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홀스튜디오 여형욱 비주얼 기획 파트장(NDC 2012 강연 모습)



어느 날 게임회사에 다니는 당신이 한 MMORPG를 맡게 되었다. 과거 인기작으로 10만이 넘는 동접자를 자랑했지만,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듯이 최근에는 5만 정도를 기록하고 있고, 그마저도 점점 떨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MMORPG 게임인 우리 게임의 동접자를 다시 늘릴 방법이 있을까.' 팀원들이 모두 퇴근한 늦은 밤까지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당신. 과연 어떻게 해야 당신이 맡은 게임의 동접 개선이 가능할까.

과거 NC소프트에 근무하며 리니지의 동접 규모를 7만에서 18만으로 개선했고, 현재 블루홀 스튜디오 비주얼기획팀에서 근무하는 여형욱 파트장은 이 문제에 대해 "진리는 총체적이다."라고 답했다. 철학자 헤겔의 말이다. 어떤 문제를 풀든 다양한 시각으로 봐야지, 흑백논리로 해결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기술보다 기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던 그의 강연을 KGC2012 '동접 개선을 위한 개발 이야기'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아래의 내용은 여형욱 파트장이 10월 1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KGC2012에서 강연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온라인 게임에 대해 착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게임성이 게임을 성공하게 한다면 '애니팡'의 성공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나 MMORPG는 일반 패키지와는 다르게 사람 간의 커뮤니티 역시 중요한 부분입니다. MMO의 게임성은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게임성이고, 그 즐거움은 많은 사람을 모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MMORPG는 '게임'이 아니라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게임을 즐기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비슷하죠. 다양한 집단을 형성하고 사람들에 의해 게임 내 자원의 순환과 경제 시스템이 생깁니다. 이런 과정에서 새로 유입되는 유저가 게임을 그만두는 유저 수보다 많게 된다면 동접자는 올라가게 됩니다. 결국, 유저들을 얼마나 게임에 머무르게 할 수가 있느냐가 관건인 거죠.

많은 사람이 한 게임을 즐기게 하려면 그 많은 유저들의 다양한 재미와 취향을 만족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레이드든, 공성전이든, PVP든 그 외의 것이든 말이죠. 그런 다양한 유저들과 유저들 사이의 만남이 MMORPG의 재미이고 생명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변하는 것처럼 유저들 역시 변하고, 게임 역시 유저들에 맞춰 변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다른 것을 찾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가 너무 크다면 그 충격으로 유저들이 떠나게 됩니다. 과거 리니지 시절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필드를 만들고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조치를 한다면 기존 콘텐츠와 밸런스가 무너지게 됩니다. 기존 콘텐츠와의 밸런스를 맞춘다면 신규 필드가 죽습니다. 과거 리니지는 이렇게 죽은 필드는 버리고 새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나온 새 컨텐츠는 유저들에게 학습이라는 스트레스를 안겨주며, 이러한 악순환은 결국 유저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연결고리를 끊기 저는 위해 신규 콘텐츠 도입과 함께 기존 콘텐츠의 리뉴얼을 해주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새 컨텐츠가 나오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싸구려 아이템의 가치도 오르면 기존 유저들도 만족했습니다. 덤으로 리뉴얼은 신규 컨텐츠 개발보다 개발 비용이나 시간이 절반 수준입니다.






게임 내실을 다지는 작업과 더불어 게임 외적에 대한 투자도 필요합니다. 이미 서두에 게임은 게임성이 전부가 아니라고 이야기 드렸고, 동접 개선을 위해서는 꾸준한 홍보와 게임사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꾸준한 홍보와 게임에 대한 신뢰, 얼핏 보면 연관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게임에 대한 꾸준한 홍보는 게임에 대한 서비스 지속 의지가 있다는 것을 유저들에게 알리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리니지2가 나왔을 때 내부에서조차 리니지 서비스를 계속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있었고 유저들 역시 '리니지2를 해야 하지 않나, 속편이 나왔는데 전작에 투자를 하겠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리니지에 대한 홍보를 강화함으로써 유저들에게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고, 그것이 동접 개선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소비자들은 가성비만을 보고 물건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신뢰의 힘이 대단하다는 이야기입니다. 'A개발사의 게임은 믿을 수 있다.'라는 믿음과 현거래 시세의 안정, 이 두 가지 역시 동접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게임 원화 포스터 제작이나 유저 간담회 개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벌어들인 만큼 유저들을 위한 간담회나 캠프 같은 방법으로 다시 돌려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행사에 참여하는 인원은 게임을 즐기는 인원에 비해 소수이지만 그들을 통해 회사의 이미지가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콘텐츠가 좋고 회사 이미지가 좋다고 하더라도 이런 것을 만드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결코 동접 유지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게임의 재미를 결정합니다. 특히나 게임 개발은 협업 구조이기 때문에 시너지가 중요합니다. 팀장-팀원의 수직 구조가 아닌 선임 개발자-개발자의 수평적 구조가 필요한 것입니다.

시키기만 하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업무를 받는 팀원은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고, 업무 지시만 하는 팀장은 실무의 감을 잃고 제대로 된 선택을 내릴 수 없게 됩니다. 특히 MMORPG 게임은 방대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이것을 한 명이 컨트롤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일과 책임, 권한을 모두 균등하게 가져가는 방식입을 선택하는 것이 동접 개선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강연을 들은 바이오웨어 역시 매스 이팩트 1~3편을 개발하면서 이러한 조직 구조를 가지고 개발에 임다고 합니다. 같이 일하면서 책임과 권한을 나눠주었더니, 그 결과 책임과 자주성 모두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개발자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저가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유저가 재미있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실제로 유저 속에 파묻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저는 업데이트 이후 투명망토를 입고 필드에 나가 유저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식으로 사냥을 하는지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지금이라면 징계사유가 될 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통계라는 이름의 거짓말에 빠져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결과입니다. 유저는 실시간으로 변해가는데 통계 수치는 과거의 것이고, 통계를 믿으면 결국 언제나 유저들에게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본적인 학문에 대한 이해 역시 튼튼한 게임을 만들어 동접 개선에 영향을 줍니다. 색채학, 음향학, 군중심리학, 역사학 등 게임과 사람을 다루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고 이러한 것들은 무의식중에 유저들에게 좋은 느낌을 줄 수 있는 요소들입니다.

그리고 개발 기간에 개발자 간의 이해에 필요한 시간을 넣는 것을 추천합니다. 개발자 간, 또는 개발자와 다른 협업 파트원과의 의미 전달이 확실하게 되어야 하는데 이 작업은 충분한 시간을 필요로 하며 개발 도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개발 스케쥴에는 이러한 부분이 고려되어 있지 않으며 서로 간의 이해해 사용되는 시간은 필연적으로 다른 개발 시간을 차지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개발에 들어가는 시간이 부족해지고 원했던 결과물을 얻을 수 없게 되죠.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했지만 최근 한국 게임계를 보면 걱정이 앞섭니다. 근 5~6년간 홍보와 이미지 쇄신을 위한 투자 예산은 갈수록 줄어들고, 수익 창출을 위한 노골적인 캐쉬템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게임 산업 전반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게임 산업 전체의 가능성이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게임이든, 어떤 것이든 사람이 즐기는 것에는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강연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