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에서의 두 번째 대결, '크라운' 이민호의 어깨가 무겁다.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최초로 작년과 같은 로스터로 결승전에 진출한 삼성 갤럭시(이하 삼성)다. 심지어 상대마저 같다. 벌써 네 번째 롤드컵 우승에 도전하는 SKT T1. 그리고 그들을 꺾기 위해선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역대 최강, 최고의 미드라이너 '페이커' 이상혁이다. 이에 미드에서 그를 맞상대할 '크라운'의 역할이 그 어느 경기보다 중요하다.


■ SKT T1의 수호신, '페이커' 이상혁

삼성은 작년 롤드컵에서 무시무시한 기세를 보여줬다. 그룹 스테이지를 5승 1패로 가뿐히 마무리한 후 8강과 4강에서 만난 C9과 H2k를 상대로는 3:0 압승을 거두며 결승까지 쾌속 진출했다. 삼성의 한계는 보이지 않았고, SKT T1의 세 번째 롤드컵 우승을 저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망의 결승 무대, '패패승승'으로 2:2의 세트스코어를 만들어낸 삼성의 우승까지 단 한 세트만이 남아있었다.

5세트에서 '페이커'가 선픽으로 빅토르를 가져가자 '크라운'은 카시오페아를 꺼냈다. 라인 주도권을 쥐고 스노우볼을 굴릴 생각이었다. 경기 초반 '크라운'은 강력한 라인전을 바탕으로 '페이커'를 상대로 완벽한 우위를 점한 채 킬을 올리고 봇 로밍까지 성공하며 기세를 잡았다. 하지만, 어느샌가 '페이커'가 라인 주도권을 가져가며 흐름이 끊겼다. 삼성의 우세는 이어졌지만 스노우볼이 멈췄다.

결국 SKT T1이 역전에 성공했다. 한타가 열릴 때마다 '페이커'는 완벽한 포지셔닝으로 꾸준히 딜을 쏟아부었다. 다수의 킬과 CS를 챙긴 '페이커'가 급격하게 성장했고, 탱커든 딜러든 '페이커'의 레이저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했다. 결국, 49분의 혈투 끝에 세트는 SKT T1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SKT T1의 모든 선수가 고른 활약을 보인 결승전이었지만 그중에서도 '페이커'의 존재감은 확연히 빛났다.



■ 더 강해져서 돌아온 '페이커', 또다시 그를 상대할 삼성의 '크라운'

올해 롤드컵에서 '페이커'는 더 단단해졌다. 그를 향한 수많은 위협에도 불구하고 고비의 순간마다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8강전, 1:2로 SKT T1이 지고 있던 상황에서 라이즈를 꺼내 4세트 역전승의 발판이 됐고 4강전에서는 5연속 갈리오를 픽해 전장 구석구석을 누비며 RNG에게 절망을 선사했다.

삼성의 '크라운' 역시 삼성 갤럭시의 승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크라운'의 장점은 초반 라인전 단계의 승패에 상관없이 중후반 삼성의 운영과 팀플레이에 녹아들며 최선의 플레이를 펼친다는 것이다. 챔피언 폭도 넓어 갈리오부터 신드라, 탈리야, 말자하 등 다양한 챔피언들의 높은 숙련도를 뽐낸다.

하지만, 올해 롤드컵에서 '크라운'의 라인전 부진이 눈에 띄었다. 그룹 스테이지 3경기 1907 페네르바체와의 경기에서 3연속 데스를 기록했고, RNG와의 두 경기에서는 '샤오후'의 캐리력에 크게 밀렸다. 8강에서는 '비디디' 곽보성에게 솔로 킬을 당하기도 했고 갱킹에 허무하게 잘리며 불안함을 연출하기도 했다.


물론 '크라운'이 중후반부 운영에서 다른 선수들과 찰떡궁합의 호흡을 자랑하며 승리를 부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점은 결승전 라인전 상대가 '페이커'라는 것이다. 작년 롤드컵 결승에서 '페이커'를 상대로 초반 주도권을 가져왔음에도 패배를 맛본 삼성이기에, '페이커'에게 라인전 단계부터 밀리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방지해야 한다. '크라운'의 순간의 방심이 패배로 직결될 수 있다.

다행인 것은 롤드컵 일정이 진행될수록 '크라운'이 제 기량을 충분히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하게 수치를 살펴봐도 변화가 뚜렷하다. 그룹 스테이지에서 '크라운'의 KDA는 3.7, 킬관여율은 64.7%에 불과했지만 8강에서는 KDA 6.5, 킬관여율 83.3%을 기록했고, 4강에서는 5.6의 KDA와 무려 87.5%의 킬관여율을 보였다.

수치가 아닌 플레이를 살펴봐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4강전 2, 3세트 라인전에서 WE '시예'의 발을 묶으며 경기를 끌었고, 중후반 운영과 한타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삼성의 승리를 견인했다. 4세트에서 '크라운'이 완전히 살아났다. 갈리오를 가져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플레이를 펼쳤다. 안정적이고 단단한 라인전을 바탕으로 발 빠른 합류와 완벽한 CC 연계를 보이며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 반드시 막아야 한다! '크라운'의 숨겨둔 무기 나올까


향로-탱커 메타가 올해 롤드컵을 지배하고 있지만, 미드라이너의 역할이 승리에 기여하는 비중은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드 라인의 주도권은 언제나 유연한 플레이를 보장하고, 시야 확보에 따른 이득과 변수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드에 서는 챔피언의 특성 또한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에 '크라운'은 결승전만을 위해 갈고 닦은 숨겨둔 무기를 꺼낼 수도 있겠다.

롱주 게이밍과의 8강 3세트, '비디디'가 탈리야를 상대로 '크라운'은 리산드라를 꺼냈다. 작년 9월 롤드컵 한국대표 선발전에서의 패배 이후 1년이 넘도록 사용하지 않았던 챔피언이었다. 소중히 간직해온 칼끝은 날카로웠다. 라인전에서 전혀 열세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우월한 라인 푸시 능력으로 '비디디'를 미드에 묶었다. '크라운'은 아군 챔피언들과 함께 상대 정글로 들어가 선취점을 올렸고 승부의 분수령이 된 25분 한타에서도 본인의 역할을 다하며 경기를 승리로 마무리했다.

결승전 단 한 경기만이 남은 2017 롤드컵이기에 양 팀은 준비한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리고 '크라운'에게 주어진 특명은 무슨 일이 있어도 '페이커'의 활동을 억제하는 것이다. 만약 '크라운'에게 리산드라와 같이 꽁꽁 숨겨두었던 다른 칼이 있다면, 결승전에서 '페이커'를 향해 정면으로 겨눠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