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이상이다. 아니, 기대가 적었기에 더 놀랐다고 할까.

오큘러스 리프트를 체험해 본 솔직한 소감이다. 플레이어를 게임 속으로 빨아들인다는 것은 사실 낡은 표현인데, 이는 컴퓨터 발전이 미숙했던 시절에도 심심찮게 들려왔던 단어이기 때문. 이미 체험 전부터 기자의 마음 속엔 익숨함이라는 단어가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었고 이 꺼묵한 안경덩어리 역시 조만간 식상함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추측 뿐, 큰 기대는 안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달랐다. 체험해 본 후 기자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사전 설정을 모두 수정해야 한다고 느꼈다. 상당히 괜찮았으니까. 그들이 마르고 닳도록 말하던 '몰입감'은 매우 뛰어났고, 묵직해보이는 외형과는 다르게 기기 자체 무게도 가벼웠다.

▷ 어라, 생각보다 가볍네?



바로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오큘러스 리프트는 가벼웠다. 옆에서 기자를 지켜보던 팔머 럭키 총괄 엔지니어는 "현재 시연에 사용되고 있는 기기는 200g 대며, 정식 출시되는 제품은 160g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적 착용 방식은 수영 고글을 쓰는 것과 같다. 푹신한 스펀지로 뒤덮인 눈 보호개를 안면에 밀착한 후 연결된 밴드를 머리 뒤로 넘겨 고정시키면 된다. 주의할 점은 시점인데, 위 아래 각도에 따라 게임 화면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하긴, 모든 사람의 눈 위치는 조금씩 다르기에 이를 기기적으로 보완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기에 자신이 필요한 만큼 약간의 위치 수정은 필수!

기기를 착용한 후 고개를 여기저기 돌려본다. 고개를 돌리는 만큼 게임 내 배경도 생생하게 전환된다. 아예 안 느껴질 정도까진 아니지만, 크게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는 무게기에 조작에 불편함은 없었다.

[ ▲ 큰 덩치에도 불구, 무게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


▷ 확실히 높아진 몰입감! 그런데 눈 아파요.



지난 기자간담회와 KGC 2012에서 만난 오큘러스 관계자들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입을 모았다. 우리 제품, 몰입감 하나만큼은 자신있습니다.

당시 홍보성 멘트로 딱 알맞는 수준으로 보였지만, 실제 겪어본 오큘러스 리프트는 몰입감 극대화라는 말을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시연 게임은 '둠3'로 출시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타이틀이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뻑뻑한 폴리곤 덩어리로 이루어진 괴물은 눈 바로 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나를 괴롭혔고, 차가운 금속 벽은 손만 뻗으면 만질 수 있어 보였다. 헤드 트랙킹 민감도 역시 깔끔한 편으로, FPS 시 느린 반응으로 인해 총알받이가 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그들이 현실성을 강조하기 위한 특별한 기술이라 밝혔던 '기울임' 인식도 매끄러웠다. 고개를 기울이니 화면 역시 제깍 드러눕는다.

오큘러스 리프트를 사용하면 플레이어가 보는 화면과 총기가 같은 방향을 가리킬 필요가 없다. 아니, 이게 분할되야만 기기의 장점이 극대화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일반 FPS와는 다른 특별한 인터페이스가 필요한데, 다행스럽게도 시연작 '둠3'는 원작에 약간의 수정을 더해 가상현실에 최적화된 인터페이스를 확보했다. 총기에 잔탄 수가 또렷하게 표시됨은 물론, 레이저 포인터가 내장되어 조준 역시 용이한 편. 플레이어는 몬스터 머리에 멋지게 총알을 박아넣을, 원초적인 고민만 하면 된다.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체험해 본 시연판은 오큘러스 리프트의 초기 버전으로, 게임 자체의 해상도가 낮아 눈의 피로도가 극심했다. 이는 확실하게 개선될 여지이기는 하나, 실제 모니터에 비해서는 어느정도 눈에 희생정신을 투자해야 할 것으로 여겨졌다.

[ ▲ 기자가 오큘러스 리프트를 시연하는 모습 ]


▷ 플레이어가 조작에 익숙해지기까지의 시간이 관건.



그래픽적 불만은 초기버전이니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기기를 시연하며 든 걱정은 전혀 다른부분이었으니까.

머릿속 물음표의 내용은 간단하다. 예상보다 조작 체계에 익숙해지는 게 어려웠고, 과연 어느 정도의 적응기가 필요할 지 의문이었다. 패드는 FPS에 용이하다고 알려진 XBOX360 전용 콘트롤러였고, 시연작 역시 일반 콘솔 FPS와 같은 조작 방식을 가진 '둠3'였지만 어려웠다. 이는 기존에 화면 전환에 사용하던 우측 방향키와 헤드 트래킹이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발생한 문제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단점이 딜레마, 즉 어느 한쪽만 선택해도 '손해'를 보게 만든다는 것에 있다. 헤드 트랙킹만 사용할 경우 기존 마우스 키보드 컨트롤을 따라가는 것은 무리가 있다. 조작감을 주고 현실성을 받는 격이다. 장르가 혼자 하는 콘솔 게임이라면 허용될 지 모르나, 팀원과 함께하는 온라인 FPS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렇다고 하여 헤드 트랙킹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기기의 매력을 10%도 이끌어낼 수 없다. 즉, 결론은 플레이어의 적응이다. 사람마다 적응에 걸리는 시간이 다른 것은 분명하니, 전적으로 기기를 어느 정도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는 플레이어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보면 된다.

개발자 역시 이러한 딜레마를 이해하고 있었다. 기자의 시연을 도와주던 서동일 총괄이사는 "원활한 접근성 확보를 위해 캐릭터 이동과 시야 조작을 분리해 적용하는 등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 ▲ 오큘러스 창립자이자 총괄 엔지니어인 '팔머 럭키' ]


다음은 시연을 마친 후 진행한 창립자 '팔머 럭키'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오큘러스 리프트를 개발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하다.

팔머 럭키 - 전에는 그저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는 소년일 뿐이었다. 개인적인 취미로 게임 캐릭터 스킨 바꾸는 작업을 조금 했을 뿐, 기록할 만한 경력사항은 없다.


VR 헤드셋을 직접 만들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팔머 럭키 - 다양한 게임을 즐기며 욕심이 생겼다. 내가 즐기는 이 게임들을 가상현실 속에서 느껴보고 싶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전세계 유명 VR 헤드셋을 수집하기 시작했지만, 아쉽게도 그 어떤 제품도 완벽한 몰입감을 제공해주지는 못했다. 그 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 최고의 헤드셋을 제작하기로 결심했고, 지금까지 달려온 것이다.


오큘러스 리프트 개발팀은 몇 명으로 구성되어 있나?

팔머 럭키 - 현재는 총 12명 정도다. 회사가 가진 비전에 비하면 약간 적은 인원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큘러스 리프트에 대한 기술적인 준비과정은 내가 2년 반 전에 모두 끝마친 상태였기에, 많은 인원은 필요치 않았다. 현재 우리 팀은 개발자를 위한 키트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차후 정식 판매상품을 출시할 때는 더 많은 검토를 거쳐야 하고 시장을 파악할 전문가도 필요하기에 인원을 충원할 생각이다.


오큘러스가 원하는 인재상은 어떻게 되는지.

팔머 럭키 - 게임을 즐기는 환경은 트랜드와 같다. 일정 주기를 기점으로 변화하고 있으니까. 개인적으로 가상현실 역시 머지않아 주류로 올라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원하는 인재상은 우선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에 열정을 가진 사람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아울러 변화하는 환경에 현명하게 대처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사람들과 가상현실에 대한 꿈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갖고 있는 VR 헤드셋들과 비교해 오큘러스 리프트만의 특장점은 무엇인가?

팔머 럭키 - 내가 보유한 VR 헤드셋들은 기본적으로 화면 자체가 작다. 그리고 헤드 트렉킹 반응 자체도 느린 편이다. 이 부분만 들어도 현실성은 떨어지는데, 거기다 무겁기까지 하니...(웃음) 무엇보다 지금까지 출시된 VR 헤드셋의 평균 가격이 너무 비싸다. 보통 8~9만 불 정도에 거래되며, 비싼 기기는 한국 금액으로 수 억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이는 유저들에게 굉장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 제품은 매우 저렴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이며, 개발자 키트도 300불 정도이기에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적다. 아울러 타 제품에선 볼 수 없는 빠른 반응 속도와 넓은 시야각을 제공해 현실감을 높인 것도 특징이다.


오큘러스 리프트 디자인은 누가 담당하고 있나?

팔머 럭키 -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직원이 담당하긴 하지만, 디자이너는 아니다. 여러 직원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테스트며 디자인을 개선하고 있다. 오큘러스 리프트의 디자인 철학은 '실용성'이다. 초기에는 소니와 같이 멋진 디자인을 추구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기술을 더 효과적으로 누릴 수 있는 디자인 필요성을 느꼈다. 오큘러스 리프트 최종 버전은 정말 가상현실을 느낄 만 한 디자인을 보여줄 것이며, 외형만으로도 철저한 기능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식 출시 후 펌웨어 업데이트도 지원할 예정인지 궁금하다.

팔머 럭키 - 물론 지원한다. 특히 상용화 버전의 화질과 해상도를 꾸준히 증가시키는 데 주력할 것이다. SF 게임이나 슈팅 게임은 대체로 그래픽이 좋은 편이기에 리프트 역시 이를 따라갈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추후 발매되는 제품은 유선형인데, 이는 그래픽을 전송하는 속도 처리에 있어 무선으로는 기술적 문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충분한 기술력이 뒷받침되는 시점이 온다면 바로 무선 버전도 출시 예정이니 많은 기대 부탁한다.


오큘러스 리프트를 정식 주변기기로 사용할 수 있도록 거대 콘솔 업체들과 이야기도 오갔을 것 같은데.

팔머 럭키 - 예리한 질문이다. 우리 역시 오큘러스 리프트를 소니와 닌텐도,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콘솔의 정식 주변기기로 보급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하지만 이들은 주변기기를 공식 인증하는 절차가 굉장히 까다로운 편이라 차세대 콘솔기기에 오큘러스 리프트가 첨부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PC는 기본적으로 오픈 플랫폼이므로 주변기기를 만들어 보급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래서 현재 우리는 PC를 메인 플랫폼으로 맞춰 개발하고 있다.

킥스타터 비디오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밸브의 게이브 뉴웰 CEO도 오큘러스 리프트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우리의 정식 어드바이저이며, 든든한 후원자를 자처하고 있다. 그는 밸브만의 콘솔 시스템을 구축하기를 원하는데, 이는 밸브가 직접 담당하는 게 아니라, 외부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이루려는 목표다. 게이브 뉴웰은 게임 그래픽의 발전만으로는 플레이어에게 전달할 수 있는 감동의 크기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게임플레이 변화가 필수적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시스템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고, 바로 그 때문에 우리 오큘러스 리프트가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번 KGC2012에는 게임업계 유명인사들도 다수 참여했다. 그들은 오큘러스 리프트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나?

서동일 - KGC 2012 행사 둘째날, 에픽게임스 팀스위니 대표와 하복의 브라이언 와덜 총괄 부사장을 비롯한 각계 유명인사들이 오큘러스 리프트를 체험했다. 그들은 시연용 '둠3'를 즐겨보고 모두 놀라워했다. 비록 지금은 초창기 버전이기에 화질을 비롯한 다양한 개선점을 안고 있지만, 높은 발전 가능성을 보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무엇보다 오큘러스 리프트의 놀라운 몰입감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여기에 밝힐 수는 없지만, 오큘러스에 개인적인 투자를 하고 싶다는 의견도 있었다. '매스 이펙트3' 개발자도 오큘러스 리프트를 체험해 본 후 "우리의 차기작에 리프트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을 검토해야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