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는 어쩌면, 가장 어린 나이에 거대한 벽과 싸우는 직업이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간은 몇 번의 벽을 만나게 될까. 가장 확실한 답은 '생각하기 나름'. 긍정적이라면 벽 따위는 없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는 바코드만치 많은 벽이 존재한다.

마지막 무대에서 만난 두 선수는 오래도록 넘지 못한 선이 있었다. 게이머 인생에서 한 계단을 더 올라가는 과정. 그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다. 2013 핫식스 GSL 결승, 오랫동안 갇혀 있던 새장의 문을 연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 곳을 바라보면서 걸음을 내딛고 있을까. '벽'에 대해 서로 다르지만 조금은 같은, 두 선수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Azubu_Symbol 강동현 - 네팔렘, 드디어 마지막 스테이지에 서다




"빠뜨린 이야기가 있는데, 더 말씀드려도 될까요?"

승자 인터뷰를 마친 한 선수가 다급히 기자실로 되돌아왔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다. 힘들고 피곤한 일정이었고, 선수들은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마친 후 어서 들어가 쉬고 싶을 것이었다. 하지만 특유의 후드티 유니폼을 입고 들어온 그 선수는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날은 승격강등전 와일드카드 결정전, TSL 유니폼을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다. 강동현은 이미 해체된 팀의 예전 식구들을 하나하나 입에 올렸다. 자신 역시 무소속인데도, 팀을 구하지 못한 다른 선수들과 코치를 소개하며 좋은 팀에서 데려가 주시길 바란다고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언급한 선수는 'Polt' 최성훈이었다. "외국 생활하는 그 형이 힘냈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면서 다시 발길을 돌린 강동현은 정작 자기 홍보에는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욕심이 없는 선수가 절대 아닌데, 의리가 넘치는 것인지 깜빡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겠다. 그 순간 이 선수의 등은 유독 우직하게 보였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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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9전제 역올킬, 신을 쓰러뜨린 '네팔렘' 별명을 얻고, 처음 오른 코드S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8강 진출. 역대 가장 강력한 로열로더 후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었다. 8강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두 세트를 연달아 따낼 때까지도 그랬다.

2012 무슈제이 GSL 시즌3의 이야기이다. 강동현은 그 시점에서 역스윕을 당했고, 뼈아픈 패배를 안겨준 안상원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다음 시즌에서도 8강에서 정종현에게 쓰러졌다. 두 시즌 연속 8강, 나쁜 성적이 아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강동현에게 8강은 무거운 벽으로 자리잡았다.

차츰 승률이 줄어들었다. 2012년 마지막 시즌에서도 16강에 머물렀다. 더 이상 그를 우승 후보라고 부르지 않았다. '상위권 저그' 정도가 인식의 한계였다. 설상가상, 새해 시작과 함께 들려온 TSL 해체 소식은 그저 안타까움을 낳을 뿐이었다.





2013년 첫 시즌이 시작됐다. 강동현은 예전처럼 압도적으로 이기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피투성이가 된 채 한 걸음씩 움직여야 했다. 승격강등전에서조차 조 3위로 간신히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발을 얹었고, 그곳에서도 마지막 세트까지 재경기 경우의 수를 따진 끝에 코드S 막차를 타는 주인공이 됐다.

고난 시나리오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32강에서는 이승현의 어이없을 정도로 강한 경기력에 패자조로 내려가야 했고, 최종전에서 장현우를 만났다. 최종전 3세트 경기는 GSL 저그 대 프로토스 역사에 남을 숨막히고 처절한 명승부였다. 단 한 순간도 쉬지 않은 싸움 끝에 간신히 16강 티켓을 움켜쥔 강동현이었다.


▶ 경기 보기 : 32강 A조 최종전 3set 강동현 vs 장현우


16강에서도 패자전으로 떨어진 끝에 조 2위로 진출했고, 8강 상대는 지난 시즌 4강 이신형이었다. 이 대결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알 수 없는 명승부였다. '왜 강동현은 매 경기가 이리 고생인가' 라는 논문을 구상하고 싶어질 만큼. 반전에 반전이 꼬리를 물고, 역공에 역공이 따라붙는 싸움이 계속되었다. 최종 세트, 전장은 이카루스. 강동현은 맵에 맞게 준비한 땅굴망 필살기를 준비했고, 그것은 마침내 벽을 뚫어내는 한 방이 되었다.

4강 역시 이원표와의 저저전 명승부 끝에 승리를 결정지었다. 역설이다. 거침 없던 분위기에서는 좌절을 안겨준 벽이, 기어가다시피 한 걸음에 무너져내린 것은. 고난과 역경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일까. 다들 힘들다고 하자 그는 한계를 넘어섰다. 그것이 더 아름다운 이유는, 자기 자신보다 동료를 더 빛낼 줄 아는 의리가 언제나 엿보이는 선수라서일 것이다.

드디어 마지막 계단을 오른 네팔렘, 강동현은 해피 엔딩의 크레딧을 감상할 수 있을까.


"이런 말을 하면 오그라들지만(웃음), 왠지 저는 원피스의 루피 같은 이미지 같아요. 루피는 굉장히 강하기는 하지만 동료들이 없었다면 그렇게 강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제 부족한 부분을 TSL의 이전 동료들이 많이 채워줬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사전 인터뷰 : "'미친 경기력' 보러 오세요!" 자유의 날개 마지막 결승, 강동현의 각오를 듣다





SAMSUNG_RorO 신노열 - 변치 않던 노력파,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이 되다




"정말이야, 이상한 징크스가 생겼다니까?"

무슨 인연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인 이상 혼자서 모든 대회에 취재를 나갈 수는 없다. 그런데 취재만 나가면, 신노열과 승자 인터뷰를 하게 됐다. 프로리그에서 하루에 2승 이상은 단골로 챙겼다는 이야기다. GSL 취재를 가도 신노열이 이기고 있었다. 한 주에 세 번을 만난 적도 있다. 이쯤 되면 징크스가 생긴 것인지 의심할 법도 했다. "내가 보러 가면 이기나?" 등의 생각을 하는 야구팬 같은 느낌이었다.

기자는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해야 했다. 내가 가서 이기는 것이 아니었다. 올해 들어 신노열은 지지 않았다. 지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말이 적절했다. 심지어 간신히 이기는 경기도 없었다. 무조건 이기기 때문에, 언제나 만날 수밖에 없었다.

삼성전자 칸이 파죽의 연승을 거둘 때 연승 숫자만큼 손가락을 펴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11연승을 해버리면 손가락이 부족할 것 같은데"라고 농담을 건네자 "에이, 그렇게는 못하죠"라고 쿨(?)하게 받아넘기던 여유. 그것은 방심이 아니었다. 나는 '당연히 이긴다'는 마음에서 나올 수 있는 여유였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신노열은 모든 인터뷰에서 테란과 저그에게 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 말은 지켜졌다. 승부사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언행일치였다.


▶ 관련 기사 : 코드S 4강 첫 진출 신노열 인터뷰 "모든 빌드를 새벽에 바꿨다"


신노열은 화제의 중심에 서는 선수가 아니었다. 대전 상대를 빛내주는 역할이었다. 가혹하게 말하면, 재료였다. 스타1 시절 김택용의 빛나는 저그전 명경기를 꼽으라면 신노열과의 대결이 빠지지 않고, 이재호와 신노열의 빅파일 MSL 16강 경기는 역대 최고의 테저전 중 하나로 손꼽힌다. 모두 신노열이 진 경기였다. 당시 팬들은 신노열을 일컬어 '제 4대 투명 라인'으로 일컫기도 했다.

팀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타 플레이어로 가득한 삼성전자 칸, 신노열은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는 경기력을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유독 강한 상대를 자주 만났다. 스타1 프로리그에서 이미 팀 저그 라인의 주축이었지만, 화려한 성적은 아니었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도 못했다. 개인리그에서 최대 성적은 16강. 그것은 신노열의 벽이었을지도 모른다.





협회가 스타크래프트2로 넘어오면서 새로운 멍석이 깔린 것은, 어쩌면 그를 위한 이벤트였을지도 모른다. 주목받게 된 시작은 2012 WCS 국가대표 선발전. 저그가 힘들던 8월이었다. 선발전 8강에 프로토스만 일곱, 저그는 단 한 명뿐이었다. 그 하나가 바로 신노열이었다. 괄목할 성적을 거두면서 4위에 들었고, 그랜드파이널 티켓을 얻어 상하이 무대에 서기도 했다.

처음 코드S에 진출한 2012 핫식스 GSL 시즌5 32강, 한번 브레이크가 걸렸다. 첫 경기에서 저저전을 패배하고, 최종전까지는 갔지만 결국 탈락하고 말았다. 여기에 재미있는 점이 있다. 신노열의 코드S 첫 경기에서 패배를 안겨준 선수가 바로 강동현이었다.

하지만 신노열의 질주는 이제 시작이었다. 프로리그에서는 최하위에 머무르던 팀이 9연승을 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 2킬은 기본이요, 3킬 이상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2013 GSL 시즌1, 다시 코드S에 오른 신노열은 거칠 것 없이 위로 솟아올랐다. 위로 향할수록 경기력은 더 좋아졌다. 조지명식에서 "이승현이 왜 강하다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뒤 16강에서 스스로 꺾고 올라간 것은 가장 선명한 인상으로 남았다.


▶ 경기 보기 : A조 최종전 3set 강동현 vs 장현우


8강 상대는 장민철, 신노열은 5전제 이상 경기가 처음이었다. 다전제 경험이 너무나 차이가 나서 힘들 것이라는 세간의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안정적인 모습으로 4강에 올랐다. 그리고 '태자' 윤영서에게 1패 뒤 4연승을 하면서 결승에 진출했다. 신노열은 다전제가 편하다고 말했다. 말을 하면 다 지킨다. 참 정직한 선수다. 더 이상 신노열이 존재감 없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떻게 하면 스스로 빛나는가. 독특한 개성과 화려한 쇼맨쉽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 이기는 것이었다. 답은 승리였다. 그를 알고 있는 이들이 안타까워 하고 있을 때, 자신은 쉬지 않고 연습하면 될 것이라는 간단한 원칙을 마음으로 터득하고 있었다.

이제 신노열은 애써 포장하지 않아도, 홀로 자신감으로 빛나는 선수가 되었다. "반드시 이기겠다"가 아니다. "당연히 이긴다"의 마음이다.


"최강자의 자리에 군림하시던 프로게이머 분들이랑 대화하면 항상 '당연히 내가 이길 것'이라는 말을 했잖아요. 그 때는 그 기분을 잘 이해할 수 없었어요. 사실 승부에 있어 확신이란 건 가질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정말 그렇게 느껴요. 제가 정말 이길 것 같아요."


▶ 사전 인터뷰 : '뭘 해도 질 것 같질 않아요!' 전성기 맞은 '로로' 신노열의 GSL 결승 출사표




■ 2년 반, 숨가쁘게 날아온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지금은 아주부에 몸담고 있지만 TSL 저그가 최강임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라고 말하는 강동현, 우승하면 그의 말대로 이루어진다. 자유의 날개 처음(오픈시즌 김원기)과 마지막 우승을 TSL 저그가 장식하게 된다. 알파와 오메가다.

신노열은 결승에서 승리할 경우 협회 최초의 GSL 우승자가 된다. 질 것 같지 않다는 그의 말을 봤을 때, 이 기세로 우승한 선수의 경우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에 군림한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과연 현실이 될까.

한 선수가 인터뷰 자리에서 남긴 말이 있다.

"모든 선수들이 직업병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 겉으로는 내색을 안 하지만 다들 승부욕이 엄청나요. 일반인보다 몇십 배 승부욕을 가진 사람이 프로게이머라고 생각해요. 누구보다 이기고 싶은 건 바로 선수 자신이니까, 그걸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손목 부상으로 떨어진 경기력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있는 선수, 입원 치료를 해야 할 상황이지만 대회를 위해 통증을 참아내던 선수, 틈날 때마다 링거를 맞아가며 연습을 하는 선수들이 떠오른다. 그밖에 말 못하는 고통을 안고 있을 많은 이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저그 동족전이다. 전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다. 다른 종족간의 경기가 더 재미있고 관심이 큰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승부욕을 가진 프로게이머들, 그 중에서도 정점에 오른 둘이 만난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앞의 벽을 뛰어넘은 둘이다. '자유의 날개'의 마지막 비행사를 가리기 부족하지 않다.

초창기, "피지컬이 극에 달했을 때 자유의 날개는 저그가 석권할 것이다"는 말이 있었다. 현실이 된 것 같다. 저그는 최근 결승을 매번 장식하고 있고, 큰 무대에서 저저전은 눈부신 경기력이 쏟아져나왔다. 권태훈과 고석현의 지난 결승이 그랬다. 강동현과 이원표의 이번 4강도 그랬다. 그 명승부를 본 누구도 재미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자유의 날개에 있는 모든 역사를 익힌 둘의 대결이다. 재미있을 것이다. 그리고 감동을 볼 수 있을 것이다.

3월 9일 토요일, 오후 다섯 시. 광장동 유니클로 악스홀에서 마지막 비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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