지만 농구와 LoL이 비슷한 점은 팀 게임이고, 1:1 돌파를 통한 득점은 수많은 득점 루트 중 하나일 뿐이다. 서태웅은 윤대협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를 깨닫고, 팀원을 활용한, 팀원들과 융화되는 플레이를 보여주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절대 지기 싫어하는 탑에 사는 라인전 괴물 '너구리'가 이번 롤드컵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 한 챔피언은 다름 아닌 탱커 '오른'. 총 6번 사용해 5승 1패를 거뒀고, 팀을 보좌하는 탑 룰루로도 2전 전승을 기록했다. 무력의 정점, 항상 팀의 도움을 받아 담원의 가장 큰 무기를 자처했던 선수가 이제는 팀의 그림자가 될 줄도 안다.

'너구리' 장하권이 롤드컵 MVP로 선정되진 않았지만 팀의 승리를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가장 큰 변화에 성공했다. '너구리' 장하권에게 윤대협은 누구였을까. 팀 동료, 혹은 코칭 스태프. 아니면 본인 스스로의 깨달음. 뭐가 됐든 지금의 너구리는 팀이 원하는 걸 뭐든지 해내는 선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너구리'가 서태웅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라는 점은 바로 담원과 북산의 차이. 담원은 '북산 엔딩'이 아니었다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