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마였던 시절, 저의 가장 친한 친구는패미컴이었습니다. 이미 이런저런 기사를 통해 여러 번 소개할 만큼 참... 애증의 게임기였어요.

엄마가 컴퓨터 안 사줘서 한 8년 정도 갖고 놀았는데, 결국 그대로 게이머 성향이 굳어버렸습니다. 덕분에 지금도 패키지 게임 위주로 해요. 온라인 게임도 나오는 족족 체크는 하는데, 뭔가 '나만을 위한 무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그렇게 고장 난 냉장고 속 쉰 김치처럼 PC부심에 푹푹 절어 있는 제게 모바일 게임은 참, 가깝고도 먼 존재였습니다. 지금 이 한 문장 쓰는 동안에도 신작이 쏟아질 정도로 핫한 플랫폼인 건 저도 알아요.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손이 안 가더라고요. '깊이가 없다', '그래픽이 어디서 본 것 같다', '조작감이 마음에 안 든다'...

그런 제가 요즘 인상 깊게 본 게임이 있어요. 지난달 22일에 출시된 하이디어의 신작 '로그라이프'는 그렇게나 비비 꼬인 PC부심을 잠시나마 억누르게 할 만큼 신선한 맛을 보여줬습니다. 대중적으로 만든 거 같긴 한데, 전작 '언데드 슬레이어'에서 보여줬던... 비주류 향기가 솔솔 나는 게임이랄까요? 아,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저도 제가 모바일 게임 리뷰 쓸 줄 몰랐어요.






1. 슈팅

슈팅 게임. 지금은 FPS가 이 장르의 얼굴이 되었습니다만, 저 같은 아케이드 키드라면 '1945'나 '텐가이(전국블레이드)'와 같은 게임들도 빼놓지 않을 겁니다. 총알을 쏜다는 개념의 슈팅 장르 범위는 생각보다 넓어요. 종스크롤, 횡스크롤, 1인칭 슈터, 비행 슈팅까지 모두 이 가문 출신입니다.

외적으로 보면 '로그라이프'는 여러 슈팅 장르의 혼합체입니다. 시점은 '1945'나 '건버드', '동방프로젝트'와 같은 종스크롤, 좌우 이동만 가능하고 배경과의 별다른 상호작용이 없다는 점에선 '레일 슈팅' 혹은 '고정형 슈팅'이 연상됩니다.

여기까지만 듣고 질려버린 분도 있을 거예요. 슈팅은 우리나라 기준으로 대중성이 없거든요. 다들 한 번쯤 해 본 기억은 있겠지만, 실제 원코인 클리어까지 가는 유저들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오락실 가면 1945 자리가 높은 확률로 비어 있는 이유예요. 이게.

하이디어의 김동규 대표 역시 같은 생각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로그라이프'가 보여준 슈팅 시스템의 완성도를 보건대, 개발진의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한 수준이라고 추측됩니다. 어디를 덜고 깎아내야 대중에게 먹힐지 고심한 티가 나죠. 그 결과, '로그라이프'는 누가 잡아도 빠르게 적응 가능합니다. 즉, 앞서 언급한 게임들과 비교해 접근성이 좋아요.

▲ 슈팅 시스템은 스마트폰 조작에 최적화되었습니다.


조작은 단순합니다. 그냥 엄지손가락을 좌우로 움직이는 정도. 필살기 쓰고 싶으면 아무 데나 터치하면 되고, 자동사냥은 화면에서 손을 떼는 순간부터 적용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모든 요소가 '한 손 조작용'으로 디자인되었다고 보고 있어요. 다른 모바일 슈팅 게임도 같은 조작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지만, 그들과 다르게 '로그라이프'는 좌우 이동만 가능합니다. 2012년 출시되어 인기를 끌었던 '드래곤 플라이트'와 똑같아요. 이 시스템의 장단점이야 다들 잘 아실 거예요. 위아래로 손이 가지 않으니 화면을 가릴 일이 없고, 덕분에 캐주얼하게 즐기는 데 안성맞춤입니다. 한데 슈팅을 어느 정도 즐겨본 유저 입장에서는 '단순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요.

'로그라이프'는 이러한 딜레마를 다양한 패턴으로 풀었습니다. 일단 적이 쏘는 총알 종류부터 다양한데요. 그냥 일자로 날아오는 거, 통돌이 세탁기에서 막 돌려낸 듯 꼬불꼬불한 거, 곡사포로 날아오는 것은 물론이고 사냥개처럼 내 캐릭터를 슬슬 따라오는 악랄한 탄환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단순한 좌우 회피, 혹은 자동사냥만으로는 별 세 개 모으기가 쉽지 않아요. 배우긴 쉬운데 마스터는 어렵다는 거죠.

캐릭터 1명만 조작하는 것이 아닌, 용사단 개념으로 3명이 동시에 출격한다는 점도 여러 가지 변수를 만듭니다. 3명이 다 모였을 때 화력은 적을 일순간에 녹여버릴 정도로 강력합니다. 그런데 용케도 살아남은 적이 탄환을 뿌리는 순간부터는 이쪽도 고민이 시작되죠. 수동 컨트롤을 하면 캐릭터가 일직선으로 섭니다. 즉, 맨 앞에 있는 캐릭터가 탄환을 피하더라도, 뒤에 선 캐릭터가 그걸 맞고 누워버릴 수 있다는 거죠. '로그라이프'에 직선형 탄환만 있다면 이게 큰 문제가 안 되는데, 이리저리 움직이는 탄환이 골치입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무엇? 바로 '회피'와 '필살기'죠.

▲ '스마트폰으로 하니까 쉽겠지' 했는데, 절대 안 봐줍니다.


심연의 마굴에서 끄집어낸 듯한 총알 패턴은 '회피'와 맞물리며 절묘한 시너지를 냅니다. 그냥 어렵고 땡이면 "뭐 이딴 게임이 다 있어?"로 끝났겠지요. 슈팅 게임 마니아에게는 어려움도 일종의 미덕일 수 있지만, '로그라이프'는 어느 정도 대중성을 품은 작품입니다. 회피는 '로그라이프'의 난이도를 '이해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면서, 동시에 게임에 전략성을 더해주는 일종의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화면에서 손을 떼 볼까요. 캐릭터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총알을 알아서 회피합니다. 물론,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뭐든 다 피하는 건 아니에요. 회피에는 쿨타임이 있고 이것이 채워지기 전에는 다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쿨타임은 약 2~3초 정도로 그리 긴 편은 아닙니다만, 탄환이 지하와 공중을 아우르는 마경이라면 이것도 엄청나게 길게 느껴질 거예요. 회피를 쓸 때와 안 쓸 때를 잘 판단해야 합니다.

이쯤에서 상기할 게 하나 있습니다. '로그라이프'는 자동사냥을 별개의 조작 방식으로 구분하지 않고, 수동 전투와 조합할 시 더 효율이 좋도록 디자인했다는 거죠. 일반 몬스터 사냥이나 회피 타이밍에는 자동사냥를 하고, 회피 대기 중이거나 보스급 적을 잡을 때는 수동 조작을 하는 게 나아요. 이는 자동사냥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유저들에게도 설득력 있는 요소라 생각합니다.

▶ 두줄 요약
▷ 슈팅 자체의 완성도가 매우 뛰어납니다.
▷ 자동 전투가 있기는 한데요. 켜놓고 방치하는 게 아닌, 하나의 전략적 선택으로 작용합니다.






2. 로딩

슈팅 시스템의 완성도에 비한다면 크게 눈에 띄는 장점이 아닐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게 대놓고 단점이 되면 정말 짜증 제대로입니다. '로딩'을 바라보는 게이머들의 생각은 다들 비슷할 거예요.

'로그라이프'는 빠릿빠릿합니다. 로딩이 거의 없어요. 아니, 있긴 있는데 가짓수도 많지 않은데다 어떤 로딩이든 3초를 넘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는 게 정확합니다.

잦고 긴 로딩은 몰입을 방해하는 주범입니다. '게임 그래픽이 워낙 좋으니까 이해해주세요'라는 말이 통하던 시절은 지났어요. 차라리 퀄리티를 좀 희생하더라도 최적화를 거쳐 로딩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비춰보면 '로그라이프'는 좋은 판단을 한 셈이죠.

물론, 그렇다고 '로그라이프'의 그래픽이 안구 테러 수준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번들번들 광택 나는 리얼 판타지풍 갑옷은 아니지만, 특색있는 카툰 스타일 그래픽으로 깔끔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가볍지만 촌스럽지는 않아요.

▲ 너무 빨리 없어져서... 간신히 찍었습니다.

▶ 두줄 요약
▷ 로딩이 정말 빠릅니다.
▷ 그렇다고 그래픽이 구린 것도 아닙니다.






3. 과금

'뽑기'는 부분유료화 모바일 RPG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과금 시스템입니다. 어디까지 적용했는지는 게임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요. 캐릭터나 아이템을 뽑는 게 일차적이고, 더 나아가 아이템 능력치를 바꾼다거나 초월 및 승급에 적용하는 예도 있어요. 뽑기 자체가 확률에 기반을 둔 시스템이기에 유저의 플레이 성향에 따라 과금 수준이 메겨지며, 정도가 과하면 많은 비난을 받게 됩니다. 검증된 매출원이지만 큰 리스크가 따르는 구조인거죠.

'로그라이프'에도 뽑기는 있습니다. 다만, 장비 뽑기를 제외한 다른 요소에는 없고, 굳이 장비 뽑기를 하지 않아도 크게 무리가 없는 수준입니다. 그냥 던전을 돌거나 용병단 숙소 내 여러 오브젝트를 이용해 획득할 수 있거든요. 일반적인 사냥 및 퀘스트 던전은 '빵'을, 오브젝트는 캐릭터마다 별도로 채워지는 '기력'을 소비하는데, 엄청난 하드코어 유저가 아니라면 특별히 부족하다고 느껴지진 않을 정도로 괜찮게 줍니다.

▲ 4명 이후부터는 특별히 기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캐릭터 능력치에 크게 영향을 주는 장비는 주로 방어구에 집중되어 있어요. 데미지 증가, 방어력 증가와 같은 옵션은 기본이고요. 자동사냥 시 공격력 증가, 회피할 때마다 체력 회복 등 특색있는 옵션도 많이 보입니다. 특정 옵션으로 도배하고... 음, 예를 들어 '필살기 회복 속도 증가'와 '필살기 공격력 증가' 위주로 세팅해 한 방을 노리는 전술도 가능합니다. 플레이어의 성향에 맞게 착용하면 더 좋은 성능을 낼 수 있겠죠.

한편, 기존 모바일 RPG에서 볼 수 있었던 장비 승급 시스템이 '로그라이프'에는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장비 분해는 있지만, 분해해서 나온 재료로 다른 장비의 레벨을 올릴 뿐, 승급은 불가능합니다. 즉, 최상급의 아이템은 제작이 안 돼요. 뽑거나 사냥으로 얻어야 합니다. 후술하겠지만 '로그라이프'의 엔드콘텐츠가 PvP가 아니기에, 플레이어를 던전 사냥에 더 집중시키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또한, 캐릭터가 사용하는 무기는 드랍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착용하고 있는 걸 계속 업그레이드해나가야 합니다. 캐시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만 꽤 반복적인 플레이를 요구합니다. 이 부분은 다소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 두줄 요약
▷ 과금 요소는 적은 편입니다.
▷ 그런데 반복 플레이가 좀 필요합니다.






4. 캐릭터

'로그라이프'의 모든 캐릭터는 평등합니다. 별다른 등급도 없고 캐시가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요. 현재 구현된 캐릭터는 총 12종으로, 각자 다른 전투방식과 필살기를 갖고 있습니다. 캐시로만 구매 가능한 '빈센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게임 내 골드로 살 수 있고, 좀 더 빨리 구매하고 싶을 때 캐시를 쓰면 됩니다. 여담으로 캐시 전용 캐릭터인 빈센트가 특별히 다른 캐릭터보다 강한 건 아니라서 밸런스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각 캐릭터의 필살기 연출은 블록버스터 게임 못지않게 화려합니다. 캐릭터를 하나씩 모을 때마다 '얘는 어떤 기술을 쓸까?'하는 기대감이 들어요. 필살기의 타격 범위나 대미지 공식이 각자 달라서 적재적소에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캐릭터를 모으면서 점점 활기가 도는 숙소를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입니다. 특별히 조작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리저리 움직여요. 어떤 녀석은 밖에 나가 낚시를 하고, 누구는 침대에서 잠을 자고, 또 다른 누구는 작업대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듭니다. 게임에 생동감을 더해주는 거죠. 지난 인터뷰에서 하이디어 김동규 대표는 "추후 이러한 상호작용 요소 및 캐릭터 간 커뮤니케이션을 강화시킬 계획"이라고 했으니 더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조금씩 모은 캐릭터들, 알아서 잘 놉니다.

▶ 두줄 요약
▷ 각 캐릭터의 개성이 뛰어납니다. 특히 필살기!
▷ 캐릭터가 쌓일수록 게임에 생동감이 더해집니다.






BUT

어떤 게임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로그라이프' 역시 단점은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만, 앞서 언급했던 장점들이 보는 시각에 따라 단점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은 참작해야 합니다. 음, 일종의 취향 문제입니다.

최대한 대중성을 꾀한 흔적은 보입니다만, 어쨌든 '슈팅' 장르는 그 자체로 매니아성을 띕니다. 아무리 쉽게 만들어도 '쏘고 피한다'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유저들을 설득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또, '난 무조건 몬스터와 칼을 맞대고 싸워야 해!' 같은 돌격대장 유형의 유저들에게도 선뜻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로그라이프'에서 탱커 포지션인 '아서'도 칼을 휘둘러 검기를 쏴요. 즉, 이 게임의 모든 캐릭터는 '원딜'입니다.

▲ "오빠 좀 막아봐!"
"아 몰라! 알아서 피해!"


PvP는 모바일 RPG의 대표적인 엔드 콘텐츠입니다. PvE와 함께, 그리고 모든 던전을 완파한 유저들이 실력과 아이템을 겨루는 장소로 디자인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한데 '로그라이프'의 결투장은 또 하나의 파밍 던전일 뿐입니다.

결투장에서 캐릭터 조작이 아예 불가능한데다 출전 횟수도 하루 10회로 제한되어 있어요. 자기보다 전투력이 떨어지는 상대를 골라 싸워서 때려잡고 골드를 챙기면 끝이죠. 하긴, 탄속이 워낙 빠르기에 직접 조작은 의미가 없고... 그렇다면 다른 유형의 엔드 콘텐츠를 적용되는 것이 시급해 보입니다. PvE 난이도가 다소 높은 편이기에 아직은 괜찮을 수 있지만, 이후 PvE 콘텐츠를 모두 클리어한 유저들에게 허무함을 주어서는 안 되잖아요.

* 결투장 하루 10회 제한은 금일(6일) 업데이트로 수정되었습니다.
(한 번에 5회 이용 가능, 30분마다 이용 가능 횟수가 늘어남)


▲ 결투장은 엔드 콘텐츠가 아니었습니다.


숙소는 많은 가능성을 품은 곳이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말 그대로 '가능성만 품은' 정도입니다. 여러 가지 오브젝트가 있고, 캐릭터를 투입해 각종 자원 및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이 퍽 단순합니다. 그냥 기력 빵빵한 캐릭터 데려다 놓으면 끝이에요. 낚시나 벌목, 연금술 등에 미니 게임 같은 게 있었으면 좀 더 게임이 풍성해졌을 텐데 말이죠.

아직은 애매해 보이는 이 숙소 때문에 '로그라이프'의 '생계형 슈팅 게임'이라는 슬로건도 조금 흐려지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지금은 그냥 '깔끔한 슈팅 게임' 정도로 보여요.

▶ 두줄 요약
▷ PvP는 엔드 콘텐츠 역할을 해주지 않습니다.
▷ 숙소가 아직 공사가 덜 끝난 것 같아요...






대세와 다른... 그러나 잘 만든 슈팅 RPG

몇 가지 단점도 언급했지만, '로그라이프'는 전체적으로 꽤 잘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특히, 슈팅 시스템의 재해석 부분에서는 배울 점이 많아 보였어요. 개인적으로는 모바일 슈팅 RPG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대중성 억제를 패시브로 달고 있는 슈팅 장르이기에 누구나 아는 국민 게임이 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다만, 국내 모바일 RPG가 대부분 비슷하다고 느끼는 유저분이라면 한 번 체크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 로그라이프 플레이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