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 이서행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8년의 프로게이머 인생에 마침표가 찍혔다. 2013년에 시작됐으니 8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IM부터 나진, 타이거즈, BLG, kt 롤스터까지. LoL e스포츠를 꾸준히 지켜본 팬들에게 이서행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람이었다.

2021 시즌도 마음만 먹는다면 국내가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선수였다. 이서행이 은퇴를 결심한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8년 동안 한 번도 쉰 적이 없던 이서행이지만, '프로게이머'라는 타이틀을 뗀, 청년 이서행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커리어만 봐도 정말 많은 대회에 출전했고, 어디 가서 '나 좀 했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실력과 퍼포먼스를 보여준 선수. 그래서인지,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절대 없다고 했다. 인터뷰를 막 시작했을 땐 살짝 긴장되어 보였으나, '페이커' 이상혁과 진검승부를 펼칠 때, 정말 재밌게 즐기며 선수 생활을 했던 락스 시절 등, 자신의 과거와 마주할수록 편안하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Q. 은퇴 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

내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이 뭔지 생각하면서 편하게 지내고 있다. 가장 먼저 해보고 싶었던 게 자취라서 집을 알아보고 얼마 전부터 혼자 살고 있다. 아무도 나를 간섭할 사람이 없다는 게 좋다(웃음). 기본적인 생활에 있어 음식물 쓰레기 처리나 분리수거 등 귀찮은 부분이 있지만 생활력을 기르는 중이라는 마인드로 임하고 있다.


Q. 아무래도 가장 궁금한 건 '왜 지금?' 은퇴를 결심했는지다.

은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건 올해 섬머 시즌부터였다. 내 성격 자체가 누군가와 고민을 터놓고 얘기하는 타입은 아니고, 혼자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다. 마음속으로 약 80% 정도 은퇴를 결심했다.

만약 2021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봤다. 그렇게 되면 22년에 군대를 다녀오면 사실상 30대를 시작하는 나이가 된다.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은 추억이 생겼지만, 20대 전부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1년 정도는, '쿠로'가 아닌 이서행을 위한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게 가장 큰 이유다. 군대를 다녀온 뒤가 더 자유롭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30이라는 숫자가 주는 압박감이 있었다.


Q. 은퇴에 대한 고민을 주변 지인에게도 말한 적이 없나?

그렇다. 앞서 말했다시피 개인적인 고민을 타인에게 잘 말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정말 편한 친구들과 있는 술자리에서는 농담 식으로 얘기하기도 한다. 이번에 은퇴를 공식적으로 말하기 전까지만 해도 주변에서 "이번에 중국 간다며? 국내 xx팀 간다는 소문도 있던데?"라며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많이 물어보더라(웃음).


Q.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음.. 글쎄. 솔직히 잃은 건 없다. 오래된 친구들도 여전히 내 곁에 있고, 얻은 것만 정말 많다. 운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20대 청춘을 치열한 경쟁 속에서만 보내왔던 것을 스스로는 잃었다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내가 프로게이머를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팬들에게 사랑도 받지 못했을 거고, 돈도 못 벌지 않았겠나. 그리고 원래 굉장히 내성적인 스타일인데,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성격도 많이 외향적으로 바뀌었다.


Q. 2021 시즌을 앞두고, 함께 시대를 풍미했던 베테랑 선수들이 은퇴를 선언했다. 느끼는 감정이 남다를 것 같은데?

뭉클하다. 프로 생활을 할 때 대회에서 수없이 만나고 경쟁했던 선수들인데... 세월이 정말 많이 흘렀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뭔가 제대로 된 세대교체의 시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함께 은퇴하는 동료들에게 다들 정말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다.



Q. '다들 정말 고생했다'라는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그런가?(웃음).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오래 함께 한 동료들에게 전하는 존중이 담긴 짧은 메시지였다. 간혹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가볍게 보는 분들이 계신다. 물론 안 힘든 직업이 어디 있겠냐만,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는다. SNS나 댓글을 혼자 아무리 보지 않으려 해도, 결국엔 다 귀로 들어온다. 프로게이머는 준공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알려진다는 것, 인지도가 생긴다는 것에 대한 무게감은 생각보다 상당하다.


Q. 본인은 스트레스를 어떤 식으로 풀었나?

나는 친구들을 자주 만났다. 정말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 술도 마시고, 친구들 앞에서 펑펑 운적도 있다. 비시즌 기간이 아닐 때 짧은 휴가라도 친구들과 시간을 많이 보냈다.


Q. 여러 팀에서 활동했는데, 가장 인상에 남는 팀이 있는지?

처음부터 다 기억에 남는다. 그래도 황금기는 아무래도 락스 시절이 아닐까. 아직도 커뮤니티에서는 가끔 회자되는 시절인데, 우리는 이제 지겨워한다(웃음). 그때만큼 게임을 재밌게 하면서 성적이 잘 나왔던 시기가 있었나 싶긴 하다. 그래도 모든 팀에 다 추억이 있다.


Q. 함께 생활했던 선수 중 좋은 영향을 받거나 정말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선수가 있을까?

남자들이 보통 군대에서 모든 종류의 특이한 사람들을 다 본다고 하지 않나. 나는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그게 무슨 말인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팀마다 한 번도 특이하지 않았던 선수가 없던 적이 없다.

구체적으로 누구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보편적으로 모든 팀의 탑 선수들이 독특한 경우가 많더라. 그와 별개로 락스 시절에는 (이)호진이 형이다. 살면서 만나보지 않았던 타입의 사람이었다. 착하고 좋은 형이고, 지금도 자주 연락하는데, 확실히 독특하다. 말로 설명하긴 힘들고, 같이 살아봐야 안다.

좋은 영향을 받은 사람은 선수는 아니고, 정노철 감독님과 최연성 감독님이다. 정노철 감독님의 경우는 락스 시절 '쏭' 김상수 코치님과 함께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게임 내적인 부분을 정말 많이 깨우쳐줬다.

반대로 최연성 감독님은 내가 마음의 짐? 부담감? 같은게 굉장히 심했는데, 그런 부분을 잘 컨트롤 해줬다. 좋은 말도 많이 해주시고, 락스 때부터 이어져 온 SKT, 페이커 트라우마 같은게 마음 속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최연성 감독님을 통해 그런 부분을 많이 극복하고 17년도부터는 '페이커' 선수를 상대로도 꽤 많이 이겼다.


Q. 선수라면 게임 내 고집이 누구나 있기 마련인데, 본인은 어떤 편이었나?

스스로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가끔은 게임 내적으로 나만의 고집이 생길 때가 있긴 한데, 보통은 맞춰주는 편이다. 패치가 바뀔 때 챔피언 티어 정리나 그런 것도 웬만하면 주변의 말을 잘 받아들인다.

자기만의 개념, 게임 고집이 제일 심했던 사람은 '마린' (장)경환이 형이다(웃음). 정말 최고다. 자기만의 세상이 확고하고, 신챔프가 나와서 좋다고 해도 원래 하던 거를 해서 이기니까 우리가 할 말이 없었다.



Q. 밸런스가 좋은 미드 라이너라는 평이 많은 선수였다. 하지만, 육각형의 크기가 살짝 아쉬웠다는 의견도 많은데, 본인 생각이 궁금하다.

인정하는 부분이다. 나도 그게 아쉽다. 처음 프로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조금만 더 열심히 했었다면 내 한계를 뛰어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그게 참 어려운 문제다.


Q. 앞으로 후배들을 위해, 선수 입장에서 조금은 개선됐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상금이다. 롤판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굉장히 커졌는데, 대회 상금은 그렇지 않다. 물론, 선수들의 연봉이 엄청 올랐지만 상금도 최소한 어느 정도는 같이 올라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롤드컵은 그래도 규모가 꽤 크고, 스킨 수익도 있으나, 지역 대회인 LCK 상금은 위상에 비해 많이 적다고 생각한다.


Q. 8년 선수 생활에 있어 본인 선정 인생 경기는 뭔가?

음..하나를 뽑기가 너무 어렵다. 모든 경기가 다 기억에 남고 소중하다.


Q. 반대로 아쉬움이 컸던 경기는?

아쉬운 경기는 딱 하나 있다. 많은 분들이 롤드컵 경기를 생각하실 수 있는데, 아니다. IT ENJOY NLB Summer 2014 결승전, VS SKT T1전이다. 당시 내가 오리아나였고, '페이커' 선수가 야스오였는데, 1:1 상황에서 무조건 내가 이기는 싸움인데, 스스로 '이겼다'라는 마음이 커져서 오리아나의 마지막 Q를 너무 짧게 사용하는 실수가 나와 야스오에게 역으로 죽었다.

'페이커'와 SKT T1에 대한 트라우마의 시작점이 그때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거기서 야스오를 잡았더라면 내 인생도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 출처 : 나이스게임TV 유튜브



Q. 스스로도 말한 '페이커' 트라우마에 대해 조금 자세히 말해줄 수 있을까?

정말 많이 만났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뭔가 계속 한 끗 차이로 상대가 이기는 경기가 점점 생겼다. 그러다 보니까 트라우마가 생겼고, 큰 무대에서도 정말 많이 만났는데, 결승 무대의 압박감까지 겹치는 등 내 플레이를 잘 펼치지 못했다. 그런 것들이 심적으로 힘들었다.


Q. 끝으로 후배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있을 것 같다.

아쉬움이 가장 많이 남는 건 '조금 더 열심히 했다면'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나도 선수 시절에 안 들어본 게 아니다. 그래도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한 명이라도 바뀌는 선수가 있었으면 좋겠다(웃음).

열심히 한다는 게 정말 어렵다. 게다가 열심히라는 말은 굉장히 주관적이라 나에게 정말 열심히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망설임 없이 '그렇다'라고 답이 나올 정도가 돼야 남들이 볼 때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은퇴할 때 아쉬움이나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선택한 건 정말 잘한 선택이다. 나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책임감을 가지고 본인이 원하는 바를 위해 최선을 다해 후회가 없었으면 한다. 보상도 확실하니 프로로서의 마음가짐을 항상 지니고 있길 바란다. 한, 두 명의 실수로 인해 논란이 생겨 프로게이머 전체가 욕먹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페이커' 이상혁 선수는 모든 프로게이머에게 귀감이 되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Q. 지금의 이서행을 있게 해 준 원동력, 팬들에게도 한마디 부탁한다.

항상 하는 말인데, 팬분들이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진짜 올해는 국내 팬들과 만나고 싶었는데, 코로나19 이슈로 그러지 못해 너무 아쉽다. 내년에라도 코로나19 사태가 좀 나아지면 사비로라도 팬미팅을 열어보겠다. 그때까지 건강 유의하면서 기다려주시면 좋겠다. 앞으로 프로게이머 '쿠로'는 없지만, 개인 방송을 통해 새로운 모습의 이서행을 보여드릴 테니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아프리카TV에서 방송하며, '쿠로TV'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색다른 재미를 전달 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

■ LoL 프로게이머 '쿠로' 이서행 2013.03.20~2020.11.16

이엠텍 NLB Spring 2013 8강
LOL AMD 챔피언십 프로팀 최강전 8강
HOT6 Champions Summer 2013 16강
GIGABYTE NLB Summer 2013 준우승
PANDORA TV Champions Winter 2013-2014 16강
ZOTAC NLB Winter 2013-2014 12강
HOT6 Champions Spring 2014 16강
빅파일 NLB Spring 2014 12강
HOT6 Champions Summer 2014 8강
IT ENJOY NLB Summer 2014 준우승
IEF 2014 우승
2015 SBENU LoL Champions Korea Spring 준우승
2015 SBENU LoL Champions Korea Summer 3위
리그 오브 레전드 2015 월드 챔피언십 준우승
2016 꼬깔콘 LoL Champions Korea Spring 준우승
2016 코카-콜라 제로 LoL Champions Korea Summer 우승
2016 코카-콜라 제로 LoL Champions Korea Summer 포스트시즌 MVP
리그 오브 레전드 2016 월드 챔피언십 4강
2016 LoL KeSPA Cup 우승
2017 LoL Champions Korea Spring 5위
2017 LoL Champions Korea Summer 5위
2017 LoL Champions Korea Summer 정규시즌 MVP
2017 LoL KeSPA Cup 1라운드 8강
2018 LoL Champions Korea Spring 준우승
2018 리프트 라이벌즈 준우승
2018 LoL Champions Korea Summer 3위
리그 오브 레전드 2018 월드 챔피언십 8강
League of Legends Pro League 2019 Spring 9위
NEST 2019 준우승
League of Legends Pro League 2019 Summer 4위
2019 LoL KeSPA Cup ULSAN 1라운드 8강
2020 우리은행 LoL Champions Korea Spring 5위
2020 우리은행 LoL Champions Korea Summer 6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