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명: 하이드 앤 씨크
장르명: 보드게임, 어드벤처
출시일: 2022. 3. 3.
개발사: 자라나는 씨앗
서비스: 자라나는 씨앗
플랫폼: 모바일

하이드 앤 씨크는 자라나는 씨앗의 대표작인 지킬 앤 하이드의 스핀오프 모바일 게임입니다. 세계관을 공유하는 만큼 동일한 BGM, 사운드 효과, 그래픽은 물론이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위시한 다양한 인물들이 재등장하죠.

지킬 앤 하이드 특유의 어두운 갈색 톤과 등장했던 기존 캐릭터의 그래픽을 그대로 쓰기 때문에 확실히 연결되는 작품이라는 느낌이 물씬 납니다. 새로운 등장인물들의 일러스트와 SD 캐릭터 역시 그런 연관성을 위해 기존과 비슷하게 제작됐고요. 기존 캐릭터들과 번갈아가면서 나와도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맺음 시리즈답게 이번 게임 역시 흥미로운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새로운 주인공, 지킬 박사의 하녀이자 조수였던 케이트 홀리데이가 도둑으로 몰리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다만 스토리 자체는 스핀오프인 만큼 기존 지킬 앤 하이드와는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기존 작을 해보지 않고 단독으로 플레이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죠.

▲ 이번 작품의 주인공 케이트와 지킬 앤 하이드의 등장인물 어터슨

그런데 분명 하이드 앤 씨크는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 게임이지만 지킬 앤 하이드와는 매우 다른 장르적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킬 앤 하이드가 비주얼 노벨에 아주 약간의 어드벤처를 가미한 스토리 게임이었다면 이번에는 덱빌딩을 포함한 보드게임이 메인이 되는 스토리 게임이거든요.

이건 자라나는 씨앗이 제작하고 있는 맺음 시리즈의 새로운 시도라고도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옐로 브릭스, 지킬 앤 하이드, 오페라의 유령, 페치카까지 지금까지의 맺음 시리즈들은 대부분 서사성에 거의 모든 걸 집중한 편이었습니다. 풀려나가는 스토리를 감상하는 게 게임의 정체성이고 자잘한 미니게임들은 그런 스토리 감상을 좀 더 흥미롭게 하려고 가미된 조미료의 역할을 했었죠. 스토리 자체가 콘텐츠이자 장르였던 겁니다.

그런데 이번 하이드 앤 씨크와 직전에 출시된 다이 크리쳐는 이런 맺음 시리즈의 틀을 깼습니다. 스토리를 분명 메인 콘텐츠로 가져는 가되, 각각 보드게임과 탄막슈팅이라는 장르를 선택했거든요. 단순히 스토리를 읽고 감상하는 게 아니라 게임을 플레이하는 재미를 좀 더 주고자 했던 것이죠.

▲ 스토리를 감상하는 느낌이 강했던 맺음 시리즈

▲ 스토리에 탄막슈팅을 결합한 맺음 시리즈 신작 다이 크리쳐

그리고 하이드 앤 씨크는 이 보드게임이라는 장르를 생각보다 스토리를 풀어가는 부분과 잘 연결했습니다. 단순히 '스토리와 관계는 없지만 순순히 보드게임을 하세요'가 아닙니다. 지문만으로 묘사되던 상황, 터치 몇번으로 움직이던 캐릭터를 보드게임을 통해 보여주고 움직이는 느낌이라고 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케이트는 쫓아오는 경찰을 피해 힘겹게 달아났다'라는 지문 속 '힘겹게'는 다양한 장애물로, '쫓아오는 경찰'은 남은 턴으로 활용되는 거죠. 아참, 그 와중에 케이트는 런던 불주먹으로 통할만큼 싸움의 대가이기에 폭력배나 경찰들과 쉴새없이 싸우기까지 합니다. 이 부분 역시 마찬가지, 단순히 지문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케이트를 비웃는 폭력배를 카드를 활용한 전투를 통해 진짜 때려눕혀야 합니다.

이게 생각보다 재밌는데, 스테이지가 진행될수록 적들은 강해지고 보드 게임판 자체도 어려워집니다. 다음 스토리를 보려면 전략과 운의 절묘한 조합이 필요해진달까요. 그래서 게임을 진행하며 얻은 재화들로 이동, 공격, 생존과 관련된 덱을 꾸리고 강화해야 합니다. 덱빌딩이라면 치를 떨며 싫어하는 제가 크게 짜증을 못 느낄 정도로 이런 부분이 크게 어렵지도 않고요.


그러니까 딱 이렇게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스토리 감상에 싹 집중되어 있었던 재미를 이제는 조작이라는 부분에도 좀 나눠준 것이죠. 이 과정에서 개발사가 여러 장르를 시도해보는 중인 것 같은데, 생각보다 재미나 밸런스적 측면에서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그런데 이게 한편으로는 기존 시리즈 팬들에게 약간의 장애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맺음 시리즈 하면 스토리, 그것도 잘 만들어진 스토리가 강점이자 특징이자 장점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잘 만들어진 스토리를 흡입력 있게 감상하는 내러티브형 게임으로 지금까지 내실을 잘 다져왔었죠.

하지만 보드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스토리를 감상하고 집중하는 데 은근히 방해가 됩니다. 보드게임 자체는 재미있지만, 여기에 전투 시스템까지 결합되면서 이게 생각보다 볼륨이 커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미 비주얼 노벨, 감상하는 형식에 익숙해진 시리즈 팬들에게 갑작스럽게 미니 게임 이상의 위치를 차지하는 보드게임과 탄막슈팅은 당황스럽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 다음 스토리를 보려면 보드게임을 하렴

물론 그렇다고 장르적 완성도가 떨어진다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하이드 앤 씨크는 그 자체만으로 두고 봤을 때 충분히 괜찮고 잘 다듬어진 보드 게임입니다. 몇 번 운이 없었던 스테이지를 제외하면 크게 막히지 않을 정도로 난이도도 적당하고요.

그리고 이런 장르의 변화가 오히려 기본적인 뼈대는 같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다루는 스핀오프의 느낌을 확 살려줬다 생각합니다. 어색할 수는 있지만 어쨌든 이건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이야기가 아니라, 런던 불주먹 케이트 홀리데이의 이야기니까요.

▲ 런던 불주먹 케이트

하이드 앤 씨크는 각 스테이지별로 드는 시간이 크게 길지 않고, 스토리의 전개 자체도 전작들에 비해 가벼운 편이라 부담 없이 플레이하기 딱 좋은 게임입니다. 다 떠나서 지킬 앤 하이드를 정말 재밌게 했었기에 새로운 이야기와 더불어 반가운 인물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참 즐거웠어요.

특히 개인적으로 지킬 앤 하이드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 배경음악들이 돌아와서 더 좋았습니다. 우울한 런던의 분위기를 정말 잘 살리는 배경음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 분명 사악한데 어딘가 바람 빠진듯한 반가운 하이드의 웃음소리도요. 다만 아쉽게도 지금은 안드로이드에서만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 반가운 얼굴, 지킬 박사와 하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